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4화. 성전 연합군 총대장
햇병아리 프로즈낙스라.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
그랑펠의 자기중심적인 사고.
‘드래곤 나이로 치면 나는 대충 3천 살은 됐을 거 아냐?’
나이 차이를 생각하면…….
기껏해야 사춘기에 불과할 프로즈낙스였다.
햇병아리도 틀린 말은 아니란 거지.
‘그나저나.’
떠맡은 짐들의 무게를 떠올려본다.
어디보자, 하나하나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많고 무겁지. 하지만 최근 들어 가장 그 무게를 막중하게 느끼고 있는 건 단연코 ‘총대장’이라는 직위였다.
흉악한 입을 다문 채.
검게 물든 동공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프로즈낙스.
녀석과 마주한 나는 냉정히 생각했다.
‘나는 지금 몇 명의 목숨 위에 서 있는 걸까.’
대격변 이전.
아르카나 대륙 전기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 아르카나가 잘 나가던 시점의 플레이어 수를 떠올려본다.
대충 동시 접속자 수가 1억 명을 돌파했다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있는데…….
‘전체 플레이어 수는 그거 몇 배는 되지 않을까?’
그 전부가 플레이어로 각성하진 않았지만, 감히 장담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로 각성한 이들 대부분은 지금 성전 연합군에 몸을 담고 있으리라고.
‘긍지고 뭐고, 아르카나 대륙을 밟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그래, 수억.
플레이어로 한정지어도 어마어마한 이들이.
성전 연합군이 총대장인 나의 지휘 아래 있었다.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거 또 사회인 시절이 떠오르는구만.
‘후배 한 명이 들어왔을 때도 부담스러웠는데.’
나 같은 놈이 사수라니.
그래서 후배한테 뭘 가르쳐야 하는 건지.
애초에 나부터가 초년생인데.
난감하기 그지없어서 몸 둘 바를 모르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하지만.
“똑똑히 보도록. 악에 물들어 타락한 드래곤이라고 한들, 그 살갗에는 변함이 없는 법. 광물 중에서 무르디무른 은으로 드래곤의 가죽을 베어낼 생각은 자제하는 게 옳다.”
지금의 나는 무겁디무거운 플레이어의 목숨 위에서도 꼿꼿했다.
언제, 어디, 누구의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그랑펠의 긍지 덕분에?
‘그래, 덕분이지.’
하지만 나, 이호열도 마찬가지다.
더는 외면하지 않기로 결심했단 말이다.
솔직히 말해볼까?
지금까지는 마냥 회피하고 싶었다.
‘부담스럽게 말끝마다 총대장님이라니……!’
예전처럼 그냥 호열 씨라고 불러주면 안 되는 건가.
남태민을 붙들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기도 했었으니까.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총대장의 호칭을, 언제까지 수치스럽게 여길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냉기와 온기.
그탓에 너덜너덜해진 남태민의 살가죽엔 상처가 가득했다. 프로즈낙스의 꼬리에 치여 나가떨어졌던 남태민이 어느새 나의 곁에 섰다.
“과연, 유낙서스 때와는 다르군요.”
간신히 입을 연 히사기의 상태도 꼴이 말이 아니다.
필사적으로 창을 휘두르고 붙잡았던 거겠지.
꺾인 손가락 마디 몇 개는 이미 골절된 상태처럼 보였다.
“……후우.”
광전사, 레오니 역시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들 셋뿐만이 아니다. 성전 연합군에 속한 플레이어들이 오직 나,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저 시선들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겠어?’
나, 이호열.
주제 파악이 특기이기에 착각하지 않는다.
지금껏 내가 쌓아올린 명성과 공적, 대부분은 그랑펠 덕분이요. 몇몇 경우에는 말도 안 되는 행운까지 따른 덕분이란 걸 안다.
그게 [행운] 스텟에 포인트를 분배한 이호열의 판단 덕분이라고 자만하지 않는단 뜻이다.
‘발버둥치면서 거품이 잔뜩 꼈다는 걸 알아.’
그럼에도 지금의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거품 위에 올라탄 이들이 있었으니까.
거품이 꺼지면 홀로 황천으로 가라앉는 게 아니다.
플레이어, 현실, 아르카나 대륙…….
모두와 함께 가라앉게 된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
솔직한 심정?
소시민 이호열이었다면 부담스러워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또 한 번 감사한다.
“그대들의 최우선 과제는 드래곤의 가죽을 뚫어낼 정도의 공격력을 갖추는 것이다. 갑옷과도 같은 드래곤 스킨을 베어낼 수 있다면, 악룡조차도 악마와 다를바 없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그랑펠에게 말이야.
그 항상심 덕분에.
나는 총대장의 시야로 상황을 관조했다.
프로즈낙스.
스무 명의 성전 연합군.
그리고 나.
나는 총대장으로서 지금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을 떠올렸다.
일단, 이 전투의 결말은 변하지 않는다.
‘나의 죽음으로 끝난다.’
벨리에에게 텔레파시로 전수받은 『치유마법의 극의』.
치유마법의 극의는 바로 발현자.
나, 자신이 치유마법의 핵(核)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의론으로는 시도해 볼 법하다.’
말했다시피 그전까지는 전력을 다해 프로즈낙스를 상대할 생각이었다. 프로즈낙스, 녀석과 전투는 두 번째. 나부터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
다만, 총대장의 시야로 전황을 바라봤기에.
나는 입을 열었다.
“묻겠다.”
“……?”
“이 순간, 그대들은 드래곤의 살갗을 베어낼 수 있는가.”
대답이 없다.
상태가 말이 아니어서 대답을 못하는 게 아니다.
만물의 왕, 드래곤의 위용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유낙서스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노룡과 혈기왕성한 빙룡의 가죽 강도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더욱이 그땐 마탑 선임 마법사들이 쏟아낸 마법 폭격이 유낙서스의 드래곤 스킨을 공격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었으니까.
하지만.
‘채찍만 휘둘러선 좋은 리더가 될 수 없지.’
추궁하려고 물은 게 아니다.
나부터 솔선수범해야 하지 않겠냐?
나도 겪어봤던 고충이니까.
몇 번이고 맞닥뜨렸던 벽이니까.
시련을 극복한 사람으로서 조언을 주겠단 뜻이다.
나는 곁에 있던 플레이어에게 말했다.
“검을 빌릴 수 있겠나.”
“제, 제 검 말씀이십니까?! 아, 넵! 여기 있습니다, 총대장님!”
템빨이야 다다익선이지만.
드래곤 스킨을 템빨만으로는 베어낼 수 없다.
드래곤은 현실과 아르카나 대륙, 완전히 다른 두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기이』]의 존재. 기이가 아니면 드래곤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 없으니까.
“그대들에게 필요한 것은 검기.”
“……검기.”
“정확하게는 검기와 스킬의 융합. 즉, 기이다.”
나는 남태민과 히사기를 바라봤다.
‘두 사람은 이미 그 영역에 도달했어.’
그 증거로 남태민은 드래곤 스킨을 찢고, 프로즈낙스의 꼬리에 대검을 쑤셔 박는 데에. 히사기의 마창기예는 프로즈낙스의 가슴팍에 생채기를 입히는 데에 성공했다.
펄럭.
얌전히 입을 다문 채로 나의 말을 듣고 있기는 지겨웠던 걸까.
프로즈낙스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비상했다.
그러고는 급속도로 하강.
쌔애액.
정확히 나를 향해 돌진했다.
속도를 고려하면 찰나를 다투는 영역.
그런 와중에도 나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기이는 각기 다른 힘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더하기로 치부하기엔 듣는 기이가 서운하지.
“곱하는 것도 아니다.”
이윽고, 나는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제곱이다.”
거창한 자세가 아니었다.
그저 꼿꼿하게 허리를 편 채로.
진심으로 전투에 임하는 것도 아니요.
마치 아득히 낮은 경지의 하수에게 한 수를 물러주는 것처럼.
슥.
나는 가볍게 검을 쥔 팔을 치켜들었다.
콰콰쾅!
충돌, 그 여파가 퍼져 나간다.
우지끈!
빼곡한 침엽수림이 충격파로 꺾여서 쓰러진다.
쌓여있던 눈발이 허공으로 피어오른다.
스와와!
별안간,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초, 총대장님!!”
나는 답했다.
“보는 것처럼 능히 감당할 수 있다.”
“……!!!”
스스스.
다시금 가라앉는 눈발 사이, 나는 멀쩡하게 답했다.
그런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에고소드도 아니고, 기껏해야 레어 등급의 무기로 드래곤의 일격을 상쇄했다. 놀라는 표정들이 이해가 되는군.
그러나.
‘……대체 몇 개를 덕지덕지 가져다 붙인 건지.’
기이의 향연이구나, 아주 그냥……!
검강도 모자라서, 고유 스탯 [집념]을 [근력]으로 변환.
거기에다가 찰나의 순간, 마법을 발현.
디딤발에 맞닿은 지반을 강화.
검에 가해지는 충격은 순수마법으로 극도로 억제했다.
아까부터 발동 중인 [천적관계]는 뭐 말할 것도 없겠지.
‘조금만 늦었어도……. 똥줄 제대로 타네, 이거.’
그런 주제에 입은 잘도 나불거린다.
“이것이 기이의 위력을 제곱이라 칭한 이유다.”
역시 차원이 다르구나, 드래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발동하지 않고 상대하기는 벅차다.
하지만 예전처럼 쓰러트리지 못할 건 또 아니다.
척─
후들거리는 팔.
안간힘을 주고 쥔 검이 가리킨 곳엔 프로즈낙스가 있었다.
얼굴, 정확하게는 미간 사이에 남겨진 선명한 상처.
주륵, 흘러내리는 용혈.
“!”
펄럭─!
프로즈낙스가 출혈에 화들짝 놀라 하늘로 튀어 오른다.
나는 벙찐 플레이어에게 검을 되돌려주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은 일격을 남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래, 어디에 사는 위대한 가문 몰락 귀족님처럼 혼자서 모든 걸 떠맡을 필요는 없거든. 멸망을 향해가던 시절과는 다르다. 주변을 둘러보면 분명 아군이 있을 테니까.
‘예를 들면, 지금처럼.’
끼기기긱─
퀴른베르크 기계탑.
프로즈낙스의 용혈에서 악마의 냄새를 탐지한 모양.
무수한 은침을 프로즈낙스를 향해 쏟아내 발사하기 시작한다. 드래곤 스킨은 뚫을 수 없지만, 그 속살이 드러난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푸푸푹!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수천 개의 은침을 전부 회피할 순 없다.
적중.
프로즈낙스가 은침에 고통스러워 하던 순간이었다.
나는 말을 끝마쳤다.
“지도 교육은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지.”
사실 프로즈낙스는 여전히 쌩쌩했다.
아르카나식으로 말하자면.
아직 1페이즈도 지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애초에 제대로 된 브레스도 내뱉지 않았잖아, 저거?
‘사실 마음 같아서는…….’
처음에 다짐했던 대로 끝장을 보고 싶었다.
나와 프로즈낙스, 처음 맞붙었던 이후로.
누가 더 성장했는지 자웅을 겨뤄보고 싶었다.
하지만 총대장의 시야에 비쳐왔다.
굳게 닫힌 성문.
안토니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날뛰는 프로즈낙스를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아르카나인들이. 나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게 기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상처투성이가 된 성전 연합군이.
‘그래, 뭐, 시작이 중요한 법이니까.’
지도 교육이야 앞으로 얼마든지 기회가 있지 않겠냐, 그랑펠?
그러니 지금은 이쯤에서 마무리하자.
나는 머릿속에 탐색, 간섭의 과정을 떠올렸다.
치유마법의 극의를 발현.
이윽고, 나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육체가 극에 다다른 생명력으로 변해갑니다.]
벨리에 왈.
발현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레라스 틸에 관한 마탑의 기록을 살펴보면 최후의 순간, 레라스 틸은 고통에 소리치며 몸을 잔뜩 웅크러트렸다고 했었으니까. 마치 태아라도 된 것처럼.
‘그 탓에 생명력 구체가 되었고.’
하지만 이 고집이.
꼿꼿함이 어디로 가겠냐?
그렇다.
나는 극의가 발현되는 순간에도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고개도, 시선도 떨구지 않았다.
그래서 선명하게 보였다.
내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생명력 덕분이겠지.
순식간에 회복되어 가기 시작하는 이들의 모습이.
“사, 상처가?!”
극의의 대상은 일찌감치 프로즈낙스로 정했건만. 주변에 흘러넘치는 영향력만으로 일대에 최상위 치유마법을 발현한 것과 다름없는 효과를 퍼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낌새는 모두가 알아차릴 정도였다.
“……총대장님?”
“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호, 호열 씨. 다리가 점점 사라지고 계신데요……?”
남태민의 말이 옳았다.
나의 육체가 빛이 되어 타오른다. 다리부터 서서히 빛 속으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불필요한 오해는 피하는 게 옳다.
하나하나 친절하게 말해주고 싶거늘…….
‘그럴 시간은 없고, 그랑펠의 고집은 있다.’
그런 나는 벨리에에게 남긴 말처럼 내뱉는 게 고작이었다. 총대장으로서, 그리고 쓸데없는 걱정은 할 필요 없다는 의미를 담아서.
그랑펠식 화법으로 덧붙였다.
“다음 지도 교육은.”
“……?”
“정확히 나흘 뒤에 시작하도록 하지.”
이윽고, 시야가 완전히 빛에 뒤덮였다.
레라스 틸.
몸을 잔뜩 웅크린 바람에 구체가 되었다고 했던가.
[사망하셨습니다.]
[사망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획득한 경험치가 하락합니다.]…….
……끝까지 꼿꼿한 게 그래도 구체가 되는 일은 없겠구만.
.
.
.
호열의 추측은 정확했다.
호열은 최후의 순간까지 꼿꼿했다.
마치 하늘에서 내리쬐는 ‘한 줄기 빛’처럼.
그리고 그 빛은 프로즈낙스를 꿰뚫었다.
하늘을 꿰뚫었다.
땅을 꿰뚫었다.
더 나아가서는.
안토니움 황궁 지하를.
전황의 서고를.
전황들의 계시를 꿰뚫었다.
파르르.
황제의 동공이 떨린다.
클라우디가 아르카나 대륙을 파멸로 이끄리라.
“이, 이게 무슨?”
전황의 서고가 뱉어낸 양피지가 빛에 휩싸여 갔다.
문자가 뒤섞이며 수정되어 가기 시작했다.
완전히 새로운 계시가 떠올랐다.
한없이 깊은 어둠.
한 줄기 빛.
이내, 황제의 입술이 격하게 떨린다.
“같은 이를 말하는 게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