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7화. 그대들이기에 적합하다
확실히 거물은 거물이다.
웅성웅성.
소란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군요.”
“세상에 그들이 스스로…….”
“어찌 되었든 제국 치안에 큰 기여가 되지 않겠습니까?”
제국의 수도, 안토니움.
황궁으로 돌아온 나는 간략하게 상황을 전달했다.
그림자 용병단과 광폭회가 전투 끝에 공멸했다고.
물론, 그 핵심만 가감 없이 내뱉는 그랑펠식 화법.
때문에 전후 사정까진 말하지 않았건만.
‘다들 이 화법에 익숙해진 건가.’
경과를 꼬치꼬치 캐묻는 이들은 없었다.
황궁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퍼져 나가는 소문.
빠른 속도로 안토니움의 거리로도 소식이 전해진다.
자연스럽게 눈앞이 점멸한다.
[거물의 해체 소식이 뒷세계에 전해집니다.]
[악인들의 사기가 일정 시간 대폭 하락합니다.]
[제국의 수도, 안토니움의 치안이 상승합니다.]
역시 거물들.
그저 해산했다는 것만으로 메시지를 출력할 정도라니. 뻔뻔한 철면피에는 드러나지 않았겠지만, 사실 울프에게 해산 이야기를 들었을 땐 흠칫했다.
AAU가 인정한 흑막, 그림자 용병단.
숨기고 있는 게 많은 만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게 당연지사.
해산으로 그 흑막들이 오히려 아르카나 대륙에 악영향을.
내게도 골칫거리가 되지는 않을까, 노파심에 우려했다는 뜻.
그러나.
-“부디 저희를 뜻대로 써주십시오.”
최대치에 오른 관계도와 우호도가 여기서 빛을 발할 줄이야……! 그렇다. 나는 전사한 8석 나디보를 제외, 탈주자 키치를 포함한 그림자 용병단 9인의 통솔권을 획득했다.
‘구체적인 상황은 몰라도.’
악크샨 유물.
그 덕을 봤다고 할 수 있겠지. 악크샨 유물 덕분에 목숨을 건진 그림자 용병단이 죽음의 문턱에서 심적인 변화라도 겪은 건지, 뭔지는 알 수 없다만.
‘어쨌든 잘된 일이다.’
그림자 용병단.
단순히 해체했다는 소식만으로.
아르카나의 악인들이 침울해하고 치안이 상승할 정도.
사실 그들의 강함이야 나도 익히 알고 있었다.
왜, 현실에서 마왕들이 출현했던 균열을 공략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림자 용병단과 함께했던 마탑 선임들의 평가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단순하게 평가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확실히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어요.”
-“그들은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높게 솟은 마탑인 만큼.
마탑의 선임 마법사들의 콧대 또한 드높거늘.
선임들은 일제히 그림자 용병단을 고평가했었으니까.
‘그런 대단한 이들이 내 말에 순순히 따른다라.’
옛날 같으면 말이야.
순수하게 기뻐서 팔짝 뛰었을지도 모른다.
쥐뿔도 없던 시절, 든든한 아군은 언제든지 환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다.
내 말에 따르는 세력들이 많아진 만큼.
상위 마왕의 위협이 시작된 만큼.
내가 짊어진 짐 또한 막중해졌다.
나는 신중하면서도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러니까…….
클라우디령.
“뜻에 따라 소집했습니다, 총대장님.”
저택으로 복귀한 나는 그림자 용병단 전원을 소집했다. 그러고는 무게를 잡았다. 티타임 시간이지만, 찻잔은 없다. 지금은 달랑거리는 녹차 티백으로 분위기를 가벼워 보이게 할 때가 아니잖냐, 그랑펠?
‘이번엔 좀 참자.’
나의 말에 호응하듯.
그랑펠의 입술이 떨어졌다.
엄숙하고 진중하기 짝이 없는 음성이 이어졌다.
“그대들의 쓰임새를 결정했다.”
울프가 답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받들겠습니다.”
그래, 본인 입으로 말했다?
무엇이든 받들겠다고.
분명, 다들 고개를 끄덕여서 동조한 거지?
그쯤에서 나도 말을 이었다.
“그대들은 이 시간부로.”
……꼴깍.
“나의 직속대에 편입된다.”
“……직속대?”
직속대라고 해서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다.
그래, 악명 높은 ‘그 이름’이다.
세상 모두가 그들의 기구한 처지를 안다.
당연히 달가워 할 수 없겠지.
‘사실상 처분과 다름없어.’
하지만 이제 와서 싫다고 해도 처분을 바꿔줄 생각은 절대 없다.
그야 그림자 용병단 정도면.
그 이름에 더없이 적합한 인재들이니까.
보자.
‘누구 앞에서 대놓고는 처음 밝히는 것 같은데.’
크흠.
이젠 같은 배를 탄 입장에서 숨길 건 없겠지.
나는 헛기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그 이름’을 내뱉었다.
“최후이자.”
“……최후?”
“유일하며.”
“……유일?”
“그렇기에 ‘악크샨’, 그 자체인 내가 그리 결정했다.”
“!!!”
*
이호열 총대장.
그는 악크샨의 악마 사냥꾼이었다.
악크샨 늑대를 목격했을 때부터 얼핏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3석 핸더슨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악마에게 빙의된 자를 구원할 수 있는 건……. 확실히 악마 사냥꾼밖에 없다고 들었으니까. 뭐, 실제로 그들을 본 적은 없지만, 소문이 그랬다는 거야.”
대격변.
마계의 아르카나 대륙 범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
악크샨은 멸망했다.
그에 관한 헛소문도 끊이질 않았었다.
울프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르카나 대륙에서 사건이 터지면 가장 먼저 찾는 게 우리니까. 그때도 비슷한 소문이 돌았던 거라고 생각해. 정확하게는 장부를 봐야 알겠지만, 내가 알기로 그림자 용병단은 악크샨의 최후와 관련되어 있지 않았어.”
락키드가 빈정거렸다.
“흥. 그림자 용병단이 잘도 악크샨 관련 임무를 맡았겠군. 뒷세계의 거물들이 고작 악크샨을? 뒈져버린 나디보도 웃겠어.”
“나디보는 네 농담에 한 번도 웃은 적이 없는데.”
“닥쳐라, 꼬맹이.”
락키드가 9석, 드쉐브에게 바득바득 이를 갈기도 잠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뒤쪽에서 잠자코 쫓아오는 키치가 보였다.
벅벅.
락키드가 머리를 긁더니 혼잣말을 뱉었다.
“제길, 전 단장이었던 인간은 뭣 때문인지 몰라도 풀이 잔뜩 죽었고. 현 단장이라는 새끼는 그림자 용병단을 해산한 것도 모자라서…….”
그건 신세 한탄이었다.
“우리를 총대장의 특임대……. 아니지, 악크샨에 팔아먹다니. 빌어먹을! 이래선 아까 악크샨을 보잘것없게 말했던 게 내 얼굴에 침 뱉기가 됐잖아?”
“클클.”
“어이, 웃음이 나오쇼. 영감탱이?”
“악마가 여기 있는데, 악마 사냥꾼이라니. 클클.”
“뭐? 내가 악마라고?!”
울프는 시끌벅적한 일행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적응이 필요하겠는데.’
하루아침에 불과했다.
그림자 용병단에서 악크샨으로.
자신들의 소속이 뒤바뀌게 된 건.
울프의 시선이 키치를 향했다.
‘아마도 신경 쓰고 있는 거겠지, 단장은.’
키치가 말을 아끼는 이유는 짐작이 됐다.
누구보다 내적으로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자 용병단이었던 우리가.
악크샨의 이름을 계승해도 되는 건지.
울프의 입이 벌어졌다.
“……글쎄.”
“갑자기 뭐가 글쎄야?”
되물은 건 5석, 헤르키오라였다.
울프는 다시 한번 말했다.
“그것도 글쎄.”
쯧, 헤르키오라가 혀를 차며 빈정거렸다.
“하여튼 다들 맛이 가버리셨네요.”
맛이 가버렸다라.
“그건 맞는 말이군.”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실 광폭회의 아지트에서부터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어째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
‘악크샨의 유물이라고 하셨나.’
클라우디를 죽일 무기라 불린.
일곱의 은제 마도구에서 쏟아져 나온 빛줄기에 닿은 순간.
울프는 묘한 잔상을 목격했다.
홀로 남은 키치.
그녀가 공허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잔상을.
찰나였지만, 끔찍했다.
의뢰 도중에도 볼 수 없던 그런 서늘한 표정을 짓는 키치라.
다시 떠올려도 등골이 서늘해졌으니까.
그 끔찍한 잔상을 목격해서일까.
‘지금은 그저 감사하군.’
울프는 지금의 풍경이 썩 나쁘지 않았다.
물론, 자신들이 악크샨에 몸을 담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는.
울프, 스스로도 의문이었지만.
“악크샨이라.”
악크샨에 관해서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아르카나 대륙에서 주역이 되지 못한 채.
잊힌 존재들이었으니.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확실한 건.
‘총대장님께서 그런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시다.’
어쩌면 악크샨, 그들에게 대륙이 알지 못하는 숨겨진 진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 그러니 악크샨에 몸을 담은 우리의 짐은 정말로 막중할지도 모른다.
‘악크샨의 명예를 되찾아야 하는 건가.’
명예를 되찾기는커녕 실추시키지는 않을까.
앞으로는 언행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부족하겠군.
아르카나 대륙 최흉의 악인.
울프가 쓰게 웃었다.
“그 버릇이 어디가겠어?”
그러나 울프는 명심하고 있었다.
그래.
설령 스스로 믿을 수 없을지라도.
-“그대들이기에 적합하다.”
총대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셨으니까.
그저 자신들을 신뢰해 주시는 총대장님을 믿고 따를 뿐이었다.
울프가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자.”
지금 바로 악크샨으로서의 첫 번째 임무를.
*
[클래스 퀘스트 : 악크샨 재건]
사라진 악크샨, 그들은 신시대의 전설이 되어 부활했다.
그러나 아르카나 대륙에 필요한 건 이야기로 떠도는 게 아닌 살아 있는 전설이다. 최후의 악마 사냥꾼이여. 과거의 전설들과 함께 새로운 시대의 악크샨을 재건하라.
-악마를 사냥하라. (반복)
클래스 퀘스트는 고요했다.
새로운 목표 따윈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겠지.
‘내 선택을.’
하지만 우리 그랑펠 님이 누구신가?
“이끄는 것은 한낱 글자 따위가 아니다.”
레벨과 스탯은 숫자 따위로 여기시고, 퀘스트 메시지는 글자 따위로 넘겨버리시는 콧대 높은 악크샨 최후의 악마 사냥꾼이시다.
“오롯이 나의 판단이다.”
그렇다.
나, 이호열.
아르카나 대륙.
최악의 범죄집단, 그림자 용병단.
그들을 무려 ‘악크샨형’에 처했다!
우리 악크샨 선배님들이 뭐라고 하실까?
악크샨 꼬라지 잘 돌아간다고 여기시려나.
[악크샨의 유지]를 발동했을 때.
지옥의 선배님들에게 한 소리를 듣는 건 아닐까.
심히 우려되는군.
그러나 나는 당당하게 읊조렸다.
“이의가 있다면 얼마든지 제기하도록.”
꼬우면 찾아오시든가요.
나와 그랑펠에 판단에는 이유가 있었다.
슬슬 한계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십좌인 만큼 영악하다.’
십좌는 무작위로 생성되는 균열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새겨넣었다.
마안을 통해 현실에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랑펠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솔직히 역부족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내 몸은 여러 개가 아니다.
현실과 아르카나 대륙. 더 나아가 마계까지 오가게 될 나였다. 이대로라면 틀림없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어딘가에서 사건이 터지고 말겠지.
‘물론, 다들 노력해 주고 있어.’
성전 연합군은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긍지에 전염이 됐든, 정말로 긍지를 깨달았든.
최선을 다해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부족했다.
나와 그랑펠의 목표는 고작 악마에게 대응하는 게 아닌.
악마를 되려 공포로 몰아넣고 사냥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 목표를 위한 새로운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악크샨.
그 이름이 아르카나 대륙에 울려 퍼지는 것만으로.
악마는 공포에 떨게 될 테니까.
떠오르는 월드 메시지.
[악마의 천적이 아르카나 대륙에 돌아왔습니다.]
고오오.
클라우디령 대저택.
별실에서 빛을 발하는.
일곱의 악크샨 유물.
[일곱 개의 유물이 악크샨의 복귀를 허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자 용병단은 악크샨에 더없이 적합한 인재였다. 내가 괜히 ‘악크샨형’이라고 했겠어? 떠올리기만 해도 벌써부터 지긋지긋하군.
악크샨, 악마 사냥꾼의 일과!
지금쯤 그림자 용병단은 육체 단련에 한창일 거다.
팔굽혀펴기에 달리기에.
간만에 구슬땀을 좀 흘리고 있겠지.
‘무엇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의뢰를 수행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마를 사냥한다.
공통점이 확실하잖냐?
악마는 아르카나 대륙 소식에 예민하다.
악명 높은 그림자 용병단이 악마로 타락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크샨으로 거듭났다?
그 소식만으로도 악마들은 벌벌 떨겠지.
그러니 나는 유물 앞에서 선언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다.”
악크샨이 우스갯소리에 불과하던 때에도.
악크샨을 두려워했던 악마다.
그렇다면 악크샨의 이름이.
악크샨의 명성이 더욱더 드높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악크샨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게 된다면…….
“모든 것이 제자리에 돌아가듯.”
나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열등한 족속 또한 제 발로 지옥으로 향하리라.”
물론, 그 전에 정산이 필요하다.
그래, 우리 사이엔 아직 남은 게 있으니까.
나는 아까부터 점멸하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림자 신과의 우호도가 최저치에 도달했습니다.]
고용인을 빼앗겨 잔뜩 화가 난 고용주의 메시지.
근데, 이쪽도 화가 난 건 마찬가지거든.
잊지 않았으니까.
“모든 것엔 주고받음이 있다.”
그랑펠 누이의 빚을.
“언제든지 오너라. 바라던 바다.”
……말은 그렇게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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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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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나 대륙에 히든피스, ‘그림자의 회랑’이 출현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르지 않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