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 독기 (35/51)


#35. 독기
2023.06.30.


경비대 기사단이 등을 맞대고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 이게 뭐요?”

“마물이 왜 황성 안에서 나옵니까! 거기, 빈틈 생겼잖습니까? 아무나 지원병력이나 좀 불러와 봐라!”

“거기! 또 뚫렸습니다. 6시 시계방향입니다!”

땅 아래서 솟구친 건 도마뱀이었다.


“꼬리 도마뱀은 더러운 우물가에 사는 이들이잖느냐! 이 미친것들이 왜 여기서 기웃대느냐고! 막아라. 목숨 걸고 놈들을 막아라! 이 마물을 밖으로 내보내지 마라!”

등에 뼈가 돋은 도마뱀이 꼬리로 나무를 할퀴었다.

물갈퀴 자국에 땅이 움푹 파였다.

곰 발바닥보다도 커다랬다.

물갈퀴 아래로 진액이 뚝뚝 흘렀다. 그런 모습이 기괴했다.


‘크르르륵?’

도마뱀이 고개를 180도 꺾었다. 눈이 거꾸로 매달려 뒤집혔다.


“대장님! 야시장이 아직 한창입니다. 저 꼴로 내보냈다간, 인근이 아수라장이 됩니다!”

“누가, 누가 지원병력을 불러오너라. 여기 이대로 있다간, 우리 모두 다 죽는다!”

마물들이 입을 벌리자, 썩은 악취가 났다.


‘캬악!’

이건 물비린내였다. 더군다나, 저 마물들은 썩은 우물에서 사는 이들이었다.


“오러를 둘러 몸을 보호하거라! 오러를 못 두르는 이들은 숨을 참아라. 독기에 잠식되기 싫다면, 일단 닥치고 참아라!”

기사들이 오러를 둘러 몸을 보호했다.


“저, 저놈들 이상합니다. 본래 도마뱀 마물이 저런 모습입니까?”

놈들 꼬리에서 살점이 녹으며 흘러내렸다.


“상, 상급 마물은 저런 모습을 띤다고 전해 듣기는 했지만……. 어, 어째서, 도시에서 상급 마물이 나온단 말이냐!”

뼈에 닿은 살점은 모두 부식했다. 그 독기가 땅에 스며들자 흙이 자글자글 끓었다.


“도, 도망치십……!”

그 순간 정적이 흘렀다.

마물이 기사를 덮쳤다. 꼬리로 먹잇감을 휘감고, 그대로 벽에 내리꽂았다.


‘크륵?’

경비대 기사들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놈들은 독살스러웠고, 송곳니에서는 검붉은 액이 흘렀다.

그 독기에 땅이 서서히 부식했다.

흙바닥이 검게 타들어가고, 그 주변의 잡초들도 말라비틀어졌다.


‘캬아악.’

누군가 홀린 듯 중얼거렸다.


“죽는다”

그들이 눈을 질끈 감던 때였다.


“마물 앞에서 목 꺼내놓고 뭣 하느냐? 놈들 아가리로 머리부터 집어넣을 작정이라면, 차라리 접시 물에 코 박고 죽거라. 이게 무슨 개죽음이냐?”

신랄한 독설이 쏟아졌다. 벤하민이 도마뱀의 꼬리에 올라탔다.


 


“꼬리부터 잘라내거라.”

“네. 폐하.”

“놈들 꼬리에 무방비하게 얻어맞았다간 갈비뼈고 뭐고 함몰된다. 오러로 몸부터 보호하거라. 제 몸 보호할 재주 없는 놈들은 뒤로 빠져라. 방해된다.”

오러를 두른 검이 놈들의 꼬리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마물 독기도 오러로 모두 태워라!”

파충류 마물이라고 비늘도 두꺼웠다.

마물이 눈을 거꾸로 뒤집고 도르륵 도르륵 굴렸다. 그 뒤, 목을 한 번 더 기괴하게 꺾었다.


‘캬아악!’

독기가 오러로 불타고, 검붉은 연기가 솟았다. 매캐한 담배 연기처럼 맵고 싸했다.


“흑마력이 잡힌다는 게 이상하다고 여겼더니, 이놈들이 왜 여기서 기웃대나?”

벤하민이 놈들 꼬리를 잘라내서 바닥에 패대기쳤다. 잘린 꼬리가 혼자 펄떡거렸다.


“위험했습니다. 모두 조금만 더 늦었으면 독기에 잠식됐겠습니다.”

벤하민은 로브 후드를 벗으며 눈매를 좁혔다.


“네놈들 여기서 뭣 했느냐?”

마물들 틈에 저놈들이 있었다. 경비대 놈들이었다.


“저, 저희가 아닙니다! 웬 취객이었습니다. 놈이 칼로 행인을 찌르고 도주 중이었는데, 그때 무슨 유리병을 깨트리자 저놈들이 바닥에서 기어 올라왔습니다!”

“이 유리병 같습니다, 폐하.”

근위대장이 벽돌 잔해 아래에서 유리병 파편을 찾아냈다. 파편은 독기로 드문드문 부식했다.


“독기를 담아놓는 병 같습니다.”

“품질은 하급품이다. 싸구려더라도 엄연히 제국에서 금하거늘. 내가 요즘 잠잠했구나. 시장 밖으로 나와선 안 되는 것들이 왜 버젓이 길바닥에서 돌아다니느냐?”

마물 사체에서 나오는 독기로 땅이 질퍽거렸다.


“그럼 하급 독기입니까?”

“하급 독기로는 이런 마물을 못 불러낸다. 하급은 조금 따끔한 수준의 독기다.”

벤하민은 파편을 손아귀에 올리고 오러를 거뒀다. 살갗이 독기에 잠식되어 검게 썩어들어갔다.


“지금처럼 살갗이 썩어들어가는 독기는 이만한 하급품으로 못 다룬다. 독기를 담아내기도 전에 용기부터 깨졌겠구나.”

“폐, 폐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줄은 알겠습니다. 다만, 몸을 좀 더 보증하십시오. 독기를 맨손으로 만지는 분이 어디 있습니까?”

근위대장이 질색하며 파편을 거둬갔다.


“본인 몸이 무쇠인 줄 아십니까?”

벤하민은 눈매를 좁혔다.

* * *

야시장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다.


“이, 이보게나! 들었소!”

“뭐가 말이오?”

“방금 땅이 울리지 않았는가!”

야시장 길바닥에서 술판을 벌이던 사내들은 눈매를 찌푸렸다. 술 잘 먹다가 웬 허파에 바람드는 소리요?


“쯧쯧. 벌써 취했나? 취하려거든 같이 취해야지, 혼자 취해버리면 어떡하오? 속도 좀 맞추래도, 빨리 먹는 것 같았소! 자네는 그만 마시게나!”

“이거 마물 울음소리 아닌가? 내가 마물 토벌을 나갔을 적에 들었던 소리요. 이거 짐승 울음소리를 닮지 않았나……!”

그들은 숨죽였다. 뭐가 들린다고. 쥐죽은 듯 조용한 걸 깨닫고, 일행들은 사내의 술병을 빼앗았다.


“술맛 버리게 여기서 마물 이야기가 왜 나오나? 여기는 황성이잖는가? 또, 그랬으면 경비대에서 대피하라 경고해주었겠지.”

이 일대는 노점상들이 점거했다.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다들 적당히 취해 야시장을 즐겼다.

사내는 고개를 기울였다.


‘진짜 잘못 들었는가?’

그 인근을 지나던 하넬리가 사내와 눈을 맞췄다.


“…….”

하넬리는 고개를 무심히 돌렸다.

걸음은 단정하면서도 꼿꼿했다. 그의 곁에는 어린 신관들이 자리했다.


“교황께서 나를 감시하라 일렀나?”

“그, 그럴 리가요.”

“그렇다면 그만 흘끔거리거라. 네놈들이 흘끔거리니까 내가 꼭 불한당이라도 된 기분이잖느냐?”

술 먹다 어린 신관들에게 목덜미를 잡혀 불려 나오다니.


“대신관님 이 무례는 나중에 다시 사죄드리겠습니다.”

“됐다. 너희에게 무슨 죄가 있겠느냐?”

하넬리는 로브를 덮어썼다.


“이번에는 좀 오래 쉬는구나 싶었다.”

어린 신관들과 도착한 곳은 야시장 뒤 골목길이었다.


“우리 같은 신관들은 독기에 약합니다. 고대 협약으로 신력이 묶이면서, 흑마력과는 상극이 됐잖습니까?”

“그쯤 해놓고, 독기나 지워내거라.”

하넬리는 어린 신관들을 이끌고 독기를 태웠다.

손끝에서 불꽃이 일렁거렸다.

신력이 옅은 이들은 신력에서 붉은빛을 띤다.

다만, 날것 그대로의 신력은 본래 푸른빛이었다.

하넬리는 그 일대를 신력으로 뒤덮고 태웠다.


“뒤로 물러나거라.”

“윽!”

“삿된 것이 땅 위로 기어 올라왔구나.”

하넬리는 팔을 떨구었다. 그의 팔이 맥없이 떨어졌다. 그의 손끝에서 창백하게 핏기가 가셨다.


“어둑한 그늘에 숨어들어와.”

그의 눈이 서서히 흐려졌다.


“그 그림자에 숨었으니.”

섣불리 이 땅을 범해선 안 될 것이 땅을 범했다.

과거 이 땅을 밟았던 ‘그것’들이 저 아래에서 기어오려고 바닥을 드득드득 긁는다.

누구보다 죽음에 가깝고.

어둠 속에 기생하며,

더럽고 탁한 것들의 시초가 된 ‘그것’


“술이나 먹고 놀고 싶은데…….”

“여기서 더 말입니까?”

“육포나 뜯으며, 그냥 그러고 싶다.”

이대로 가만히.

다만, 그 모든 게 보잘것없는 제 염원이었다.

부디, 그 영혼이 지치질 않기를.

그 울음소리가 잦아들기를.

홀로 울부짖던 가엾은 혼령이 이번만큼은 그 울음을 그치기를.


“이젠 지칠 대로 지친 영혼이다. 그 시간 속에서 숨을 고르며, 이제 차츰 회복되어가는데…….”

하넬리는 고개를 돌렸다.


“저들은 또 그 속에 놓이겠구나.”

저 멀리 홀로 우뚝 선 사내가 있었다.

근위대가 주변 일대를 통제하고, 그는 그 자리를 지키고 섰다.

그가 로브를 벗자, 검은 머리칼이 잘게 날렸다.

서늘하고 건조한 기운을 풍겼다. 그에게 잘 어울리는 기운이었다.


“폐하.”

벤하민이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가?”

“마물도 마물이지만…….”

하넬리는 벤하민에게 성수를 던졌다.


“그 독기를 맨손으로 만지다니 제정신입니까?”

벤하민은 다친 상흔에 성수를 부으며 눈매를 좁혔다.


“나 들으라 한 이야기인가?”

“독기를 태워내는 내내 한 마디도 없으시더군요. 제가 이야기 안 꺼냈으면, 치료도 안 할 작정이었습니까?”

“치료했으면 됐다.”

무심하다면 무심하고.

건조하다면 건조하고.


“그 몸은 쇳덩어리처럼 패면 단단해지지 않습니다. 어려서도 그랬지만, 유난히 본인에게 각박하신 분입니다.”

어린 신관들은 잔류 독기를 모두 태우고, 그동안 하넬리는 자리를 지키고 섰다.


“교황 성하께서 귀찮은 붕어들을 붙여놓았습니다.”

“귀찮다면서 잘 붙이고 다니는군.”

“재잘거리면서 따라붙는데 억지로 떼어놓으면, 길 잃은 붕어떼처럼 뿔뿔이 흩어져서 방황합니다. 저는 그 꼴을 보는 게 더 답답합니다.”

“그 사이가 돈독하군.”

“지겹지요. 어린 것들 하나하나 챙겨나가는 게 어디 쉽겠습니까?”

하넬리는 신력을 가다듬었다.


“아무쪼록, 몸을 보중하십시오. 하급이더라도 독기입니다. 조금만 더 지체됐다간, 살갗을 모두 태울 뻔했습니다.”

“근위대와 똑같이 이야기하는군.”

“부디, 옥체 보중하십시오. 그 길이 어긋난다면, 제 몸부터 버릴 사람이라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악담인가?”

“조언이었습니다. 근위대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면, 그건 충언이었겠군요. 충신의 충언은 흘려듣지 마십시오. 황태자 시절, 곧 죽더라도 멋대로 굴던 때와는 다릅니다.”

독기는 살을 녹여낸다. 짙은 독기는 신경을 모두 태워버리고, 혈관을 타고 몸속 깊은 곳까지 흐른다.


“조금 더 경계하십시오.”

벤하민은 알겠다고 답했다.


“바깥은 어떤가?”

“황성 경비가 뚫린 건 아닙니다. 바깥에서는 아직 모릅니다. 야시장이 한창이라고 어지간한 소음은 모두 묻힙니다.”

하넬리는 신력을 거둬들이며 물었다.


“이만 황궁으로 귀환하십니까?”

벤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는 끝났나?”

“네. 본래도 회복력이 좋은 터라 회복됐군요.”

하넬리는 몸을 숙였다.


“돌아가 보십시오.”

“이만 돌아간다.”

벤하민이 골목 밖으로 나오자, 대기하던 근위대가 따라붙었다.


“황후 폐하께서는 먼저 귀환하셨습니다.”

벤하민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의 외출이었을 건데, 좋지 못한 기억을 남겼겠구나.”

 

* * *

벤하민과 일찍이 헤어지고.


“마차로 오르십시오. 근위대가 호위할 겁니다.”

샤를로프는 마차 문턱에 발을 얹었다.

야시장 불꽃이 가장 화려하던 때였다.


“폐하께서는?”

“마물을 처리 중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납셨으니 금방 일단락될 테니, 황후 폐하께서는 몸을 피하십시오.”

샤를로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던가?’

내무기밀로 묻혔을 가능성이 높다.


“…….”

그 무렵.

끼긱. 끼기긱.

무언가 바닥을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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