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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물 속 피폐 엑스트라가 되었다 (1)화 (1/92)
  • 힐링물 속 피폐 엑스트라가 되었다

    1화

    프롤로그

    “찾았습니다!”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자 소란스럽게 움직이던 기사들의 행동이 멈추었다. 칼바람이 휘몰아치던 공간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모두가 얼어붙은 상황 속에서 이내 가장 싸늘한 얼굴을 하고 있던 남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녀 전하이십니다, 폐하!”

    그는 다시금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도착한 장소는 작고 후미진 쪽방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그의 시야로 작은 상자 속에 웅크리고 있는 한 아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순간, 그의 눈빛에 불꽃이 일었다.

    하지만 그는 금세 분노를 억누르고 조심스럽게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몸을 낮춘 채 천천히 아이의 볼로 손을 가져갔다. 오랜 세월 검을 쥐어 단단해진 손이 다정하게 아이의 볼을 어루만졌다.

    그제야 그의 입에서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얼어붙었던 마음이 단숨에 녹아내린 듯했다.

    그때를 기다린 것처럼,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아이의 눈꺼풀이 움찔거렸다.

    이어 천천히 들리는 눈썹 사이로 드러나는 루비색의 붉은 눈동자.

    흐릿했던 초점이 점점 또렷해졌고, 이윽고 아이가 눈앞에 있는 사람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 무감하던 그녀의 얼굴에 그림처럼 선명한 표정이 스며들었다.

    “……아빠?”

    “그래, 에리나. 아빠야.”

    “아빠!”

    커다란 외침과 함께 소녀가 아빠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동시에 어딘가에서 쿵쿵,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이의 커다란 울음소리에 묻혀 버렸다.

    “흐, 흐윽…….”

    “늦게 와서 미안하다, 우리 딸.”

    “으아아앙.”

    오열하듯 우는 소녀를 보면서 기사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의 서러운 울음이 길어질수록 검을 쥔 그들의 손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용서할 수 없었다.

    그들의 소중한 존재에게 이런 일을 겪게 하다니.

    읍읍, 어딘가에서 절박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황녀가 느꼈을 공포가 여실히 느껴지는 신음에 그들은 결심했다.

    반드시 이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겠노라고. 작은 신음조차 내지 못할 만큼 더욱더 고통스럽게 해 주겠노라고.

    “돌아가자. 집으로.”

    서럽게 울먹이는 딸을 소중히 품에 안은 사내가 아이와 함께 끔찍한 방을 나섰다. 기사들이 우르르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삽시간에 조용해진 방.

    소녀가 웅크려 있던 상자의 지척에 놓인 또 다른 작은 상자 속에서 쿵쿵, 하고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읍읍, 무어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작디작은 상자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왜?

    ‘……빌어먹을 엑스트라 인생.’

    상자 속에 있는 존재는 레이블라 펠리시티. 소설에 이름 한 번 나오지 않은 엑스트라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진짜 이렇게 가는 거야? 진짜? 정말?’

    아무리 존재감 없는 엑스트라라 해도 그렇지. 이렇게나 인기척을 냈는데. 함께 납치된 걸 황녀도 알고 있는데!

    이렇게 근처에서 소리가 났잖아. 이상하지 않아? 응? 이상하지 않냐고.

    호기심에 열어 볼 만도 한데. 황녀에게 주의를 기울이느라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 누구도!

    ‘진짜 환장하겠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몸부림을 쳐 봤지만 그녀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주변은 내내 적막하기만 할 뿐이었다.

    마치, 열연하던 주인공이 사라진 어두운 무대 위처럼.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랬다.

    이 소설에 빙의하고부터 주인공과 얽히고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