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5화. 전황의 서고 (1)
마법.
현대 문물로 세워진 울타리는 마탑 앞에서 무의미했다. 선임 마법사들에 의해 마탑으로 끌려온 사태의 용의자들은 옵시디언 홀에 수용되었다.
“왓 더……?”
흑요석의 감옥, 옵시디언 홀.
플레이어도 아닌 일반인이 옵시디언 홀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건 그 아름다움이 전부였다. 모르는 게 약이다. 딱 이런 상황에 사용하는 말이겠지.
화염마법학 선임, 벤쉬가 코웃음을 흘렸다.
“훗. 옵시디언의 압박감을 저 무지렁이들이 알 수 있을 리가요. 나, 벤쉬 윌리엄조차도 옵시디언 홀의 존재를 선임 마법사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마탑, 대다수 마법사조차 이 공간에 대해 알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으니까.
흑요석의 특수한 성질 때문이다.
화륵.
벤쉬가 가볍게 화염을 일렁여 본다.
엄격한 마탑의 규율.
마탑에서의 실전 마법의 발현은 금지되어 있었거늘.
옵시디언 홀에선 예외였다.
순수마법학 선임, 뱅그릿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옵시디언은 마력을 흡수하고, 소화하는 성질이 있죠. 그래서 저희 같은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 제련하여 장비로 만든다는 소문은 들었었는데…….”
마탑은 일찍이 마법의 약점을 연구했다. 진리에게 치부 따윈 없어야 했기에. 덕분에 마탑은 옵시디언의 성질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오히려 이용하고 있었다.
벤쉬의 어깨가 으쓱으쓱 춤을 춘다.
“아차, 우리 뱅그릿 선임은 옵시디언 홀이 처음이죠? 나, 벤쉬에 비하면 당신은 햇병아리 선임이니까요. 크흠. 제가 행동으로 친절하게 지도해 드리겠습니다. 자, 보자. 처음부터 화끈하게…….”
화르륵.
벤쉬의 손가락에서 불길이 더욱 거세게 피어오른다. 옵시디언 홀에 끌려온 이들은 죽을 맛이었다. 누군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중얼거렸다.
“사방이 새까만 게 소, 소각실인가? 저 괴물들이 우리를 마법으로 흔적도 없이 불살라버리려는 거 아닌가?! 그러지 않고서야 우리처럼 나약한 민간인에게……!”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벤쉬가 걸음을 떼었다.
“옵시디언은 마법을 흡수하지만, 마법으로 인한 고통까지 흡수해 주지는 않지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지만, 역시나 가장 명확한 쓰임새는 심문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선 이 벤쉬 윌리엄이 나설 차례고요.”
윌리엄가의 염제(炎帝).
“작열통은 고통 중에서도 최고의 고통을 주니까요.”
벤쉬는 흩날리는 자신의 금빛 머리칼 사이로 넘실거리는 화염을 바라봤다. 마탑의 선임 마법사. 오직 마법을 향해, 진리를 향해, 나아간 이들만이 쟁취할 수 있는 자리.
그렇다.
이 순간.
벤쉬는 두려움에 떠는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다.
“이것이 윌리엄가의 비전입니다.”
오직 요동치는 자신의 화염만을 응시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벤쉬는 비전 마법을 쏟아내지 못했다.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발소리가 한 발짝 빨랐다.
또각─
“……!!!”
벤쉬를 포함.
좌중의 얼굴에 느낌표가 떠오르는 듯했다.
특히나 겁화 앞에서 두려움에 떨던 이들은 다짜고짜 입을 열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이호열 플레이어!”
“우,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짓을……!”
“대한민국 정부, AAU에 정식으로 항의를……!!”
그렇게 지껄일 수 있었던 데에는.
그동안 이호열이 보여줬던 태도의 영향이 컸다.
플레이어는 초인이다.
위험 요소인 플레이어.
그들의 성격과 행동을 분석하는 건 각국 지배층의 숙제였던 바.
격식을 중시하는 태도, 까칠한 말투, 결벽적인 성격.
허나, 그보다 위에 존재하는 감정.
이호열은 자비롭다.
당연한 추측이었다. 막대한 능력을 거머쥔 이호열이 자비롭지 않았다면 세계는 지금보다 더욱 혼란했을 테니까. 그러나 명백한 착각이었다.
“벤쉬 윌리엄 선임.”
“……넵!”
“화염마법을 발현한 판단은 옳았네.”
악마.
혹은 악마와 다를 바 없는 이들 앞에서.
이호열은 절대 자비롭지 않았으니까.
“허나, 옵시디언 홀이라고 해도 대상의 정신에는 고통이 남는다. 비전 마법의 위력이라면 저들은 극심한 고통에 폐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겠지.”
기세가 등등해서는 대화에 끼어든다.
“뭐, 뭐, 뭣?!”
“우리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할 생각이었단 겐가!”
아마도 이호열, 그가 자신들의 안위를 생각해서.
저런 말을 내뱉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일 터.
하지만 말했듯 착각이었다.
“저들에겐 아직 쓰임새가 있다.”
“……?”
“그대의 마법은 최후까지 아껴두도록.”
“넵, 이 수석님의 조언을 명심하겠습니다!”
벤쉬가 고개를 숙이고, 그제야 끌려온 이들도 상황을 파악했다.
그렇다.
이호열은 자신들의 목숨을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모두 들었다. 그대들의 악행 모두를.”
차가운 말에서 직감했다.
누군가, 먼저, 사실을 토해냈구나.
이호열, 그가 서늘하게 말을 잇는다.
“분명히 말했거늘.”
“무, 무엇을 말하는 건지……?”
“부귀영화는 물거품과도 같다고.”
.
.
.
옵시디언 홀은 무간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래도 옵시디언 홀에 있는 이들은 그래도 팔자가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나야 그놈의 평정심 때문에 체감할 수 없지만, 무간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모양이었거든.
-“마티스 선임, 노고가 크셨습니다.”
-“아닙니다. 탑주님.”
흑마도학 선임, 마티스 딘 카를.
실력으로 따지자면 마르셀로와 동등하단 평가를 받았던 그였다.
발현자부터가 쉽게 동요하지 않아야 하는 흑마법의 성질을 생각하면……. 나를 제외하면 마티스는 마탑에서 무간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마법사일 터.
-“……다만, 현기증이 사라지지 않는군요.”
그런 마티스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무간에서 마티스에게 심문을 받은 일본 정부측 인사는?
말할 것도 없겠지.
아마도 폐인이 되어 남은 생을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을 거다.
가혹하지 않냐고?
아니, 그것조차도 가벼운 처분이었다.
-“고작 물질을 좇아 만행을 벌이다니.”
마르셀로가 입술을 깨물 정도였다.
간결하게 설명하면 이들은 레이먼 션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AAU를 통해 플레이어의 스탯, 스킬, 아이템의 수준을 전달했다.
거기서 추측은 확신이 되었다.
‘레이먼 션조차도 시스템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
그동안 내 낯부끄러운 풀네임을.
시스템 메시지로 사방팔방으로 떠벌린 게.
레이먼 션의 짓이 아니었다는 거지?
‘옛날 같았으면 처분에 참작해 줬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너그러워질 수 없었다.
‘정기 업데이트가 불합리하게 느껴졌던 게 계획된 일이었단 거야.’
과거, 정기 업데이트 내역을 떠올려본다.
왜, 본격적인 시작은 러시아에 아스큐라 백작, 흡혈귀의 성채 균열이 나타났을 때부터였다. 그 시점에서 나는 물론이요. 대다수의 플레이어에겐 아스큐라 백작을 처치할 능력이 부족했다.
내 시선이 옵시디언 홀의 정부 인사들을 향한다.
‘그걸 이 새끼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레이먼 션에게 협력했고.’
이들과의 거래를 통해 플레이어들의 수준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감당하기 어려울 수준의 정기 업데이트를 내놓은 거다. 레이먼 션, 그 녀석은.
‘그런 의미에선 내가 눈엣가시였을 거야?’
레벨도 불명.
정보도 불명.
뜬금없이 튀어나와서는 악마란 악마는 전부 처치하고 다녔으니까. 상당히 골치가 아팠을 거다. 내 정보를 파보려고 부단하게도 노력했겠지.
그러나 가능했겠냐?
AAU 대한민국 지부장.
박민재의 미친개다운 성격은 물론이요. 그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까칠했거든. 지금이야 내 앞에서는 다들 격식을 갖춰서 말이라도 섞지만, 그 시절엔 정말이지.
-“격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군.”
-“질문 따윈 받지 않겠다.”
-“감히 내 앞길을 막지 마라.”
……심하게 재수가 없었거든.
그러나 전부 과거의 이야기다.
레이먼 션, 네가 인류에 플레이어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도 여기까지란 의미다.
나는 입을 열었다.
“레이먼 션의 수족들이여.”
“……!”
단언하는 나의 말에 좌중에 얼굴에 절망이 떠오른다.
역시, 사회에서 추잡하게도 구르신 분들이라서 그런가?
눈치 하나는 빠르시군.
누군가 먼저 사실을 토해낸 걸 알아차린 모양.
물론,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손발을 잘라낼 것이다.”
화르륵.
그 말에 맞춰 벤쉬가 화염마법을 발현한다. 나름대로 눈치를 보고 발현한 거겠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다, 벤쉬 윌리엄.
“그러니 이제부터 발버둥쳐 보아라.”
“……발버둥이라니, 그게 무슨?”
“손과 발의 가치를 내게 증명해 보이란 뜻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나는 그대로 되돌려줄 생각이었으니까.
레이먼 션, 그 새끼들이 이 작자들을 통해서 인류를 기만했다면.
나 또한 이 작자들을 통해서 레이먼 션, 너를 기만해주리라.
“지금 즉시, 레이먼 션에게 전해라.”
그러기 위해선 레이먼 션, 녀석에게 혼란을 일으킬 만한 정보가 필요하겠지. 인류가 정기 업데이트 내용에 충격을 받아 절망에 빠진 것처럼.
‘아르카나 대륙의 창조주를 자처하는 너조차도.’
알지 못하는 정보를 알려주마.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랑펠의 성질머리가 거짓된 정보를 흘릴 순 없으니까. 나는 내가 숨기고 있는 진실 중에서 적당히 충격적인 진실을 하나 흘려야만 했다.
그래, 레이먼 션에게도 충격을 줄 만한 진실을.
‘젠장.’
그렇게 생각하니까 머리가 복잡하다.
그야 내가 숨기고 있는 게 워낙 많았어야지……!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라는 사실부터.
빌어먹을 풀네임까지.
찰나의 순간, 고뇌하던 나는 입을 열었다.
현실에서도, 아르카나 대륙에서도 플레이어의 일거수일투족까지는 살피진 못하는 레이먼 션이다. 특정한 상황 혹은 결과를 스스로 해석할 뿐이지, 그 원인까지는 파악할 수 없다는 뜻.
그런 의미에서.
네가 가장 답답해하고 있을 진실을 하나 풀어주마.
“흉조의 숨통을 쥐고 있는 것이 바로 나라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흉조의 뱃속에 계시는 우리 악크샨 선배님들이시지만, 어쨌든.
너는 흉조가 남쪽 바다에서 꼼짝 못 하는 이유를 모르잖아?
드높은 미적 감각.
사실 촉수 덩어리 흉조 따위.
개나 줘버려도 신경 쓰지 않을 그랑펠이다.
그러니 흉조도 네가 협조만 해준다면?
돌려줄 수 있다고, 선뜻 말할 수 있단 거지.
물론.
‘뱃속에 계신 우리 선배님들이랑은 알아서 합의해 보라고.’
*
황제는 보고를 간과할 수 없었다.
“엄히 다스리셔야 합니다, 폐하!”
황가, 세릭로즈의 이름은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방인은 그 이름에 관해 더더욱 알지 못할 터. 그러나 사내는 다짜고짜 황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고 했다.
뿐만 아니다.
‘클라우디.’
황제는 제국의 구원자인 이호열.
그의 또 다른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그렇기에 무시할 수 없었다.
“알현을 허락하겠다.”
황제는 세릭로즈의 위세에 의문을 품었었다.
4가문의 합의하에 세워진 꼭두각시 황제.
그것이 바로 세릭로즈 가문의 진실이었으니까. 그런데, 클라우디는 제국의 실질적인 주인 4가문을 굴복시켰다. 그 과정에 무력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클라우디의 이름을 밝힌 것만으로.
4가문이 클라우디 앞에 무릎을 꿇었으니까.
황제는 고뇌했었다.
대체 클라우디는, 흑암룡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황궁의 지하.
『전황의 서고』에 클라우디의 진실에 관해 묻고 싶을 정도로.
그런 와중이었다.
“폐하의 자비에 경의를 표하지요.”
클라우디의 상징이리라.
호열과 똑같은 은빛 머리칼을 가진 사내가 안토니움을 찾아온 것이다. 황제는 사내의 얼굴을 바라봤다. 엇비슷한 연령의 혈육이 저렇게도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이호열,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드높은 격식과 품위가 흘러나왔다면……. 클라우디의 탕아를 자처한 사내에게선 걷잡을 수 없이 퇴폐한 기색이 흘러 나왔다.
‘어떤 소리를 해도 믿을 수 없겠군.’
황제는 그 인상에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사내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세릭로즈, 황가의 이름도 모자라서 황가의 극비.
“우리 사이에 많은 대화는 필요치 않겠지.”
“폐하 앞에서 언행을 조심하ㄹ……!!”
“『전황의 서고』에 진실이 있다, 어린 세릭로즈여.”
전황의 서고의 존재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황제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떻게 전황의 서고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인가. 이유까진 알 수 없지만. 전황의 서고에 관해 알고 있는 것만으로 사내는 제국에 위험한 존재가 확실했다.
허나, 사내가 이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황제의 사고는 멈추고 말았다.
마력을 담아 은밀하게 속삭이는 텔레파시.
그 진실을 들은 것은 오직 황제뿐이었다.
“황제, 세릭로즈가 어째서 클라우디 멸문에 동참하였는가? 그 이유가 전황의 서고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우둔한 세릭로즈여.”
“……!”
제국이, 세릭로즈가, 클라우디 말살에 동참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