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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물 속 피폐 엑스트라가 되었다 (70)화 (70/92)
  • 힐링물 속 피폐 엑스트라가 되었다

    70화

    드래곤 레어는 드래곤이 머문 것으로 전해지는 장소였다.

    마수가 많다는 산악지대에서도 드래곤 레어 근처에는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수가 피할 정도의 압도적인 힘을 지닌 존재는 드래곤뿐이었기에. 기이할 정도로 고요한 공기가 흐른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레어로 추정되는 장소는 대륙 곳곳에서 발견됐는데, 모두 하나같이 인간이 풀 수 없는 삼엄한 결계가 있는 탓에 지금껏 그 누구도 공략하지 못한 상태였다.

    사람들은 그 레어 안에 드래곤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을 싫어해서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는 깊고 높은 산속에서 오랫동안 잠을 자는 것이라고.

    “우리 동생, 드래곤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제는 전설처럼 되어 버린 터라, 그 존재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물정 모르는 어린애 취급을 당했다.

    “깊은 산이나 위험한 지역으로만 가지 않으면 만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렇지. 로이안이 지켜 줄 거지.”

    레이블라가 로이안을 추켜세우며 키득거렸다.

    “그럼 그날은 나랑 로이안도 보물이 든 달걀 찾으러 가는 거야?”

    “아니? 나는 진짜 마수를 사냥하러 가야지.”

    “……뭐?”

    “비체라발리 후계자는 그날 마수를 처치하러 가야 해. 그래 요즘 훈련 강도를 올린 거야.”

    세상에.

    “어른 10명이 달려들어도 잡기 힘든 마수를 잡으러 간다는 거야? 로이안이?”

    “별건가. 잡으면 되지.”

    마치 마수가 호랑이나 사자, 코끼리 같은 동물이라도 되는 듯 아무렇지 않게 답하고 있었다.

    새삼 세상에서 마수의 취급이 참 보잘것없구나 싶으면서도, 뭐가 됐든 아무런 걱정 없는 로이안이 대단하구나 싶었다.

    역시 남자 주인공이라서일까.

    “정말 잡을 수 있겠어? 아직 로이안은 검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우리 동생, 내 걱정하는 거야? 나보다는 네 걱정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나? 설마, 나도 마수 잡아야 해?”

    못 잡는데.

    레이블라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로이안을 응시하자, 그가 웃으며 레이블라의 볼을 살며시 꼬집었다.

    “그럴 리가 있어? 너는 아이들과 보물이 든 알이나 찾으면 돼.”

    “……놀린 거지?”

    “귀엽네, 우리 동생.”

    계속 동생, 동생 하더니 그새 호칭이 자연스러워진 듯했다. 로이안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 보이고는 시원한 물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가늘게 뜬 눈으로 쳐다보는데, 곁에 가만히 있던 샬럿이 덧붙이듯 말했다.

    “하지만 도련님께서 잘못 말씀하신 것은 없으세요. 아가씨께서 알을 제일 먼저 찾으셔야 하거든요.”

    “내가?”

    “아가씨가 제일 먼저 찾아야 다른 아이들도 찾을 테니까요.”

    한마디로 높으신 분이 먼저 예식을 치러야 다른 아이들이 편안히 즐길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위치를 먼저 알아서 가야겠다.”

    “제가 꼭 알아서 올게요.”

    샬럿이 무슨 일이 있어도 알아 오겠다며 불끈 의지를 다졌다. 레이블라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웃어 버렸다.

    그렇게 시시한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무렵, 멀찍이서 레이블라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헤넌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레이블라 앞에 다가섰다.

    그리고 말했다.

    “아가씨! 찾았습니다. 마석 광산!”

    전에 넘겼던 정보가 드디어, 대박을 터뜨렸단 소식이었다.

    * * *

    “너에게 주겠다.”

    마석 광산의 발견 소식을 듣자마자 찾아간 비체라발리 공작의 집무실에서 그가 아무렇지 않게 선언했다.

    광산의 주인은 레이블라, 바로 그녀라고.

    레이블라는 고개를 즉시 고개 저었다.

    “저는 이미 돈을 받았는데요. 주실 필요 없어요.”

    탈출 비용 마련을 위해 그 정보를 1000골드에 팔아 버린 상태였다. 그러니 그 마석 광산은 비체라발리 공작의 것이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단호히 거절하니 비체라발리 공작이 헛웃음을 지었다.

    “정녕 그 정보의 값어치가 기껏 1000골드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 레이블라. 그 마석 광산이 가지는 값어치가 1000골드는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비체라발리 공작의 이야기에 로이안도 맞장구쳤다.

    “대륙에 마석 광산이 몇 개나 된다고. 심지어 지금 발견된 모든 마석 광산을 합쳐도 못 따라올 만큼 매장량이 엄청나다며! 근데 그걸 고작 1000골드에 넘기겠다고?”

    두 사람의 말처럼 마석의 값어치는 엄청났다. 조약돌처럼 작은 마석 하나에도 1억 골드의 가치가 있을 정도니까. 그러니까 그게 산처럼 쌓여 있는 수준이라면, 그건 정말로 엄청난 부를 보장해 주는 격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정보로 넘긴 이유는 마석 광산을 지녔단 소식이 알려지면 목숨이 노려지기 쉽기 때문이었다. 아무 힘도 없는 아이가 가지기엔 너무 큰 부라서 처음부터 탐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황녀에게 넘길 생각도 없었기에, 차라리 비체라발리가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알려 준 정보였다.

    처음부터 가질 생각이 없었으니 미련조차 남지 않았다.

    분에 넘치는 부는 없느니만 못하니까.

    “저는 필요 없어요. 저를 거두어 주신 보답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비체라발리 공작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그래. 알았다. 지금은 내가 갖고 있으마. 하지만 꼭 돌려줄 것이다. 언젠가 너에게 필요해질지도 모르니.”

    “정말로 저는…….”

    “레이블라.”

    비체라발리 공작이 말을 자르면서 레이블라와 눈을 마주쳤다. 단호한 반응에 레이블라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끄덕였다.

    “그럼 제가 다시 돌려받을 때까지 비체라발리 공작가에서 광산 개발을 해 주세요. 마석은 공작님께서 가진 상단을 통해 판매해 주시고요.”

    “그래, 알았다.”

    그렇게 답하면서도 비체라발리 공작은 어딘지 모르게 못마땅한 눈초리였다. 서운한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욕심이 없어서야……. 내가 더 해 줄 건 없나?”

    원하는 게 너무 없어도 섭섭한 감정을 유발하는 모양이었다. 공작의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던 레이블라가 이내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그럼 사람 하나를 찾아 주실 수 있나요?”

    “사람?”

    레이블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공작이 누구인지 말해 보라는 듯 눈짓했다.

    “이름은 칼릭스 벤야 트리셰인. 선대 황태자 전하의 아드님이세요.”

    * * *

    비체라발리 공작이 마석 광산을 찾아냈다는 소식은 빠르게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당연히 귀족들이 모이는 자리자리마다 비체라발리의 마석 광산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사실, 그간 비체라발리 공작이 언급되는 주제는 모두 전쟁에 관한 것이나 황제와 새로운 편입된 영지를 두고 설전을 하고 있단 소식뿐이었다.

    게다가 최근엔 감히 황실에 대항하는 모습으로 낙인찍혀 솔직히 그를 좋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더욱이 7년씩이나 전쟁터만 오간 탓에 제국 내 귀족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또한 상당히 줄어서 그 불만을 대놓고 표시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지하 경제를 틀어쥔, 제국의 큰 기둥이라는 사실을 알기는 해도 곧 쇠락할 것이라 짐작하는 사람마저 나타나는 수준이었는데.

    최근 행보가 무척이나 파격적이었다.

    후작가를 하루아침에 멸문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마석 광산이라니. 뿐만 아니라 그 마석 광산이 무려 지금까지 발견된 어떤 마석 광산보다도 크다니!

    이 소문이 퍼지자 발 빠른 귀족들은 재빨리 루빈디시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간 수출입이 제한되었던 마석을 빠르고, 싸게. 그리고 많이 공급받기 위해서였다.

    개중에는 또다른 행보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다름 아닌, 작고 화려한 방에 모인 비체라발리의 원로회 귀족들이었다.

    “펠리시티에게 광산을 넘기시다니요!”

    하트퍼드 자작의 고성이 벽을 타고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어떻게 그걸 펠리시티에게 줄 수 있단 말입니까. 공작을 설득해야 합니다.”

    이에 컴벌랜드 남작이 고개를 주억였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 규모의 광산이면 비체라발리 대다수 사업에서 얻는 이익을 합친 것과 비등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더 낫지요. 앉아만 있어도 재화가 굴러 들어오겠죠. 마석은 절대로 망할 일 없는 사업입니다.”

    “하지만 공작에겐 설득이 통하지 않을 겁니다. 언제 우리 말을 들은 적이나 있습니까.”

    답답하다는 듯 빈정거리는 뒤파제 자작의 말이 맞았다.

    카시우스 비체라발리가 18살에 공작의 작위에 오르고부터, 그는 단 한 번도 원로회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결혼도, 전쟁에 관한 일도, 심지어 입양까지 제멋대로 진행하는 통에 원로회라는 말이 그저 늙은이들만 모인 장소라는 뜻이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럼 어쩌자는 말입니까. 이대로 그 꼬마에게 모두 넘기자는 말씀입니까? 심지어 하는 모양새가 직계 재산까지 다 넘겨줄 판입니다!”

    “그러니까, 손을 써야지요.”

    뒤파제 자작이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자, 하트퍼드 자작과 컴벌랜드 남작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그 말은…….”

    “아까 공작성에서 들었습니다. 그 망할 꼬맹이가 마수 알 줍기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그럼…….”

    꿀꺽.

    컴벌랜드 남작이 긴장하며 묻는 말에 뒤파제 자작이 힘주어 끄덕였다. 그 반응에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하트퍼드 자작과 컴벌랜드 남작이 결연히 고개를 움직였다.

    그렇게 모두가 한마음으로 다짐했다.

    그 빌어먹을 꼬마를 없애 버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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