# 196
회귀의 전설
196장. 파티에 초대받다 (1)
- 이 연주 진짜임?
- 미쳤네……. 미쳤어!
- 베토벤의 재림이라고 다들 난리야?
- 저 동양인 뭐야? 도대체 정체가 뭐냐고!
- 오! 키스하던 여자 완전 내 스타일인데?
- 연주 지린다…….
- 이건 음악의 뮤즈께서 재림하신 거다! 다들 경배할 지어다!
유튜브에 올라온 연주 장면으로 클래식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야외에서 펼쳐진 연주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리가 깨끗했다.
족히 1,000명이 넘는 인파들이 숨죽이고 바라보는 모습도 대단했다.
막귀가 아니라면 이 연주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화질이 구렸다.
남자 얼굴이 정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키스하는 여자도 체형의 윤곽만 간신히 잡혔을 뿐이었다.
하지만 둘 다 대단한 미남미녀라는 건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후후……. 여기 있었군. 파랑새.”
아랍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유튜브를 살피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딸각.
라이터를 켜 헤시시를 태웠다.
“후우우우~.”
길게 흡입하며 반짝이는 남자의 동공은 커다랗게 확장되어 갔다.
그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희미한 실루엣의 여인에게 꽂혔다.
조직에서 찾아 헤매던 기사단장의 딸 파랑새다.
그녀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띠리리리리.
핸드폰이 울렸다.
“알로?”
프랑스어다.
“친구들이 모일 시간이 됐다. 기다리고 있겠다.”
남자의 통화는 짧았다.
“후우우우우우우우…….”
다시 깊게 빨려 들어가는 헤시시.
점점 풀리는 커다란 눈동자 위로 남자와 키스하는 여인의 모습이 크게 확대되며 비쳐졌다.
***
“배고프지? 이거 먹어~.”
우유와 치즈가 듬뿍 들어간 과자를 비비안이 입에 물려준다.
너무 달달해서 혀가 가출할 것 같지만 묵묵히 받아먹었다.
차로 이동하면서 받아보는 이런 호사 이번 생에 많지 않았다.
다만 휴게소의 오징어 구이가 많이 생각날 뿐이다.
“맛있어?”
“어~.”
살면서 때로는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프로방스를 양 옆에 끼고 거침없이 도로를 달렸다.
사진으로만 봤던 프랑스 시골길은 낭만 그 자체였다.
넓은 평원과 곳곳에 보이는 포도밭, 시골집들의 풍경은 가슴을 시원하게 달래주었다.
괜히 사람들이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 게 아니었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청명했다.
“너무 좋다~.”
비비안은 창밖을 보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 와중에도 내 오른손은 꼭 잡은 채 놓지 않았다.
접촉이라는 게 참 미묘한 생체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진한 키스 한 번에 비비안과 거리가 이렇게 가까워졌다.
베토벤 형님이 강림해서 한판 시원하고 거침없이 피아노를 후려 팼다.
소나타 23번의 다른 제목은 뜨거운 욕망이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 양손에 요제피네와 테레제를 놓고 고민하던 베토벤은 피아노로 그 괴로움을(?) 표출했다.
시인은 시로, 소설가는 글로, 음악가는 악기로 감정을 담는 법이다.
베토벤의 이식한 기억에 의하면 이건 완전 나쁜 아저씨 놈이었다.
나이도 한참 어린 후원자의 여동생 둘을 노린 희대의 흉악범 아재다.
그런 그가 진이 누나 클럽에서 작곡한 곡이 천상의 환희라는 피아노 소나타다.
배고픔에 떨던 가난한 시절이 지나가고 포인트 착실하게 벌게 되면서 느꼈던 감동과 환희.
전생과 신생을 통털어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했다.
포인트도 쏠쏠하게 벌릴 뿐만 아니라 여신들과 처음 대화도 나눴다고 한다.
여자 단골이 생겨 끝나고 신선주 한 잔 나누기도 했다며 얼마나 기뻐하던지…….
그런 베토벤 형님이 작곡한 천상의 환희는 나에게 많은 걸 줬다.
카르마 포인트가 우수수 천상에서 떨어졌다.
숫자와 감동에 비례하여 엄청나게 저축됐다.
음악계로 나가도 포인트로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비비안과 급속하게 가까워졌다.
그녀의 키스는…… 달콤한 사과 맛이었다.
연주에 감동받아 무작정 달려와 키스를 퍼부은 비비안.
순간 엄청나게 갈등 때렸다.
그러나 거절할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요즘 들어 여복이 터졌다.
좋은 일이지만 동시에 불길하기도 했다.
만나는 여자들 모두 범상치 않았다.
잘 못 걸려 오뉴월에 동상 걸리지 않을까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좋았다.
오른손에 잡히는 비비안의 손은 뼈 없는 연체동물 것 같았다.
따뜻했다.
진한 키스 이후로 비비안은 나를 애인으로 취급했다.
하루 만에 이룬 엄청 빠른 진도였지만 21세기는 스피드의 시대.
그냥 잡스런 생각은 삭제했다.
미녀 피아니스트 아일라라는 여인이 명함을 건넸다.
세계 3대 교향악단 중 하나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객원연주자란다.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시원하게 거절했다.
비비안이 옆에서 웃고 있기도 했지만 느낌이 쌔했다.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그럼 빈에 와서 반드시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진 후 비비안과 난 호텔로 가 밥을 먹고 푹 잤다.
방은 두 개를 잡았다.
키스는 키스고 그 이후는 이후다.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개운하게 숙면을 취했다.
그리고 맞은 아침.
잘 자고 일어난 비비안은 모닝 키스를 해줬다.
좋았다. 무지.
“우와아아아아!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이 보여!!! 다니엘~ 마르세유야! 마르세유!”
비비안의 에너지는 정말 밝았다.
저 멀리 마르세유를 상징하는 산 위 정상에 거대한 성당이 보였다.
말로만 듣던 마르세유.
프랑스의 지중해 무역항으로 요트가 많고 북아프리카 과일과 야채가 엄청나게 수입된다는 항구 도시.
파란 하늘이 활짝 개여 우리를 반겼다.
산 위 성당을 기준점 삼아 차는 빠르게 달렸다.
뒤 칸에 짐이 늘어났지만 티구안은 넉넉하게 품었다.
“바다야…… 바다!”
성당이 가까워질 무렵 저 멀리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비비안은 감수성이 풍부했다.
멀리 보이는 지중해 푸른 바다를 보며 감동에 젖었다.
오는 길에 물었다.
베토벤을 좋아하냐고?
돌아가신 엄마가 베토벤 소나타, 개중에서 23번을 매일 몇 번씩 들었다고 한다.
엄마와의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베토벤 소나타들은 사랑의 열병에 걸린 이들에게 어울리는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구 항구 쪽으로 가면 맛있는 식당이 있어. 그곳에서 점심 먹자~.”
“자주 와 봤어?”
“엄마 고향이 이곳이야.”
“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남다른 것 같았다.
비비안의 안내로 차는 구 항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크고 작은 요트 수백 척이 떠 있었다.
장관이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이국적 바다 위 풍경의 절정이었다.
거대한 요새가 보였다.
그 안에 품고 있는 지중해 바다는 코발트 빛이었다.
지중해의 사파이어라 불리는 곳다웠다.
그렇게 비비안과 난 바다에 왔다.
항구 가까운 건물 지하 주차장에 차를 파킹했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흐으음~ 좋아. 이 냄새…….”
비비안이 눈을 감고 살짝 비린 바다 내음에 몸을 맡겼다.
자유로운 영혼의 프랑스 고양이 같으니라고…….
그녀의 모든 일상이 화보였다.
선글라스까지 호텔 상점에서 구입해 썼다.
청바지에 갈아입은 푸른색 셔츠…….
오늘도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청춘 커플 같았다.
“다니엘. 오늘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거야. 흐흐.”
비비안이 음흉하게 웃었다.
그리고 손을 잡고 항구 거리를 걸었다.
7월의 항구는 뜨겁지 않았지만 햇살은 따가웠다.
30도 언저리의 온도는 땀을 나게 만들었다.
비비안의 손을 잡고 따라간 곳에 레스토랑이 있었다.
마르마라는 빨간 간판이 눈에 띄었다.
비비안은 거침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예약하셨습니까?”
“아니에요.”
“두 분이십니까?”
“네.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부탁합니다.”
“안내 해 드리겠습니다.”
2층 창가 자리로 안내됐다.
“부야베스 정식 2인분 부탁해요.”
기대가 잔뜩 담긴 눈으로 주문하는 비비안.
“아주 맛이 끝내 줄 거야. 으흐흐.”
다시 음흉하게 웃는 비비안.
비비안은 아직 내가 누군 줄 몰랐다.
대장금 누님이 한식만 다루는 신이 아니다.
신계에서 식당 운영을 하기 위해 각국 요리들을 모두 다 섭렵한 분이다.
마르세유의 전통 지중해식 해산물 생선 요리인 부야베스 레시피가 떠올랐다.
생선, 해산물, 감자, 토마토, 양파와 마늘, 샤프란 같은 각종 향신료와 올리브 오일이 들어간 먹음직스런 요리가 머리에 그려졌다.
입맛이 확 돌았다.
“부야베스는 그리스인들이 마르세유에 정착하면서 만든 요리래. 엄마가 좋아하셨는데 아빠는 싫어하셨어. 비린 맛은 격이 아니라잖아. 쳇!”
비비안 아빠가 누군지 몰라도 언제 복어 해장국 한번 대접해야 할 것 같았다.
술에 취한 다음 날 시원하게 한 대접하면 세상 살 것 같은 각종 해장국 중 탑이다.
“수프 나왔습니다.”
진갈색 생선 수프와 바삭하게 구은 빵과 마늘 맛이 강하게 나는 소스가 곁들여 나왔다.
“아~.”
비비안의 애교는 천성인 것 같다.
자기 개성이 강한 유럽 여자들 상당수는 저렇지 않다.
소스에 빵을 찍어 직접 먹여주는 비비안.
눈빛에 꿀이 뚝뚝 떨어졌다.
“고마워.”
“사랑해~.”
“…….”
빵을 입에 물고 그대로 침묵의 10초를 보냈다.
“풋~!”
장난스럽게 웃는 비비안이 결코 밉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행복한 식사를 이어갔다.
새하얀 대접에 올려진 부야베스는 맛있었다.
매운탕과 비슷한 색깔이었지만 고춧가루나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은 향신료 요리였다.
새우, 조개, 그리고 각종 생선들이 푸짐했다.
살살 스푼으로 발라 쫀득한 살을 맛봤다.
“다니엘. 그거 줘봐.”
“뭐?”
“고추장.”
헐……. 벌써 중독된 거야?
비비안은 비상 향신료인 고추장 튜브를 원했다.
작은 가방에서 튜브를 건넸다.
부야베스에 고추장을 한 숟가락 듬뿍 넣는 비비안.
“크으~. 맛있어!”
휘이 저어 한 입 먹더니 제대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토종 한국인 앞에서 그녀는 제대로 고추장을 활용했다.
빙긋 웃으며 한 숟가락 부야베스에 넣었다.
맛있었다.
향신료를 모두 제압한 코리안 핫소스.
비비안과 난 그렇게 부야베스를 완전 정복했다.
“비비안?”
갑자기 나타난 일단의 무리가 아니었다면 아주 행복한 점심 식사 시간이었다.
“가브리엘?”
일단의 남녀가 우리 앞에 도열했다.
큰 키에 다들 한 몸매, 그리고 한 싸가지 할 것 같은 얼굴들이었다.
온통 금발 일색의 남녀들이 오만한 눈빛으로 나를 훑었다.
뭐지? 이 자들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뭐야. 비비안. 우리와는 만나지도 않고 이런…… 근본 없는 동양인이라니.”
“너희들 사겨? 커플 티 맞지?”
“오! 마이 갓! 이걸 네 아버지가 아시니?”
명품으로 싹 도배하고 나타난 남녀 네 명은 비비안과 나를 번갈아 보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과해. 불쾌해.”
비비안이 강하게 나갔다.
“불쾌해? 그럼 미안해. 성에 사시는 공주님이 그렇다면 기꺼이 예를 보여야지.”
가브리엘이라는 놈이 장난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중국인 같은데 밥 다 먹었으면 자리 좀 비켜줄래?”
중국인? 내가?
하하하. 잠시 잊고 있었다.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도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것을.
“너희들 뭐하는 짓이야!”
비비안이 화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차가운 표정이 깃드니 완전 아마존 여전사 같았다.
움찔 쪼는 남녀.
“그게 아니라 오늘 저녁 근사한 파티가 있는데 초대하고 싶어서 그렇지……. 그런데 이런 차림으로는…….”
그들이 나를 위아래로 다시 훑었다.
“그런 파티 난…….”
비비안이 거절하려 했다.
워워~ 그건 안 되지.
이미 나 심정 상했거든!
“그래? 그 허접한 파티 어디서 열리는데?”
찰지게 나오는 프랑스어.
네 명의 싸가지들 얼굴이 금세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