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468화 (468/489)

◈ 468화. 신이라고 하기엔 (1)

이래서야 후배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는데?

……털썩.

계약자이기에 거스를 수 없다는 거겠지.

저절로 무릎이 꿇리고.

고개가 숙여지는 걸 넘어서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쿵.

가브리엘은 이를 악물었다.

머리를 박은 채 필사적으로 눈을 굴렸다.

회랑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던 그림자 신의 사도들.

그들이 발이 보였다.

저들 또한 같은 방향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이럴 줄 알고 있었다.’

계약자가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걸.

주인이 용납하리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상대는 그림자 신이지, 등신이 아니니까.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그림자 신을 쫓은 이유?

회랑에서 우연하게 마주친 악크샨의 악마 사냥꾼.

그가 말했기 때문이다.

-“규율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 설령 회랑의 주인이라고 한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하다.

그림자 회랑에 머무는 그림자 신에게도 카르마, 현상금이 걸려있으리라는 뜻. 그 말인 즉, 결투를 통해 그림자 신을 사냥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가브리엘은 쓰게 웃었다.

‘규율이라.’

문득, 사내에게 묻고 싶어졌다.

그렇게나 규율을 중시하면서, 어째서 나와 마찬가지로.

악크샨의 엄격한 규율을 어기려고 드는 것이냐고.

“……그걸 묻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그대가 올라올 때까진 살아있어야겠군.

가브리엘은 ‘집념’을 불살랐다. 인내와 감내로 닦아낸 집념이 굴복했던 그의 육체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림자 신을 바라봤다. 칭찬을 바란 건 아니건만. 건조한 음성에 가브리엘은 멈칫했다.

“너는 내가 기다리던 이가 아니다.”

“그런가? 섭섭한데.”

가브리엘은 계약을 맺던 날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분명히 똑똑히 기억해 두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내가 네놈과 계약을 맺은 이유는 그림자 용병단에 입단하고 싶어서도, 아르카나 대륙을 뒤흔들 힘을 거머쥐고 싶어서도 아니라고, 오직 너를 사냥하기 위해서라고.”

가장 비열한 신, 그림자 신.

가브리엘은 장담할 수 있었다.

계약자로서 그런 소릴 내뱉었던 건 자신밖에 없었으리라고.

모른 척해도 너는 기억해 낼 수밖에 없으리라고.

석궁에 볼트를 장전한 순간이었다.

“너는 모두 기억하느냐.”

“무엇을 말이냐?”

“시끄러운 벌레의 지저귐을.”

그림자 신을 바라본다.

창백한 얼굴에 피폐한 동공.

덕분일까, 그에게는 공허함이 가득해 보였다. 그 초점 또한 불분명했다. 자신을 향해 있지만, 전혀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선.

물론.

철컥.

가브리엘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악마와 다를 바 없는 이들의 차이점?

모두를 사냥해 온 가브리엘은 알고 있었다.

최후의 순간.

지옥불에서 타들어 갈 고통만을 생각하는 악마와 다르게.

악마와 다를 바 없는 이들은 끝까지 자신의 과오를 부정한다.

눈앞에 있는 그림자 신처럼.

“고맙군. 덕분에 내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주종관계를 거스르는 집념.

가브리엘이 그대로 석궁을 발사.

본격적인 사냥에 돌입하려던 순간이었다.

츠릉.

사방에서 먹색의 쇠사슬이 뻗어져 온다.

반응할 새도 없었다.

쇠사슬이 가브리엘의 사지를, 목덜미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우드득.

“컥!!”

확신할 수 있었다.

팔다리가 목이 그대로 부러졌다고. 그럼에도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림자 신이 자신과의 계약을 파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팽팽하게 당겨지는 쇠사슬.

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동시에.

강제로 고개가 들린다.

그림자 신이 그런 가브리엘에게 말했다.

“내게는 단순한 자비였다.”

……자비?

무엇이 자비란 말이냐.

가브리엘은 속으로 되뇌었다.

‘네놈이 불러일으킨 결과를 보아라.’

그림자 용병단을 중심으로.

아르카나 대륙의 음지는 세력을 점점 넓혀 나갔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이들이 셀 수 없이 많이 희생되었다.

“어째서 그들이 희생되었는지 아느냐.”

놈의 목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진지했다.

“내게 자비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가.

우리를 진짜 벌레로 보고 있었군.

가브리엘은 납득하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네놈만이 아닌지도 모르지.’

여신을 섬기는 여신교단을 포함.

수많은 신이 존재한다고 믿고, 섬기는 아르카나인들이었다.

그러나 신들이 그들의 기도에 응답했던 적이 있던가?

-“사제님께선 갈 곳이 없는 이들을 보살피시다…….”

가브리엘은 문득, 괴한에게 살해당했던 여신교단의 사제를 떠올렸다. 누구보다 낮은 곳에서 자신을 섬기던 사제조차도 여신은 굽어살피지 않았었다.

그림자 신이 말을 이었다.

“유일하게 만신전에 오르지 못했기에. 유일하게 네 녀석들의 기도를 들을 수 있는 내게. 애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신전(萬神殿)이라니……?

인간에 불과한 가브리엘이 알아들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림자 신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날 이후, 만신전의 문은 굳게 닫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신을, 태양신을, 만신을 향한 네놈들의 기도가 문 너머에 닿을 리 있겠느냐? 그들이 응답하지 않음을 원망하지 마라.”

마치.

“더욱이 내가 네 녀석들의 처지를 가엾이 여겨 기도를 이루어 줬다. 신격을 갖추지 못해 만신전에 오르지 못한 나만이……! 이곳에 머물며 네 녀석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울분을 토해내듯이.

“……컥.”

그럴 때마다 쇠사슬을 더욱더 강하게 가브리엘을 압박했다.

가브리엘은 생각했다.

뭐라고 지껄이는지는 몰라도 억울한 사연을 토해내는 게.

과연, 예상했던 바와 같노라고.

그런데.

“그러나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그렇기에 나는 증오할 수밖에 없다. 만신전을 봉쇄하고, 다리를 무너트리고, 신수마저 집어삼킨 빌어먹을 족속을.”

그 시선이 향하는 곳엔 자신이 올라탔던 고래가 있었다.

그림자 신이 고래를 향해 증오 섞인 말을 내뱉을 줄이야.

예상하지 못했다.

가브리엘은 그림자 신의 말을 곱씹었다.

‘……만신전을 봉쇄한 게 저 녀석의 짓인가?’

분명, 악크샨의 악마 사냥꾼은 저걸 ‘흉조’라고 불렀다.

가브리엘은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완전히 후회했다.

‘이런 젠장.’

그를 밀치지 않았다면.

녀석의 저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그림자 신은 계속해서 억울함을 토해냈다.

“나는 끝없이 생각했다. 어째서 나는 버려졌는가? 어째서 나만이 만신전에 오르지 못하고 아르카나 대륙에 남겨졌는가? 어째서 만신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저들에게 굴복하였는가? 그 인고의 고뇌 끝에 답에 도달했다.”

눈가의 피폐함이 더욱더 짙어졌다.

“모든 건 ‘그들’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콰드득.

허공에 마력 입자가 흩날리고.

가브리엘을 옥죄던 쇠사슬이 끊어져 나간 건.

“귀빈을 대하는 태도가 형편없군. 이 또한 처분에 반영하겠다.”

갑작스러운 독설에도 그림자 신은 기다렸다는 듯 화답했다.

“그렇다. 모든 원흉은 너희 ‘모험가’였다.”

*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길래.

‘……쟤가 다짜고짜 모험가 탓을 하냐?’

물론, 사이좋게 대화를 주고받을 새는 없었다.

마주하는 순간.

점멸하는 시야.

[그림자 신이 필드를 변화시킵니다.]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일단, 아니군.’

안타깝지만, 그림자 신은 레이먼 션이 아니라고.

필드를 변화시키는 연출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레이먼 션이 플레이어 탓을 하겠냐?

‘아직도 의견이 분분할 정도인데.’

그랑펠이야 레이먼 션을 사냥감으로 간주했지만.

레이먼 션의 행보엔 솔직히 의문이 가득했다.

말도 안 되는 신규 업데이트를 쏟아낼 때는 인류의 멸망을 바라는 건가 싶다가도, 꼬박꼬박 균열 클리어 보상금을 지급하는 걸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하이엘.”

그보다 나는 가브리엘을 먼저 살폈다.

그림자라서 죽지는 않는 모양인데.

척 봐도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가브리엘을 부축해라.”

“주군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다시 만나서 반갑군.”

우리 선배님, 넉살도 좋으셔?

물론, 이쪽 넉살은 더 좋다.

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대의 사정은 상황이 끝나고 듣도록 하지.”

그래, 지금은 나와의 만남을 잔뜩 벼르고 있던 그림자 신과 마주해야 할 때였으니까. 보자, 최저치에 육박했던 호감도는 과연 오류가 아닌 모양이었다.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변해가는 필드.

어느새 주변은 어두컴컴하게 변해 있었다.

뭐, 색다른 게 있다면…….

텅 빈 공간에 크고 작은 프로토타입밖에 보이지 않는 것.

녀석들이 수족관의 물고기처럼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풍경이 뭐 이러냐.’

내면의 심미안이 호통을 치고 있었거늘.

조금 전 내뱉은 독설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그랑펠.

나는 독설을 삼키고 본론을 꺼냈다.

“그림자 용병단과의 계약을 파기하라.”

나의 말에 그림자 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 용병단? 그깟 계약은 얼마든지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 있지. 그래, 또 원하는 것을 말해 보아라. 너는 내게 무엇을 원하는 거지?”

나는 말을 이었다.

“그대와의 계약에 희생된 이들에게 사죄하라.”

여기까지 온 마당.

그랑펠의 누이를 향한 사죄만으로는 부족하다.

네 모든 악행에 관한 사과를 받아야 수지타산이 맞겠지.

그런데…….

“좋다. 나는 그 또한 진심을 다해 사죄하겠다.”

……어째 과도하게 호락호락하지 않냐?

물론,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기에.

녀석의 말을 진심으로 믿지는 않았다.

덕분에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내 차례인가?”

그래, 뭐, 모든 것엔 주고받음이 있으니까.

말해봐라.

그걸 들어줄지 말지는 듣고 생각해 봐도 늦지 않을 테니까.

내가 침묵하자 그림자 신이 말을 이었다.

“그대는 알고 있는가, 이 공간이 어떤 장소인지를.”

내가 이런 해괴한 장소를 알겠냐.

애초에 기대도 안 한 모양이다.

그림자 신이 이를 갈며 내뱉었다.

“이 쑥대밭이 바로 만신전의 어귀다.”

만신전.

퀘스트, [흑막을 들추다]에 명시되어 있던 거기로군.

격을 갖추지 못한 그림자 신이 오르길 원한다는 그 장소였다.

솔직하게 이해가 안 됐다.

‘만신전이면 신이 있는 장소 아닌가?’

근데, 어째서 신과 관련된 건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프로토타입만 떠다니고 있는 걸까?

물론,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잠깐만.’

뒤늦게 깨달았거든.

그림자 용병단이, 아니, 그림자 신이 어째서 아르카나 대륙의 흑막이라고 불렸는지를. AAU 박민재를 비롯한 지부장들은 내게 몇 번이나 경고했었다.

-“그림자 용병단이 성전 연합군에 합류하고, 그들의 긍지를 증명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우려하는 건 설정이 존재했었다는 겁니다……!”

-“그들은 여전히 아르카나 대륙 최대의 흑막입니다.”

-“그림자 용병단 혹은 그림자 신은 아르카나 대륙 전기 스토리 최후반부까지 플레이어들, 그러니까 모험가들의 난적으로 활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솔직하게 말해 볼까?

‘키치네를 향한 뒷담화잖아, 어떻게 보면.’

그래서 그땐 듣는 척도 하지 않았었다.

나는 몰라도, 그랑펠이 남의 말에 따라 누군가를 평가한다?

그런 성격은 되지 못했거든.

그러나 설정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존재하는 설정은 어떤 식으로든 실현된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됐었으니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프로토타입에 생각이 닿았다.

‘만약, 레이먼 션이 설정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였다면.’

그림자 신에게 플레이어를 적대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자 이 모든 풍경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의 추측을 뒷받침하듯 그림자 신이 외쳤다.

“그렇다! 만신전을 지키고 있던 신수도, 아름다운 풍경도, 모두 빌어먹을 괴물들에게 잡아먹혔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느냐? 그래, 모든 것은 너희를 위해서였다. 저 괴물의 편애를 받는 너희, 모험가들을 위해서였다!”

그의 시선이 굳게 닫힌 허공의 철문을 향한다.

“덕분에 나는 만신전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무엇하나 알 수 없게 되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심정이었다. 그런 와중에 너를 발견했다. 너를 향한 증오를 억누르고, 너를 회랑으로 초대했다. 너를 집어삼켜 만신전에 도달할 격을 쟁취하기 위해서……!!”

그러냐?

나는 한결같은 시선으로 그림자 신을 바라봤다.

뭐랄까, 남 같지 않았거든.

‘그놈의 설정 때문에 휘둘리고 있는 모습이 말이지.’

물론, 자세한 사정은 들어봐야 알겠지만.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한 가지는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겠군.

나는 허리춤에서 귀철을 치켜들었다.

아니, 일루젼 브레이커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휘둘렀다.

서걱.

멈칫하는 그림자 신.

내가 다른 착각은 몰라도.

레이먼 션, 그 쓰레기 자식하고 같은 취급은 사절이다.

콰콰콰쾅.

만신전.

그 어귀를.

부유하던 프로토타입들이 터져 나가며 반짝거린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윽고, 나는 물었다.

“다시 묻겠다.”

“……?”

“그 망상은 여전히 유효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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