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외전 2화 최고의 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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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외전 2화 최고의 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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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외전 2화 최고의 식단
2023.08.23.
마차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카엘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와……!”
눈 깜작할 새에 마차 창 너머의 풍경이 휙 바뀌다니!
그뿐이 아니었다.
직접 본 바슈케르의 모습은 그가 상상한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역사 수업 때 들었던 것처럼 바슈케르는 파라디움보다 훨씬 뒤처져 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책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발달한 모습이었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은 활기찼고, 입고 있는 옷이나 장신구들도 후줄근하지 않았다.
게다가 황도와 가까워질수록 인가 및 상점가의 외관도 점점 크고 화려해졌다.
“저건 무엇이냐?”
카엘은 끝이 뾰족하고 높은 건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신전입니다.”
신전 건물을 바라보는 카엘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의 눈에도 확실히 신전은 정교하고 섬세한 작업을 동반했을 거란 예상이 되었다.
“오래된 건물은 아닌 듯 보이는데?”
카엘은 신전 건물에서 쉬이 눈을 떼지 못하고 물었다.
“저 건물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것입니다. 바슈케르의 내로라하는 석공 연합 수십이 달라붙어 일궈 낸 성과지요.”
카엘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정교한 건물 외관을 바라봤다.
“아, 물론 이카르 폐하의 제위 후에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설명을 이어 나가는 드한의 얼굴에선 자부심과 뿌듯함 같은 감정이 묻어났다.
이카르 제위 후에 지어진 건물이라면 드한의 업적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인 듯했다.
마차 창에서 보이는 신전 건물이 점점 멀어지자 이번에는 또 다른 것이 카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럼 저것은 무엇이냐?”
“아, 저것은…….”
그렇게 질문이 몇 번 거듭되자, 드한이 카엘의 옆에 자리를 잡고는 본격적으로 설명을 해 주었다.
저 멀리 보이는 바슈케르 황궁이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와아아아!”
엄청난 함성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카엘은 체면도 잊고 마차 창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인파가 엄청났다.
“바슈케르 제국군의 귀환 축하 행렬인가 봅니다.”
카엘은 끝없이 길게 이어진 행렬을 바라봤다.
그들은 앞서 행군 중인 바슈케르 군에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살아 돌아온 가족을 기뻐하며 눈물을 터뜨리는 이도 있었고, 또 어떤 이는 연신 방긋 웃으며 손에 든 무언가를 흔들어 댔다.
카엘이 넋을 놓고 마차 창 너머로 목을 빼고 있을 때였다.
“저분은 누구야? 누구기에 황제 폐하와 같은 마차에 타고 있어?”
축하 행렬 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 조그만 여자아이가 카엘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승리를 거머쥐고 돌아온 황제와 그 최측근 드한의 옆에 있는 카엘의 존재가 매우 궁금한 모양이었다.
“우와! 옆이 드한 경이겠지? 그럼 베인 경도 함께 있으려나!”
장난기가 가득해 보이는 남자아이가 그에 호응하며 손가락으로 마차를 가리켰다.
“귀한 분께 손가락질하는 거 아니란다.”
그러자 근처에 있는 중년의 부인이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카엘을 태운 마차는 바슈케르인의 환호 속에 무사히 황궁으로 들어섰다.
***
“앞으로 머무시게 될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드한을 따라 이동한 곳은 황제 이카르의 침실이 있는 본궁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여기는 타국의 귀빈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곳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황자님의 고모이신 황녀 전하께서도 이곳에서 머문 적이 있었군요.”
작게 고개를 끄덕인 카엘은 앞으로 자신이 머물 곳을 쓱 둘러봤다.
내부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벽면이나 바닥의 따뜻한 색감 때문인지 괜스레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카엘이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을 때 드한이 덧붙였다.
“가구나 집기들은 카엘 님에게 맞춰 따로 들일 예정입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응.”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드한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입술을 말아 물었다.
“……?”
드한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카엘의 고개가 갸웃 기울었다.
“하…….”
그러자 드한이 두 주먹을 꽉 쥐고는 묘한 탄식을 흘렸다.
카엘의 고개가 더욱 기울었다.
“드한 경? 왜 그러지?”
“너무 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보다 배는 고프지 않으십니까?”
카엘은 홀쭉한 배를 한번 쓸어내렸다.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저녁때가 훌쩍 지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조금 시장기가 돌았다.
“조금.”
“그럼 나중에 천천히 둘러보시는 것으로 하고 일단 다이닝 룸으로 이동하죠.”
“응.”
귀빈실과 다이닝 룸이 있는 본궁의 거리가 꽤 되었기에, 카엘은 드한과 함께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
본궁의 다이닝 룸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하늘이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드한을 따라 긴 복도를 한참 걸어 다이닝 룸에 들어선 카엘은 입을 떡 벌렸다.
이내 너무 품위 없었다는 걸 깨닫고 표정을 갈무리했지만.
수십 명은 둘러앉을 수 있을 만한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음식이 가득했는데 바다와 하늘, 그리고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육류가 주를 이뤘다.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 카엘에게는 최고의 식단이었다.
벌써부터 군침이 돌았다.
식기를 집으려 살짝 팔을 들었던 카엘은 시종과 대화 중인 드한 쪽을 힐끗 보고는 이내 팔을 내렸다.
그리고 인내심을 끌어모아 먹고 싶은 걸 꾹 참았다.
파라디움에서는 대체로 카엘 혼자 식사를 했다.
주에 세 번은 어머니와 저녁을 먹기로 약속되어 있었지만, 급한 일이 생기거나 해서 취소될 때가 많았다.
아버지는 달에 한두 번 얼굴 마주하기가 어려웠고.
이미 세상에 없는 가족들을 떠올린 카엘의 기분이 침울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이카르와 베인이 도착했다.
“들지.”
이카르가 짧게 한 마디 내뱉고는 식기를 들었다.
“예.”
이어서 드한과 베인이 식기를 들었다.
카엘은 흐물흐물하게 풀어진 입매를 하고 테이블 위를 바라봤다.
‘뭐부터 먹을까…….’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식단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파라디움에서 카엘은 곧잘 잔소리를 들었다.
너무 많이 먹으면 머리가 둔해진다고 혼이 났고, 고기만 먹으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혼이 났다.
그래서 카엘은 보여 주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채소를 몇 입 먹고는 했다.
맛은 없었지만.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십시오.”
“드한 경도.”
세 사람의 것과 달리 카엘의 앞에는 앙증맞은 포크와 나이프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름대로 아이인 그를 배려한 듯했으나, 사실 마음에 차지는 않았다.
‘나도 큰 나이프를 쓸 수 있는데.’
그 이야기를 꺼내 볼까 말까 고민하던 카엘은 이내 제 손에 꼭 들어오는 작은 나이프를 쥐었다.
그리고 접시 위에 있는 커다란 고깃덩이를 쓱쓱 갈랐다.
덜 익은 고기에서 핏물이 배어 나오는 모습에 카엘의 귀여운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윽……! 이런 걸 어떻게 먹으란 거야?’
자신을 괴롭히려는 건가 하는 마음으로 카엘은 이카르를 응시했다.
마침 이카르가 핏물이 뚝뚝 흐르는 큼지막한 고깃덩이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놓인 접시 위에는 마찬가지로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카엘은 재빨리 드한과 베인 쪽을 흘끔거렸다.
두 사람 모두 같은 것을 먹고 있었고, 표정은 상당히 편안해 보였다.
“제가 썰어 드릴까요?”
그때 뒤에 서 있던 시종이 친절하게 물었다.
카엘은 잠시 갈등하다 대답했다.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내 크게 썰어 놓은 –카엘이 보기에는 컸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작은 크기였다- 고깃덩이를 입에 쑥 집어넣었다.
육질은 씹기 좋게 부드러웠고, 몇 번 우물거리자 육즙이 쭉 흘러나왔다.
카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맛있다!’
언제나 시간 맞춰 고영양에 균형 잡힌 식단으로 배를 채우던 카엘이었으나, 오늘만큼은 시장해서 그런지 더욱 맛있었다.
카엘은 허겁지겁 접시 위의 고기를 먹어 치웠다.
‘조금 더 먹고 싶은데…….’
어느새 싹 비운 접시를 바라보며 카엘이 입맛을 다실 때였다.
“더 드시겠습니까?”
줄곧 카엘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시종이 물었다.
카엘은 귀여운 미간을 찡그린 채로 고민했다.
파라디움에서의 배움이 떠오른 탓이었다.
특히 카엘의 아버지 루시우스는 늘 그에게 식탐을 주의하라 가르쳤다.
그는 미식가였고, 테이블 가득 온갖 종류의 음식을 차려 놓고, 딱 한 입씩만 먹었다.
카엘은 마음에 드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싶은 마음을 꾹 내리누르고 루시우스의 방침을 따라야 했었다.
‘방금 먹은 고기를 좀 더 먹고 싶은데…….’
갈등하며 카엘은 힐끔 이카르의 눈치를 살폈다.
이카르는 이미 두 접시를 전부 먹어 치운 뒤 새로운 접시의 고기를 먹고 있었다.
드한과 베인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조금 드시는 것 아닙니까?”
베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고, 드한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장기에는 무조건 많이 드셔야 합니다. 특히 근육 발달에 좋은 이런 육류를 많이 섭취하셔야 키도 쭉쭉 크고…….”
드한이 제 의견을 내놓았고, 묵묵히 음식을 먹던 이카르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엘은 직감했다. 여기서 못 먹는 모습을 보이면 위장이 작은 꼬맹이라며 우습게 보일 거라고.
해서 호기롭게 외쳤다.
“아니다! 나는 아직 더 먹을 수 있다.”
카엘은 식기를 꼭 쥔 채로 눈을 빛냈다.
“호…….”
이카르는 작게 탄식했고, 드한과 베인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카엘의 발언을 셋 다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세 사람 다 별다른 대화는 없었지만, 그 분위기가 오히려 카엘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오로지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니.
그렇게 바슈케르에서의 첫 식사는 카엘에게 매우 긍정적인 기억을 심었다.
이제는 천애 고아나 다름없었지만, 나름 바슈케르에서 잘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곁에 있는 또 다른 사람들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