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397화 (397/489)
  • ◈ 397화. 모조리

    끈질기게 추적했다.

    클라우디의 최연소 가주이자 클라우디 그 자체.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그의 목엔 막대한 현상금이 걸려있었으니까.

    보상만 충분하다면.

    대륙의 더러운 일이란 일은 모두 떠맡는 스케빈져들.

    발길을 서두르면서도 대화를 나눈다.

    “그림자 용병단이 물었던 표적이라고?”

    “그 새끼들이 표적을 얌전히 살려둬?”

    “믿기지 않는데.”

    그림자 용병단의 위상은 뒷세계, 특히나 밑바닥에서 더욱 전설적이었다. 그들에게 실패란 존재하지 않을 텐데. 솟구치는 찝찝함을 외면하게 하는 건 달콤한 보상이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한텐 잘된 일 아냐?”

    “그래! 그림자 용병단 새끼들이 놈을 쫓고 있다고 생각해 봐. 우리에겐 콩고물 하나도 떨어질 일이 없을걸?”

    “심지어 그 새끼 중상을 입었다면서?”

    “헤헤. 먼저 잡는 놈이 임자라고!”

    그날

    그 사건으로부터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옆구리가 뜯겨나간 중상을 입었다고 했겠다.

    걸음을 쉬지 않았다고 해도 멀리 가진 못했으리라.

    스케빈저들은 쥐떼를 풀었다.

    찍찍!

    쥐들에게 표적의 인상착의를 설명한다.

    주머니를 뒤지던 사내.

    손바닥 위로 은화를 꺼내 보여준다.

    “봐봐. 이렇게 반짝거리는 머리칼을 가진 남자다.”

    찍찍!

    쥐 떼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표적을 수색한다.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쥐 몇 마리가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치즈값을 하는구나, 잘했어!”

    사내가 오동통한 쥐를 껴안은 순간이었다. 손에 닿아오는 촉감이 낯설었다. 까끌까끌했다. 그 털을 보아하니 불에 그슬려 말려들어가 있었다.

    “엥? 저쪽은 시티델 쪽이잖아.”

    “쥐새끼 더럽다고 내쫓았나 보지.”

    “멍청아. 물을 끼얹는 것도 아니고 불로 지진다고?”

    쥐 한 마리 쫓아내기 위해 불씨를 던진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스케빈저들은 의아해하면서도 마을을 향해 내달렸다.

    잘그락.

    녹이 슨 무기들이 치렁거린다.

    더럽고, 끈적한 대륙 밑바닥에서 절인 칼날.

    치명적이란 것만 짐작할 뿐.

    어떤 상태이상을 품고 있는지는 스케빈저들조차 알지 못할 정도.

    “휘두르는 나도 찝찝하단 말이지.”

    평상시 같았다면 무기까진 꺼내 들지 않았으리라. 의뢰의 대다수는 생포가 전제였으니까. 앞서 말했듯 척살 의뢰는 그림자 용병단 선에서 마감됐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번 건은 이야기가 달라. 클라우디라고 했나? 그것들 어떤 대역죄를 저질렀는지는 모르겠는데. 제국에서도 이번 척살에 관해선 함구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더라고.”

    “그래서 우리한테 추적이 붙지 않았던 건가?”

    “어쩐지 발걸음이 가볍다 했어!”

    방해꾼도 없다.

    보상을 빼앗길 걱정도 없다.

    스케빈저 무리가 군침을 삼키며 시티델, 어귀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화르륵!

    걷잡을 수 없는 열기가 그들을 엄습했다.

    “뭐, 뭐야!”

    “불이잖아?!”

    “이런 씹. 어떤 미친 새끼가.”

    마을이라고 하기엔 크고.

    도시라고 하기엔 작은 시티델이 활활 타고 있다.

    이래서 녀석의 털이 그을려 있던 건가?

    사내가 안주머니에 넣어둔 쥐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곤 이리저리 휘젓는다.

    “……없어.”

    “뭐? 갑자기 뭐가 없단 거야?”

    “쥐가 도망쳤어.”

    “……!!!”

    누군가는 쥐새끼가 쥐새끼답게 꼬리를 내빼고 도망친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겠지. 허나, 밑바닥에서 쥐와 동고동락하는 스케빈저들은 알고 있었다.

    홍수, 지진, 화산폭발…….

    위기를 감지하는 쥐의 능력은 탁월하다는 사실을.

    스케빈저들이 들썩거렸다.

    “씨발, 이야기가 다르잖아 이거?!”

    그런 쥐들이 기척도 없이 시티델로부터 떨어졌다는 것?

    타오르는 시티델, 저곳에 대화재.

    그 이상의 재앙이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시티델을 포위한 스케빈저,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나는 이쯤에서 빠지겠어.”

    “빠진다고? 좋아. 머릿수 줄어서 좋네.”

    “나는……. 후방에서 돕겠다.”

    “어때? 숨어있다가 시체만 찾자는 거야! 아니면 모조리 타들어 갈 때까지 기다리든가. 누가 빠져나오는지만 잘 확인하면 되는 거 아냐?”

    그때였다.

    화염 속에서.

    은빛의 머리카락이 존재감을 드러낸 건.

    “!!!”

    스케빈저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린다.

    “……표적이 마법사였어?”

    “마도 가문이란 이야기는 없었잖아?”

    “하여튼, 개새끼들. 그래, 대박이 그냥 굴러들어올 리 없지!”

    마법사.

    그들의 머릿수는 대륙을 통틀어도 극소수다.

    하지만 개개인의 무력은 웬만한 기사를 초월한다.

    더욱이 그들의 약자멸시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수준.

    밑바닥 인생, 스케빈저들에게 마법사는 공포의 존재였다.

    다만.

    “내 이럴 줄 알고 하나 슬쩍 해뒀었지.”

    “그게 뭐야? 보석?”

    “귀하디귀한 흑요석, 옵시디언이다. 몸뚱이에 박아넣기만 하면 마법사의 마력을 억제할 수 있다고. 흐흐, 암시장에 내다 팔지 않기를 잘했군.”

    스케빈저들에게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그러면 이 불이 저 새끼 짓일 수도 있다는 거지?”

    “무조건이야! 저런 불 속에서 혼자만 멀쩡한 걸 보라고!”

    “정신이 빠졌나,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무슨 짓을.”

    갖가지 더러운 인간군상을 지켜봐 온 스케빈저들.

    “우욱.”

    그러나 가까워진 시티델의 풍경은 그들조차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지옥의 존재는 본 적도, 믿지도 않았지만. 마치 지옥이 있다면 이런 풍경이지 않을까.

    정신을 차리고 이성적으로 사고해 본다.

    “왜, 적당히 시간만 끄는 방법도 있다고! 시티델은 제국의 땅이야. 제국이 이런 꼴을 보고 가만히 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 시티델로 달려올 거야!”

    ……어쨌든 좋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귀족 나리께서 멍청한 짓을 해준 덕분에 스케빈저들은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이내, 타오르는 시티델 내부로 진입하는 스케빈저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인기척이 너무 없지 않아?”

    “무슨 개소리야? 니 귀엔 비명 소리 안 들려?”

    “아니, 자세히 들어보라고!”

    “……?”

    진지한 낯빛에 귀를 기울이는 스케빈저들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이상했다.

    비명 소리가 인간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의 말을 하고 있긴 했지만.

    기괴하게 갈라진다.

    자세히 들어보니 마치 짐승과 인간이 섞인 듯한 음성…….

    이내, 기괴한 고함이 시티델에 울렸다.

    “미친 새끼야!! 내가 타죽으면 이 나약한 인간의 몸뚱이도 타죽는다. 정말로 그 꼴을 보고 싶은 거냐? 어리석은 인간 새끼야!!”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제야 제대로 들어오는 시티델의 풍경.

    그랬다, 시티델은 화마(火魔)에 휩싸인 게 아니었다.

    “피 냄새가 난다. 그것도 죽은 지 한참 된 시체 썩은 내가……!”

    불에 타오르기 전.

    이미 악마(惡魔)에게 함락된 도시였던 것이었다.

    스케빈저들은 기겁해서는 발을 동동 굴렀다.

    “마법사에 악마? 미친……! 구려도 이렇게 구리다니!”

    “그림자 용병단, 그놈들이 손을 뗀 사건이라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나는 진짜 빠질 거야. 타죽고 싶은 생각도, 악마에게 휘둘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근데, 저 새낀 왜 이런 악마 소굴에?”

    이젠 순수하게 의문이 들었다.

    은빛 머리칼의 사내.

    그는 어째서 도망치기도 바쁜 와중에.

    악마에게 함락된 시티델에 발을 들인 걸까.

    불을 지른 걸까.

    그 이유는 머지않아 확인할 수 있었다.

    화르륵!

    “씹!”

    더욱더 거세지는 불길에 스케빈저들의 발이 묶인 순간이었다.

    그들을 향해 가까워지는 인기척이 있었다.

    사내가 있었다.

    사내, 그랑펠이 입을 떼었다.

    “모조리 불살라 주마.”

    *

    옆구리의 상태를 보고 알아차렸다.

    이건 ‘그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그래, 클라우디 가문의 배신자. 녀석의 마수를 뿌리치고 대륙을 떠돌던 때의 과거였다.

    그러니까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됐다.

    그래, 그냥 지나칠 수 없었겠지.

    악마에게 클라우디 가문, 전부를 잃은 그랑펠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악마를 향한 적대심이 절정에 이른 순간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시티델을 모조리 불살라 버리겠다는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온 세상이 몰라줘도 나만큼은 알아야지, 안 그래?’

    그동안 나, 이호열은 지켜봐 왔다.

    그 어떤 악마의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그랑펠의 고집을.

    하지만 지켜보는 걸 넘어 휘둘려 왔기 때문에.

    나는 너를 만류할 수밖에 없다, 그랑펠.

    시티델이 악마의 수렁에 빠진 이유?

    시티델은 위치상 클라우디령 인근의 마을이었다. 클라우디령을 악마로 뒤덮기 위해 이곳, 시티델 주민들을 제물로 악마를 소환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베히모스의 아가리는 없으니까.’

    마계의 악마가 본격적으로 아르카나 대륙을 침공하기 시작한 건 대격변 이후였다. 화염마법에 고통스러워하는, 잘 쳐줘도 중급 악마를 불러내는 데에도 막대한 제물이 필요했을 테니까.

    그러나.

    “사, 살려주세요……!!”

    악마의 목소리 사이.

    진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어떻게 알았냐고?

    암만 그래도 짬밥이 있잖아.

    시티델을 집어삼킨 악마보다 더욱 악랄한 녀석.

    프로스트에 마왕, 데카라비아가 현현했을 때에도.

    인간의 생명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분명, 타오르는 시티델에도 적지 않은 생존자가 있겠지.

    그리고.

    “히이이익!!”

    그랑펠의 목에 현상금이라도 걸린 걸까.

    불순한 의도를 가진 어중이떠중이들도 발을 들인 모양이었으니까.

    그래, 내가 알고 있던 그랑펠이라면 그들을 절대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프로스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생존자들을 구원하고, 어중이떠중이들에겐 언제나처럼 적절한 처분을 내려야만 했으니까.

    그러나.

    ‘젠장.’

    지금 내겐 확신이 없었다.

    그야, 여긴 과거니까.

    나는 과거의 그랑펠을 고작 1할밖에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그런 나의 짐작에 어긋나지 않는 말이 흘러나온다.

    “모조리 불살라 주마.”

    빌어먹게도.

    나는 짐작하지 못한다.

    네가 느끼고 있는 슬픔의 크기를.

    그랑펠, 너를 고작 1할밖에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바로잡을 수밖에 없다.

    과거의 너는 몰라도, 현실의 너는.

    내가 알고 있는 너는.

    이런 과오를 용납할 수 없을 테니까.

    더불어 나, 이호열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까.

    화르륵.

    그러나 나의 결심에도 불길은 더욱 거세어졌다.

    악마와 함께 시티델을 흔적도 없이 태워버릴 것처럼.

    누구도 손쓸 수 없는 겁화로 바뀌어갔다.

    하지만 괜찮다.

    말했잖아?

    온 세상이 너를 이해할 수 없어도.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다고.

    ‘누구에게나 그럴 때가 있는 법이거든.’

    중2.

    내게도 흑역사가 있었듯.

    그랑펠, 너한테는.

    지금이 질풍노도의 시기일 수도 있는 거 아니겠냐?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라.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네 입으로 말했었지?’

    모든 것엔 주고받음이 있는 법.

    플레이어로 각성한 직후.

    그랑펠, 네가 나를 살려왔다면.

    이제는 내가 너를 살릴 차례가 온 거니까.

    그러니까.

    고오오.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걷잡을 수 없기에 겁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겁화를 누그러트릴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반전』시킬 수 있었다.

    고오오오─!

    대규모 반전 마법.

    단순하게 불이 사그라지는 것만이 아니다. 서클로 한 차례 대폭 상승했던 발현력에 더해 십좌를 차치해 ‘격’이 다른 마력을 다루게 된 나였다.

    거기에 이래 봬도 『반전마법』의 창시자라고.

    “……뭐, 뭐야. 이게?”

    콰드드득.

    무너졌던 건물이 다시 세워진다. 메말랐던 분수대에 다시금 분수가 샘솟는다. 짓밟혔던 상점의 과일도, 가판대의 물품도 온전히 제 모습을 되찾아간다.

    “사, 상처가!!”

    시티델 생존자들의 극심한 부상도, 화상도 사라져간다.

    시티델이 타오르기 이전의 모습으로.

    아니, 악마에게 함락되기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휘청.

    그러나 그랑펠의 시야가 흔들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입술 사이로.

    나로서는 처음 듣는 증오에 찬 음성이 흘러나온다.

    “모조리 죽여야만 한다.”

    그럼에도 이해한다.

    눈앞에 여전히 악마가 있었으니까.

    녀석은 빙의한 인간의 몸으로 그랑펠을 비웃고 있었다.

    “미련하다. 이 몸의 연기에 감쪽같이 속았구나!”

    언제 봐도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는 족속이다.

    고작 1할의 이해력으로 짐작해 본다.

    아마도 그랑펠은 혼란한 거겠지.

    악마는 모조리 죽여야만 하는데.

    악마를 죽이면 무고한 인간도 죽여야만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분노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걱정 마. 나도 내뱉은 말은 지키거든.’

    그 분노를 올바르게 표출할 수 있는 방법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똑똑하게 보고, 기억해 둬라.

    과거의, 아니, 질풍노도의 그랑펠.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고 발동했다.

    그랑펠의 기억에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스킬, ‘구마의식’이 발동됩니다.]

    악크샨의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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