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숨을 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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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숨을 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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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숨을 골라
2023.08.25.
“큼큼. 우려가 큽니다.”
튜텨가 참변이 일단락되며 귀족들은 우려를 표했다.
“하필 마물 활동기가 시작된 이 시기에…….”
“반역이라지요?”
“가주께서 광증을 앓았다죠, 끄응, 황가와 얽혀서 좋을 일이 없건만. 늙어 죽더라도 곱게 죽어야죠.”
튜텨가 참변은 반역으로 일단락됐다.
흑주술 또한 반역에 준하는 죄목이며, 제국 법규가 금하는 술법이니 거짓은 아니었다.
황실은 수년간 황좌를 피로 이어왔으며,
튜텨가 참변은 황실 참모진과 정보관이 맡아 사태를 수습했다.
이 일은 고요히 묻혔다.
대신, 황궁 내부사태를 아는 몇몇은 죽을 맛이었다.
“흑주술이 발현됐다니요. 그건 금지된 술법이 아닙니까? 죽어서 흙에 묻힐 때 얼마나 부정을 타려고…….”
참변을 수습하던 늙은 참모진은 끙끙 앓았다.
흑주술은 죽음과 맞닿았다.
이 얼마나 불경한 이야기인가!
죽으려거든 늙어서 곱게 죽어야 했다.
* * *
“튜텨가 일은 유감입니다.”
튜텨가 참변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이번 일은 고요히 묻힐 겁니다.”
하넬리는 짧게 일축했다.
신전도 같이 사태수습을 도왔고, 튜텨가 참변을 묻어버렸다.
“묻히는 게 맞죠.”
샤를로프는 상념을 접어놓으며 작게 읊조렸다.
“지금 제국은 이 혼란을 감당할 여유가 없으니 당연한 처사이죠.”
샤를로프는 튜텨가 참변을 마무리 짓기 위해 신전을 찾은 참이었다.
“튜텨가 사태는 일단락됐고, 여기서 마무리 지으면 되겠군요.”
이번 참변은 늙은 참모들 몇몇만 아는 수준으로 끝났다.
“이만 환궁하십니까?”
“자리를 오래 비웠으니 환궁해야겠군요. 바깥에 사람을…….”
곧, 평신관이 기별을 넣어놓겠다며 떠났다.
“신전 분들은 대개 조용하군요.”
“품위유지 또한 신관의 덕목이니, 채신없이 굴 필요는 없잖습니까?”
기도실 문이 다시 닫혔다.
하넬리는 흰 신관복을 바르게 하며 샤를로프에게 물었다.
“흑주술이 배척받던 이유를 아십니까?”
샤를로프는 고개를 기울이며 답했다.
“죽음 때문이겠죠.”
“맞습니다. 죽음은 인간이 갖는 본능적인 공포이죠.”
그리고, 흑주술은 그런 죽음을 관장한다.
“마물과 흑마력은 그다음 문제입니다. 흑주술의 본질은 죽음입니다. 죽음 뒤의 영역을 두려워하죠. 예로부터 사람들은 흑주술로 영혼이 더럽혀진다면, 그 영혼도 구원받지 못하리라 믿어왔습니다.”
하넬리는 촛불에 불을 켜며 이야기했다.
“귀족들은 이 일에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하넬리는 이미 확신했다.
“저들도 제 죽음이 두려울 테죠. 신분 높은 귀족일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그렇습니다. 그럴수록 제 죽음에 더욱 민감한 법입니다.”
대신관이라는 직위와는 거리가 먼 직설적인 화법이었다.
“……죽음과 닿는다는 믿음 때문인가?”
“엄밀히는 죽어서 구원받지 못한다는 미신 때문입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죽은 뒤에 ‘아, 내 영혼은 구제받지 못했구나,’ 하고 이야기한다면 누가 듣겠습니까?”
퍽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다만, 대신관이 할 법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무도 안 듣겠군요.”
하넬리는 그 순간 샤를로프를 직시했다.
“듣지 않았습니까?”
“…….”
“으음, 혀가 잘려나갈 뻔했군요.”
하넬리가 입에서 피를 흘렸다.
“금제로 언행에 제약이 많습니다. 신전의 족쇄이겠거니 여기십시오.”
“……조심해야겠군요.”
“교황 성하께는 함구해 주십시오. 요즘 고혈압이 올라 혈압약을 자주 찾으십니다. 늙어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성하께서 볕 좋은 곳으로 요양이라도 가면 좋겠지만…….”
하넬리는 패륜적인 언행으로 우려와 걱정을 한입에 담아냈다. 대화는 여기서 마무리됐다.
“살펴 가십시오.”
떠났던 신관이 돌아왔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 * *
“듣지 않는다라…….”
“무엇이 말입니까?”
호위로 따라온 카타리나가 되물었다.
“내가 죽은 뒤의 이야기는 누가 듣는가 싶어서.”
“죽은 뒤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겠습니까?”
“나도 그렇다고 여겼다만…….”
내가 죽어버리면 끝이라 여겼다. 그 뒤는 나도 어쩔 수 없다.
죽음을 앞뒀던 그날, 나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다만,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죽음이 끝이었다면, 여기에 서 있는 샤를의 모습은 설명이 안 됐다.
“폐하. 폐하?”
마차가 도착했다. 말이 황제궁 앞에 멈춰서고, 마차 문이 열렸다.
발판이 높다며 호위가 팔을 뻗었다.
“괜찮으십니까?”
“……폐하께 간다.”
시종장이 시종들 옆구리를 꾹꾹 찔렀고, 시종 하나가 기별을 넣겠다며 황제의 집무실로 뛰어갔다.
샤를로프는 그런 그들을 뒤따랐다.
‘하아.’
저 끝에 뭐가 있을지 알 것 같다. 그간의 회피는 끝났으며, 이젠 스스로 직시할 때였다.
-달칵
집무실 문이 열렸다.
“나머지는 문을 닫고 나가보아라.”
책사의 보고를 듣던 벤하민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뭔가 급히 할 이야기가 있는 듯 보이는데 괜찮나?”
샤를로프는 호흡을 골랐다. 숨이 서서히 멎고, 그 시선이 협탁에 놔둔 서류에 닿았다.
‘베버가.’
글씨를 본 것 같다.
“베버가…….”
많이도 허술했다.
빈틈투성이였고 조금만 시야를 넓혔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죽을 이유도 없던 내가 거기서 죽었다.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손끝이 파리하게 질렸다.
희게 질린 손아귀를 힘주어 쥐었다.
손톱이 까드득대며 살갗을 파고들었다.
“내가 봐도 되나요?”
벤하민이 서류를 밀어주었다.
[베버가 가주/소가주 족적이 끊김.]
베버가도 족적이 끊겼다.
샤를로프는 서류를 느릿하게 내려놓았다.
“다 봤나?”
벤하민이 서류를 덮었다. 그는 곧은 손길로 서류철을 엎어 샤를의 시야에서 가렸다.
“……베버가 뒤를 밟았나요?”
“음. 베버가의 안주인이 두 번이나 병사했더군. 첫 번째 부인은 소가주를 낳고 1년 뒤 병사했고, 두 번째 부인도 결혼식을 올린 지 얼마 안 돼서 병사했었지.”
벤하민이 눈매를 좁혔다.
“두 안주인 모두 몸이 굳어 죽었고, 죽음도 쉽게 묻혔어.”
벤하민이 거리를 좁혀와 샤를의 턱을 감쌌다.
“샤를.”
둘의 시선이 단단히 얽혔다.
사로잡힌다. 그런 기분이 지워내기가 힘들었다.
“숨을 골라.”
“…….”
“네게 해악을 끼칠 이들은 여기 없어.”
그는 꼭 뭔가를 아는 듯 이야기했다.
* * *
시일이 더 지났다. 정보관이 정보사가 각처에 퍼졌지만, 놈들의 족적은 아직이었다.
죄인은 흑주술을 다루는데,
땅 밑으로 숨어든 흑주술사를 찾는 건 사람의 영역 밖의 일이었다.
“지금 사태는 일단락됐습니다.”
로스켈라는 서류를 내려놓으며 보고했다.
“이후 흑주술이 완전히 발현되려면, 앞으로 시일이 더 걸릴 겁니다.”
“그 시일이 얼마나 더 걸리리라 예상되나?”
“협약이 버티는 데까지가 유효기간이겠죠. 이들이 협약을 깼다면, 지금처럼 조용할 리 없습니다. 흑주술은 그 존재만으로 규범을 어그러트립니다.”
로스켈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황후께서는 어떠십니까?”
“아무렇지 않아.”
“괜찮단 겁니까? 아무렇지 않다는 건…….”
“내색은 하지 않지.”
감정을 죽였다.
본래 그래오듯 자연스러웠다.
“닮았군요.”
“누구를.”
“폐하를요. 닮은 듯 아닌 듯 그렇습니다.”
로스켈라는 조심히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
“직계 혈족입니다.”
그가 서류를 내려놓으며 엄중히 고했다.
“흑주술은 가벼운 죄목이 아닙니다. 신전 교리와 제국법으로 엄히 금하는 술법입니다. 과거 제국 법규에 따르면, 삼 대를 멸하고 존재를 부정당할 죄목입니다.”
튜텨 가문이 이단으로 묶였다. 튜텨가는 황후의 직계 가족이었다.
황후가 튜텨가에 적을 두지 않았어도, 가문과 나란히 묶여 책임질 소지는 충분했다.
“가문의 적에서 나왔어도 그렇습니다.”
혈연이란 그렇다.
“잡음이 나란히 따를 겁니다.”
조용히 지낼 때가 아니었다. 입을 다물고 침묵할 일이 아니었다.
“어쩔 요량입니까?”
“황실은 제국의 균형을 올곧게 잡아야 할 기둥이고, 그런 기둥은 중심을 지키는 게 옳다. 황실이 중심을 잃는다면, 바깥의 혼란은 가중될 테지.”
그 죄목의 무게가 무겁다. 국법은 엄중하며 형벌 또한 무거운 게 옳다.
“죄인은 죽여 규범을 올곧게 세우면 될 일이다.”
황후는 중심을 잘 지키고 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
조금 쓸쓸해 보일 뿐.
황후의 책무를 온전히 다했다.
“너무 아무렇지 않다는 듯 굴어 그렇지.”
벤하민은 팔을 내저었다.
집무실에서 업무를 끝낸 벤하민은 안경을 벗어놓았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는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피로감이 서서히 몰려들었다. 오늘은 이쯤 해놓고 정돈하라는 듯, 피로감이 등을 떠밀었다.
황제궁 로비가 한적했다.
벤하민은 로비에 우뚝 멈추어 섰다.
그는 기척을 죽이고, 누군가의 뒤를 따랐다.
황제궁 로비에는 긴 길목이 이어졌다.
샤를로프가 거기에 서 있었다.
길목에 붉은 융단을 깔아놓았고, 시종들이 여럿 지나다녔다.
벤하민이 팔을 내젓자 시종들도 자리를 떠났다.
“샤를.”
그는 익숙하게 샤를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왜 또.”
왜 또 그러고 있냐,
그는 뒷말을 삼켰다.
어쩐지 황후를 꾸짖는 것처럼 느껴져서였다.
길목은 곧게 뻗었고 지척의 기척은 하나둘 떠났다.
둘은 가만히 앞만 바라봤다.
그 뒤, 붉은 입술에서 얕은 탄식이 터졌다.
“발목이 무거워서.”
“…….”
“그냥 잠깐 걸었어요.”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기분 탓이었겠죠.”
샤를로프는 고개를 작게 내저었다.
“시종들은 왜 물렸어요.”
“그편이 네게 편할 듯해서.”
“혼자인 게요?”
“곁에 나를 놓고 왜 혼자라는 듯 이야기해.”
그녀는 걸음을 천천히 디뎠다.
붉은 융단이 길게 뻗었다.
얇디얇은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렇다고, 그 걸음이 가볍다는 뜻이 아니었다.
샤를로프는 고개를 나른하게 기울였다. 작은 입술이 혼잣말을 웅얼거렸다.
“어쩐지 발목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은데…….”
그녀가 붉은 융단을 밟고 밖으로 걸어 나가는데, 어깨에 걸친 담요가 맥없이 흘러내렸다.
“샤를.”
벤하민이 뒤에서 그녀를 불러 세웠다.
“샤를로프 비센노프.”
샤를로프가 고개를 돌려 벤하민을 되돌아봤다. 가까이 다가온 벤하민이 샤를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었다.
“잡아.”
“…….”
“혼자 걷지 말고.”
벤하민이 손을 가리키며 턱짓했다.
“어디로 가고 싶어?”
그녀는 짧은 침묵 끝에 되물었다.
“……당신은 뭔가를 아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어째서 묻지 않아요?”
“네가 곧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는데, 내가 너를 캐묻는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샤를로프는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너는 너를 조각내어 흩뿌려놓고, 만약 죽으려거든 같이 죽자고 놈들 발목이라도 끌어당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