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9화. 출사표 (1)
“언니……. 호열이, 집에 온다는데?”
“뭐?!”
이예림의 말을 시작으로 모두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움직였다.
분주하게 움직이시는 이준욱 사장님, 최강희 여사님.
이예림이 부산스런 안방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밀었다.
“엄마. 왜 그렇게 유난이야?”
“시끄러, 안 그래도 정신 사나워.”
“역시 하나뿐인 아들이 좋긴 좋……. 아야!”
쭈욱─
실없는 소리를 보태던 이예림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늘어난다. 엄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귓바퀴를 잡아당기는 건 2호, 이지윤이었다.
“아 쫌!!”
이지윤이 철없는 동생을 거실로 연행하고는 말했다.
“예림아, 엄마 아빠 마음이 우리랑 같겠니?”
“왜,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틀린 말 했지. 우리는 호열이 얼굴이라도 보고, 자취방이라도 드나들어 봤지. 엄마랑 아빠는 호열이 저렇게 되고 나서 제대로 얼굴 보는 거 처음이시잖아?”
“처음 아니거든? 이호열, 그거 지난번에 얌체같이 새벽 다섯 시에 들러서는. 내 얼굴도 안 보고 금방…….”
“그러니까 ‘제대로’ 보는 게 처음이시라고.”
“그거야 그런데…….”
늘 호열이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사셔서 그런가.
오늘따라 유난이 심하다고 느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정말 그랬다.
이예림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잠깐, 그러고 보니까 간만에 이씨 가문 다 모이는 거네?!”
이지윤은 이예림의 되살아난 생기에 혀를 내둘렀다.
“……네가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 훤히 보인다.”
그러고는 이예림에게 자신이 들고 있던 무선 청소기를 건넸다.
“뭐야. 청소기는 왜?”
“호열이 오기 전에 치워라. 소파에 허물도 세탁기에 좀 넣고.”
“언니는 뭐 하고?”
“나? 나는 우리 아랑이 데리고 와야지.”
“아랑이? 큰언니 오늘 출근했잖아? 데려와도 돼?”
“언니 반차 쓸 거래. 언니 픽업하고 아랑이 유치원 가야지.”
……작은 언니는 다 계획이 있구나?
갑작스레 청소기를 넘겨받아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예림이 어쩔 수 없이 입을 꾹 닫은 채 청소기 전원을 켜려던 순간이었다.
이지윤이 덧붙였다.
“그리고 너, 엄마한테 괜히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아니, 왜. 내가 뭘 했다고?”
“몰라서 물어?”
슥.
겉옷을 걸친 이지윤이 다가와서는 속삭인다.
안방에 계신 엄마, 아빠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를 낮추고는.
“호열이가 달라졌다느니, 뭐니. 헛소리하지 말라고.”
이씨 세 자매에게 막냇동생 호열이?
좋게 말하면 관심의 대상이요, 솔직하게 말하면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았다. 호열이가 대단하든, 어쨌든, 플레이어였으니까. 균열과 괴물. 악마라는 위험에 노출된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이지윤이 단단히 주의를 준다.
“하여튼 그놈의 천마 소리 꺼내기만 해봐.”
“언니, 요새 트렌드가 마냥 착한 것보다 천마처럼 막 나가는…….”
“엄마 아빠 걱정거리 늘리지 말라고.”
물론, 두 사람은 호열이에게 그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근 삼십 평생을 티격태격하다가 이제 와서 태세를 변환하기엔 낯이 간지러웠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큰언니, 이은혜와 호열이는 대단했다.
엄마 못지 않게 호열이를 걱정하질 않나.
비위도 좋게 꼬박꼬박 누님이라고 극존칭을 쓰질 않나.
“나도 걱정하거든? 티는 안 내도.”
이예림이 입술을 삐죽였다.
“어쨌든, 알겠어. 내가 그것도 모를까.”
우리도 걱정이 되는데, 부모님의 속내는 말할 것도 없겠지.
혹시라도 아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안부를 묻고 싶을 때 묻지도 않는 부모님이셨다. 이예림이 꼬리를 내렸지만, 이지윤은 신발을 신으면서도 신신당부했다.
“특히 마왕에 마 자라도 꺼내면 너는……!”
“알았다니까?! 그리고 어차피 개소문이잖아, 그거.”
세상에 우리 막내가 마왕이라니.
“새벽마다 편지를 써붙이는 마왕이 어딨냐?”
마왕의 필수 자격이 효심이 아니고서야,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라는 건 지켜봐 와서 알고 있었다. 뭐, 뉴스를 보아하니 세상은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 같았지만.
이예림이 입맛을 다시며 말을 잇는다.
“나도 눈치 있어.”
휙.
안방을 향하는 이예림의 시선.
하지만 오해가 풀리고, 헛소문이 잦아들었어도 부모님의 노파심이 말끔히 사라질 순 없겠지. 이예림에게도 간만에 본가를 찾아온 호열이를 놀려먹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문득, 떠오르는 살풍경스러운 호열이의 자취방.
말없이 급습할 때마다 호열이는 없었다.
티백 녹차가 줄어드는 것 말곤 머문 흔적도 없었다.
아마 집에서 쉴 틈도 없이 바빴던 거겠지.
“간만에 집에 왔으면 푹 쉬다 가야지.”
이지윤은 그제야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제발 좀 그렇게 얌전히 있어 우리 동생.”
이지윤이 차 키를 확인하고 현관문 고리를 붙잡은 순간이었다.
불쑥.
되살아나는 이예림의 눈빛.
“근데, 인간관계가 어떤지는 물어봐도 되지 않나? 걔 말투가 그래서 제대로 친구는 사귀고 있을지, 나중에 며느리는 제대로 데려올 수 있을지. 셋밖에 없는 누나로서 순수한 의미로 걱정이…….”
이지윤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야.”
세 살 때부터 호열이 놀려먹던 버릇이 어디 안 간다.
“헛소리하지 말고, 호열이 오기 전에 설기 산책시키고 와.”
“……설기 산책?”
뭐라고 반박할 새도 없었다.
쾅!
현관문이 닫혔다. 산책이라는 말에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 설기가 이예림에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왔다. 이예림이 애꿎은 설기를 껴안고는 신세를 한탄한다.
“……어째 내가 막내가 된 기분이란 말이지? 호열이, 그게 갑자기 너무 철이 들어버렸다니까? 그치, 설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평소엔 잘만 짖더니, 왜 말이 없어?”
*
그 어느 때보다 옷매무새를 다듬는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
“음.”
이 순간.
거울 앞에서 떠나지 않는 몸뚱이만 봐도 알 수 있다.
비상사태다.
“적합하지 않겠군.”
……그래, 때와 장소에 따라서.
옷을 가려 입는 건 참 중요하지.
번쩍거리는 여명의 재킷을 벗은 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것도 적절한 복장은 아니거든?’
초심을 찾는 것도 아니고, 간만에 정장이었다.
금의환향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차려입을 이유는 없었거늘.
하기야 육체 단련에 매진할 때도.
구둣발을 포기하지 않는 그랑펠의 고집이었다.
슥.
결국, 나는 넥타이까지 제대로 매고 나서야 전신 거울 앞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보자, 포탈을 발현하면 본가까지는 한 걸음이나 다름없다. 가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단 뜻이다.
‘얼굴을 맞댄 뒤부터가 걱정이지.’
벌써부터 수치심에 뺨이 달아오르는 것 같구나……!
애증의 웬수들과 얼굴을 맞대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누나들이야 내가 언론에 노출된 이후, 멋대로 자취방을 찾아왔었으니까. 물론, 단톡방에서 오갔던 이야기를 떠올리면……. 사정을 알고 있는 누나들이라고 해서 안심할 순 없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아버님, 어머님.”
우리 이준욱, 최강희 여사님이 진짜 문제였다……!
매일 새벽 지극정성으로 편지를 쓰고 마법으로 편지를 날려보내서 효자 노릇에 충실한 나였다. 하루는 이예림의 눈을 피해서 꼭두새벽부터 찾아뵙기도 했었었지.
‘근데, 온 가족이 함께 얼굴을 맞대는 건 다른 문제라고.’
특히 내가 나온 기사를 하나도 빠짐없이 스크랩해서 보관하고 계시다는 아빠가 신경이 쓰였다. 웬수가 전해온 메시지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너 그만 유명해져
-아빠가 신문값이 너무 많이 든대
-네 기사 가위로 오리는 데에만 몇 시간 걸려 ㅡㅡ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읊조린다.
“불필요한 구설수에 오르다니, 면목이 없습니다.”
덕분에 나는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클라우디 가문 최후의 생존자, 그랑펠.
혈육을 끔찍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설정.
그 설정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발현될지……!
‘일단, 둘러대는 건 할 수 없다.’
어떠한 사연으로 마왕이 된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솔직하게 답할 수밖에 없겠지.
그것부터가 곤란한 일이다.
‘아르카나 대륙도 모자라서 마계를 밟게 생겼으니까.’
마계.
듣기만 해도 찝찝한 게 내가 부모라고 생각해도 자식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차라리 이놈의 주둥이가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르카나 대륙과 또 다른 세계.’
마계에선 [최후의 모험가] 효과가 발동되지 않을 테니까. 아르카나 대륙 때처럼 마냥 무사귀환을 자신할 수 없다는 뜻. 덕분에 나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면서도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빈손은 격식에 어긋나는 법.”
젊음의 묘약이라 통하는 성지 뮤온의 아리아 이끼를 챙겼다.
평소 같았으면 뇌물 아닌 뇌물로 걱정을 무마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겠지만. 이번에는 기대하지 말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일은 대충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평소와 경우가 다르다.’
차라리 몬스터나 악마와 전투를 벌였던 거라면 또 모른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나는 미국과 대립했다.
배후에는 레이먼 션이 있었지만, 세상은 강렬한 잔상만 기억하니까.
-……이걸 뭐라고 해야 되지?
-솔직히 포스는 마왕 이상 아니냐ㄷㄷ
-ㄹㅇ 처음엔 이호열이 균열 생성한 줄;;;
-메테오 반전시키는 것부터 그냥 위엄 오졌음 ㄹㅇ
특히나 이번 사태는 미국 대통령의 사망으로 일단락되었을 뿐.
레이먼 션이라는 흑막을 사냥한 게 아니었다.
세상이 혼란한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도 찾아뵙겠다고 한 거고.’
세간의 평가야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그랑펠.
그러나 천하의 그랑펠이라고 해도 혈육의 우려는 외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도저히 둘러댈 여지가 없어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그래도 자신이 없다. 가족 모임에서 버틸 자신이…….’
역시나, 이 복잡한 속내를 내색할 수 없었으니.
고오오.
결국, 나는 언제나처럼 꼿꼿한 자세로 포탈을 발현했다.
포탈 너머로 걸음을 옮겼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의 마음이 이런 걸까, 싶었거늘…….
야속하다.
내 팔자야.
귓가에 울리는 소리는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또각─
*
“하아. 설기야, 넌 지치지도 않니?”
왈왈!
엄살에도 설기의 목줄은 느슨해질 기색이 없다. 이예림은 산책을 당하다시피 설기에게 끌려다녔다. 산책길이 달라져서 그런가. 프로펠러 같은 꼬리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 말티즈 아니지?”
“조상 중에 분명 사냥개가 섞여 있을 거야, 설기 너는!”
“우리 연약한 큰언니가 널 어떻게 키웠던 걸까……?”
결국, 이예림은 녹초가 돼서 집에 도착했다.
“어?”
그리고 마주했다.
뒷모습이지만,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호열이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은발 머리카락도.
차려입을 대로 차려입은 수트 차림새도.
나름대로 잘 어울리는 하나뿐인 동생이었다.
“……크흠.”
이예림은 일단, 목을 가다듬었다.
작은 언니가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거늘.
입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 없었다.
왜, 천외천이다.
십좌의 마왕이다.
호열이를 연락처에 뭐라고 저장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으니까.
‘보자, 뭐라고 불러볼까?’
살포시.
설기를 껴안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데, 호열이는 여전히 우두커니 멈춰 서서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왔다고 내외라도 하는 거야, 뭐야?
그게 아니라면…….
자기에게 닥칠 시련을 알고 있는 건가?
이예림이 시치미를 떼고 담백하게 입을 열었다.
“왔어?”
그러자 호열이 뒤를 돌았다.
그런 호열의 시야에 걸린 건.
쏟아지는 석양.
그 아래의 이예림과 설기.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표정과 흔들리는 꼬리.
그 평온한 광경을 그랑펠식 화법으로 표현하자면.
“……!”
살아있는 누이와 가문의 충견이었다.
채 대답이 돌아오기 전.
이예림이 먼저 말을 이었다.
“……이호열, 너 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