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1화. 만마앙복
현실과 아르카나 대륙에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균열 속.
그것도 균열 내부에 있던 플레이어들에게만 떠오른 메시지.
[만마앙복이 시작됩니다.]
메시지 한 줄로 위험을 판단할 수 있는 고레벨 플레이어들?
현시점에서 그들에겐 균열을 공략할 이유가 없었다.
온갖 버프가 넘치는 아르카나 대륙을 두고.
양질의 몬스터가 가득한 제로 산맥을 두고.
균열을 클리어할 이유가 없다는 뜻.
“만마앙복?”
그 탓일까, 소식이 퍼져 나가는 속도가 느렸다.
“뭐지? 새로운 공략 루트인가?”
“저 눈알이랑 관련된 것 같지 않아?”
“그러게. 딱 봐도 음산한 게 잘 어울린다.”
“근데, 만마앙복이 무슨 뜻이지?”
“사자성어 아냐?”
“아르카나 대륙에도 사자성어가 있나……?”
萬魔仰伏.
모든 마가 복종하여 조아린다.
간단한 의미를 유추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플레이어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틀림없어.’
솟구치는 피 분수.
상황파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이들도 있었으니까. 윤태섭은 성기사로 전직하기 위한 퀘스트 과정을 떠올렸다.
거기엔 성전 연합군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건 빙의입니다. 다들 당황하지 마세요.”
두드득.
윤태섭은 파티원의 목덜미에서 힘줄이 끊어지는 소릴 듣고도 얼어붙지 않았다.
그 외침에 파티장 또한 장비를 치켜들었다. 말을 더듬으면서도 상황을 파악했다.
“그, 그러니까 저분이 악마에 빙의당하셨다는 거죠? 그래서 파티원을 물어뜯은 거고……? 죄송해요, 저 빙의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서! 그보다 대체 언제 악마가 빙의를……? 그런 조짐은 없던 것 같…….”
윤태섭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균열에서 빙의당한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네, 네?!”
악마는 영악한 존재니까.
여신교단 성기사단장, 탈림 에베르.
윤태섭은 뮤온에서 선언하던 그의 말을 떠올렸다.
-“여신의 기사들이여. 교활한 악마는 자신의 악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인간 뒤에 교묘하게 숨어서 부정적인 감정을 착취하기 위함이지. 그러므로 자신의 악함을 떠벌리는 악마를 주의하라.”
그건 필시 마왕에 버금가는 악마일 테니까.
‘겁을 주려고 한 말이 아니야.’
탈림은 더없이 진지했었다.
여신교단의 과오. 성녀로 위장한 악마에게 여신교단이 휘둘렸던 일화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악마의 습성에 관한 지식을 줬었으니까.
그러니 윤태섭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여차하면 후퇴해야 합니다.”
“……!”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인간을 연기하며 파티원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부추기던 연기가 무색하게도. 여자는, 악마는 검은 동공을 드러내고 피를 갈구하고 있었으니까.
“저희가 구할 수 있을까요?”
파티장이 속삭이던 순간이었다.
“어, 잠깐만.”
들려오는 인기척들이 있었다.
“이런 미친. 뭐야, 무슨 일이에요?”
“그, 그게 아무래도 빙의 같습니다!”
“빙의요? 설마 방금 메시지랑 관련 있는 건가요?”
“만마앙복인가, 뭔가 하는 그거죠?!”
“맞습니다. 저, 저희에게만 떠오른 게 아니었군요.”
지하철에서 하차한 덕분이었다.
마찬가지로 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플레이어들.
지원군과 조우하게 된 것이었다.
스릉.
플레이어들이 각자 장비를 치켜들었다.
“어쨌든, 악마라면 제압해야겠네요.”
“저기, 쓰러지신 분은 괜찮을까요? 출혈량이 상당한데요.”
“제가 유스라에서 습득한 엘릭서가 있긴 한데……!”
“그럼 오케이. 유스라 엘릭서면 숨만 붙어있으면 되겠네요.”
끄덕.
윤태섭도 여신교단의 방패와 검을 바짝 치켜들었다. [만마앙복], 그 정확한 뜻과 효과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차피 악마 녀석은 이성을 잃은 상황.
“으그그그.”
사냥하지 못하면 이쪽이 죽는다. 그 비장한 각오 덕분일까. 그게 아니라면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속속들이 현장으로 합류한 플레이어들 덕분일까.
“으아.”
터져 나오는 탄식.
쓰러진 악마.
갱신되는 메시지.
[레벨이 올랐습니다.]
숨을 고르는 윤태섭의 어깨를 플레이어가 두들긴다.
“고생하셨어요. 그보다 여신교단 성기사님이셨군요? 어쩐지 저런 악마 상대로도 페이스가 밀리지 않으시는 게……. 전직 퀘스트 과정이 빡세서 전직 포기하는 플레이어들도 있다고 하던데. 대단하시네요.”
윤태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 업의 기쁨을 나누기엔 방금까지 함께 역경을 헤쳐오던 파티원의 부상이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도 파티장은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흐아, 그래도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태섭 씨.”
“다행입니다.”
“그보다 다들 바로 복귀하셔야겠죠……?”
현재 위치에서 균열 밖까지 거리는 멀지 않다고는 해도 부상자를 부축하며 이동하기는 위험부담이 컸다.
파티장의 말에 몇몇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죠. 만마앙복이 대체 뭔지, 저희 같은 뉴비들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뭐가 안 나올 것 같으니까요? 일단, 밖으로 나가서 상황을 파악하는 게 낫겠죠.”
“다행이다. 아니, 그보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저희끼리라도 돕고 살아야죠.”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악마족 몬스터를 만났지만 살아남았다. 오히려 사냥에 성공하고 레벨까지 올랐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에겐 그것만으로도 안도할 일이 분명하다.
그러나 홀로 남은 윤태섭은 일반적일 수 없었다.
“……젠장.”
말했다시피 윤태섭은 여신교단에 몸을 담은 덕분에 악마. 그리고 상태이상, 빙의에 관해서도 어쩔 수 없이 깊은 지식을 갖게 되었으니까.
탈림의 목소리가 스쳐 간다.
-“유감스럽게도 악마에게 빙의당한 이를 구할 방법은 우리 여신교단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빙의자에게 베풀 수 있는 구원은 오직 죽음뿐이다. 그들이 더는 악마의 농간에 휘둘리지 않도록.”
어떤 랭커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저는 제 손으로 악마에 빙의 당한 동료를 죽여봤습니다. 근데, 빌어먹게도. 그 끈질기던 악마 새끼가 제 동료보다 먼저 뒈져버리더군요. 그래서 동료의 유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동료는 제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길 멈춰줘서 고맙다고…….”
대격변.
악마족 몬스터의 등장 이후.
플레이어들 사이엔 불문율이 생겼다.
빙의 당한 플레이어를 처치했다면 더는 생각하지 마라.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
성장하는 악마족 몬스터의 특징을 생각하면 누군가는 나서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혹시라도 악마에게 빙의를 당해, 다른 플레이어의 손에 죽게 되어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을 이들만 균열에 진입하라.
“……알고 있어.”
그래, 모든 플레이어는 그 각오를 마치고 균열로 뛰어든 이들이었다. 그러나 윤태섭은 악마에게 빙의당한 여자의 주검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근데, 끝까지 발악할 필요는 없잖아?”
랭커의 말과는 달랐다.
여자는 최후의 최후.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악마의 모습으로 죽었다.
인간의 모습이라곤 한 점도 남기지 못한 채.
방패에 새겨진 여신교단의 상징을 응시한다.
슥.
당연한 이야기지만, 윤태섭은 여신을 믿지 않았다. 그저 플레이어로 생존하기 위해서 상위 클래스, 여신교단의 기사로 전직했을 뿐. 전직을 한다고 해서 없던 신앙심이 생기진 않았으니까.
‘부디.’
그러나 윤태섭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여신이 됐든, 부처님이 됐든, 하느님이 됐든.
플레이어의 넋을 위해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끔뻑.
여덟 개의 동공을 바라봤다.
저게 메시지에서 스쳐 갔던 마계, 태고의 존재들일까.
녀석들이 악마를 악의로 물들여 날뛰게 한 걸까.
만마앙복의 정확한 뜻은 대체 무엇일까.
‘……나가자.’
윤태섭이 복잡한 머리를 뒤로하고 발을 옮겼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숨을 고르던 순간이었다.
위층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이런 개 같은!!”
……타탁!
반사적으로 뛰쳐나간 윤태섭.
그는 다시금 마주했다.
빙의당한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를 물어뜯고 있는 광경을.
끔뻑.
“……씨발.”
균열 상공에 떠올라 있는 여덟 개의 동공을.
*
AAU는 정보를 규합 중이었다.
“그러니까 오직 균열에 진입한 플레이어에게만 메시지가 떠올랐단 거죠? 그 영향으로 여덟 개의 눈동자가 떠오르고, 악마족 몬스터가 발작을 하고?”
“플레이어에게 빙의된 악마들까지요?”
“정확한 인명 피해를 알 수 있을까요?”
지부장, 박민재는 상황 파악이 빨랐다.
“이거 심각한데.”
고레벨 플레이어는 아르카나 대륙, 제로 산맥에 분포된 상황. 누군가는 묻겠지. 그렇다고 균열이라는 시한폭탄을 방치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일 아니느냐고.
박민재는 고개를 저었다.
“상당히 치밀해.”
현재 인류는 기로에 놓였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아르카나 대륙 진입?
마왕 쟁탈전이라는 거대한 폭풍 앞. 인류의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이었다. 거센 바람에 떠밀려가지 않을 체급을 갖추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거기엔 일종의 믿음이 있었다.
레이먼 션.
그 속내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런 녀석조차도 거스를 수 없는 규칙이 있다는 믿음이.
균열 업데이트만 봐도 알 수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초대규모 콘텐츠인 제로 산맥의 현실 업데이트 이후, 생성되는 균열의 공략 난이도가 일정 수준에서 머물러 있는 것만 봐도 그렇겠지.
박민재는 빠득 이를 갈았다.
“네 탓으로 떠넘기고 싶은 맘이 굴뚝 같지만…….”
레이먼 션의 짓은 아니다.
균열은 레이먼 션도 완벽히 조율할 수 없는 ‘기이’의 공간이다.
호열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여덟 개의 동공.”
마계 태고의 존재들.
만약, 그 이름부터 거창한 녀석들이 사태의 원흉이라면…….
그들은 레이먼 션조차도 어찌하지 못한 균열에.
이만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단 소리였으니까.
심지어 그것도 보통 수준이 아니다.
“지부장님, 피해 규모가 심상치 않습니다. 대한민국 균열에서만 사망한 플레이어가 일곱 명. 중국을 제외한 각국 AAU지부에서 합산된 사상자를 총합하면…….”
사내가 식은땀을 훔친다.
“벌써 삼백 명을 돌파했습니다!”
서너 시간에 불과한 시간에 플레이어들이 삼백이나 전사했다.
대격변 초창기에나 볼 수 있었던 사상자의 수였다.
박민재는 당황한 부하 직원에게 말했다.
“너는 플레이어들을 어떻게 생각하냐.”
“……가, 갑자기 말씀이십니까?”
“마냥 부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 맨날 정부에 언론에 시달리기만 하는 우리랑 다르게 플레이어는 능력만 있으면 인기도, 돈도 쓸어 담는 존재들이니까.”
“…….”
“하지만 간과하지 마라. 그들은 언제나 목숨을 걸어왔다. 악마족 몬스터가 등장한 이후로는 나약한 척조차도 할 수 없던 게 플레이어들이야.”
지부장의 임무는 다양하다.
개중에는 은퇴를 선언한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도 있다.
박민재는 은퇴한 플레이어들과 마주할 때마다 자신이 차마 사람이 못 할 짓을 한다고 생각했다.
몬스터 앞에서도 꺾이지 않던 영웅들조차도, 결국엔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폐인이 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단 뜻이다.
“그들의 희생을 잊지 마라.”
박민재가 짧게 묵념했다.
그런 박민재를 따라 눈을 감는 부하 직원.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박민재가 눈을 떴다.
“붕괴도는?”
균열은 시한폭탄이다.
플레이어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건 성장형 몬스터인 악마족 몬스터가 더욱 성장했다는 뜻. 균열 내부의 몬스터가 강하면 강할수록 균열의 붕괴도는 가파르게 치솟는 바.
부하 직원이 입을 연다.
“짐작하신 대로 80퍼센트까지 치솟았습니다.”
적정 레벨이 무색할 정도의 급상승이었다.
그럼에도 평소와 같았다면 우려하지 않았겠지.
플레이어, 그중에서도 랭커라 할 수 있는 이들의 전력은 그 이상으로 급상승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모두 아르카나 대륙에 있다는 게 문제였다.
현실과 아르카나 대륙.
완전히 다르기에 시간의 흐름도 다르며 곧바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도 없다. 현실에 닥친 위기를 자신들끼리 해결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정말로 쉽지 않겠어.
“그래도 해봐야지.”
하지만 과거와는 다르다.
아르카나 대륙에 인류의 플레이어가 있듯.
인류에겐 아르카나 대륙 세력들이 있었으니까.
“그래, 해봐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지역은 중국이었다. 균열 붕괴 대처에 관한 노하우가 있는 AAU,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천하통일에게 모든 걸 의존하던 중국이다.
허나 류오쥔춘이 행방불명.
랭킹에서까지 완전히 삭제된 지금.
중국은 균열 붕괴에 관한 내성이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했다.
누군가는 묻겠지.
자업자득 아니냐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정말.
“중국이 터지는 순간, 전 세계도 함께 터지는 거거든.”
류오쥔춘이 늘 입에 달고 살던 단어, ‘대국’.
그래, 중국은 간과하기에 너무나도 큰 국가였다.
악마가 중국의 십수억 인구를 제물로 바치기라도 하는 날엔…….
‘나 혼자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박민재가 결단을 내렸다.
‘마르셀로 탑주님과 의논해 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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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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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민재는 알지 못했다.
하다못해 아르카나 대륙.
스케빈저의 시궁창조차도 환히 비추던 ‘한 줄기 빛’이었음을.
붕괴하는 균열.
엘시도어가 역류하는 몬스터를 보며 입을 연다.
“준비는 됐나, 쓰레기들?”
곧장 돌아오는 대답.
“넵!”
전 천하통일 소속.
현 엘시도어 휘하 성전 연합군 소속.
썩어 문드러진 천하통일을 양분으로.
피어난 꽃들이 그 꽃봉오리를 움찔거리고 있었다.
참고로 척박하디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난 꽃들은.
“너희는 죽어도 무고한 인간들은 죽게 두지 마라!”
“넵!!”
그 어떤 시련에도 쉽게 꺾이지 않으니.
역류하는 몬스터를 처치하고 균열 내부까지 진입.
이내, 엘시도어가 여덟 개의 동공을 바라보며 내뱉었다.
“눈 깔아라, 눈깔.”
드높은 하늘.
천외천.
여덟의 상위 마왕을 비웃었다.
“날 그렇게 내려다볼 수 있는 건 오직 ‘그분’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