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2화. 등가교환 (1)
마탑.
치유학파의 별실.
따스한 햇볕을 대신하는 건 벨리에의 미소였다.
하지만 최근 별실은 우중충하기 짝이 없었다.
굳게 닫힌 집무실 문 때문이겠지.
숙련 마법사, 클레가 한숨을 쉬었다.
‘너무 무리하고 계세요, 벨리에 님.’
치유마법학 숙련 마법사들의 가장 큰 고민?
차기 정기 학회의 연구도 아니요.
아르카나 대륙 진입도 아니요.
다름 아닌 선임 마법사 벨리에의 안위였다.
벌써 몇 달째.
세계수의 열매를 삼키고 타락한 드래곤들을 정화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는 그녀였다.
슥.
클레의 시선이 책상 위 자신의 연구.
『비약초의 육성법』이 적힌 서류로 향한다.
이호열 수석님의 분에 넘치는 도움을 받은 덕분.
연구엔 큰 진전이 있었다.
성장한 비약초가 영약으로 탈바꿈한다는 중요한 정보까지 알아냈다.
그렇기에 클레는 벨리에의 연구를 돕겠다고 자원했었다.
세계수의 씨앗이다.
원래라면 귀하디귀한 선악과를 맺어내야 하는 만큼.
그 성질이 비약초와 일맥상통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자신의 연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름대로 고심했었으니까.
“후.”
그러나 쉽지 않았다.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클레, 너라도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응?”
“벨리에 선임님께서도 쉽게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계신 연구야. 우리 같은 숙련 마법사가 무리한다고 당장 답을 찾을 수 없는 건 당연해.”
우려스러운 시선들.
그 시선에 까칠해진 피부를 매만져 본다.
숙련 마법사들의 말이 옳았다.
벨리에 유시아.
그녀 또한 현시대 마탑의 찬란한 재능 중 하나였다. 정기 학회 때마다 그녀가 쏟아낸 양질의 연구는 치유마법학을 크게 진보시켰다 평가받았으니까.
그녀와 비교하면 클레, 자신은.
“…….”
고작 하나의 연구조차 일단락 짓지 못하고 있는 숙련 마법사에 불과했다. 재능의 격차. 더욱이 선임과 숙련으로서 쌓아온 경험의 격차까지 더하면…….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당연해.’
어쩌면 무의미한 짓을 하는 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클레는 알고 있었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걸.
“아니, 조금만 더 해볼게.”
자신이 낙담하고 있는 순간에도.
드래곤이 삼킨 악과는.
그들을 악에 물들게 하고 있다는 걸.
더 나아가.
슥.
선임의 집무실을 향하는 시선.
“포기하지 않고 계시잖아, 선임님께서도?”
별다른 성과가 없음에도.
벨리에의 마음은 꺾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클레도 포기할 수 없었다.
스스슥.
어느새 별실에 혼자 남은 클레는 양피지에 비약초의 육성 개념을 차분히 적어갔다. 미완성 연구에 불과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이호열 수석님께 얻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
비약초는 성장 과정에서 방대한 생명력이 필요합니다. 충분한 생명력과 양분을 흡수한다면 비약초는 영약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만약, 세계수의 씨앗과 열매를 비약초와 영약의 관계로 치환하여 생각해 본다면…….
──────
저벅저벅.
“후우.”
클레는 양피지를 손에 쥐고 벨리에의 집무실 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도움은커녕 집중에 방해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슬쩍.
‘이게 제 최선.’
결국, 클레는 문틈에 양피지를 살며시 끼워 넣었다.
오랜만에 치유학파 별실을 나섰다.
그리고 마탑에 만연한 소식을 접했다.
“네? 그, 그게 사실인가요?!”
클레가 되묻자 마탑의 마당발, 지브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거짓말하는 거 봤나요, 클레? 정말이라니까요? 제국의 수도, 안토니움이 폐쇄되었다고요! 포탈을 통해 마탑으로 복귀한 모험가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게……!”
심상치 않은 소식이었다.
수다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클레는 무거운 마음으로 치유학파 별실로 복귀했다.
끼워둔 양피지를 회수하기 위함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소식에 심란하실 텐데.’
절레절레.
아무래도 역시 자신이 없었다.
자신의 연구가 도움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괜한 정보에 시간을 낭비하시게 하면 안 된다.
클레가 벨리에의 집무실로 발길을 옮긴 참이었다.
“……어?”
활짝.
벨리에의 집무실 문이 열려 있었다.
문틈에 꽂아두었던 양피지도 온데간데없었다.
벨리에가 별실을 지키던 숙련 마법사에게 물었다.
“벨리에 님께선?”
“못 만난 거야? 하필이면 딱 자리를 비웠을 때…….”
“왜? 무슨 일인데?”
“벨리에 선임님의 아르카나 대륙 진입이 허가됐어. 마티스 딘 카를, 그리고 벤쉬 윌리엄 선임님과 동반 출탑이라고 하시던데……. 아차!”
숙련 마법사가 중요한 말을 전했다.
“클레, 전부 네 덕분이라고 전해달라고 하셨어.”
“……내 덕분이라고? 뭐가? 설마?”
“맞아! 아무래도 네 연구에서 무언가 실마리를 얻으신 것 같던데? 되게 오랜만에 얼굴에 활력이 돌아오셨달까? 별실이 밝아진 걸 보면 알잖아?”
“……그게 정말이야?”
클레는 그 말에 흠칫했다.
마지막까지 집무실 앞을 서성이면서 고민했던 이유는 명확했다.
본질적인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발상이 운 좋게 맞아떨어졌다고 한들.
‘이미 타락한 세계수의 씨앗에서 온전한 싹을 싹 틔우게 할만할 정도로 방대한 생명력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일반적인 비약초와는 태생 자체가 다르니까…….’
고민하던 와중, 클레의 동공이 흔들렸다.
“……!”
열린 집무실 책상 위.
벨리에가 펼쳐놓은 마법서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제목이 불길한 예감을 증폭시켰기 때문이었다.
『치유마법의 극의 / 저자 : 레라스 틸』
*
레라스 틸.
극단적인 치유 마법사였다.
자신은 물론, 일반적인 치유마법사들과는 결이 다르다고는 할까? 언젠가는 치유마법학의 강연 도중 이런 말도 했었지.
-“의문이죠? 그 성격과 과격할 정도의 발상은 치유마법과는 상극처럼 보이니까요. 당연하게도 저 또한 레라스 틸의 연구는 썩 좋아하지 않는 답니다. 특히나 그의 최후가 뭐랄까, 너무나도 전형적인 마탑의 마법사 같았으니까요.”
치유마법의 극의.
레라스 틸은 자신의 연구를 증명하기 위해서 죽었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태양과도 같은 진리를 향해 다가가다가 타버려서 죽은 꼴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하지만 편견은 달라졌다.
‘클레는 몰라도 당신에게 고마워할 날이 올 줄이야.’
벨리에가 속으로 말을 삼키던 중.
문득,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남태민이 [광폭화]를 발동, 공중부양 중인 벨리에의 높이까지 뛰어오른 것이었다. 벨리에는 흠칫 놀랐다. 역시, 모험가. 성장 속도가 빨라.
“후방으로……. 피해.”
광폭화의 여파.
존댓말은커녕 사람 말도 하지 못하던 과거에 비하면 발전했지만, 아직은 그 말이 짧았다. 하지만 벨리에는 개의치 않아 했다.
그 대신.
이 수석님의 가르침에 따라 습득했던.
모험가들의 상식을 떠올렸다.
“후방이라면, 그거죠? 모험가들에겐 상식이 있다고 들었어요. 방어력과 생명력이 뛰어난 이들이 전방을 담당하고, 후방에는 그런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이들이 대기하고……. 맞아. 탱커, 딜러, 힐러. 제 말이 맞죠?”
벨리에의 물음에 히사기, 레오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벨리에는 오히려 고개를 저었다.
배려는 정말로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런데 알고 계시나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탑은 아르카나 대륙에서 상식 밖의 존재라 불린다는 걸요.”
살의를 품은 프로즈낙스였다.
사소한 대화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녀석의 날개에서 살갗을 찢는 듯한 냉풍이 쏟아져 나왔다.
이 순간, 플레이어의 상식에서 벨리에는 위험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팟.
벨리에의 녹빛 머리칼이 넘실거리더니 곧 일대에 온기를 뿜어냈다. 말뿐인 온기가 아니라 정말로 피부에 와 닿는, 아니, 시스템 메시지로 와 닿는 온기였다.
[온기가 신체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켜 줍니다.]
“……!!!”
그뿐만 아니었다.
스스스.
벨리에가 발산한 온기가 프로즈낙스의 냉기를 완전히 상쇄하고 있었다. 남태민과 레오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런 버프라면 냉기에 개의치 않고 몸을 움직일 수 있을 터.
타탓.
감사 인사를 하는 대신 뛰쳐나갔다.
프로즈낙스, 녀석이 퀴른베르크 기계탑을 향해 발톱을 뻗었다.
기계탑 전체가 은으로 만들어졌기에.
본래라면 타락한 악룡에게 상당한 피해를 줘야만 했거늘.
히사기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필이면 이렇게 상성이 맞물리다니.’
끼기기긱─!
톱니바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긁었다.
프로즈낙스의 냉기에 톱니바퀴에 성에가 생긴 탓.
퀴른베르크 기계탑의 움직임이 정상적이지 못한 것이리라.
이내, 벨리에를 향하는 시선.
‘그리고 마냥 기뻐할 게 아니야.’
마창사이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조금 전, 프로즈낙스의 냉풍을 받아낸 벨리에는 분명 상당한 마력을 소모했을 터였다. 무려 진심을 담은 드래곤의 일격을 받아낸 것이었으니까.
히사기가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마탑의 선임이 우리를 믿는 건가?’
[온기] 버프를 받을 정도로 자신들이 프로즈낙스와의 전투에서 활약할 수 있을까? 히사기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벨리에의 판단을 간과할 수 없기에.
탓.
두 사람의 뒤를 이어 발을 굴렀다.
크롸롸롸─!
기어코, 퀴른베르크 기계탑 한 채를 무너트린 프로즈낙스.
벨리에는 포효하는 녀석에게 돌진하는 성전 연합군을 지켜봤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그렇게들 만신창이가 됐던 거군요?”
유낙서스와의 사투.
남태민, 히사기, 레오니, 삼인방을 직접 치유했던 벨리에였다.
덕분에 짐작할 수 있었다.
냉혹한 추위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한들, 몇 분 버티지 못하겠지.
“1차 용마대전의 교훈을 명심하고 있거든요.”
드래곤이 마탑 크리스탈 홀에 발을 들였을 때?
사실은 안도했었다.
일평생 저런 말도 안 되는 괴물들과 마법을 주고받을 일이 더는 없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참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물론,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선 안 되잖아, 마르셀로?”
모든 게 정해진 대로만 흘러갔다면.
시한부의 저주에 시달렸던 너는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벨리에는 자신의 역할을 다할 생각이었다.
악과를 삼켜 타락한 드래곤을 정화할 방법.
클레가 남긴 서신에서 영감을 얻었다.
비약초, 그리고 영약.
그 관계를 떠올린다면…….
방대한 생명력. 그래, 타락하여 썩어버린 악과조차도 싹 틔울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생명력이라면. 어쩌면 악과에서도 세계수의 싹을 틔워 드래곤의 타락을 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론적으론 충분히 가능해요, 클레.”
벨리에는 웃었다.
“이 수석님의 도움이 있었다 해도 기특하네요.”
다만, 그 정도로 방대한 생명력을 구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고 클레는 덧붙였었다. 하지만 벨리에는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갖가지 서적을 뒤져보다가 떠올리고 말았다.
레라스 틸.
치유마법의 극의.
마탑에 기록된 레라스 틸의 사인은 이러하다.
『레라스 틸은 극한의 치유마법을 발현했다. 자신의 육체와 정신, 전부를 생명력으로 전환하여 진리에 가까운 치유마법의 극의를 발현해냈다…….』
그것이 진정으로 진리에 가까웠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마탑에서 진리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그 위력은 증명된 셈이었다.
“그럼, 어디 시작해볼까요.”
벨리에는 그러한 극의를 발현할 생각이었다.
“벨리에 유시아, 마지막 치유마법을.”
시작부터 마력을 쏟아부은 이유?
간단하다.
마력 대신 육체와 정신을 바치는 치유마법의 극의였다.
굳이 몸에 아까운 마력을 남겨둘 필요가 없었다.
벨리에의 치유마법이 밀리고 있는 성전 연합군을 뒤덮었다.
스스스.
“미래잖아요, 당신들은.”
당장에야 터무니없이 나약할지라도, 모험가들에겐 가능성이 있다. 물론, 저들이 이호열 수석님만큼 성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진 않았다.
“우리 수석님의 수족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따라서 벨리에는 저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이었다.
그래, 마력이 남아있을 때까지.
치유마법의 극의를 발현하기 전까지.
하지만 말했다시피.
모든 건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보유한 마력을 모두 쏟아낸 탓일까.
“흡.”
울컥─
목구멍에서 역류하던 핏물을 입에 머금은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묻겠다, 벨리에 유시아 선임 마법사.”
“……!”
“악과를 정화하는 원리와 그 과정 전부를.”
“……이 수석님?”
.
.
.
잠깐만.
……뭐라고?
목숨을 걸고 발현해야 하는 극한의 치유마법?!
[최후의 모험가 : 아르카나 대륙에서 사망하지 않습니다. 사망 시, 즉시 현실로 귀환하며 일정 시간 동안 아르카나 대륙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 쿨타임 : 24시간]
아니, 그런 거였으면 나한테 말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