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6화. 이 또한…….
점멸하는 메시지를 확인한다.
[악마 사냥꾼, ‘가브리엘’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대선배님께서 나를 주시하시는 이유야 짐작이 된다.
‘내가 구마의식을 언급했으니까.’
구마의식의 대상은 오직 악마를 향해야만 한다.
그것은 악크샨의 규율이요, 악마 사냥꾼의 상식이었다.
당연한 일이 아니겠냐?
‘다른 데엔 어차피 쥐뿔 효과도 없을걸?’
악마를 ‘의식’에 초대하여 끝을 봐야만 하는 구마의식이었다.
악마가 아니거나 악마에게 빙의당한 게 아닌 대상에겐 사용할 이유도, 애초에 언급할 이유도 없다는 뜻.
‘규율을 중시하는 악크샨이니까.’
물론, 악마와 다를 바 없는 레이먼 션의 업적을 하나하나 읊는다면 내 심정을 이해해주실지도 모르지. 근데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설명할 리가 있나.
‘독설은 평소에도 잘만 내뱉으면서.’
이럴 땐 그랑펠식 화법을 발휘하는 주둥이였으니까.
그 바람에 나는 우려했을지도 모른다.
악크샨의 규율을 어겼다면서, 괜히 악크샨 내전을 촉발한 게 아니라면서, 대선배님과 뜻하지 않은 갈등을 빚게 되는 건 아닌가 하고는.
‘근데, 나도 사람 볼 줄 알거든.’
하지만 네임드 악마 사냥꾼 NPC.
가브리엘.
그만큼은 예외였다.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과장이 심하다고 할 거야?
왜, 악크샨이 온전하던 시절.
아르카나 대륙에 악마족 몬스터가 업데이트되지 않았었다.
‘명성을 날리려야 날릴 수 없는 환경이었지.’
애초에 악마 관련 의뢰가 적었다는 것.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 가브리엘이 악크샨의 악마 사냥꾼으로 명성이 드높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 가브리엘은 악마만 사냥한 게 아니었거든.
-“자네, 그 소문 들었어? 그 살인자들이 시체로 발견됐다는구먼? 하여튼 악마와 다를 바 없는 자식들이 죽어서 속이 다 시원한데……. 보자, 이번에도 가브리엘이라고 했었지? 그 악크샨 출신!”
가브리엘은 악크샨에서 파문된 악마 사냥꾼이었다.
파문의 이유는 앞서 말했듯.
악마만을 사냥한 게 아닌.
악마와 다를 바 없는 이들 또한 사냥했기 때문.
악명 높은 범죄자.
악마의 꼭두각시.
극악무도한 뒷세계의 인물까지.
가브리엘은 약크샨의 규율이 아닌, 자신의 판단에 따라 그들을 사냥했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액수의 현상금을 받게 됐고, 그에 걸맞는 명성을 떨치게 됐다.
『진정한 악마 사냥꾼, 가브리엘』
악마가 없는 대륙에 악마보다 더 악한 인간을 사냥한 가브리엘에게 붙여진 아이러니한 칭호. 물론, 구구절절한 사연은 악크샨에 몸을 담았던 나니까 기억하는 거겠지.
그 시절에 적잖이 동경했었거든.
‘저게 악마 사냥꾼의 진가구나, 하고는.’
……물론, 멋대로 착각한 거였지만!
‘어쨌든, 덕분에 납득했다.’
가브리엘.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에게서 자세한 사정을 듣지 않아도.
그가 그림자 신과 엮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쳤겠어.’
아르카나 대륙.
최악의 범죄 집단, 그림자 용병단.
가브리엘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쫓은 거겠지.
‘그 과정에서 그림자 신에 닿게 된 거고…….’
녀석과 계약을 맺게 된 건지도 모른다.
모든 원흉인 그림자 신에게 닿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나의 그런 추측에 화답하듯.
철컥.
가브리엘이 석궁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멀찌감치 떨어진 귀빈들을 조준했다.
가브리엘이 덧붙였다.
“내가 저들을 맡겠다.”
혹시라도 난입할지 모르는 귀빈들을 막겠다는 뜻.
그렇다면 나더러.
하늘에서 내려오는 저 프로토타입을 맡으라는 뜻인가.
‘우리 사이에.’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뭣하지만.
악마 사냥꾼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 법.
그렇다.
모든 건 내가 가브리엘이 건넨 상자를 열었을 때부터 계획된 일이었다. 상자 내부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지만, 그건 단순한 신뢰의 확인에 불과했으니.
그렇다면 이젠 눈앞의 프로토타입에 집중할 시간이다.
‘신을 먹는 흉조’.
이름부터 거창한 녀석의 생김새는…….
보자, 고래와 비슷했다.
복잡한 기계부품과 전선으로 휘감겨 있는 고래.
그 외형보다 흠칫하게 하는 건 연출이었다.
“회랑의 주인께서 노하셨다.”
시종일관 감정을 숨기던 고용인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흉조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본능에 따라 움직이던 귀빈들조차 난장판에 끼어들지 못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거겠지.’
휘말린다면 흉조에 삼켜진다는 걸.
삼켜진다면 존재 자체가 삭제된다는 걸.
근데, 아무리 그럴싸하게 분위기를 잡아도.
‘나는 조금도 위축될 이유가 없거든,’
그야 흉조라면 이미 극복해 봤으니까.
그건 귀철.
아니, 일루젼 브레이커도 마찬가지다.
-깨트려도 깨트려도 끝이 없구나, 허상이여.
두근.
일루젼 브레이커의 고동이 전해져 온다.
두려움이 아닌 기대의 울림.
조금 전, 첫 발자국을 내디딘 제2길과는 다르다.
또각.
긍지의 검로, 제1길은 이젠 내겐 더없이 익숙한 길이 되었으니까. 나는 일루젼 브레이커의 검신(劍身)을 넘어서 육체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검강(劍罡)을 느꼈다.
『그랑펠의 재능은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았다. 명석한 두뇌는 기본. 타고난 마법적 재능은 웬만한 마법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 흉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더 나아가 그에 뒤지지 않는 육체의 잠재력까지.』
처음 검기를 목격한 것만으로도.
따라서 검기를 발산했던 재능이다.
그런 천부적인 그랑펠의 재능에 경험이 더해진다면?
나는 그 결과를 직감할 수 있었다.
진정한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에 다다랐음을.
물론, [천적관계]는 발동되지 않은 상태다.
나의 [근력] [민첩] 스탯은 총합 500을 넘지 못하겠지. 그런 수치로 적정 레벨 2, 3천에 육박하는 그림자 회랑에서도 두려움을 몰고 다니는 흉조를 내가 쓰러트릴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다.’
하지만 나는 지켜봐서 알고 있다. 600레벨에 불과한 하르콘이 800~1,000레벨에 육박하는 고레벨 몬스터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이유를.
[※주의 : 생명력이 급격하게 하락합니다.]
검기란.
자신의 생명력을 땔감으로 타오르는 불과도 같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수에겐 다시금 감사하게 된다.
[첫 세계수의 축복이 ‘탈진’을 거절합니다.]
[첫 세계수의 축복이 ‘기절’을 거절합니다.]
[첫 세계수의 축복이 ‘쇠약’을 거절합니다.]…….
[전설]급 아이템인 귀철. 녀석과 하나가 되기에 아직 내 육체의 그릇은 빈약하기 짝이 없겠지. 그럼에도 버텨낼 수 있는 이유는 보다시피 세계수의 축복에 더해서.
지긋지긋한 단련으로 쟁취한 고유 스탯.
[집념이 근력으로 환산됩니다.]
[집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꼿꼿할 수 있었다.
강림하는 ‘신을 먹는 흉조’를 바라볼 수 있었다.
우려하는 고용인의 음성들.
“서, 설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진정 저것과 맞설 생각이십니까?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 될지도 모릅니다. 당신께선 귀빈들과 다르시지 않습니까,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님?”
너희 내가 아니라 내 현상금이 증발할까, 걱정하는 거지?
‘겉과 속이 서운할 정도로 다른데.’
덕분에 내가 아랑곳하지 않고 일루젼 브레이커를 휘두르려던 순간이었다. 문득, ‘신을 먹는 흉조’, 녀석의 머리 위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재 현상금 : 100 카르마]
규율엔 예외가 없기에.
녀석에게도 현상금이 걸려 있는 건가.
저런 대단한 녀석도 100카르마밖에 안 되는 건가.
‘나한테는…….’
어째서 저런 말도 안 되는 녀석보다도 열 배가 많은 1,000카르마라는 현상금이 걸려있는 걸까? 의문을 억누르던 순간이었다.
우우우.
프로토타입, 흉조가 울부짖었다. 동물 울음소리를 듣고 그 속내를 짐작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지만, 녀석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하는 짓을 봐도 그렇다.
그 거대한 몸을 조심스럽게 움츠린다.
내게 다가와 경의를 표하듯 머리를 숙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라면 경계를 풀지 않았을 거다.
그림자 회랑의 콘셉트를 잊어버렸을쏘냐?
일단, 그 주인부터가 겉과 속이 다르다.
나를 극도로 혐오하면서도 초대장을 보내고, 꾸역꾸역 기다린 것만 봐도 가면의 두께가 짐작된다.
고용인들도 그런 주인을 빼닮아서는 비수를 휘두르고 모른 척하지 않나, 대접하는 척 독살을 시도하질 않나…….
‘프로토타입이라고 다르겠냐?’
게다가 프로토타입은 레이먼 션.
녀석이 그림자 신.
혹은 신계(神界)에 관련이 되어있다는 증거였다.
그래, 그 속내를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레이먼 션이다.
보다시피 불신의 이유는 충분했건만.
[신을 삼킨 흉조에게 ‘복종’이 발생합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메시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싸울 의지가 없는, 진작에 마음이 꺾인 적의 목숨을 취하는 건 귀족의 긍지에 어긋나는 일이었으니.
철컥.
“주인보다 현명하군.”
나는 너그럽게 말하며 일루젼 브레이커를 거뒀다.
“그대의 복종을 받아들이겠다.”
그러자 주위가 웅성거렸다.
“굴복했다고……?”
“그럴 리가 없어.”
“아니요. 어쩌면, 그분의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분이라면 그림자 신을 말하는 거겠지?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퀘스트창을 바라봤다.
[메인 퀘스트 : 흑막을 들추다]
아르카나 대륙이 붕괴하고 만신전이 열렸다. 그러나 그림자 신의 온전하지 못한 ‘격’은 만신전에 진입할 수 없는 원인이 되었으니. 이제부터 그림자 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격을 위해 움직이리라.
-증명의 전장에서 그림자 신과 조우하라. (진행 중)
그림자 신이 원하는 건 명확하다.
격의 상승.
그럴 일은 없겠다만, 내가 만약 흉조에게 집어삼켜진다면.
영원히 만신전이란 곳에 입장할 수 없게 될 테니까.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설령 규율을 어긴다고 해도.
나를 어찌할 도리는 없다는 거겠지.
그런 내 말을 증명하듯.
흉조가 나를 향해 더욱 적극적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프로토타입, ‘신을 삼킨 흉조’에 탑승할 수 있는 권한을 습득하셨습니다. ‘신을 삼킨 흉조’는 그림자 회랑의 3층계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과연.
‘한시라도 나를 빨리 만나고 싶어졌나 봐?’
그렇다면 넌 우리의 계획에 걸려든 거다.
가브리엘이 석궁을 허리춤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대의 말이 옳았군.”
말했듯 모든 건 계획대로였다.
가브리엘에게 규율이 위반되는 순간.
출몰하는 고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워낙 특이한 생김새 묘사 덕분에 곧장 알아차렸다. 그 고래라는 게 레이먼 션의 프로토타입이라는 걸 간파했다는 뜻.
‘뭐, 복종시키는 것까진 계획에 없었지만.’
어떻게 그 짧은 대화에서 이런 계획을 세울 수 있었냐고?
피차 목적이 같기 때문이겠지.
나도, 가브리엘도 노리는 건 그림자 신이었으니까.
저벅.
가브리엘이 먼저 흉조의 위에 올라탔다. 가브리엘까지 태울 생각은 없었던 모양인지, 흉조의 거대한 입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벌어졌지만.
“격식을 갖춰라.”
그 덩치가 무색하게도.
내가 가볍게 꾸짖자 주눅이 들어서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고양이 탑주는 나한테 경멸 섞인 말을 들어도 멀쩡했는데.
‘털도 안 날리고 고양이보다 낫네.’
우우우.
나와 가브리엘을 태운 흉조는 용건을 마친 모양이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샹들리에를 피해가며 회랑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흉조.
그 속도가 매서웠다.
[업적 : 만물의 왕, 드래곤에 올라타다]
[효과 : 모든 탈것에 관한 숙련도가 최대치로 상승]
[지속시간 : 영구지속]
‘업적이 없었으면, 떨어져도 몇 번은 떨어졌겠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승차감을 평가할 수 있을 정도.
새삼스럽게 안도하던 순간이었다.
가브리엘이 주변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두 발로 회랑을 거슬러 올라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귀빈의 현상금 사냥을 배제한다고 해도, 중층의 결계가 주인의 영역과 귀빈의 영역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지.”
“결계라면 익숙하다.”
……틀린 말은 아니지.
현실의 균열부터가 결계랑 비슷하니까.
쓸데없는 잘난 척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균열에 관해 설명하려던 또 한참이다.
적당히 침묵하자 가브리엘이 말을 이었다.
“익숙하다라, 그렇군. 회랑의 중층 결계, 그 이름은 ‘그림자를 비추지 않는 거울’이라네. 이름처럼 사방이 거울로 이뤄진 공간이지. 아, 마침 가까워져 가는군.”
가브리엘의 시선을 따라가니, 정말로 거대한 결계 같은 게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메시지에 적혀있던 것처럼 흉조는 자유롭게 결계를 돌파했으니까.
그런데.
“자, 그럼 동행은 여기까진가.”
지나치게 꼿꼿한 자세 때문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신검합일의 후유증 때문이었을까?
전부 아니라면, 악크샨이란 이름을 과하게 믿은 탓일까?
쿵.
갑작스런 충격과 함께 나는 휘청거렸다.
그와 동시에.
흉조의 위에서.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추락했다.
‘……뭔데?’
떨어지는 와중에도.
내 육체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흉조 위에서 추락하는 나를.
공허한 눈으로 바라보는 가브리엘과 마주 볼 수 있었다.
“그러게. 누구도 믿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그의 입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그게 악크샨이든. 악마 사냥꾼이든. 그대, 자신이든.”
뭔 개소리야? 저 빌어먹을 악크샨식 화법……!!
.
.
.
정신을 차리자 보이는 건 정보창이었다.
[히든피스 : 그림자를 비추지 않는 거울]
히든피스 속 히든피스인가?
뭐, 그것만으로 놀랄 이유는 없었다.
그래, 경악할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까.
[적정 레벨 :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풀네임.
혹시라도 누가 볼까, 두려운 메시지도 잠깐.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나를 비추는 거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거울 속 내가 멋대로 움직이며 내는 발소리였다.
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