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5화. 밑거름 (1)
유그위드는 죽어갔다.
‘……나름 좋은 구경이었는데.’
두 대괴수의 영향력이 충돌하는 순간.
실로 묘한 현상이 벌어졌다.
아마 마탑 서적을 전부 뒤져도 그에 관한 내용은 없지 않을까?
문득, 그런 걱정이 들었다.
지금 날뛰는 대괴수가 한두 마리가 아닐 것이라는 노파심. 만약, 아르카나 대륙 어딘가에서 또 다른 대괴수들이 출현하고 자신이 목격한 것과 똑같은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면.
‘욕심으로는 마탑에 언질해 두고 싶은걸.’
물론, 그럴 방법도 없거니와.
‘그럴 자격도 없다만.’
자신은 마탑 소속이 아닌 전(前) 원로 마법사에 불과했다.
그래, 그 원로 마법사다.
마탑 최상층에서 모순이란 족쇄를 벗어나지 못했던 무능력자.
그 사실을 인정하자 마음이 편해진다.
유그위드가 힘겹게 내뱉었다.
“확신할 수 있습니다. 굳이 내 도움이 아니더라도 그대들이라면 이 현상을 간파할 수 있으리라고. 그야 나와 다르게 전례가 없던 시대를 열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대들은……?”
탑주, 마르셀로. 그리고 이 수석.
유그위드는 두 사람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어찌 의심할 수 있으랴.
첫 만남을 떠올려본다.
마탑의 최상층에서 일렁이던 포탈의 빛 무리.
‘정말,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생각했지.’
그리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의 곁에 악마 숭배자가 셋이나 있었음에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다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나.’
세니오스마저 세상을 떠난 순간부터.
유그위드, 자신은 조금도 흔들려선 안 됐다. 그래, 온순한 거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중심을 잡고 흔들리는 마탑을 지탱해야만 했다.
쿠구구궁.
간신히 숨을 삼키던 순간.
멀리서 느껴지는 진동.
유그위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같이 떨어졌나, 다행이군.”
필드의 격변으로 생성된 불완전한 프로토타입 균열.
하지만 균열에 휘말리던 순간에도 유그위드는 집중력을 놓지 않았다. 한계에 다다른 골렘을 억지로 움직여 두 대괴수의 발목을 붙잡고 함께 프로토타입 균열로 끌어들였다.
억지의 대가는 철저히 치르는 중이었다.
유그위드는 처참하게 부서진 골렘의 파편 아래에 깔려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마력 탈진에서 마력을 쥐어짜 낸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균열에 휘말리고도 꽤 시간이 흘렀거늘. 원래라면 미량이라도 회복되어야만 하는 마력이었지만, 유그위드의 마력은 조금도 차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그위드는 웃었다.
“……이거 당신이 부러워지는데, 세니오스.”
영원히 녹지 않는 만년설.
이명에 걸맞게 마탑에 곤히 잠든 원로 마법사, 세니오스.
과거엔 구경거리가 된 자네의 처지를 동정했었는데…….
쿠드드득.
유그위드는 무너진 골렘의 파편 사이.
자력으로 빛을 내는 골렘의 핵을 응시했다.
자신의 마력으로 발광하는 것이 아니었다.
골렘의 핵은 오래된 계약을 이행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구경거리도 모자라서 괴물들과 다를 바가 없는 꼴이 되게 생겼으니까. 뭐, 세니오스 당신이라면 오히려 내 처지를 부러워하려나……?”
그대는 생김새와 다르게 미친 구석이 있으니.
스오오오.
유그위드는 발광하는 핵과 갈수록 선명해지는 대괴수의 기척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승부가 난 모양이군. 물귀신처럼 프로토타입 균열로 끌어들인 두 마리의 대괴수.
그중 하나는 자신과의 전투로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분명, 그 온전하지 못한 녀석의 숨이 다한 것이리라.
서서히 밝아지는 핵의 빛.
“이쪽도 슬슬 결판이 나겠군.”
꽤나 세월이 흘렀으니, 혹시라도 잊지는 않았을까.
조금은 기대했는데.
그럴 리가 없겠지.
대지의 정령왕, 오리에드.
“원하는 걸 받았으니 이젠 내가 줄 차례군.”
아르카나 최고의 무력 집단 마탑.
원로 자리에 오르기 위해선 압도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역대 모든 원로 마법사는 한때 탑주 후보로, 혹은 수석 마법사로서 일찍이 그 능력을 인정받은 이들이었으니까.
유그위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째서 온순한 거인이라 불렸는가?
그건 유그위드가 거인의 모방품.
골렘을 발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마법사이기 때문이었다.
이게 바로 주마등이라는 거겠지.
아득한 과거.
자신에게 쏟아지던 찬사가 귓가에 맴돈다.
-“상식을 뛰어넘는 발현력이군, 유그위드 숙련 마법사……! 그만한 크기의 인공 소환수를 부릴 수 있다니. 그런 건 자네의 스승도 발현하지 못할 거야.”
-“자네는 이미 나를 뛰어넘었다네, 유그위드.”
-“골렘이라, 확실히 전설과 다를 게 없어. 물론, 자네의 마법을 논문으로 남긴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이는 없겠지만 말일세. 토대가 되는 마력핵의 출력부터 상식을 뛰어넘는…….”
순수를 잃지 않았던 어린 시절.
유그위드는 오리에드의 총애를 받았다.
아니, 총애라고 하기엔.
둘 사이엔 철저한 거래가 있었지만.
유그위드는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쁘지 않은 삶이었거든, 오리에드.”
이 수석의 말대로 모든 것엔 주고받음이 있으니.
이젠 내가 오리에드에게 내어줄 시간이 된 것뿐이었다.
자, 삼켜라.
“계약에 따라 나의 모든 걸.”
쿠득.
오리에드의 힘이 깃든 마력핵이 유그위드의 가슴팍을 파고든다.
그와 동시에 유그위드의 육체를 중심으로.
무너졌던 골렘의 파편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유그위드는 직감했다.
이로써 오리에드는 정령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아르카나 대륙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리라고.
‘내 육신으로 뭘 할지 궁금한데.’
너라면 절대로 올바른 짓은 하지 않겠지, 오리에드.
순수한 의도였다면 고작 대여섯 살 남짓했던 내게.
이런 계약을 제시하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아르카나 대륙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모순적이었던 원로 마법사답게.
‘누군가’를 믿고 있기 때문이겠지.
‘……마지막으로 부탁하지.’
이윽고, 유그위드의 의식이 완전히 마력핵에 융합되었다. 유그위드가 발현했던 것보다 더욱 거대한 골렘이 프로토타입 균열에서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 손가락 하나만으로.
콰직.
대괴수.
그것도 엉겨붙어 있던 두 마리의 대괴수를 짓이겨버릴 정도로 거대한 골렘이 탄생한 것이었다. 그러한 변화는 균열의 붕괴도를 급격하게 상승시키는 법이었다.
[※주의 : 프로토타입 균열이 붕괴합니다.]
이젠 하나의 마력핵으로 변한 유그위드.
타오르는 마력의 불길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부디 이 늙은이의 추태를 멈춰주시게, 이 수석.
*
“……오리에드?”
정령왕들 사이에도 뭔가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겠지.
내가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오리에드의 의도를 파악한 지금.
화염의 정령왕, 피닉스도 심상치 않은 낌새를 알아차린 듯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럽지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이엘의 입술을 통해 떨어진 세계수의 허락. 순수에서 벗어난 게 아닌, 순수의 시대가 열려 아르카나 대륙에 모습을 드러낸 정령들이 소식을 전해온다.
“아르카나 대륙에 이상 현상이 포착되었습니다.”
“좌표를 말하라.”
“에어리얼 님의 말씀에 따르면……!”
바람의 정령왕, 에어리얼.
덕분에 소식에 밝은 거겠지.
하위 정령, 실피드가 구체적인 위치를 전달받아 전해온다.
“원로 마법사, 유그위드가 사라진 부근으로……!”
유감이다, 오리에드.
이 순간, 변명의 여지는 날아갔다고 해도 무방하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실피드의 인도를 쫓아 포탈을 발현했다.
하이엘이 내 뒤를 따랐고, 피닉스도 말을 건네왔다.
“당신들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
[화염의 정령왕, 피닉스 휘하 화염의 정령들에 대한 지휘권을 습득하셨습니다.]
점멸하는 메시지가 의미하는 바는 굉장히 컸지만, 나는 평상시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그렇다. 간만에 나, 이호열과 그랑펠의 심정이 일치하고 있었으니까.
귓가에 유그위드의 목소리가 맴돈다.
-“그럼, 새 시대의 마탑을 부탁하죠. 이 수석.”
유그위드 원로 마법사.
뭐, 수석이었던 마르셀로와는 동기 같은 느낌이니까.
사실상 마탑의 유일한 상사이자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왜, 나머지 두 사람은…….
‘세니오스도 그렇지만, 고양이 탑주는 정말이지.’
솔직히 어른스럽지는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날뛰려는 마력을 추스르는 데에 집중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
오리에드와 마주하는 순간. 나는 녀석이 대지의 정령왕이 됐든, 몇 레벨이 됐든,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든, 어쨌든. 다짜고짜 마법부터 발현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걱정이 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주군……!”
하이엘의 음성에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소름이 돋았다.
포탈의 반대편.
목표 좌표에 펼쳐져 있는 건.
여태껏 보아온 몬스터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크기의 돌덩이.
쿠구구궁.
머릿속에 쑤셔 박았던 마법에 관한 지식이 말해주고 있었다.
아니, 흔한 바위가 아니다.
저건 골렘이다.
마력으로 움직이는 거병이다.
그렇기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대인가, 유그위드.”
이 시대에 골렘이라 부를 수 있는 거병을 발현할 수 있는 건 온순한 거인이라 불렸던 유그위드 원로 마법사밖에 없었으니까. 좀처럼 동요하지 않는 하이엘이 말꼬리를 흐린 것도 이해가 되었다.
실로 거대한 덩치 탓.
한눈에 보이는 건.
골렘의 팔 하나밖에 없었거늘.
주륵.
골렘의 손가락 사이에서 푸른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를 대신해서 상황을 설명한 건.
재잘대기 좋아하는 바람의 정령들이었다.
“……푸른 피라면?”
“분명, 거인족의 피!”
“벨라의 거신병이 쓰러진 거예요……!!”
벨라의 거신병이라.
정황상 녀석이 유그위드와 조우했던 대괴수겠지.
분명, 유그위드를 극한으로 몰아갔을 것이다.
프로토타입 균열에 휘말리게 할 정도로.
그러나 융합지성체가 되어버린 유그위드에겐.
더는 어떠한 위협조차 되지 않는 듯했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아르카나 대륙에 ‘융합지성체, 유그위드’가 출현합니다.]
유그위드가 아르카나 대륙을 위협할 존재로 거듭났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유그위드가 풀려났다는 건.
프로토타입 균열이 붕괴했다는 것.
‘붕괴 균열이라…….’
몇 번이고 마주했었다.
특히 상위 마왕들이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시점에서.
현실엔 붕괴 균열이 속출했으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이제는 의도를 알고 있는 나였다.
레이먼 션.
그 자식의 검은 속내를.
레이먼 션은 현실과 아르카나 대륙의 융합을 원했다.
현실과 아르카나 대륙의 경계를 무너트리길 원했다.
그것이 바로 녀석이 추구하는 [『기이』]였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그 속내를 어디서 파악했지?’
프로토타입 균열 내부에서.
정확하게는 그 내부의 스테이지.
펼쳐져 있는 현실의 풍경에서 확인했다.
그게 바로 소름이 돋아난 이유였다. 어쩌면 저 붕괴한 프로토타입 균열은 『아르카나 대륙』과 [현실]을 연결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오리에드의 선택도 이해가 갔다.
만약, 레이먼 션이 이러한 전개를 의도했다면? 그림자 신을 궁지로 몰고 간 것처럼 오리에드에게도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된 원인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 추측은.
“클라우디시여. 보이지 않습니다.”
날갯짓을 멈추고 내 곁에 내려앉는 불사조.
“육체의 절반이 보이지 않습니다.”
피닉스의 말로 확신이 되었다.
아르카나 대륙에 출현한 융합지성체는 정확하게 절반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절반의 융합지성체는 어디에 있는가?
빌어먹게도.
현실에 출현한 거다.
.
대한민국.
수도.
서울.
마탑의 선임 집무실.
“……대체 어째서 제게 수석 업무 대행을 맡기신 겁니까?”
책상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벤쉬 윌리엄.
문득, 그의 시야로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창가를 비추던 햇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었다.
순간, 벤쉬의 머릿속에 계산식이 떠오른다.
마탑의 높이.
정체 모를 장애물의 크기.
……구구구궁.
그리고 미세하지만 마탑이 진동할 정도의 충격량.
판단이 섰다.
벤쉬가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깃털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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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쉬 윌리엄 임시 수석 대행이 전한다.
이 시간부로 마탑 전원의 출탑을 허가한다.
신속하게 모험가들의 세계에 도래한 위협을 제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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