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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393화 (393/489)

◈ 393화. 우리를 막을 순 없다 (2)

디스커스의 부활.

소식을 접한 성전 연합군은 곧바로 아이언 캐슬 호로 집결했다.

집결하지 못한 건 스칼뿐이었다.

“걔가 드래곤의 흔적을 발견했다고요?!”

남태민이 되물었다.

스칼과 동행했던 살아있는 전설이자 낭만 탐험가, 로렌츠크. 로렌츠크는 자신의 탐험 비결을 스칼에게 전수하고, 아이언 캐슬 호로 복귀한 참이었다.

“그래. 인간이 무언가에 집착하는 모습은 언제나 흥미롭거든. 무엇보다 스칼, 그에게선 나와 비슷한 광기가 느껴졌네. 그래서 드래곤의 발자취를 쫓는 방법을 알려줬지.”

로렌츠크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뭐, 대단한 방법은 아니야. 만물을 떨게 하시는 드래곤들이 아니신가? 그만큼 땅에, 산에, 들에, 바다에 남겨진 흔적들이 뚜렷한 법이니까.”

악과를 삼켰다.

그 바람에 언제 악룡으로 타락해도 이상하지 않은 드래곤이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그들의 상태를 살펴야 할 터.

사실 용기사, 스칼이라면 적임자라고 할 수 있겠지.

레오니가 중얼거렸다.

“……근데, 쟨 왜 아까부터 반말이야?”

나보다 새파랗게 어려 보이는데?

로렌츠크를 향한 레오니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레오니의 절대적으로 작은 키에 로렌츠크의 앳된 외모를 고려하면.

둘은 누가 연상연하라고 할 것도 없이 친구처럼 보였거늘.

로렌츠크가 어른답게 웃어넘겼다.

“하하. 꿈을 잃지 않은 자는 늙지 않는 법이지. 재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주게나. 나 또한 내 꿈의 끝에 다다르는 순간, 주책에 맞게 폭삭 늙어버릴 테니까.”

그러든지 말든지.

사실 레오니는 별 관심이 없었다.

슥삭슥삭.

‘그 해골이 부활?’

레오니는 자신의 양손검을 가다듬는 데에 바빴으니까.

방금까지도 아르카나 대륙에 널린 악마를 쳐죽이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호열, 우리 대단하신 총대장님께서 사냥하셨던 마계의 리치가 부활했단다. 레오니와 마찬가지로 무뎌진 창끝을 마력으로 벼르던 히사기가 입을 열었다.

“리치이기에 자신마저 되살릴 수 있다는 걸까요.”

그 말에 치를 떠는 드워프들이었다.

“총대장님께서 우리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의심을 거두고 나서기야 하겠지만……. 그 해골 녀석, 우리와는 영 상성이 좋지 않아.”

드워프의 전투력?

객관적으로 상당했다.

개개인으로 보자면 우수한 장비에 비해 전투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군대 단위 전투에서 그들은 아르카나 대륙에서도 한 손에 꼽힐 화력을 자랑했다.

그런 드워프들이 엄살을 부리다니.

“상성이 좋지 않다니요?”

남태민이 되묻자 월스와일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내가 제련한 장비가 아르카나 대륙의 모든 공격을 막아낸다고 자신하지. 전설의 광물,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해골 녀석은 마계의 존재라네. 보다시피 수차례 제련에도 손상도가 복구되지 않았네.”

깡.

월스와일이 부식된 투구를 두들겨 보였다. 디스커스의 호흡에 부식된 아다만티움 투구가 드워프 최고 대장장이의 손길을 거쳤음에도 완전히 수리되지 못한 것이었다.

드워프 지도자, 체인워커가 말을 보탰다.

“그러나 우리에게 상성을 따질 여유는 없네. 총대장, 그가 명령을 내렸다면 우리는 명령에 따라 부활한 녀석을 성전 연합군의 이름으로 짓밟으면 될 뿐.”

스오오오─

아이언 캐슬 호가 이내, 공간 도약으로 아르카나 대륙을 가로질렀다. 베히스모스의 아가리. 그 끔찍한 장소로 다시금 성전 연합군을 인도했다.

로렌츠크가 반색했다.

“간만이군. 마계의 어귀를 목격하는 것도.”

그나저나……. 확실히 호열이 처치했던 마계의 리치가 되살아나 자신의 군단을 불려 나가고 있었다. 그 광경에 남태민이 대검을 치켜들었다.

스릉.

“시간은 놈의 편입니다. 시간이 끌리면 끌릴수록 언데드 군단을 기하급수적으로 불려 나갈 테니까. 처음부터 전력을 쏟아부어야 승산이 있지 않겠어요?”

“전력이라.”

체인워커는 아이언 캐슬 호의 화력을 떠올렸다.

그러나 지그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생각을 접었다.

맞부딪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시금 경험해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겐 경험이 필요하다.’

마계 진입에 앞서서.

마계의 존재와의 전투 경험은 귀중히 여길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주제를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도움이 될지, 짐이 될지를 알아야 한다.’

총대장은 마계의 리치를 압살했다.

압살까진 아니더라도 그의 힘을 빌리지 않고.

놈을 처치할 수 있는 수준은 갖춰야만 한다는 것이다.

체인워커가 월스와일에게 말했다.

“그대에게 아이언 캐슬 호의 제어권을 넘기겠네, 월스와일. 자네라면 적절한 순간에 아이언 캐슬 호의 전력을 사용할 수 있겠지.”

“……뭐?”

“다만, 될 수 있으면 우리를 믿어주게나.”

고오오.

그 말을 끝으로 체인워커를 비롯한 드워프, 그리고 거대 연합을 필두로 한 성전 연합군이 마력석을 통해 베히모스의 아가리로 텔레포트했다.

그리고 마주했다.

“뭐, 뭐야?! 이 해골바가지들?”

“뼈다귀가 지들 마음대로 붙어있는데?!”

“생긴 게 전보다 기괴해졌어요, 대장!”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디스커스의 군세와.

그 생김새들이 마치 잘못 조립한 것처럼 들쭉날쭉하다.

비유하자면 그래픽이 깨진 듯한 모습이었다.

클래스, 마창사.

마력의 흐름에 익숙한 히사기가 변화를 알아차렸다.

“마법이 불안정하게 발현된 듯싶습니다.”

콰작.

윽박지르듯 뼈를 박살 내는 대검.

남태민이 달려드는 스켈레톤을 분쇄하며 묻는다.

“그래서 불안정하게 발현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데?”

찌릿.

히사기가 죽음의 군세.

끄트머리에 보이는 디스커스를 응시했다.

이렇게 많은 사자(死子)를 되살려냈다는 건 마력량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라는 뜻. 그렇다면 탐색, 간섭, 발현에 이르는 과정이 문제라는 뜻이었거늘.

히사기가 중얼거렸다.

“리치가 발현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다고……?”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하던 순간이었다.

“아!”

문득, 경쾌한 음성이 들려왔다.

시선을 옮기자 천진난만한 표정도 모자라서.

맑은 동공을 반짝이는 로렌츠크가 있었다.

“이런 잊어선 안 될 걸 깜빡하고 있었군. 하도 끔찍했던 기억이라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말았던 모양이야.”

“그게 무슨…….”

“저건 아마도 부활이 아닐걸세.”

“네?!”

로렌츠크는 흐릿한 기억을 떠올렸다.

과거, 우연하게 마계에 발을 들였을 때.

로렌츠크는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경험을 했다.

그곳에서 마주했다.

감히 바라볼 수조차 없이 아득한 존재들과.

떠올리는 것만으로 다시금 소름이 돋았다.

“마법 발현이 불안정한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나? 아마도 그 원인은 마계의 리치, 저놈에게 정신이 없기 때문일걸세. 육체의 본능만으로 죽은 자를 되살리고 있다는 뜻이지!”

콰작.

역시, 각오했던 것보다 시시한 이유가 있었나.

남태민이 미간을 찌푸렸다.

“디스커스의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겁니까?”

“그래. 자네들도 봐서 알다시피 녀석은 이미 그대들의 총대장 손에 운명하지 않았는가? 아마도 저건 녀석이 마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예비해둔 또 다른 육체일걸세.”

“또 다른 육체? 씹, 그딴 게 가능해?”

레오니의 물음에 히사기가 고개를 끄덕인다.

“리치니까.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아니, 애초에 저런 귀찮은 짓을 하는 이유가 뭔데?”

“마계니까. 충분히 저래야 하지.”

로렌츠크가 당연하다는 듯 대꾸한다. 앳된 외모 때문에 어째 히사기를 흉내 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 자리에 그의 경험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쾅!

“로렌츠크, 자네와는 보다 많은 대화를 나눠봐야겠군.”

체인워커가 해골을 깨부수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렇다면 총대장께서 하이엘 님을 통해 우리에게 남기신 말은 틀리지 않았단 건가? 디스커스의 껍데기에 불과하니, 우리라도 충분히 놈을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 판단하신 거겠지.”

남태민이 피식 웃었다.

“그게 아니라 이 정도는 가뿐히 해내야 마계에 데려가 주실 거라고 해석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어쨌든,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데엔 변함이 없지만.”

그러니까.

[스킬, ‘광폭화’를 발동됩니다.]

파바바바박!

남태민은 전력으로 디스커스의 껍데기를 향해 쇄도했다.

바바리안의 고유 스탯, [야만]을 크게 증폭시키는 [광폭화]였다.

육체 능력이 대폭 상승하는 대신.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러야 했거늘.

“!”

히사기의 뱀눈이 커졌다.

거대 연합의 적자를 담당하는 남태민이었다.

[광폭화]를 발동할 때마다 자신의 대검을 부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평소라면 진작 내던졌어야 할 대검이 여전히 남태민의 손아귀에 들려있었다.

그것도.

꾸욱─

굳게.

“……설마.”

히사기가 흠칫했다.

“제어하는 데 성공한 겁니까, 야성을?”

히사기의 추측은 정확했다.

“후욱. 후욱. 후욱.”

거칠지만, 규칙적인 십호흡.

남태민은 야성에 지배되지 않았다.

솟구치는 야성을 자기 뜻대로 제어하고 있었다.

클래스 퀘스트를 충실하게 수행한 보상이냐고?

아니, 고작 퀘스트 보상으로 치부하지 마라.

[대검 마스터리 (Master)]

99퍼센트에서 정체되어 있던 대검의 숙련도가 마스터에 다다랐다.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던 검기(劍氣)의 수련의 성취가 더해졌다. 하르콘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던 검과 몸이 하나가 되는 신검합일의 경지는 아직도 멀게만 느껴졌지만…….

‘절대로 손에서 놓치지 않는다.’

붕.

남태민은 야성이 담긴 대검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

역시나 이번에도 호열 덕분이었다.

벽에 부딪힌 대검의 숙련도를 돌파할 수 있게 해준 건 아르카나 대륙에 발동 중인 수많은 버프 덕분. 그런 버프보다도 귀한 가르침을 호열에게 받았던 남태민이었으니까.

-“레벨은 숫자에 불과한 법.”

덕분에 남태민은 처음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호열 씨는 이런 경치를 보고 계셨던가.’

레벨, 그 이상의 영역을.

그 성장은 전장에서도 두각을 드러났다. 언데드 대군에 뚫고 혼자서 활로를 여는 남태민. 그 뒤를 쫓던 레오니가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하, 저 근육 덩어리가 진짜.”

치사하게 혼자 앞서나가다니.

“우쭐거릴 때가 아니었는데, 실책이군요.”

마탑에 출입하게 되고 마법을 깨닫게 된 이후.

남태민보다 확실히 앞서나가고 있다고 자신했던 히사기였다.

하지만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자신이 라이벌로 인정한 사내는.

“하지만.”

히사기의 뱀눈이 가라앉았다.

“혼자서는 무리일 겁니다.”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했나.

그러나 그 껍데기에 각인된 본능만으로도 군세를 되살린 녀석이었다. 과정에 오류하고 있다고 한들. 리치가 가지는 방대한 마력량만큼은 호열이 처치한 디스커스와 다를 바 없다는 의미였다.

쿠드드득─

추측의 증거가 눈앞에 있었다.

남태민이 박살 낸 스켈레톤이 눈 깜짝할 새에 되살아난다. 베히모스의 아가리, 지리적 특성상 강령술의 제물이 될 시체는 넘쳐났으니까.

더 나아가.

파지지짓!

남태민의 행동에 처음으로 제약이 걸렸다. 리치가 본능적으로 뿜어내는 마력이 워낙에도 방대했기에. 순수한 마력만으로 방벽을 형성한 것이었다.

“후욱.”

파지지직.

순수한 육체의 완력만으로 마력을 뚫어낸다? 극심한 격차가 존재하는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히사기가 움직였다.

스슥.

유려하게 전장을 휘젓는 창.

[스킬, ‘마창 기예-수룡 승천’이 발동됩니다.]

쏴아아아!

창 끝에서 물줄기가 솟구친다.

[스킬, ‘마창 기예-뇌격’이 발동됩니다.]

파지지직!

하늘에서 흩뿌려진 물방울.

그 사이에서 번개가 쏟아져 내린다.

속성 마법의 연계.

대량 사살에 특화된 마창사의 극의.

거기서 끝이 아니다.

히사기는 마탑의 지식을 떠올렸다.

스킬 수준에 머무른 상성이 아닌.

물고 물리는 마법의 오묘한 상성을.

‘방대한 마력, 순수마력마법과 유사하다.’

마탑에서 순수마력마법은 최강으로도, 최약으로도 불렸다. 절대적인 마력량에 따라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마법이 될 수도, 그 어떤 마법에도 휘둘리는 마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사할 뿐.’

저건 마탑의 정수가 담긴 순수마력학이 아니다.

그렇다는 건.

단순한 속성마법에 쉽게 휘둘릴 여지가 있다는 뜻.

[스킬, ‘마창 기예-화둔’이 발동됩니다.]

푹.

화염마법을 휘감은 히사기의 창이 마력의 방벽을 꿰뚫는다.

그와 동시에.

일대의 마력이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증발하기 시작한다.

화르륵!

그것이 신호탄이 됐다.

디스커스의 N번째 육체를 향해 쇄도하는 성전 연합군.

그들에겐 두려움 따윈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문득, 하늘을 향하는 로렌츠크의 시선.

그는 마안(魔眼)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째서인가, 단 하나의 마안만이 찬란한 은빛으로 빛나며 따스한 시선으로 성전 연합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렌츠크가 자신의 깃털펜을 손에 쥐었다.

“어디 보자. 밤하늘에 떠오른 그건 마왕의 눈이었다. 아니, 이게 아니지. 너무 딱딱하지 않은가. 낭만이 부족해, 낭만이.”

낭만에 예찬을 더해 미사여구를 덧붙였다.

“한없이 깊은 어둠 속에서 찬란한 빛을 내뿜는 건 굽어살피는 마왕의 눈동자였다. 아니, 어둠을 밝히는 여명이었다. 오, 찬란한 여명이 함께하는 곳에 패배는 존재하지 않을지니…….”

이윽고, 플레이어들의 시야에도 떠올랐다.

“……!!!”

[여명을 기다리는 자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지휘관이 당신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기가 대폭 상승합니다.]…….

‘그’의 존재감이.

*

펄럭─

[여명을 기다리는 자 5/5]

[세트 아이템 효과가 적용됩니다.]

[현재 적용 중인 세트 효과 : 5/5]

[1. 지휘관일 때 아군의 사기가 ‘최대치’가 됩니다.]…….

나도 말이야.

다 생각이 있어서였다.

절대 폼이나 잡으려고 여명의 자켓을 걸친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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