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439화 (439/489)
  • ◈ 439화. 위선자 (1)

    보상은 달콤했다.

    “기회를 붙잡는 것도 능력이야.”

    “봐봐. 이렇게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잖아?”

    “그래, 언제부터 다들 존나 착하게 살았다고.”

    떠올랐던 수많은 월드 퀘스트.

    반드시 제국을 적대시해야만 하는 퀘스트들이었다. 처음에는 귀가 솔깃했다. 왜, 제국의 황제가 사망한 것도 모자라 차기 황제로 거론되던 이호열마저 즉위를 포기한 상황이 아니었던가?

    “근데, 막말로 그때 움직였어 봐.”

    그러나 속속들이 안토니움으로 집결한 세력들이 심상치 않았다. 현실에서 귀환한 라이언 하트 기사단은 물론이요, 어디에서 튀어나온 건지 알 수 없는 막강한 세력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한술 더 떠서 안토니움 북부는 드래곤이 지키고 있다 하고…….”

    “아포칼립토 길드도 제대로 털렸다고 했지?”

    “쯧쯧. 그러게 우리처럼 눈치가 있어야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건 타이밍이었다.

    “그냥 이호열 눈치만 보면 되는 건데, 멍청이들.”

    대략 서른 명.

    감바스는 같은 생각으로 한배를 탄 길드원.

    플레이어들을 바라봤다.

    배의 이름은 이름하야 [광폭회].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의 지식을 되새겨본다.

    “그림자 용병단과 음지를 양분하던 거물이야. 우리에겐 아르카나 대륙. 아니, 하다못해 제국만 멀쩡했어도 꿈도 못 꿨을 일탈이지. 그냥 광폭회에 붙었다는 이유만으로도 현상금이 오지게 붙었을걸?”

    악명 시스템.

    제국령에선 악행을 저지르면 제국의 병사들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쑥대밭이 된 아르카나 대륙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우리한테 신경 쓸 여유가 없단 거지!”

    제국은 영토의 치안 유지는커녕.

    수도, 안토니움을 지켜내기도 급급한 상황이었다.

    물론, 감바스는 적당한 선을 지킬 생각이었다.

    “다들 아르카나 대륙에서 평생을 눌러살 생각은 없잖아? 그러니까 뭐든 적당히 하자는 거지, 적당히. 플레이어들과의 대립은 최대한 피하면서…….”

    피하는 이유야 간단했다.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PK.

    궤멸한 천하통일은 물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초신성들까지.

    감바스는 PK를 일삼던 플레이어의 최후에서 교훈을 얻었으니까.

    그런 이유를 떠나서도 같은 플레이어끼리 대립할 이유는 없었다.

    “쉽게 말해서 처리해도 후환이 없는 아르카나인들만 노리자는 거지! 막말로 누가 우리를 알아보겠냐고? 아르카나 대륙엔 카메라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고, SNS도 없는데!”

    감바스는 퀘스트 목표를 확인했다.

    [월드 퀘스트 : 광기의 부활을 위하여]

    대륙을 광기로 물들일 준비는 되었는가.

    광폭회가 그대에게 바라는 것은 증명이다.

    그대여, 혼란의 광기가 대륙을 뒤덮게 하라.

    -광폭회의 이름으로 살육을 행하라. (진행 중)

    감바스의 안광이 기름처럼 번뜩였다.

    “그림자 용병단의 명성은 잘 알고 있지? 그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여 들었는지 말이야. 그런 그림자 용병단의 라이벌이었던 광폭회야. 여기서 차근차근 관계도와 영향력을 쌓아나갈 수 있다면!”

    “우리도 이호열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거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호열은 좀 그런데.”

    아무리 광기가 좋아도 이성을 되찾아야 했다.

    “……뭐, 이호열이 존재하는 양지는 지배할 수 없어도 음지 정도는 우리가 휘어잡을 수 있다는 거지. 나쁘지 않은 장사 아냐? 뭣보다 알잖아? 아르카나 대륙은 온전하지 않다는 거.”

    혼란 속에선 양지보다 음지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는 법.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감바스는 자신의 선택이 더없이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비열하게 올라가는 입꼬리.

    ‘그래, 설령 일이 꼬인다고 해도…….’

    이 모가지가 달아날 일이 없었다.

    이호열, 그는 자비로운 사내였다.

    악마가 아닌 존재에게만큼은 몇 번이고 자비를 베푸는 그였다.

    더 나아가 광폭회의 숙적.

    그림자 용병단 또한 이호열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는 게 기정사실. 만약, 광폭회가 그림자 용병단과의 세력전에서 패배한다고 하더라도 그림자 용병단이 플레이어인 자신들을 어찌할 순 없으리라.

    ‘이호열을 봐서라도.’

    감바스가 중얼거렸다.

    “결국, 손해 볼 게 없는 장사란 거지.”

    머뭇거릴 이유는 없었다.

    광폭회의 이름으로 살육을 행하라.

    감바스를 비롯한 플레이어들은 곧장 퀘스트 목표를 달성했다.

    그 변명거리도 이미 생각해뒀다.

    “우린 인간에게 빙의한 악마를 죽였을 뿐이야.”

    왜, 플레이어 사이에선 흔한 괴담이었다.

    균열에서 습득한 전리품을 독식하기 위해 파티원의 뒤통수를 치고는. 악마에게 빙의 되는 탓에 어쩔 수 없었다고. 가짜 눈물을 쏟아내는 플레이어가 한두 명이 아니라는 소문.

    감바스가 슬쩍 입을 열었다.

    “이호열이라고 그러지 않았으리란 법이 있겠어? 아니지, 이호열은 악마라면 가차 없이 사냥해버리니까. 무고한 플레이어를 악마라고 착각하고 사냥했을지도…….”

    그때였다.

    [※주의 : 생명력이 너무 낮습니다.]

    서걱.

    감바스의 시야가 검게 하얗게 물든 건.

    “……어?”

    데구르르.

    단말마와 함께.

    감바스의 머리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내린다.

    방금까지 대화를 나누던 감바스가 즉사했다.

    “가, 감바스?”

    영화의 한 장면보다도 비현실적이게. 목덜미에서 붉은 실선이 나타나더니 그대로 목이 떨어진 것이었다. 마네킹이 넘어지듯 꼬꾸라진 것이었다.

    “으, 으아아아악!”

    차마 대응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감바스는 광폭회에 합류한 플레이어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힐 무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저벅저벅.

    “제, 제발……! 모, 목숨만은!!”

    그러니 감바스 일행은 무기를 내던지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게 전부였다. 고개를 숙인 채 그 이유를 떠올리는 게 고작이었다.

    ‘……설마 우리가 죽인 게 고위 NPC였나?’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생긴 건 흔한 거지였다고!’

    ‘아무리 그래도 다짜고짜 우릴 죽일 이유는……!’

    문득, 울리는 걸걸한 음성.

    “뭐야, 모험가였잖아?”

    ……우리가 모험가라는 걸 알아봤다?

    걸걸한 목소리에서 희망이 느껴졌다. 플레이어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한 번 봤다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보였다.

    그림자 용병단 말석, 락키드.

    락키드의 악명은 유달리 드높았다. 일단, 유스라 왕국 황금 송아지 주점을 한 번이라도 방문한 이라면 명물급 진상 손님인 락키드를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으니까.

    ‘살았다.’

    플레이어들은 안도했다.

    감바스와 같은 이유였다. 락키드를 포함한 그림자 용병단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지만, 어쨌거나 이호열과 밀접한 관계로 엮여있는 이들이 아니었던가?

    ‘……그래, 이호열을 생각해서라도.’

    그림자 용병단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 수밖에 없다.

    감바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그런 감바스의 말을 믿고…….

    “……!”

    순간, 자각하게 되는 현실.

    그랬다.

    확신했던 감바스는 이미 락키드의 손에 절단이 났다.

    ‘……저건 단순히 모험가란 걸 알아보지 못해서 그런 거야.’

    좋아, 이럴 땐 어필이 필요했다.

    “마, 맞습니다! 저희는 플레이어, 모험가입니다! 퀘스트를 쫓아서 어쩔 수 없이 광폭회에 합류하게 됐는데……. 당연히 진심이 아닙니다! 저희도 성전 연합군인데, 어떻게 그런 긍지 없는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흐음.”

    “그림자 용병단의 락키드 님이시죠? 방금은 어쩔 수 없는 사고로 생각하겠습니다. 저희에게도 작은 책임이 있으니까. 이호열 총대장님을 비롯한 누구에게도 지금의 사고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평생을 묻고 살아갈…….”

    락키드가 대꾸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네?”

    “너희는 여기서 뒈질 거거든.”

    쌔액.

    무방비한 플레이어에게 락키드의 양손도끼가 쇄도한다.

    콜로세움의 지배자.

    락키드의 얼굴이 그때처럼 피로 물들었다.

    푸확.

    그러나 그때처럼 뜨거운 피를 혓바닥으로 맛보지 않는다.

    웃음을 내뱉지도 않는다.

    흥분하지도 않는다.

    락키드는 그저 싸늘한 시선으로 널브러진 시체를 바라봤다.

    “좆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새끼들이.

    락키드는 곧장 걸음을 옮겼다. 광폭회는 버려진 성을 아지트로 활용하고 있었다. 괜히 퇴물에 불과했던 과거의 그림자 용병단에게 패배한 게 아니었다.

    “음지면 음지답게 찌그러져 살라고.”

    너흰 그 기본을 어겨서 나한테 다 뒈지게 생기지 않았냐?

    “오우, 살벌하군. 락키드.”

    “닥쳐, 영감탱이.”

    “피 냄새 개구려.”

    “닥쳐, 마법쟁이.”

    “몇 명이나 죽였나, 락키드? 이번에도 내가 이겼지?”

    “닥쳐, 난쟁이.”

    전사한 8석, 나디보를 제외.

    흩어졌던 그림자 용병단원이 성문 앞에 모였다. 락키드는 주위를 둘러봤다. 키치는 보이지 않았다. 예상대로 가장 먼저 내부로 진입한 듯싶었다.

    철컥.

    그 대신 울프가 보였다. 울프의 크로스보우가 눈물 콧물을 질질 짜고 있는 모험가의 머리통을 겨누고 있었다. 모험가가 울프에게 애걸복걸했다.

    “제발……! 이렇게 빌겠다. 나는 오늘 있었던 일에 관해서 절대 떠들어대지 않겠어! 너, 너희도 그걸 걱정하는 거잖아? 현실에서도, 아르카나 대륙에서도 이런 악행은 퍼져서 좋을 게 없는 거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락키드는 유스라 왕국에서의 생활을 떠올렸다.

    무료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가끔은 이 지독한 피비린내를 망각하게 될 정도로.

    동시에 언제나 생각했다.

    내가 있을 곳은 이런 평화로운 곳이 아니라고.

    락키드가 도낏자루를 굳게 쥐었다.

    울프, 저 새끼가 머뭇거린다면.

    저 모험가의 머리통은 내가 도륙 내겠노라고.

    그러나.

    “그랬어. 너희는 그런 계산을 품고 아르카나 대륙을 밟았군. 그런 이유로 광폭회에 합류하고도, 그림자 용병단의 단장인 내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거였어.”

    울프는 싸늘하게 덧붙였다.

    “너희 같은 위선자에 걸맞은 최후겠지.”

    “……!”

    그 말에 희망이 없다는 걸 알아차린 건가.

    그게 아니라면 죽기 직전의 마지막 발악인가.

    모험가가 아득바득 울프의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위선자? 말 잘했다, 쓰레기 새끼들아! 그림자 용병단, 너희 같은 새끼들이 성전 연합군에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저 돈이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죽이던 새끼들이. 이제 와서 세탁기를 돌리려고 한다고?!”

    락키드는 지그시 울프를 바라봤다.

    락키드가 울프를 단장으로서 탐탁지 않아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그림자 용병단에 어울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은 죗값이 가벼웠다.

    -“나는 전우를 적에게 팔아넘겼다.”

    울프가 스스로 털어놓은 사연은 락키드에겐 정당방위에 불과했으니까. 따라서 락키드는 울프의 진위를 언제나 의심했다. 언젠가는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도 했었다.

    -“울프, 너는 위선자냐?”

    과거의 울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난 위선자였지.”

    하지만 지금의 울프는 달랐다.

    울프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위선자, 그림자 용병단의 모순을 꼬집던 모험가를 향해.

    철컥.

    크로스보우의 방아쇠를 당긴다.

    “이젠 아니야.”

    푹.

    울프는 즉사한 모험가를 바라봤다.

    이로써 그림자 용병단은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일백 하고도 다섯 명.”

    “그중 모험가의 수는?”

    “대략 서른쯤? 어쨌든 전부 죽였어, 단장.”

    모험가 세계의 금기.

    그 이유를 막론하고 모험가 살해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자신들은 그런 귀한 취급을 받는 모험가를 서른이나 죽였다.

    고작 십여 분 만에.

    자비로운 총대장님일지라도 차마 용서를 베풀 수 없는 만행이었다.

    ‘어쩌면 우린 그분의 기대를 배반한 걸지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림자 용병단은 악인이다.

    엮이는 것만으로.

    당신의 명성에 흠이 될 여지가 넘치는.

    아르카나 대륙 최악의 악인이었다.

    그러니까 울프는 그림자 용병단의 방식대로.

    호열에게 받은 은혜를 청산할 생각이었다.

    “우리는 악인이다.”

    언제가 됐든.

    “그럼에도 우리는 더욱 악랄한 위악자가 되어야 한다.”

    당신의 손에는 기쁘게 죽을 수 있을 테니.

    짙은 어둠 속에서 빛은 더욱 고고히 빛나는 법이니까.

    울프의 말에 도낏자루를 쥐고 있던 락키드의 손에 힘이 풀렸다.

    좋은 눈빛이다, 울프.

    이제야 좀 그림자 용병단, 쓰레기다워졌군.

    그럼에도 여전히 인정할 수 없는 건 있었다.

    락키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너보다는 잘생긴 것 같다.”

    *

    자, 다시 발버둥 칠 시간이다.

    가미긴의 전리품 덕분…….

    아니, 이젠 그 이름이 아니지.

    ‘그놈의 천마군림보 덕분에……!’

    상위 마왕과 대면하게 된 나였다.

    덕분에 녀석들의 위협이 보통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됐다.

    “열등한 족속 주제에 과분하게 분주하더군.”

    균열을 통해 마계에서 현실로 직접 마수를 뻗쳐올 줄이야.

    당연한 말이지만, 나 혼자서 모든 균열을 통제할 순 없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거늘.

    “과연, 천마를 상대하기는 부담이겠지.”

    ……젠장.

    여전히 뻔뻔하신 그랑펠 님의 입방정.

    필사적으로 외면한 나는 골똘히 머리를 굴렸다.

    ‘몸이 여러 개도 아니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역시나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내가 직접 호랑이굴, 마계로 뛰어드는 것뿐.

    내가 마계로 뛰어든다면.

    상위 마왕놈들도 팔자 좋게 정신체를 부릴 수 없을 터.

    ‘본체를 노리는 나를 간과할 수 없을 테니까.’

    문제는 나한테 마계에 뛰어들 자신이 있냐는 건데…….

    당연한 말이지만 당장은 없다.

    방금 말했었잖아?

    상위 마왕과 마주하면서 그 말도 안 되는 강함을 다시 체감하게 됐다고. 현실을 쑥대밭으로 만든 마안만 하더라도 나는 꿈도 꾸지 못하는 조화에 가까웠다.

    ‘역시, 해보는 수밖에.’

    한마디로 극적인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

    그 방법 역시도 유일했다.

    나는 떠오르는 메시지를 바라봤다.

    [어둠의 이해 (저주) : 적합한 마력 친화력을 대폭 상승시켜 준다. 단, 적합한 마력의 원천이 되는 과거와 직면해야만 한다. - 현재 적합한 마력 친화력 : 30%]

    어둠의 이해에 진입.

    [천상천하 유아독존 (30%) : 불세출, 여신조차 모독하는 희대의 천재.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의 재능을 발휘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숙련도를 상승시키는 것.

    특히나 이번엔 그랑펠의 과거와 연계된 클래스 퀘스트도 있었다. 어쩌면 이번 진입에서 악크샨 내전에 얽힌 그랑펠의 과거에 관해 알게 될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이 있었다.

    [어둠의 이해] 속에서 얼마나 긴 시간을 보내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나는 잔머리를 굴렸다. 애타게 발버둥 치던 시절, 있는 거 없는 거 다 써먹었던 이호열의 사고방식을 발휘했다.

    덕분에 한 가지 선택지를 찾아냈다.

    [시공간의 사교 : 의식, 시공간의 사교장에 진입한다.]

    시공간의 사교장에서 시간이 흐르지 않았던 점을 활용.

    사교장에서 어둠의 이해를 발동해볼 생각이었거든.

    “언제나 내키지 않는군.”

    사교계에서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 그랑펠.

    그 설정에 충실하게.

    나는 무거워진 발걸음을 이끌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

    .

    .

    또각.

    ……어째, 천마군림보를 습득한 뒤로 존재감이 더 커진 것 같은 구두 소리. 하지만 다행히도 내게 시선이 집중되는 일은 없었다. 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시공간의 사교장.

    “……!”

    그곳에 있어선 안 될 게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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