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링물 속 피폐 엑스트라가 되었다 (79)화 (79/92)
  • 힐링물 속 피폐 엑스트라가 되었다

    79화

    “로, 로이안……?”

    조심스럽게 불러 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덜컥,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때 레이블라의 눈앞에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가 포착되었다. 투명하고 빛이 나는 나비는 그 빛으로 주변을 밝혀 주었다.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레이블라가 발 디딘 이곳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돌로 이루어진 장소였다. 아마도, 어딘가의 동굴인 모양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축복의 나무에서 무슨 실수라도 한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어긋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런 발생할 위험이 있다면, 로이안이든 샬럿이든 누군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경고를 주었을 것이다.

    “그럼 뭐지?”

    원인이라고 한다면…… 레이블라의 시선이 요요하게 제 앞을 날고 있는 나비에게로 향했다.

    눈동자에 의심이 가득 차올랐다.

    “너야?”

    레이블라가 말을 걸 듯이 묻자,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나비가 빠르게 팔랑거렸다. 아래위로 붕붕 움직이는 것이 제가 한 일이라고,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기색이었다.

    “정말 너라고?”

    팔랑팔랑. 저게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을 것이다.

    ‘나비가 납치범이라니.’

    그것도 말을 알아듣는 나비라고?

    꿈인가. 이게 현실일 리가 없잖아.

    하지만 피부로 와닿는 차가운 동굴 바닥도, 울려 퍼지는 제 목소리도. 어두컴컴하기만 한 시야도. 하나같이 지금 상황이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저 나비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돌려보내 주면 안 될까?”

    레이블라는 양손을 맞잡고 조심스럽게 부탁해 보았다. 말을 잘 알아듣는 나비이니 혹시나 제자리로 돌려주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굴던 나비는 레이블라의 말을 못 알아듣겠다는 듯이 빙글 돌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훅 그녀에게서 멀어지기까지 했다.

    “어, 어디 가?”

    이 새카만 동굴 속에 빛이 나는 것은 오직 저것뿐이었다. 놓쳤다가는 이 동굴을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불안한 마음에 레이블라가 다급히 나비를 쫓았다. 그녀가 따라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나비의 날갯짓이 느려졌다. 천천히, 제대로 따라오라는 듯이 속도를 맞추어 주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나비가 어느 한곳에 멈추어서는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다가 무언가에 앉았다.

    레이블라는 나비가 내려앉은 장소로 다가갔다.

    그리고 발견했다.

    폭신한 무언가에 올려진 둥글고 동그랗고 동글동글한…….

    “……알?”

    달걀보다 두 배는 클 법한 알이 있었다.

    의아한 눈빛으로 나비를 보니 나비가 날개를 힘차게 움직였다. 독특한 움직임이었다.

    마치, 너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 같달까.

    ‘이게 정말 내 선물인가.’

    여긴 어디이며, 이걸 왜 자신에게 준다는 걸까.

    이런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알이 닭이나, 예쁜 새의 것일 리가 없었다. 매우 높은 확률로 이건 마수의 알이었다.

    그럼 이 동굴이 마수의 서식지……?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린 레이블라가 한 걸음 물러서며 중얼거렸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샬럿이 본다면, 정말 녹아내리는 솜사탕이라고 놀릴 것 같았다.

    “마수 싫어…….”

    싫다는 말이 입술을 떠나는 것과 동시에 알에 앉아 있던 나비가 날개를 시무룩하게 축 늘어뜨렸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뭔가 조금 불쌍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이런 정체불명의 물건을 들고 갈 생각은 없었다.

    레이블라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싫어. 그냥 돌려보내 주면 안 될까? 아빠랑 로이안이 걱정할 거야.”

    이번에는 그녀의 마음이 나비에게 닿았는지, 나비가 다시금 팔랑 날아올랐다. 비행하면서 간헐적으로 밝은 빛을 발산하는 모습이 뭔가 해 주려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곧 빛은 사그라들었고 나비는 불규칙하게 위로 올랐다, 아래로 내려갔다만을 반복했다.

    무슨 일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시도했으나 망했다는 건 확실히 전해졌다.

    “그럼 어쩔 수 없지.”

    한숨과 함께 나비에게 물었다.

    “혹시 밖으로 나가는 길은 알고 있어?”

    어딘지 모를 이곳에서 나가기만 한다면 비체라발리 공작성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레이블라의 부탁에 나비가 하늘하늘한 움직임으로 레이블라의 등 뒤로 날아갔다. 온 길을 되돌아걸 보니 밖으로 내보내 줄 생각인 모양이었다.

    기쁜 마음에 즉시 나비의 뒤를 따랐다.

    혹시나 마수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하기는 했지만, 이 지긋지긋한 어둠 터널이 끝날 순간만 고대하며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또다시 눈앞에 알이 있었다. 아까 봤던 바로 그 알이었다.

    ‘저 나비가 날 갖고 노는 건가……?’

    이쯤 되면 장난치는 게 확실했다.

    털썩. 주저앉은 레이블라가 양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입에서는 한탄이 쏟아졌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지금껏 제법 많은 일을 겪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하면 여기에서 나갈 수 있는 거지.

    방법이 있긴 한가.

    한참을 고민하던 레이블라의 눈이 다시금 둥그런 알로 향했다.

    설마.

    “혹시, 저 알을 안 가져가서 나 괴롭히는 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비가 어깨에 올라타서는 자신의 날개로 레이블라의 어깨를 쳤다. 지금 누굴 그런 나쁜 놈으로 보는 거냐, 라고 항의하는 듯했다.

    너 나쁜 놈 맞잖아. 납치범아.

    “배도 고픈데.”

    황궁에 있을 때만 해도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도 안 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은데. 비체라발리에 와서부터는 관리를 받아서인지 때가 되면 배가 고프기도 하고, 종종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를 때도 있었다.

    “너무 돌아다녔더니 다리도 아프고.”

    아이처럼 투덜거리자, 나비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정신없이 팔랑거리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새카맣게 변한 어둠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다시 눈앞이 밝아지면서 나비가 나타났다. 동시에 데구루루 무언가 굴러서 레이블라의 다리에 부딪혔다.

    과일이었다.

    “나 먹으라고?”

    과일을 주워서 내밀자, 어서 먹으라는 듯 나비가 그녀의 입술 근처에서 팔랑거렸다.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대충 보니 과일도 싱싱하고 괜찮았다.

    그대로 아삭 한입 베어 물었다.

    흥건하게 배어나는 과즙이 달콤했다.

    ‘황궁에서 먹었던 거랑 비슷하네.’

    정원수를 많이 털어먹었었는데.

    ‘그러고 보니 진짜 오래전 일 같네.’

    돌이켜보면 그때는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면서 씩씩하게 다녔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불안감이 늘 존재했었다.

    지독한 터널 끝에 빛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한 치 앞도 안 보이는데, 정말로 내가 이 어둠을 헤치고 황궁을 떠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걸까 불안했었다.

    ‘칼릭스도 눈치챘겠지.’

    입으로는 꿈이니 미래니 힘찬 말을 내뱉었지만, 내심 속으로 불안해했다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황녀와 함께 납치당했다가 홀로 떨어졌을 때, 위험에 빠진 자신을 구하러 와 주었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저를 도와주러 왔던 칼릭스를 생각하니 가슴이 따뜻해졌다.

    거기에 로이안, 비체라발리 공작을 연달아 떠올리자 엎어 놓은 접시 같았던 입매가 뒤집히며 살며시 미소가 고였다.

    대충 배를 채우니 불안에 술렁였던 마음이 차분하게 정리가 되었다.

    그러고 나니 지금 상황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가능해졌다.

    레이블라의 시선이 다시 알로 향했다. 그리고 물었다.

    “너지. 마수야. 네가 못 나가게 막는 거지?”

    나비가 이곳으로 납치한 것은 맞지만, 나비는 다시 돌려보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배고프다는 말에 놀라서 과일까지 따 온 것을 보면 동굴 안에서 죽으라고 내버려 둘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럼 범인은 하나였다. 눈앞의 정체불명의 알.

    “왜 내가 못 나가게 막는 거야? 얼른 돌려보내 줘. 아빠가 날 찾고 있을 거야. 로이안도 지금 울고 있을지 모르는데…….”

    구구절절하게 지금 상황을 설명했으나, 알은 반응이 없었다.

    그러니 다시금 의문에 빠졌다. 알과 대화가 가능하긴 한 걸까? 왜 갑자기 저게 나타난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내가 어쩌다가 마수의 알과 협상을 하는 거지…….”

    나는 정말 이런 상황을 원한 적이 없는…….

    잠깐만.

    ‘혹시 알아? 정령이 있으면 나에게 멋진 마수의 알을 선물해 줄지.’

    ‘드래곤 알이면 갖고 싶을 것 같은데. 멋지잖아.’

    ……원한 적이 있었다.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그 추측이 맞다면, 이곳은…… 드래곤 레어였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