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링물 속 피폐 엑스트라가 되었다 (81)화 (81/92)

힐링물 속 피폐 엑스트라가 되었다

81화

* * *

마을은 산의 끝자락에 있는 장소로, 편평한 지대에 약 서른 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레이블라가 만난 아이들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열 살 미만의 소년 소녀들이었는데, 다들 부모가 없다고 했다. 마을의 어른들은 다 자기 할 일에 바빠서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아이들은 먹고살아야 하니 저들끼리 산과 숲으로 몰려다니며 과일을 따고, 작은 동물을 사냥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 덕분에 레이블라는 자연스럽게 마을 어른들을 피해 다닐 수가 있었다. 어른들은 의심이 많고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많아서 눈에 띄면 귀찮아질 것이었다.

그렇게 조심조심 아이들과 며칠 함께하면서 레이블라는 대충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 얻은 가장 충격적인 정보는 지금 그녀가 있는 위치가 루빈디시도 아니고, 비체라발리 영지는 더더욱 아니며 심지어 라스텔 제국조차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녀가 지금 머무는 위치는 페릴세테 공국. 현재 라스텔 제국과 교전 중인 나라였다.

마을의 근처에는 크고 높은 산맥이 즐비했는데, 그 산들은 오래전부터 드래곤이 머물렀다고 하여, 사람들은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는 장소라고 했다.

그렇게 정보를 조합하니, 대충 지금 있는 위치를 알 수 있었다. 페릴세테 공국 내 드래곤 레어가 있다 알려진 산맥이라 하면 유명했다.

다행인 것은 이곳이 전쟁을 치르는 국경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문제는 그래서 더더욱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

정말이지 한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이 작은 마을도 종종 들르는 상인이 있고, 그 상인이 곧 올 때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상인을 통해 레이블라는 페릴세테 공국에 있는 비체라발리의 상단에게 편지를 보낼 생각이었다.

그들은 오래전 비체라발리가 페릴세테 공국에 퍼트린 첩자로, 오랫동안 공국에서 지낸 탓에 토착민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들이 비체라발리를 섬기는 것은 여전했다. 현지화되어 좀 더 은밀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들이니 레이블라 비체라발리를 완전히 외면하지는 못할 터였다. 반드시 그녀를 비체라발리 성으로 인도해 줄 것이다.

그렇게 탈출 방법까지 정해지자,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비록 환경은 최악이고, 적국이라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지만, 하나라도 방법을 찾고 나니 제법 이 생활을 즐길 여유가 생겼다.

이 마을에는 여러 재미있는 점이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아이 중 누구도 그녀를 배척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레이블라’라는 인간보다는 다른 곳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해야 하나.

지금처럼.

“언니.”

레이블라보다 한 뼘은 작은 두 아이가 그녀가 품에 안은 알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홀린 듯 바라보는 눈길에서는 침이 질질 흐르는 듯했다.

“……그거, 정말로 먹으면 안 돼?”

“그 크기면 우리 다 한입씩 먹을 거 같은데.”

아이들과 합류하고 나서 사흘이 지날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받은 질문이었다.

질문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묽은 죽조차 제대로 얻어먹지 못한 듯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다. 전쟁터로 부모님이 끌려간 탓에 아이들이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알을 주고 싶기는 했지만, 안에 든 포악한 녀석이 순순히 먹혀 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레이블라는 오늘도 거절해야만 했다.

“응, 이거 알에 새끼 들어 있어. 이거 까면 구워 먹자.”

“정말?”

“그럼. 커다란 도마뱀 알이거든. 키워서 먹으면 더 맛있을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참자?”

아이들은 미련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목소리로 참겠다고 했고, 알은 감히 자기를 그따위로 소개하느냐며 바들바들 떨어 댔다.

무슨 알이 농담도 못 할 정도로 예민하지?

‘그나저나 이 기세면 잘 때 몰래 빼앗길 것 같은데.’

그러면 이 예민한 알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불필요한 사상자가 나올 것이 뻔했다.

역시, 직접 나서야 했다. 짤따란 다리로 힘차게 땅을 디디고 선 레이블라가 여기저기서 입맛을 쩝쩝 다시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버섯 따러 가자. 오늘은 먹을 수 있는 버섯을 알려 줄게.”

“좋아!”

전쟁을 치르는 적국이기에 딱히 이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레이블라는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식용 식물을 알려 주기로 했다.

산과 숲이 널린 지대이니, 식용 식물이 무엇인지만 알아도 배가 고파서 죽는 일은 줄어들 테니까.

어제는 배가 아플 때 먹는 풀, 열이 날 때 먹을 수 있는 풀 같은 것을 알려 주었고, 오늘은 버섯이었다.

“이 버섯은 못 먹는 버섯이야. 먹으면 배가 아파서 며칠 밤을 끙끙 앓아야 해.”

“죽는 거야?”

“죽지는 않아. 다만,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못 할 뿐이야.”

“밥도 못 먹겠네.”

“그렇지. 그러니까 이 버섯은 안 돼. 이건 여기가 세모 모양이지? 먹을 수 있는 버섯이야. 불에 구우면 고기랑 비슷한 맛이 난대.”

“이거랑 같은 거야?”

한 아이가 곁에 있던 버섯을 따서 내밀었다. 작은 손으로 내민 버섯은 그의 손보다도 커다랬다. 레이블라가 키득키득하면서 그를 칭찬했다.

“응. 잘했어.”

“나도, 나도 딸래!”

“나도!”

칭찬이 고픈 아이들이 너도나도 버섯을 따겠다며 제각기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들며 자기가 딴 버섯을 자랑하느라 시끌벅적했다.

그때, 아이 하나가 의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어, 이게 뭐지? 커다란 천이 있어.”

아이가 수풀 속에서 무언가 꺼내 들더니, 찢어진 붉은색 망토를 활짝 펼쳐 보였다.

망토는 오랜 시간 버려져 있었는지, 색이 바래고 너덜너덜했다.

“이거 제국 놈이 버리고 간 거 아니야?”

“맞아. 그때 그놈들이 이런 거 두르고 있었어.”

“제국 놈?”

레이블라가 의문을 표시하자 무리 중 가장 큰 아이가 대답했다.

“넌 모르겠구나. 2년 전쯤에 여기 제국 놈들이 왔다 간 적이 있었거든.”

“제국 사람들이 왜 여기 왔었는데?”

“황녀 생일 선물 때문에 드래곤 레어에 볼일이 있다며 쳐들어왔었어.”

아, 그렇구나.

……또 황녀냐!

‘그 쓰레기 황제는 진짜 안 끼는 곳이 없네.’

비체라발리 공작 부인이 죽은 일도, 포스타리모와의 전쟁도 그랬는데. 설마 페릴세테 공국의 전쟁에도 무슨 비화가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간 한 짓을 보면 확실하지.’

그놈이 황녀의 생일 선물을 줍겠다고 이 산만 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공국을 뒤흔들면서 짓밟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제국 기사들이 너희 부모님을 죽인 거야?”

레이블라가 갈색 머리에 주근깨 가득한 소년에게 묻자, 그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직접 죽인 건 아니야. 하지만 그놈들이 다녀간 뒤로 공국의 의심을 샀어. 우리가 그놈들 첩자래.”

전쟁이 일어났으니 제국군과 접촉한 사람들을 모조리 의심한 모양이었다. 자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첩자를 색출해 내겠다며 사람들을 괴롭혔겠지.

“제국 놈들이나 공국 놈들이나 하나같이 다 쓰레기야.”

“그래도 제국 놈들이 더 나빠. 애초에 그놈들이 와서 드래곤님을 노하게 하지만 않았어도 물이 모자라지는 않았을 거야.”

“맞아. 어른들이 다 말렸는데도 막무가내로 쳐들어갔어. 그래서 축복이 사라진 거야.”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이유가 바로 이것인 모양이었다. 제국 기사들이 망가뜨린 결계를 수리하라고.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어.’

어느 날 제국군이 황녀의 생일 선물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이곳에 왔고, 드래곤 레어를 침범했다. 그들이 떠난 후에는 그들 대신 마을 사람들이 드래곤의 분노를 감당해야만 했다.

이후 제국과의 전쟁이 터지자, 그때 제국군이 머물렀다는 것을 이유로 또다시 마을 사람들이 ‘첩자’라는 불명예스러운 죄를 뒤집어쓰고야 말았다.

전쟁 중 벌어진 상황은 참혹했을 것이다. 어른들이 전장으로 끌려가는 것은 물론 배신과 약탈이 빈번했겠지.

모든 상황을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했을 아이들의 심정을 레이블라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전쟁이 일어난 이유도 다 그 황녀 때문이잖아.”

……응?

“황녀 때문이라고? 그 드래곤 레어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 거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