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6화. 전황의 서고 (2)
사내가 텔레포트를 발현했다.
“멈춰라!”
황궁 마법사, 내쉬 윌리엄. 그가 요동치는 마력을 감지하고, 사내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내가 연기 사이로 흩어지며 한마디 말을 남겼다.
“너는 나를 필요로 하게 될 거다, 어린 세릭로즈여.”
흔들리는 황제의 초점.
기괴하게 비틀린 사내의 입꼬리가 마지막으로 씰룩였다.
“기다리고 있으마.”
사내가 완전히 사라지자 신하들이 황제에게 몰려들었다.
불경한 언동에서 위험한 녀석이라 생각했거늘.
저런 실력을 갖춘 마법사일 줄이야.
내쉬가 황제에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폐하?”
“괜찮다.”
“저 사내를 황궁으로 들인 제 실책이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호열 경의 외형을, 머리카락을 흉내 낸 시점에서 불온한 속내를 알아차려야 했는데……!”
벤쉬 형님이시라면 틀림없이 간파하셨을 터.
내쉬는 저런 마법을 간파해 내지 못한 자신의 식견이 원망스러웠다.
신하들의 우려에도 황제는 말을 아꼈다.
-“세릭로즈가 어째서 클라우디 멸문에 동참하였는가? 그 이유가 전황의 서고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우둔한 세릭로즈여.”
사내가 남긴 말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메아리쳤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떠드는 신하들의 반응이 옳았다.
마냥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 치부해야 했거늘.
‘전황의 서고에 기록되어 있다…….’
사내는 그렇게 덧붙였다.
황제는 전황의 서고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 보잘것없는 세릭로즈가 황가의 자리를 유지하게 해준 지혜의 보고. 그것이 바로 전황의 서고였으니까.
다만.
-“전황의 서고의 힘을 빌리는 순간, 황제로서의 권위는 그날로 끝이다. 그러니 후계자를 선택하기 전까지, 서고의 힘을 빌리는 일은 없도록 하거라.”
아버지께선 그리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버지, 자신께서도 차기 황제로 선택하신 뒤. 대륙의 존망을 위해 전황의 서고로 발을 들이셨다.
서고에게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듣고, 정말로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숨을 거두셨다.
황제가 입을 연다.
“대신들은 들어라.”
슥.
신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나는 전황의 서고에 출입할 생각이다.”
“……!”
그 선언에 서고의 무게를 알고 있는 자들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특히나 황궁 마법사, 내쉬는 전황의 서고에 관해 얼마 전 황제에게 직접 진실을 전해 들었던 바.
내쉬를 비롯한 신하들이 만류했다.
“폐하,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신단 말입니까? 황자 저하께서는 아직 황좌의 무게를 감당하시기엔 너무나도 어리십니다.”
“그렇습니다, 폐하! 더욱이 지금의 아르카나 대륙은 전국시대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제국에는 폐하의 보살핌이 절실하옵니다.”
“폐하……!”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그대들의 우려는 알고 있다. 허나, 걱정하지 말거라. 나는 전황의 서고에 출입할 생각이지, 전황의 서고에게 질문을 던질 생각 따윈 없으니까.”
어째서 서고(書庫)인가?
세릭로즈.
선조들께서 서고에게 구한 해답들이, 지식들이 온전히 기록되어 있기에 서고였다. 황제는 그저 선대가 기록해놓은 답변을 되돌아볼 생각이었다.
‘단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늘 의문이었다.
위대한 가문, 클라우디.
그들은 어느날 갑자기 아르카나 대륙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역사에서 부정되었다.
그러기 위해선 필히 막대한 권력이 필요했을 터.
그런 권력은 아르카나 대륙에 하나뿐이다.
‘……제국.’
제국이라면 클라우디의 흔적을 말끔하게 지울 수 있었을 터.
헛소리라 치부할 수도 있었거늘.
이 순간, 황제의 걸음을 옮기게 한 건 책임감이었다.
이호열 혹은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제국과 아르카나 대륙의 영웅인 그였다.
그와 당당히 눈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설령 거짓이라고 할지라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국은, 세릭로즈는 클라우디의 멸문과 무관하다고.
‘그의 앞에선 한 치의 부끄러움도 있을 수 없다.’
저벅저벅.
황제는 홀로 황궁 지하, 전황의 서고로 향했다.
문득, 얼마 전 일이 떠올랐다.
이호열 경, 그와 이쯤에서 그러한 대화를 나누었지.
-“전황의 서고에 물으실 의문이 있으시다면…….”
그가 원한다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전황의 서고를 사용할 생각을 품었던 황제였다. 이미 자신의 목숨보다 귀중한 제국이 그에게 구원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대가 전황의 서고에 출입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는 그마저도 드높은 긍지로 거절했다.
그래, 그러한 대화가 기억 속에 선명했기에.
황제는 헛소리라고 치부하면서도.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내, 허공에서 쏟아진 빛이 황제의 눈을 간지럽혔다.
[전황의 서고]
[적정 레벨 : 측정불가]
[붕괴 진행도 : 92.7%]
플레이어가 아니기에.
황제에게 그런 메시지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오직 찬란한 균열의 빛뿐.
자신의 목숨을 쥐고 있는 전황의 서고였다. 그래서일까. 본능적으로 머뭇거려졌다.
선대들의 지식이 잠들어있는 서고라고 해도, 될 수 있으면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저 빛이 마치 괴물의 아가리처럼 보였기에.
선대들의 죽음으로 쌓아 올린 지식 따위 알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황제는 본능적으로 생존 욕구를 억누르고 빛 속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마주했다.
스르륵.
한 장, 두 장, 세 장…….
넘겨지는 양피지.
그 양피지에 새겨진 수많은 해답 속.
아버지의 목숨과 맞바꾼 서고의 답변을.
슥.
황제는 양피지를 집어 들고 천천히 읽어나갔다.
“……!”
그런 황제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제국이 클라우디의 멸문에 동조했는지가.
황제가 허망하게 입을 열었다.
──────
클라우디가 아르카나 대륙을 파멸로 이끄리라.
──────
“……대체, 어째서, 어찌하여!!”
*
여신교단 성지, 뮤온.
성기사단장, 탈림 에베르는 여신상 앞에 무릎을 꿇은 성녀 프레이자를 바라봤다. 사실 탈림에게 프레이자는 아직도 친근하게 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과거 시간 선에서 되살아난 성녀, 프레이자.
‘……나보다도 아득하신 자매님이라는 건데.’
허나, 프레이자의 외형은 소녀와 다를 바가 없었다.
탈림은 멋쩍게 까끌한 수염을 매만졌다.
그럼에도 탈림은 프레이자를 온전히 성녀로 대했다.
그녀의 신성력이 무엇보다 큰 증거였다.
여신께 기도를 올리는 프레이자.
그녀의 몸에서 신성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뮤온이 아르카나 대륙에 떨어진 이후. 그 어떤 성기사도, 사제도, 교인들도 여신의 응답을 받지 못했거늘.
프레이자는 유일무이하게 여신의 응답을 받았다. 기도를 올리던 프레이자, 그녀를 보호하던 탈림은 기도가 끝나고 나서야 프레이자에게 다가갔다.
“늘 감사합니다, 탈림 경.”
“아닙니다, 성녀님.”
탈림은 고개를 숙이는 프레이자의 표정을 살폈다.
오늘도 역시나 얼굴이 어두웠다.
‘여신께서 어떤 계시를 주셨길래.’
표정이 언제나 좋지 못한 것일까.
탈림은 궁금증과 우려가 동시에 들었다.
고민하던 탈림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성녀님, 혹시 마음에 걸리시는 일이 있으십니까?”
탈림의 물음에 프레이자는 되물었다.
“탈림 경, 그대는 제게 의문이 없으신가요?”
“갑자기 의문이라니요…….”
앞서 말했듯 탈림은 프레이자에 관한 의구심을 지운 상태였다.
신성력을 의심하는 건 곧 여신을 의심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다른 의문은 있었다.
탈림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리 말씀하신다면…….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어째서 성녀님께서 성전 연합군의 총대장, 이호열 경에게 여신의 심판을 거론하셨는지. 저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탈림, 스스로도 흠칫할 발언이었지만.
마치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걸까?
프레이자는 담담하게 답했다.
“의문을 가지고 계시리라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아직 의문을 지우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저는 매일같이 여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요.”
“……!”
탈림은 멈칫했다.
어째서 기도를 올린 프레이자의 안색이 좋지 못했는가.
이유가 짐작되었으니까.
프레이자가 입을 연다.
“그렇습니다. 한없이 깊은 어둠에 대한 여신님의 계시는 어제도, 현재도, 방금까지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계시에 따르면 그 한없이 깊은 어둠은 언젠가 아르카나 대륙을 깊은 슬픔으로 집어삼키겠지요.”
꾹.
프레이자는 펜던트를 쥐었다.
자신은 성녀, 여신의 뜻을 배반해서는 안 되는 여신의 계시자였다.
그러나 이 순간, 프레이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저는 성녀로서 이 땅에서 한없이 깊은 어둠, 그의 행적을 좇았습니다. 그리고 모순과 마주했습니다. 그의 행적은……. 우리 여신교단이라고 해도 감히 뒤쫓을 수 없을 정도로 고귀했으니까요.”
이호열.
그의 행적은 샅샅이 뒤질 필요도 없었다.
모험가들의 세계가 이토록 무사할 수 있는 이유.
온전히 이호열, 그 덕분이라고 해도 무방했으니까.
더욱이 여신교단이 온전할 수 있었던.
막대한 기부금도 그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모든 물질적 증거보다도.
“허나, 제가 믿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탈림 경. 우리의 전부이신 여신조차도 저와 탈림 경의 눈에는 보이지 않듯. 어쩌면 저는…….”
“…….”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랬다.
프레이자가 심판을 미룬 채.
감히 여신의 뜻을 의심하듯.
매일같이 기도를 드리며 재차 계시를 확인하는 이유는 가득했다.
이호열, 그는 한없이 깊은 어둠이 아니다.
“한없이 깊은 어둠.”
“…….”
“그 사이로 비추는 한 줄기의 빛의 존재를요.”
탈림은 그제야 모든 걸 이해했다.
덕분일까.
이제는 확신에 차서 답할 수 있었다.
“감히 장담하겠습니다, 성녀님.”
“……?”
“그 한 줄기 빛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프레이자가 애써 웃음을 지어냈다.
“부디 당신의 믿음이 어긋나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탈림 경.”
*
흉조라는 큼직한 미끼를 달아서 낚싯대를 던졌다.
‘그냥 덥석 물어주면 좋겠는데 말이야.’
레이먼 션.
녀석에 관한 증언을 종합한 결과.
결국, 이 지구상에 녀석의 실체와 조우한 이는 없었다. 사실 있다고 해도 온전히 믿을 순 없겠지. 그 자식, 프로토타입으로 얼마든지 사람 흉내를 낼 수 있었으니까.
‘애초에 사람인지도 의심해야 할 수준이다.’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내가 낚시꾼이고, 레이먼 션, 녀석이 잡혀 들어야 할 물고기인데. 어째 녀석이 쉽사리 미끼를 물 것 같다는 느낌이 없었다.
인간미라는 게 조금도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
“하찮은 생각에 할애할 시간은 없는 법.”
물론, 똥줄이 타는 건 나뿐이구나.
나의 몸뚱이는 이 순간에도 언제나처럼 일과를 수행하고 있었다. 일단, 가장 먼저 하이엘을 통해서 승리에 관한 축하를 전달했다.
“그대들의 공적은 성대하게 치하하겠다.”
이젠 완전히 총대장이구만.
그러나 반박하진 않겠다. 왜, 어떤 일에서든 동기부여는 중요한 법이거든. 쪼잔하게 말이야, 디스커스의 육체가 보상을 주지 않았다면서?
‘……내가 그 심정, 누구보다 잘 알지.’
누군가에게 빙의한 악마는 사냥해봤자 전리품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놓쳤던 거악, 칠죄종 탐욕의 전리품이 아직도 아쉬워서 눈물을 삼킬 정도였으니까.
근데, 쪼잔하게 경험치도 주지 않았다니.
‘사비로라도 성과급 챙겨줘야 하나.’
이번 승리는 의미가 컸다. 특히 남태민, 히사기의 성장이 눈부셨다. 역시 아르카나 대륙에 넘실거리는 버프의 효과가 시너지 효과를 낸 덕분일지도 모르지.
“노력에 합당한 결실을 맺은 것뿐이다.”
……네네, 어련하시겠습니까.
어쨌든, 나도 총대장으로서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하루라도 거르면 몸에 가시가 돋는.
체력 단련을 실시하려는 거냐고 묻는다면.
‘아니, 그딴 건 그랑펠 기준에 노력도 아닐걸?’
나는 시야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여주리라.
[어둠의 이해 (저주) : 적합한 마력 친화력을 대폭 상승시켜 준다. 단, 적합한 마력의 원천이 되는 과거와 직면해야만 한다. - 현재 적합한 마력 친화력 : 10%]
그래, 이 정도는 해야 그랑펠의 기준에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말이야.
사실 솔직한 심정 같아서는 외면하고 싶었다.
한 번이지만, 경험해 봤잖아?
그랑펠의 과거, ‘그날’을 들여다본 후유증을.
그러나 내뱉었던 말이 있었다. 마계에 진입하겠다고. 마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그랑펠에게 의존하는 게 아니라, 나, 이호열의 능력을 성장시켜야만 한다.
어쩔 수 없다는 거지.
[저주, ‘어둠의 이해’에 진입합니다.]
정말이지, 언제나 한없이 깊구나 이놈의 어둠은…….
.
.
.
그래서 이번에는 뭐냐?
시야가 사라지는 순간.
타는 듯한 열기가 피부를 자극한다.
그리고 서서히 밝아지는 세상.
‘!’
나는 목격했다.
타오르는 이름 모를 도시.
그 가운데 겁화를 손에 쥔 그랑펠.
순간 머릿속에 스쳐 가는 일련의 기억들.
‘그날’ 이후의 그랑펠의 행적.
그랑펠의 감정.
마지막으로, 새롭게 알게 된 진실.
『그랑펠은 자비롭지 않다.』
‘설마.’
인간들의 비명이 지옥처럼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곧, 나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거…….
‘……전부 네 짓이냐, 그랑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