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6화. 판도라의 상자 (1)
예시카와 에노크.
두 기사가 고개를 떨궜다.
하르콘이 입을 열었다.
“그런가.”
모험가들의 세계.
아르카나 대륙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간다. 헛소문이 떠돌 법도 하거늘. 적어도 모험가들이 전해오는 소식에 거짓은 없었다. 왜, 모험가의 시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하르콘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폐하께서 먼저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셨군.”
인간은 각자가 자신만의 짐을 짊어지고 있다.
하르콘은 늘 생각해왔다.
어쩌면, 죽음은 그 과업을 벗어던질 수 있는 해방일지도 모른다고.
언제나 죽음과 가까웠던 자신이었다.
죽음에 관한 공포를 떨치기 위한 본능적인 사고방식이었을지도 몰랐을 터. 하르콘은 감정을 억누르는 예시카와 에노크에게 말을 이었다.
“출정을 준비하도록 하지.”
아르카나 대륙 진입.
호열과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 기사가 물러가고 하르콘은 곱씹었다. 차기 황제라……. 과연, 현시점에 폐하의 빈자리를 대신할 이는 경밖에 없겠지.
호열은 수차례나 제국을 위기에서 구원했다. 황제, 본인께서 호열에게 황제의 자리를 내어주려고 했다는 데에서 정당성을 문제로 삼을 이는 많지 않을 터.
하르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지금보다는 경을 딱딱하게 대해야겠지만.”
이제는 경 대신 폐하라는 호칭에 익숙해져야 할지도 모르겠군.
미리 연습이라도 해볼까.
하르콘은 생각했다.
그런데,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하르콘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그래, 나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거군.
호열을 차기 황제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찌하여 먼저 떠나신 겁니까, 폐하?”
황제의 죽음을 믿지 못할 뿐이었다.
두 다리를 잃었어도 황제와의 재회를 바라며 정신을 부여잡았다. 다시는 전장에 서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어도 극복해 냈다. 여전히 황제의 검이기 위함이었다.
한데, 당신께서는 어째서 저를 기다려 주지 않으신 겁니까? 혹, 당신께선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눈을 감으신 겁니까?
하르콘의 눈가가 조금 젖어들었다.
“하필이면 지금이란 말입니까.”
고작 재회를 몇 시간을 앞둔 시점에서.
제게 이런 비보를 전해 오신단 말입니까?
전할 이야기가 이토록 많았거늘.
“…….”
하르콘은 허망한 눈으로 유스라의 전경을 바라봤다. 들뜬 모험가들이 보였다. 호열 경이 새로운 황제로 즉위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 때문일 터.
“여전히 속이 좁군, 하르콘.”
기뻐하는 게 당연하겠지.
저들에게 황제는 일면식 따윈 없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군주에 불과할 테니.
그러니 모험가들의 세계가.
황제를 위한 애도를 보내주리라곤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하르콘은 피폐한 눈으로 다짐했다.
“제가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을.”
누구도 당신의 죽음을 떠올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저와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 당신을.
폐하를 잊지 않겠습니다.
하르콘이 꾸욱, 주먹을 바로 쥐던 순간이었다.
창 너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저거 제국기 아냐?”
고대 왕국, 유스라.
제국령이 아닌 이곳에서.
펄럭이는 제국기가 보였다.
“!”
일순간, 하르콘의 눈에 힘이 풀렸다.
황금 궁전에 깃발을 올릴 수 있는 이는 둘뿐이다.
유스라의 국왕 하쿠나와 호열 경.
허나, 하쿠나는 제국기에 관해 알지 못할 터.
하르콘이 입을 열었다.
“……그랬나.”
이 세계, 누구도 황제를 떠올리지 못한다고 한들.
경은 잊지 않았군.
하르콘이 펄럭이는 제국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디 너그럽게 용서하십시오, 폐하.”
이르지만, 새로운 주군을 섬겨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황제, 세릭로즈가 사망했다는 건 정말로 사망했다는 뜻이다.
새삼 남 이야기 같지 않은데……?
‘내가 조금 더 빨리 죽었으니까.’
단지 내겐 [최후의 모험가] 효과가 있었던 것뿐.
나는 침묵하는 취재진을 바라봤다.
얌전히 카메라를 들고만 있지.
누구 하나 플래시를 터트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 그럴 만도 하다.
‘내뱉은 말도 있고.’
내 엄포 못지않게 라이언 하트 기사단의 표정도 비장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고작 제국기를 내건 것만으로 황제를 향한 충분한 애도가 되었을까?
‘글쎄.’
하지만 이해해주면 좋겠다.
이게 내가 현실에서 아르카나 대륙의 황제에게 보낼 수 있는 최선의 애도. 동시에 악마의 농간에도, 반란에도 최후의 최후까지 제국을 지켜내려고 노력했던 황제에게 보내는 최대한의 경의였으니까.
물론.
‘현실에서의 이야기고.’
아르카나 대륙으로 진입해서는 제대로.
황제의 이름에 걸맞게 황제를 보내줘야 하겠지.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프라이드.’
칠죄종 오만.
황제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전황의 서고]일지 몰라도 황제가 전황의 서고의 힘을 빌리게 된 데에는 분명 프라이드가 영향을 끼쳤겠지.
하르콘 또한 그 사실을 잊지 않은 모양이었다.
동요하는 감정을 추스른 건가.
하르콘의 눈매엔 어느새 슬픔이 물러가 있었다.
하르콘이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출발하도록 하지.”
포탈을 향해 발을 내디디며 말을 이었다.
“재회를 위하여.”
.
.
.
기본적으로 마탑의 포탈 목표 좌표는 클라우디령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한시가 바쁜 와중에 클라우디령에는 들를 필요도 여유도 없다.
‘전부 수석 권한 덕분이지.’
물론, 기이에 관한 이해 또한 뒷받침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
나는 마탑 포탈의 목표 좌표를 곧장 안토니움으로 수정했다.
그리고 마주했다.
서서히 밝아지는 시야.
여전히 웅장한 안토니움의 성벽을.
“돌아왔습니다, 폐하.”
하르콘이 안토니움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 묵념은 길지 않았다.
기이의 포탈, 그 마력 흐름은 충분히 경계할 만한 수준. 마력을 감지할 수 있는 선임 마법사들이 일제히 텔레포트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보고 저마다 한마디를 건네온다.
“정확히 나흘 만에 다시 뵙습니다.”
“이 수석님……!”
“이 수석님, 혹시 제 활약상을 지켜보셨을런지요!”
순서대로 마티스, 벨리에, 벤쉬.
다들 할 이야기가 참 많지?
특히 벤쉬 윌리엄 선임.
당신에겐 물어보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닌데 말이야.
말했다시피 이 사태의 원흉인 프라이드를 추적해야만 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상태는 어떠한가.”
“보다시피 멀쩡……. 쿨럭!”
벤쉬가 입을 틀어막았다.
피가 튀어나오지는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표정이다.
상태가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군.
“벤쉬 윌리엄, 그대는 이번 작전에서 열외 하겠다.”
“예? 열외라니요?! 전 아직 멀쩡합니다, 수석님!! 켁.”
쿨럭, 케헥, 쿨럭─!
그 기침부터 어떻게 하고 말하지그래, 벤쉬 선임?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 벤쉬를 뒤로 한 채.
마티스가 나를 향해 물었다.
“작전이라면. 혹 무언가 짐작하신 겁니까, 수석님?”
고오오오─
나는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부상자인 벤쉬를 쏙 빼놓고는 라이언 하트 기사단과 마티스, 벨리에 두 선임을 에워싸는 마력.
『대규모 텔레포트』
격이 다른 마력을 손에 넣은 덕분. 같은 수치의 마력이라고 해도 그 효율이 타인과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덕분에 가능한 발현. 목표 좌표는 당연히 황궁이었다.
뒤바뀌는 시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 가시넝쿨은 뭐란 말인가?”
“그보다 폐하께선…….”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모양이겠지.
혼란스러워하는 신하들이 보인다.
그들을 일깨운 건 하르콘이었다.
“다들 정신 차려라!”
우렁찬 사자의 목소리.
근위병들이 화들짝 어깨를 들썩인다.
주저앉아있던 신하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 하르콘 기사단장……?”
“저, 정말 살아계셨군요!”
“지금은 재회의 감격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네.”
하르콘은 감정을 억누르고 곧장 명했다.
“근위병, 그대들은 기억하고 있는가? 황궁에 발을 들였던 사내를. 자신을 클라우디라 칭하던 그 사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는가?”
“……!”
그 말에 신하들이 정신을 차린다.
“폐하와 나눌 이야기가 있다며 홀로 사라졌었습니다.”
“폐하께선 어디로 향하셨지?”
“송구하게도 그것까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스릉.
하르콘이 검을 빼 들었다.
“기사들이여, 황궁을 샅샅이 뒤져라!”
마찬가지로 검을 치켜든 라이언 하트 기사들이 황궁,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뛰지 않았다. 그저 자리에 서서 후각에 집중했다.
‘으음.’
극도로 예민해진 악마 사냥꾼의 감각.
멀리 떨어진 악마조차도 감지하는 [천적관계]다. 그러나 발동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프라이드, 녀석이 이미 황궁을, 안토니움을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뜻이겠지.
‘여러모로 까다롭다.’
뭣보다 나보다도 클라우디에 관해 많을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지금이야 악마로 타락했다고 해도 같은 피가 흘렀던 클라우디였으니까, 프라이드는.
‘템페스트를 소환해서 냄새를 추적하는 수밖에 없나.’
그런데, 템페스트 오버 더 호라이즌.
그 해괴한 풀네임을 읊조리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나도 많지 않나.
내가 찰나지만, 진지하게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하르콘 단장님!”
다급한 목소리가 황궁에 울렸다.
무언가 찾아낸 건가. 소란이 일어난 곳으로 향하는데. 내게도 익숙한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황궁의 지하로 이어지는 비밀 복도의 어귀였으니까.
에노크가 보고한다.
“이곳에서 수상한 자를 발견했습니다.”
“수상한 자?”
“에이. 수상한 자라니, 섭섭한데요……. 어라?”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기 전부터 알아봤다.
스케빈저의 왕, 에밀리오.
그가 황궁 지하에서 라이언 하트 기사단에게 포박된 것이었다.
“클라우디시여. 이거 벌써 나흘이 지난 모양이군요?”
“……나흘? 총대장님, 저 사내를 알고 계십니까?”
하르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곧장 느슨해지는 포박.
내가 물을 것도 없었다.
에밀리오는 이내, 하나도 빠짐없이 내게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하르콘이 입을 열었다.
“……제 두 눈으로 확인하겠습니다, 총대장님.”
하르콘이 선두에서 길을 열었다.
에밀리오의 말을 정리하자면 간단했다. 황제, 그리고 선대 황제들이 완전한 장미로 변했단다. 꽃송이가 아닌 만발한 장미가 되어 안토니움의 백성들처럼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가 없었단다.
전황의 서고로 향하는 길은 험하지 않았다.
바닥을 뒤덮은 가시넝쿨들은 바짝 메말라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러졌으니까. 덕분에 어렵지 않게 마주했다. 전황의 서고에 피어난 장미들과.
생명력이 다했다는 거겠지.
그 빛 또한 바랬다.
건드리기만 해도 검붉은 잎을 떨어트릴 것처럼.
털썩.
“아아…….”
하르콘이 장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건드리면 먼지로 변해버릴 것 같아서일까.
떨리는 손으로 허공을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전황의 서고가 폐하를 집어삼킬 존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 끔찍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감히 폐하께 서고의 힘을 빌리시는 게 어떨지 실언하고 말았습니다.”
어렴풋이 받아들이는 것과 마주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황제와 얼굴을 몇 번 맞댄 게 전부인 나조차도.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금.
하르콘이 눈물을 흘린다고 놀랄 이는 없었다.
“송구합니다, 폐하. 오른팔이 되어서 폐하를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폐하의 고충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최후의 순간, 느끼셨을 고통을 함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때였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마티스가 입을 열었다.
마티스는 반지를 매만지고 있었다.
적합한 마력에 감응하는 마도구.
“하르콘 경, 이곳에 적합한 마력은 느껴지지 않는군요.”
“……?”
“황제에겐 일말의 후회조차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와 배경에서 비롯되는 적합한 마력.
그런 적합한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설령 황제가 전황의 서고에서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해도, 그에게 미련이나 슬픔 따윈 없었다는 뜻이었다.
과연, 그 사실이 하르콘에게 위로가 될까?
“그런가, 마티스……?”
하르콘이 쓰게 웃었다.
‘글쎄, 나야 알 수 없는 일이지.’
그러나 의문이 들었다.
황제는 과연 무엇을 봤길래.
전황의 서고 앞에서도.
프라이드 앞에서도.
후회도 미련도 공포도 남기지 않았던 걸까?
‘꼭 그게 아니더라도 살펴봐야겠지.’
나는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상위 환각 마법, [진실된 환상].
공간에 남겨진 기억을 단편적으로 읽어내는 효과.
‘황제와 프라이드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어째……. 등골이 서늘하다?
이내, 어렴풋이 떠오르는 황제의 얼굴.
장미로 뒤덮여 가는 황제는 웃고 있었다.
최후의 순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과연, 철저히 숨기실 만하셨습니다.”
……수, 숨겨?
내가?
뭘 본 거야,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