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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422화 (422/489)

◈ 422화. The End (2)

거물들의 등장으로 안토니움이 요동쳤다.

다이아몬드 상단주, 가몬드 필.

가몬드가 충직한 조수에게 물었다.

“이봐요, 조수. 붉은 눈도 지금쯤이면 안토니움에 도착하지 않았겠어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을 샤힌 듄, 그 야만스러운 작자에게도 보여주고 싶군요!”

제국을 통째로 사들이겠노라.

진지하게 엄포를 부릴 수 있을 정도의 대부호.

보물섬, 유스라 왕국이 현실로 업데이트된 시점에서.

가몬드는 명실상부한 아르카나 대륙 최고의 부호였다.

그런 다이아몬드 상단의 행렬?

“세상에 마차를 보석으로 도배했어!”

“눈이 부셔서 제대로 못 보겠어.”

“멋지다아아.”

안토니움의 백성들에겐 더없이 귀한 구경이었다.

아니, 단순한 눈호강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클라우디를 따르겠노라.

가몬드는 다짐을 실천하는 중이었으니까.

상단의 사병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이, 이런 걸 저희가 받아도 되나요?”

“으음! 이렇게 부드러운 빵은 처음 먹어봐!”

“이렇게 귀한 비단을 공짜로……!!”

가몬드가 흐뭇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보람차네요, 조수. 내가 가진 부를 안토니움의 가엾은 백성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게. 정말이지, 눈물이 자꾸만 앞을 가리는 게…….”

조수가 가몬드에게 차갑게 대꾸한다.

“칠죄종 나태의 최후가 가몬드 님에게 많은 자극이 되었나 봅니다. 하긴 칠죄종을 상대하시고도 자신의 탐욕을 경계하지 못하시면 그게 짐승이지, 인간…….”

“쓰읍! 조수!”

물론, 평생을 금은보화를 쫓아서 살아온 가몬드였다.

아무리 청렴결백을 따른다고 해도.

단번에 인간의 본능을 털어내기란 어려웠다.

가몬드가 애써 변명했다.

“이게 다 긍지를 실천하는 과정이란 말입니다.”

잘가라, 내 피 같은 재산들아……!

그러나 가몬드는 차오르는 눈물을 꾹 삼켰다. 기뻐하는 안토니움의 백성들을 보고 최대한 흐뭇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씨익.

기괴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가몬드.

그를 바라보던 조수가 한숨을 뱉었다.

잊고 있던 질문에 관한 답을 내놓았다.

“샤힌 듄 님께서도 지금쯤 안토니움에 진입하셨을 겁니다. 다만, 가몬드 님께서도 탐내셨던 안토니움인 만큼 그 크기가 광활해서요.”

“압니다. 그의 얼빠진 얼굴을 볼 수 없겠죠.”

“그럼에도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흐흐.”

클라우디 아래 하나지만.

가몬드는 샤힌 듄을 경쟁 상대로 여겼다.

물론, 선의의 경쟁 상대였다.

클라우디의 초대에 응했던 이들 중.

자신만큼이나 클라우디의 총애를 받을 이는 단연코.

샤힌 듄밖에 없었으니까.

가몬드가 은근히 덧붙였다.

“대현자 라이즈 영감은 논외로 치고 말이죠.”

“그래도 주제 파악은 하셨군요.”

“대현자 앞에서도 건방을 떤다? 조수 말대로 그게 짐승이지, 사람이겠어요? 그보다 서두르지요! 한시라도 빨리 이 승전보를 전해드리고 싶으니.”

클라우디께서 명령을 내리셨고, 가몬드는 그 명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장담컨대 샤힌 듄, 그 작자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공적을 세웠겠지.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건 그 야만적인…….”

덜컹!

가몬드가 기세가 등등해 황궁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몰려든 인파에 마차가 멈춰 섰다.

가몬드가 너그러운 웃음을 흘렸다.

“하하, 다이아몬드 상단의 위용에 이끌린…….”

“저희를 보고 몰려든 게 아닙니다.”

“그래도 공짜로는 더는 못……. 뭐라고요, 조수?”

빼꼼.

가몬드가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다이아몬드 상단이 아닌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백성들이 보였다. 무엇을 보고 넋이 나간 건지, 상단의 앞길을 막은지도 모르고 있었다.

가몬드가 흠칫했다.

“서, 설마 샤힌 듄?”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명성이 자자한 자신과 다르게 붉은 눈의 일족.

듄의 진가는 클라우디를 비롯한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바.

그들이 아무리 소란을 떨며 안토니움에 진입했다고 하더라도.

“나보다도 많은 관심을 받을 순 없을 텐데……?”

가몬드가 눈을 가늘게 뜬 순간이었다.

“헉.”

그의 눈에 인파를 몰고 다니는 존재가 들어왔다.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답다.

그저 수려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외관.

그 정체를 추측게 하는 건 뾰족한 귀였다.

가몬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엘프? 엘프가 어째서 안토니움에?!”

그렇다.

이 순간, 안토니움에는 같은 거물조차도 놀라게 하는 거물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클라우디의 부름에 응답한 것이었다.

“이런!”

가몬드가 조수를 재촉했다.

“조수, 저 엘프와 비교당하기 전에 가장 먼저 도착해야 합니다! 그래요, 저 엘프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샤힌 듄, 그 작자에게만큼은……!”

*

나는 황궁의 응접실을 빌렸다.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하나둘, 안토니움으로 집결하는 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가장 먼저 도착한 건 붉은 눈의 듄 일족.

그리고 그들과 합류한 플레이어들이었다.

나는 대화를 나누며 범인을 색출해 나갔다.

‘일단, 샤힌 듄은 아니고.’

그래서 누구지?

도대체 누가 나의 어둠을 대륙에 퍼트린 건데?

나는 그딴 명령 따위 내린 적이 없단 말이다……!!

‘그나저나.’

기대 이상이었다.

‘듄 일족도, 다이아몬드 상단도.’

클라우디 가문과 연이 닿아있는 것만으로도.

그 대단함을 언뜻 짐작하고 있었거늘.

별다른 수고도 없이 문제를 해결할 줄이야.

‘괜히 각각 칠죄종을 처치한 게 아니겠지.’

허나, 뭣보다 나를 흠칫하게 한 건 아젠트레스였다.

“들게나.”

나는 아젠트레스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찻잔에 살포시 걸쳐진 종잇조각. 당연하게도 언제나 여명의 재킷 안주머니에 고이 휴대하는 티백 녹차였다.

‘내게는 가장 귀한 거거든, 그 티백이.’

귀한 녹차 티백을 내어준 이유.

그야 아젠트레스에겐 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명령을 내린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았을뿐더러 아젠트레스에겐 태초의 악이라는 목표가 있지 않았나.

달칵.

아젠트레스가 찻잔을 집어 들며 답했다.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그리고 경의를 표하겠습니다. 다시금 세계수의 씨앗을 싹 틔우시다니. 과연, 어머니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첫 만남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공손한 말투.

심히 부담스럽구나.

그러나 나는 뻔뻔하게도 찻잔만을 기울였다.

녹차의 씁쓸함에 놀란 건가?

한 차례 흠칫한 아젠트레스가 본론을 꺼냈다.

“천하통일과 조우했습니다.”

“천하통일이라.”

“류오쥔춘, 그 존재를 알고 계시겠지요.”

태연하게 읊조렸지만, 이건 또 뭔가 싶었다.

‘아니, 걔넬 찾았어?’

태초의 악을 찾기 위해서 정말로 아르카나 대륙을 샅샅이도 뒤졌구나, 아젠트레스? 쉽게 뒤를 밟힐 성격이 아닌데, 류오쥔춘 그 녀석.

‘……응?’

한데, 이어지는 이야기에 나는 녹차를 뿜을 뻔했다.

“그 잔당을 전부 척살했습니다.”

……사냥했다고?

천하통일을?

류오쥔춘이 안쓰러워서 흠칫한 게 아니다.

“그렇군.”

그랑펠에겐 이미 악마와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는 류오쥔춘이었다.

만약, 류오쥔춘과 마주했더라도.

나 또한 가차 없이 류오쥔춘을 사냥했을 터.

내가 놀란 이유는 단지.

천하의 아젠트레스가.

그런 귀찮은 일을 자처한 데에 있었다.

‘천하통일이 세계수와 관련된 건 아닐 텐데.’

어째서 동족을 움직이면서까지 류오쥔춘을 사냥한 거지?

그에 관한 이유는 아젠트레스가 스스로 늘어놓았다.

그것도 내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면서.

“당신의 일에 깊게 관여한 점을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그들의, 그의, 류오쥔춘의 불경한 사상이 훗날 당신에게 해가 되리라 판단이 되었습니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놀랐다.

‘……순전히 나를 위해서 천하통일을 사냥했다는 말이지, 이거?’

익히 듣고, 지켜보고, 경험까지 한 엘프의 성질머리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나, 품격의 화원에 있는 엘시도어를 떠올리니까 충격이 배가 되는데.

오죽했으면 말이야.

“고개를 들게.”

드디어 그랑펠의 꽃밭에도 꽃이 피기 시작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긴, 모든 일에 주고받음이 있으려면.

그랑펠이 베푼 자비에도 보답이 있어야 하는 법이지.

어쨌든.

‘하면 하는구나, 다들.’

그것이 엘프의 긍지인지, 뭔지, 나는 알 수 없었거늘.

“그대의 긍지는 틀리지 않았다.”

주둥이로는 뻔뻔하게 아젠트레스의 노고를 위로했다.

아젠트레스는 찻잔을 말끔히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프로즈낙스, 그 어린 드래곤이 세계수를 수호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지금. 제가 더 이상 인간들의 영역에 머무를 이유는 없겠지요.”

나는 총대장의 입장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전력 낭비이긴 하지.’

드래곤과 엘프.

성전 연합군 최고 전력들이 뭉쳐있는 건 말이야.

아젠트레스가 곧바로 자신의 행선지를 밝혔다.

“저는 본래의 사명으로 돌아가 태초의 악을 추적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동시에 악과에 몸부림치고 있을 형제들의 행적 또한 간구하겠습니다.”

드래곤의 행적이라,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벨리에 덕분에 악과를 정화하는 방법을 알게 됐으니까.’

물론, 정화할 때마다 내가 한 번씩 죽어야 했지만…….

뭐, [최후의 모험가] 효과가 있는 이상.

죽는 순간의 고통만 빼면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뭣보다.

‘든든한 지원군이지, 엘프는.’

『치유마법의 극의』를 발현하기 위해선.

곁에서 악룡의 시선을 끌어줄 이가 필수였다.

아직 나 혼자서 악룡을 감당하기는 무리거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을…….”

부탁이라.

아젠트레스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 시선이 향한 곳엔 빈 찻잔이 있었다.

‘……뭐지, 티백 녹차를 말하는 건가?’

움찔하더니만, 단순히 맛이 기대 이상이라 그랬던 거야?

나는 안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티백 녹차 몇 개가 손가락에 잡혀 왔거늘.

정확히 달랑 하나를 집어서 아젠트레스에게 건넸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황금보다 귀한 시간을 택하라.”

……이럴거면 그냥 녹차 회사를 차리지, 그래?

“그리고 온전히 음미하도록.”

세상에 녹차 티백 하나를 건네면서 이렇게 생색을 내는 사람이 또 있을까? 훗날, 아젠트레스가 현실을 밟게 되고 녹차 티백의 가치를 알게 되는 날이 두렵구만.

“냉수에도 우려낼 수 있는 차다.”

끝내, 사족까지 덧붙이며 아젠트레스의 배웅을 마쳤다.

‘……어쨌거나.’

슬슬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겠군.

[이름 :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칭호 : 최후의 모험가, 숭고, 초월자, 흑암룡, 천외천, 십좌의 주인]

[클래스 : 악마 사냥꾼]

[레벨: 976]

[능력치]

근력 : 200 / 민첩 : 194 / 마력 : 877 / 행운 : 16 / 심미 : 上 / 집념 : 10 / 매력 : 有

[보유 포인트 : 0]

육체 단련을 반복.

그 과정에서 [집념]도 두 자릿수에 도달했다.

하지만 레벨이 그대로였다.

이놈의 자신감이야, 레벨은 숫자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었거늘.

‘앞으로 닥칠 일에 대비해야 한다.’

속출하는 월드 퀘스트.

플레이어들의 귀환.

물론, 간과할 수 없는 변수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게 가장 큰 사건은 마왕 쟁탈전.

그것도 십좌를 두고 벌어지는 마왕 쟁탈전이었다. 그야 부에르를 처치하고 십좌의 말석을 차지한 나, 이호열이야말로 가장 먹음직스러운 마왕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나눠준 녹차 티백을 아까워 할 필요는 없다, 그랑펠.’

앞으론 한가하게 티타임을 즐길 여유도 없을 거거든.

내가 가는 곳마다 마계의 리치.

디스커스 급의 몬스터가 끊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뜻.

그렇기에 그 불똥이 주변으로 튀게 하지 않기 위해서.

마계로 진입하겠다고 결심했던 나였다.

‘그걸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고 다짐했고.’

근데, 정작 레벨이 부에르를 처치할 때와 달라진 게 없다니.

아무리 레벨이 다가 아니라고 해도 그렇지.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스탯 하나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거 모르냐, 그랑펠?

‘거기에 템빨도 잊어선 안 되지.’

다행히도 인벤토리는 마탑에서 대여한 마도구로 가득했다. 거기에 아이언 캐슬 호로 복귀하면 드워프 최고 대장장이인 월스와일이 유낙서스의 유품으로 제련한 아이템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

마지막으로.

“디엔드.”

디엔드에게 탐색을 맡겼던 [육망성 브로치]도 빼놓을 수 없었다. 디엔드라면 틀림없이 지금쯤 못해도 하나 이상의 브로치를 습득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

나의 부름에도 디엔드는 나타나지 않았다.

슬그머니, 주위를 둘러본다.

좋아, 듣는 귀는 없군.

‘크흠.’

내가 지어준 이름을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는 디엔드다.

그 장황한 풀네임을 읊는다면.

틀림없이 즉각 모습을 드러낼 터.

“부름에 응답하라.”

나는 진중하게 읊조렸다.

“디엔드 크리시아드 이터널 다크니스.”

……그런데, 응답이 없었다.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디엔드에게 이상이 생겼음을.

.

.

.

디엔드는 요동치는 적합한 마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우두커니 멈춰 섰다.

과거와 배경에서 비롯되는 적합한 마력.

“한없이 깊은 어둠이시여.”

어째서 나의 주군이신 당신께서.

저들의 과거에서.

그토록 가혹한 모습으로 남아계시는지요?

디엔드의 시선이 풍파에 무뎌진 장비를 향했다.

그것은 은(銀)이었다.

악크샨의 상징.

악크샨 늑대가 새겨진.

틀림없는 악크샨의 은제 장비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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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퀘스트 : 악크샨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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