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2화. 안배를 들어라 (1)
VBC 방송국.
투데이 아르카나는 결방이다.
간판 프로듀서 현용석은 송출 모니터를 지켜봤다.
흘러가는 자막.
-재난 경보 : 해당 지역 주민분들께서는 신속하게…….
간만에 찾아온 휴식이지만 달가울 리 없었다.
현용석의 시선이 사옥 차창을 향한다.
빌딩 숲 사이, 무장한 군대가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군.
“선배, 좀 드세요.”
“뭐야?”
“녹차요.”
“……커피가 아니라 녹차?”
“뭣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새 녹차 열풍이더라고요.”
“그래? 쨌든 땡큐.”
흔들거리는 녹차 티백.
현용석은 종이컵을 받아 들고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오, 이 녹차는 뭔데 이렇게 쓰냐……?”
미간을 찌푸린 윤종진이 입을 열었다.
“근데, 뭘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특종감?”
“아니, 그냥 멍때리는 중.”
“정말요? 별일이네요. 천하의 현용석이?”
간단히 말하면 미친놈.
풀어 말하면 방송에 미친놈.
현용석의 아르카나에 관한 열정은 누구보다 그에게 시달리는 총괄 카메라 감독, 윤종진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현용석이 어울리지 않는 소릴 뱉는다.
“심각하잖아?”
덕분에 상황의 심각성이 와닿았다.
“흔한 속보가 아니라 재난 경보야.”
그깟 시청률을 좇아 투데이 아르카나를 편성하기에는.
이미 발생한 피해가.
예상되는 피해가 막심했다.
물론, 현용석은 방송 앞에 피도 눈물도 없는 미친놈이었다. 만약, 마음에 드는 소재가 있었다면. 비판을 무릅쓰고 투데이 아르카나를 긴급 편성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지금 우리가 전해야 할 소식 따윈 없어.”
만마앙복.
천하의 레이먼 션조차도 예상치 못한 사건일 터였다. 사건이 터지고 균열에서 빠져나온 플레이어들이 비보를 전해온 뒤에나 뒤늦게 긴급 업데이트 내역이 떠올랐으니까.
윤종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르카나 대륙으로 향하는 포탈이 열렸다고 마냥 기뻐해도 됐던 건가, 하는 생각. 반대로 말하면 신경을 써야 할 범위가 지구에서 아르카나 대륙으로, 두 배나 늘어난 셈이니까요.”
후폭풍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도 다행인 건 유스라 왕국에서 탐험가 연맹이 움직였다고 하더라고요! 아르카나 대륙으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움직였다고 하니까…….”
“종진아, 대륙이라고 여유가 있겠니.”
“아차.”
제국의 황제가 사망한 상황.
이호열.
그가 황제 즉위를 포기한 시점에서 제국을 노리는 세력들은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 있을 터였다. 그에 관한 월드 퀘스트도 속출했었다고 했겠다…….
윤종진이 까끌한 턱을 매만졌다.
“이거, 아르카나 대륙에서 넘어올 수 있는 플레이어가 많이 없을 것 같은데요? 제가 아는 플레이어 성질머리론 틀림없이 서로들 눈치만 보고 있을 텐데…….”
“맞아. 괜히 자리를 비웠다가는 퀘스트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수 없을 테니까. 더군다나 현실과 아르카나 대륙의 시차를 고려하면.”
“여차하면 네 배나 뒤처지는 거죠.”
그것이 현용석이 움직이지 않은 이유였다.
“소식을 전한다고 해도 별다른 도움을 기대하기 힘들진 몰라. 말 그대로 현실에 남은 우리끼리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할지도 모른단 거지.”
“가, 가능할까요?”
마탑, 여신교단, 유스라 왕국.
쟁쟁한 아르카나 세력들이 있긴 했다만.
균열 공략에 있어서는 상위권 플레이어들이 그들보다 능숙할 터.
탕─!
“깜짝이야!”
그때 총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어코 을지로 쪽 균열이 붕괴된 모양인데.”
“제국에 악마에, 뭐가 이렇게 동시에 터지는 건지……!”
“별수 있나. 지켜보는 수밖에.”
현용석이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던 순간이었다.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나저나 중국은?”
“중국이요? 잠깐, 그쪽은 생각도 못 했어요!”
“어떤 나라보다 걔네가 문제야.”
길드, 천하통일에 국가 전체가 좌우됐던 중국이다.
천하통일이 해산된 현재.
동시다발적인 균열 붕괴에 대응할 여력이 없을 터.
“도움 요청이 없었다니. 설마, 인터넷도 끊겼나.”
타다닥.
현용석이 그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중국이 어째서 이토록 고요했는지를.
“……성전 연합군?”
성전 연합군을 자처하는 플레이어들이 중국, 각지에서 맹활약하고 있단 게시글들이 폭주하고 있었다. 현용석이 동영상을 재생하자 윤종진도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러시아부터 유스라 왕국까지.
온갖 균열을 쫓아다니던 눈썰미가 빛을 발한다.
“어? 저거 400레벨짜리 몬스터잖아요?”
“알아보네? 맞아, 하피 계열 몬스터야.”
“저걸 사냥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현실에 남아있다고요?”
말했다시피.
베테랑 플레이어 대다수는 아르카나 대륙 혹은 제로 산맥에 있어야 했거늘. 자칭 성전 연합군, 중국의 플레이어들은 400레벨 대의 몬스터 앞에서도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균열만 공략해서는 저런 성장은 불가능…….”
현용석이 설마 하며 말을 잇는다.
“혹시 천하통일 잔당인가?”
“네?!”
“다른 곳도 아니고 중국이니까 말이 돼.”
천하통일을 향한 호열의 축객령.
그 탓에 천하통일은 마탑의 포탈을 이용할 수 없었다. 실제로 아르카나 대륙은 물론, 제로 산맥 업데이트 때에도 항공모함을 타고 산맥에 진입했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천하통일의 강함은 진짜였다.
괜히 길드 랭킹 1위를 유지하던 게 아니었으니까.
윤종진이 경악했다.
“그러니까 선배 말은……. 그 천하통일 잔당이 성전 연합군을 자처하고 있다는 거죠? 사이비 광신도 깡패와 다를 바 없던 자식들이 민간인을 위해 나서서 붕괴 균열에 달려들고 있다는 거죠?!”
그런 성전 연합군의 중심에는 엘프가 있었다.
다른 어떤 엘프도 아닌.
호열의 화원을 지키던 엘프, 엘시도어가.
현용석은 그쯤에서 직감했다.
“중국조차도 간과하지 않고 있던 건가?”
이 또한 호열의 안배였노라고.
하지만 감탄하기엔 아직 일렀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재난 속보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으니까.
그렇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재난이 속출한다는 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안배들이 남아있다는 뜻.
그 안배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어 올렸다.
가장 먼저 존재감을 알린 건.
스승과 제자였다.
“…….”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던 두 사내.
현용석과 윤종진.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입을 연다.
“대, 대, 대마법사!!”
*
순혈의 마도 일족.
황혼의 후예.
메어리.
“후우─”
메어리는 손에 궐련형 전자담배를 쥐고 있었다.
“고맙지만, 영 아닌걸.”
하나뿐인 제자가 자신의 건강을 우려해서 건넨 선물이었다. 마냥 무시할 수 없어서 입에 가져다 대봤는데, 역시나 익숙해지지 않는 맛과 향이었다.
“그래도 노력해 봐야지.”
빌어먹을 금단현상은 가실 생각을 하지 않지만 상관없었다.
고오오─
프랑스.
어딘가의 도심.
메어리가 균열에서 범람하는 몬스터를 짓밟았다.
“!!!”
그 이상의 묘사는 필요하지도, 아니, 가능하지도 않았다.
시공간의 사교장에 출입 가능한 초월자.
더 나아가 상층에도 출입할 수 있는 메어리였다.
“사, 사라졌다! 몬스터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대체?”
“이게 말로만 듣던 마법인가?”
붕괴 균열을 포위하고 있던 군대가 무색해질 정도.
보랏빛 황혼의 마력이 한 차례 일렁인 것만으로.
프랑스의 대재난은 일단락되었다.
“이쪽은 끝인가.”
메어리가 자신을 마녀라 불리우게 한 원흉.
빗자루에 삐딱하게 올라탔다.
그러고는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이들을 바라봤다.
작게 중얼거렸다.
“나보다는 제자 쪽을 응원해 줬으면 좋겠는데.”
비로소 제자의 수업이 끝났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제자, 제시 하인네스.
그녀가 대마법사의 클래스 퀘스트를 끝마쳤다는 것이다.
메어리가 작게 웃었다.
“데뷔라고 하기에는 소소한 무대지만.”
그래도 제시라면 성실하게 해내겠죠.
“클라우디께서 자리를 비우신 지금은 더더욱이요.”
*
쾅─!
미국.
센트럴 파크 인근.
드높은 빌딩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내린다.
AAU 미서부 지부장.
조슈아가 헬리콥터에서 상황을 진두지휘했다.
하여튼 빌어먹을 사업가 새끼들.
조슈아가 이를 갈았다.
“유스라 총책임자님께서 칠죄종 탐욕을 사냥하신 게 무색해지는군. 거악 뺨치는 자식들이 여기 있었어. 숨길 게 따로 있지. 뭐, 균열 붕괴도를 속여서 보고해?”
플레이어가 아니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균열이라고 한들.
붕괴 직전인 균열은 이야기가 다르다.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그렇지. 플레이어 몇 명만 고용해도 끝날 일을 이렇게 꼬이게 하는 것도 재주야. 어디 계열사라고 했지? 내가 할 수만 있으면 세무조사로 탈탈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미국이라고 상황이 좋을 순 없었다.
샤이닝은 물론.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길드의 핵심 전력들이 아르카나 대륙으로 진입한 상황. 덕분에 현장에 투입된 플레이어들은 붕괴 균열에 관한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탓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남은 건 평화에 절여진 세대니까.’
이호열 등장 그 후.
플레이어들은 대격변 이후 전례가 없는 평화를 만끽했다.
위협이 되는 신규 균열, 책임, 불필요한 관심.
그 모든 걸 이호열 유스라 총책임자님께서 감당하신 덕분이었다.
귓가를 파고드는 무전.
-조슈아. 그래서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여긴 균열 내부도 아니고 현실이잖아요!
-……진짜 그냥 사냥해도 되는 거예요? 악마에 빙의된 플레이어도 섞여 있는데? 아니, 저 붕괴 균열도 빙의된 플레이어를 상대하는 것도 처음이라고요!
어리광에 호열의 말이 떠오른다.
“레벨은 숫자에 불과하다.”
괜히 하신 말씀이 아니었어.
경험을 강조했던 총책임자님의 뜻을 지금이나마 헤아리게 된다.
그러나 이 순간, 총책임자님의 구원은 물론이요.
샤이닝을 비롯한 랭커들의 지원 또한 바랄 수 없었다.
“염치가 있어야지, 다들.”
만마앙복.
빙의된 플레이어들이 날뛰고, 그 탓에 균열이 붕괴하게 된 건 분명한 대형사고였거늘. 그럼에도 총책임자님께서 극복해 오신 역경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이 정도는 우리 선에서 처리해야 면목이 있단 거야.”
물론, 생각처럼 쉽진 않았다.
각오한다고 한들, 없던 실전 경험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사고는 곧장 터졌다.
-조슈아 지부장님, 선발대와 연락이 끊겼습니다……!
저절로 불끈 주먹이 쥐어졌다.
“내부로 진입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잖아?”
이미 붕괴한 균열 내부로 진입하는 건 위험부담이 크다.
균열이 역류하는 순간.
원래라면 깊숙한 곳에 배치된 네임드 몬스터.
혹은 함정들도 함께 쏟아져 나오는 경우가 빈번했으니까.
더욱이.
“여덟 개의 동공. 마안의 행방은 포착했나?”
현 사태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여덟 개의 눈동자.
그 눈동자들이 현실로 범람했을 가능성 또한 간과할 수 없었다.
조슈아가 핵심을 파악했다.
“알았나? 일단, 놈들을 균열에 묶어두는 데에 집중해야 해.”
균열을 포위하고 마탑의 지원을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 강조했거늘.
플레이어들의 미숙함이 발목을 잡았다.
이내, 조슈아의 호통에 돌아오는 대답.
-일단, 저희끼리 수색해 보겠습니다.
“아니, 당장 떨어지라니까?”
-그래도……!
“이성적으로 생각해. 해가 완전히 저물었어.”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주위가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조슈아는 냉정히 판단했다.
“지금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우선이다.”
타이르듯 읊조린 순간이었다.
다시금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무선이 고막을 찔렀다.
조슈아가 인상을 찌푸린 순간이었다.
조종사가 외쳤다.
“조슈아 지부장님……? 보, 보이십니까?”
“파일럿?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하, 하늘에……!!”
손가락이 가리킨 곳.
끔뻑.
밤하늘에 거대한 마안(魔眼)이 떠올라 있었다.
제각각 움직이는 여덟 개의 동공.
마계 태고의 존재들이 현실을 비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안……!”
아르카나 대륙에 마안이 떠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플레이어들이 촬영한 사진을 봐도 경악하진 않았었다.
비현실적인 풍경이라고 해도.
아르카나 대륙이라면 납득할 수 있었으니까.
현실과 완전히 다른 세계였기에.
그러나 현실에 떠오른 마안은 차원이 달랐다. 기괴한 걸 넘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가 솟구쳤다. 조종사도 조슈아와 다를 바 없었다.
위이잉.
떨리는 손.
헬리콥터가 극심하게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 속에서 조슈아가 힘겹게 중얼거렸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안만으로도 충분히 믿지 못할 상황이었거늘.
어쩌면 마안보다 의외의 존재가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크다.”
마안 아래서 흩날리는 금발의 머리카락.
“그래도 해봐야겠는데요!”
특유의 악센트.
“서, 설마?”
그 잠재력을 오롯이 개화한 인류의 비밀병기.
히든 클래스, 대마법사.
제시 하인네스.
쿠궁……─!
“내려와.”
제시의 대마법이 마안을 끌어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늘 위의 하늘, 거긴 이 수석님 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