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별 외전 4화 그 시선 끝에는 (147/148)


#특별 외전 4화 그 시선 끝에는
2023.08.25.


작은 짐승이 카엘의 손을 물었다.

“아얏!”

깜짝 놀란 카엘이 작게 비명을 내지르자, 오히려 작은 짐승이 놀란 듯 몸을 옹송그렸다.

“……!”

베인은 곧장 공격을 취할 듯 검을 고쳐 잡았고, 당황한 드한이 카엘에게 다가오려 했다.

이카르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로 카엘을 응시했다.

“카엘 님. 괜찮으십니까?”

“이 녀석, 저 마물들에게 엄마를 잃은 것 같아.”

카엘의 말에 그제야 이카르와 드한, 베인 모두 마물들에게 반쯤 뜯겨 나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바닥의 짐승에게 시선을 주었다.

조금 전 세 사람은 마물을 처리하는데 정신을 빼앗겨 미처 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리 온. 해치지 않을 테니까.”

카엘은 겁을 먹고 오들오들 떨면서도 이를 한껏 드러낸 채로 하악질을 해 대는 작은 짐승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말을 알아들을 리도 없건만.

하지만 이내 머뭇거리며 살살 눈치를 살피던 작은 짐승이 카엘 쪽으로 살짝 다가왔다.

“와…….”

카엘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자 깜짝 놀란 작은 짐승이 다시 하악질을 하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뒤로 물러나 있어.”

이카르가 카엘의 뒷덜미를 잡고 살짝 뒤로 옮겨 놓더니 조심스럽게 허리에 찬 링 벨트를 뒤적였다.

‘뭘 하려는 거지?’

카엘은 이카르가 혹여 작은 짐승을 해칠까 걱정하면서 그의 행동을 지켜봤다.

이카르가 링 벨트에서 꺼낸 육포를 들고 아주 느리게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리고 작은 짐승 쪽으로 육포를 든 손을 뻗었다.

경계하는지 다가올까 말까 망설이던 작은 짐승이 이내 이카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덥석 육포를 물었다.

작은 짐승은 배가 많이 고팠는지 허겁지겁 육포를 먹기 시작했고, 이카르는 녀석이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곳에 볼일은 끝났다는 듯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돌아가지.”

“예!”

베인과 드한도 곧 이카르를 따라 몸을 돌렸다.

카엘은 혼자 남아 정신없이 육포를 뜯는 작은 짐승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이대로 자리를 뜨면…… 이 녀석은 여기 혼자 남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카엘의 기분이 조금 서글퍼졌다.

이 녀석의 다른 부모의 생사는 알 수 없었지만, 어미를 잃고 혼자 남은 게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카엘과 세 사람이 떠나고 나면 마물이 출몰하는 이런 험난한 곳에서 녀석이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얼마 못 가 죽겠지……?’

카엘이 측은한 눈으로 짐승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엘이 뒤따라오지 않는 걸 깨닫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카엘 님? 왜 여기 계십니까? 이만 돌아가시죠.”

그 말만 하고 드한이 다시 이카르와 베인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리려 했다.

카엘은 잠시 망설이다가 드한의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왜 그러십니까?”

드한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이던 카엘은 이내 용기를 내 입을 뗐다.

“저 녀석을 황궁에 데려가면…… 안 되겠지?”

드한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스쳤다.

‘역시 안 되는 거구나.’

괜한 억지를 부려 드한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카엘이 다시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평소보다 더욱 냉담한 무표정을 하곤 이카르가 이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나를 혼내려는 건가? 혼내려는 거겠지?’

카엘은 얼른 변명을 내뱉으려 했다.

그러나 카엘의 예상과 달리 이카르는 이미 죽어 있는 마물 중 가장 큰 개체의 목덜미에 장검을 꽂아 넣었다.

어느새 육포 하나를 전부 먹어 치운 작은 짐승의 시선은 이카르에게 향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카르가 장검을 찔러 넣은 마물에게로.

“……생명을 보살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다. 그러니까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라.”

이카르가 진지한 표정으로 카엘을 똑바로 바라봤다.

침을 꿀꺽 삼킨 카엘은 곧장 대답했다.

“잘…… 보살필 수 있습니다!”

“선택은 네가 한 거다. 그 사실은 잊지 말도록.”

“녜!”

또 혀를 씹었다!

카엘이 제 구강 구조의 생김을 부끄러워하고 있는 사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이카르는 몸을 돌렸다.

베인이 그의 뒤를 바짝 쫓으며 설득에 나섰다.

“폐하? 아무리 그래도, 저건 필시 늑대의 일종으로 자라면 엄청나게 클 겁니다.”

“외로운 거겠지. 책임감 형성이나 정서 발달에도 도움이 될 테고. 짐승 새끼 하나쯤 황궁에 데려간다고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저건 베인 네가 생각하는 종류가 아니라…….”

“그렇다면 차라리 우아한 품종견을 한 마리 구해다가…….”

두 사람의 말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

낮의 일을 떠올리던 카엘은 눈을 빛내며 작은 짐승 쪽을 바라봤다.

‘이 아이도 야생성을 잃고 개처럼 황궁에서 키워지게 될까?’

카엘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제 품속에서 곤히 잠든 작은 짐승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렇게 카엘이 작은 짐승과의 첫 만남을 돌이켜 보고 있을 때였다.

“응……?”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카엘은 냄새의 근원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머그잔을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이카르와 눈이 마주쳤다.

“몸이 따뜻해질 거다.”

카엘은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북슬북슬한 새끼 짐승의 몸을 쓰다듬었다.

눈꺼풀이 자꾸만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들어 버렸다.

“어, 벌써 주무십니까? 아직 저녁도 드시지 않았는데…….”

드한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카르는 카엘을 조심히 안아 들고는 침대에 눕혔다.

“저녁 준비가 끝날 때까지 조금만 눈을 붙이도록 내버려 둬.”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침실을 나가려 몸을 돌리려던 이카르는 시선을 붙잡는 것에 우뚝 걸음을 멈췄다.

카엘의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장식품 때문이었다.

그때 드한이 장식품을 집어 들며 말했다.

“폐하, 이 토끼 모양 안달루사이트 기억하십니까? 파라디움의 선대 황후께서 카엘 님을 가졌을 때 폐하께서 선물하셨죠.”

그제야 이카르는 협탁 위의 장식품이 낯설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카엘 님께서 파라디움 황궁을 떠날 때 챙기신 몇 안 되는 물품 중 하나였죠. 꽤나 마음에 들어 하시는 눈치입니다.”

때마침 안달루사이트가 옅은 침실 불빛을 머금고 반짝였다.

“아…….”

이카르의 잇새로 낮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과거 파라디움 건국제에서 르네브와 마주쳤던 일이 떠올랐다.

***

당시 이카르가 파라디움의 건국제 초대를 거절하지 않은 건 잠행을 위해서였다.

비밀리에 파라디움 내에 침투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이편이 다소 일이 수월했기 때문이다.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는 크라바트를 풀어 버리고 싶은 욕구를 꾹 참으며 이카르는 그레이트 홀 안을 둘러봤다.

“초대에 응해 주어 고맙습니다.”

그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파라디움의 황후인 르네브가 타국의 귀빈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이카르는 손에 든 포도주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끈 건 허리선이 강조된 푸른빛의 드레스와 조막만 한 얼굴만큼 커다란 티아라였다.

그 외에도 가녀린 목이 감당하기에는 다소 버거워 보이는 알이 큰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세트를 이룬 귀걸이와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이카르의 눈에는 그것들이 값진 보석이라기보단 황후를 짓누르는 갑옷처럼 느껴졌다.

각각의 무게 또한 만만치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반듯한 성품을 드러내듯 그녀는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로 상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흐트러짐 없이 반듯한 자세, 그림 같은 미소를 유지한 채로 건국제에 초대된 손님들을 상대하는 그녀의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대단한 열정이군.’

그도 그럴 것이. 르네브는 현재 임신 중이었다.

아직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아니었고, 파라디움 측에 심어 놓은 밀정에게서 듣게 된 것이었다.

이전에 유산으로 쓰디쓴 아픔을 겪었던 터라 안정을 찾은 뒤에 공표할 모양인 듯했다.

이카르는 그녀 옆에선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황후도 황후였지만, 황제 루시우스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특히 몸조심해야 하는 이런 중요한 시기에 저렇게 치장을 하고, 많은 사람을 상대하게 하다니…….

이카르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노릇이었다.

아껴 주고 소중히 대해 주지는 못할망정.

“…….”

황제의 방식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카르가 나서서 뭘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그가 나선다면 괜히 엉뚱한 오해를 사기만 할 터다. 그럼 르네브의 평판만 나빠질 것이 뻔했다.

‘누구 좋으라고.’

옅게 한숨을 내쉰 이카르는 이내 르네브에게서 시선을 떼어 냈다.

그가 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누군가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다행히 이카르의 엄청난 반사 신경 덕에 아슬아슬하게 상대와 부딪히는 건 면했다.

“이런, 실례했습니다. 너무 급한 마음에…….”

이카르를 올려다보는 여자의 표정이 퍽 가련해 보였다.

‘파라디움 황제의 정부로군.’

이카르는 잠시 에시카를 바라보다 툭 내뱉었다.

“괜찮소.”

잠시 입술을 달싹이며 이카르의 눈치를 살피던 에시카가 이내 그에게 눈인사를 건네곤 멀어졌다.

그리고 이후에 에시카가 향한 곳은 황제 루시우스의 옆이었다.

멀어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에시카가 루시우스에게 무어라 말을 했다.

대화 중이던 상대에게 양해를 구한 루시우스가 곧 에시카와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이카르가 홀로 남겨진 르네브를 바라보고 있을 때 드한과 베인이 다가왔다.

“폐하, 여기 계셨습니까? 이전에 말씀드린 그 밀정이 폐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합니다…….”

“가지.”

전략상으로 필요한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길 한참, 파라디움 황궁에서의 볼일을 끝마친 이카르는 떠나기 전 그레이트 홀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 끝에는 르네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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