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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물 속 피폐 엑스트라가 되었다 (73)화 (73/92)

힐링물 속 피폐 엑스트라가 되었다

73화

소설로 볼 때야 주인공이 돈도 잘 벌고 유능하다며 환호했지만, 실제 상황을 보니 굉장히 심각했다.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솔직히 황녀 전하의 가게가 없을 때가 더 좋았어요. 그땐 먹을 것이 다양했거든요.”

밀리아가 속삭이며 말을 이었다.

“저기 저 가게만 해도 카나페가 정말 맛있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인제 그만둔다고 하더라고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밀리아를 보자, 괜히 궁금해졌다. 얼마나 맛있길래 그러는 걸까.

“가 볼까?”

“다녀오세요! 저는 황녀 전하의 가게에서 줄을 서고 있을게요. 저는 많이 먹어 봤으니까요.”

“그럼 내가 카나페를 사 올게. 밀리아는 기다리고 있다가 디저트를 종류별로 모두 사 줘.”

“네!”

목적을 정한 레이블라가 앞장서자, 샬럿이 곁으로 바짝 붙었다. 주변을 경계하는 샬럿의 눈빛이 한층 더 강해졌다.

‘완전히 망했네.’

밀리아가 추천한 가게로 가는 도중에도 디저트 가게가 몇몇 있었는데, 비슷하다 못해 똑같은 메뉴를 파는 곳이 있는가 하면, 한두 곳은 텅 비어 있었다.

추천받은 가게 또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물건은 있지만 사람이 없어서 입구에서부터 망하기 직전의 분위기가 풍겨 왔다.

“내부는 고급스럽네.”

어찌 보면 올드하지만, 한편으로는 고풍스러운 느낌이 드는 가게였다. 취향에 맞는 사람이라면 제법 찾을 법한 장소였다.

“카나페가 맛있어요, 아가씨.”

구입을 마친 샬럿이 먼저 먹어 보고는 레이블라에게 내밀었다. 과일이 예쁘게 장식된 카나페를 입에 넣자, 입매가 절로 허물어졌다.

“정말 맛있어. 이거 사서 가야겠다. 로이안이 좋아할 것 같아. 그리고 공…… 님이랑 기사들도!”

“넉넉하게 사 가요, 아가씨.”

“응.”

그밖에도 여러 디저트를 시켜 보았는데 확실히 밀리아가 추천할 만한 곳이었다. 정말이지 하나같이 다 맛있어서, 이렇게 망하기에는 굉장히 아쉬웠다.

“보통 일을 그만둔 사람들은 뭐 하면서 살까?”

“이 가게 주인에게 물어볼게요. 아가씨가 호기심에 녹아내리면 곤란하니까요.”

“아니, 괜찮은…….”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샬럿의 행동이 훨씬 빨랐다. 그녀는 순식간에 가게 주인이자 파티시에를 레이블라의 앞으로 대령했다.

난데없이 끌려온 50대 중반의 사내는 밀가루가 묻은 손을 숨기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레이블라의 궁금증에 답해 주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농사나 하려고 합니다.”

“농사를요?”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파티시에가 갑자기 농사라니. 둘 다 멋진 일이었지만, 원치 않는 폐업 상황임을 알아서 그런지 아쉬워졌다.

“시골에서 가게를 여는 건요?”

“빵 가게를 여는 것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벌이가 쉽지 않더라고요. 이제 느긋하게 쉬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는 귀족들이나 돈 많은 상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던 사람이었다. 시골 평민들을 대상으로 하기엔, 그 벌이가 시원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확실히 우려스럽네.’

지금은 단지 디저트 가게만의 문제지만, 앞으로 황녀의 사업은 엄청나게 커질 예정이었다. 의류에서부터 무역 상단, 심지어는 훗날 성녀가 되어 환자들까지 치료하게 된다. 온 제국이 황녀의 움직임에 따라 휘청거린다고 해도 무방했다.

당연히 다른 분야에서도 지금과 같은 일이 생길 터였다. 비체라발리 영지의 모든 업종이 위험했다.

‘이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는데, 새삼 고민이 깊어지는 하루였다.

* * *

“박람회를 열고 싶어요.”

다음 날, 공작을 찾아간 레이블라가 얇은 서류를 건네며 이야기했다.

비체라발리 공작은 레이블라가 내민 서류를 훑어보다가 기특하다는 듯 미소 지으며 헤넌에게 넘겼다. 헤넌 또한 서류를 빠르게 훑어보고서는 두 눈을 반짝이며 레이블라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귀족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사업은 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요.”

귀족을 타깃으로 하는 사업이 활발해져야 영지민들의 생활이 덩달아 풍요로워질 수 있었다. 돈 있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턴 것으로 세금을 내고, 그 세금이 결국 영지민들의 복지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가게가 망하면 영지민들의 직장이 사라지니, 자연스럽게 실업률은 증가하고 못사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영지를 관리하는 공작으로서는 세금을 거두기가 어려워지면 복지 사정 또한 좋게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럼 영지를 떠나는 사람들도 생길 테고, 세금은 더더욱 줄어들게 되니, 여러모로 악순환이었다.

‘황녀의 사업이 더 커지면 그 손해가 더욱 커지게 돼.’

비체라발리야 다방면으로 손을 뻗치고 있으니 망할 리는 없겠지만, 황녀와 주요 사업이 겹치는 영지들은 자연스럽게 황녀의 사업체가 내는 세금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영지 내에 황족의 입김이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실상 이미 가진 게 넘치도록 많은 황녀에게만 돈과 힘이 더 모이는 꼴이었다.

“사업은 개인이 하는 것이지만, 필요할 때는 적절하게 영주가 관리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를 위한 게 박람회입니까?”

헤넌의 물음에 레이블라가 끄덕였다.

“보통은 비싸고 귀한 것이나 지금껏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물건을 선보일 때나 하는 것이었지만, 디저트가 안 된다는 법은 없잖아요?”

“그건 그렇죠. 신선하기는 할 것 같습니다. 도련님의 생일 연회에 루빈디시를 찾을 귀족들이 제법 많을 테니 말입니다.”

레이블라가 노린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마석 광산에 관한 소문이 널리 퍼진 만큼, 대다수 귀족은 로이안의 생일 연회에 참석하려고 할 것이다. 연회에 홀로 입장할 수는 없을 테니, 분명 누군가와 동행할 것이었다. 보통은 부인이나 자녀들일 가능성이 컸다.

사업을 하러 온 사람들이야 바쁘겠지만, 동행인의 경우에는 남은 시간이 무료할 터였다. 그들을 공략해 디저트 박람회에 관해 소문을 낸다면 한 번쯤 가 보려 할 것이 틀림없었다.

새롭고 특이한 것이라면 뭐든 선점하려 드는 사람이 그들 가운데에서도 있을 테니까.

“이것으로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과열되는 상황에 물을 끼얹을 수는 있을 거예요.”

박람회가 운이 좋아 대성공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황녀의 가게가 생기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그 가게는 망하지 않을 테니 상생밖에는 답이 없었다.

이번 박람회의 목적은 모두에게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기존의 것이 ‘식상한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생긴다면, 이전처럼 광적으로 한곳만 찾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아이디어가 좋습니다. 아가씨께서 벌써 이렇게 영지 일에 신경 써 주시다니. 지난 펠리시티의 명성이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내 딸이지.”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던 비체라발리 공작이 툭 끼어들면서 헤넌을 쏘아보자, 그가 아차 싶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닫았다. 그러다가 다시금 레이블라에게 물었다.

“진행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음, 시간이 촉박하지만, 일은 순서대로 해야 할 것 같아서 우선은 디저트 가게에 참여 의사를 물어볼 예정이에요. 아무리 제가 원해도 참여자가 없으면 안 되니까요. 가능하다면 시식을 전부 하고 각 디저트 가게에 개선점을 알려 주는 시간을 가져 볼 생각이에요.”

참여를 끌기 위해서 최고의 셰프들이 모인 공작저의 요리사들이 직접 먹어 보고, 개선점을 알려 준다고 홍보할 예정이었다.

황녀의 막강한 디저트에 대항해 살아남으려면, 대중성이 있으면서도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해야만 했다.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법으로 개선점을 제시할 작정이었다.

“다만 아직 어린 데다 이제 갓 비체라발리가 된 제 이름으로 하기에는 좀 그래서…… 헤넌의 이름을 빌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제 이름을요?”

“네, 헤넌은 공작님의 보좌관이니 영지민들에게는 믿을 만한 사람이잖아요.”

반짝반짝 눈을 빛내면서 보자, 헤넌이 흔쾌히 끄덕였다.

“좋습니다. 저야 영광이지요.”

“고마워요, 헤넌. 이름에 흠이 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볼게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앞으로요……?”

단순히 디저트 사업만 다룰 생각은 아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황녀가 진출할 사업을 알고 있으니, 그에 따른 대비를 다 해 둘 작정이었다. 비체라발리 공작령이 황실의 손아귀에 떨어지지 않도록. 황녀에게 지지 않을 만큼 자생력을 길러 주고 싶었다.

그것이 모두가 함께 살아남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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