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화. 꽃과 잡초 (1)
AAU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총책임자님께서 이번에도 용서하신 걸까요?”
미국의 대응은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자국민을 감싸기 위해서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미국, 전체가 사태와 관련되어 물러설 수 없다는 걸까. 총력전을 불사한 듯 마탑 수뇌부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실화야, 이거?”
뒤늦게 전해진 소식도 있었다.
AAU 미합중국 동서부 지부.
직원들이 전해온 사진에 경악이 흐른다.
“균열 결전용 무기까지 집결시켰었다는데요?!”
“사진 찍힌 거 보면 진짜에요.”
“진심이었단 거야?”
“아니,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개소릴 지껄인 놈만 나오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과잉반응을 하는 거래요? 만약에라도 총책임자님이 나서시지 않았다면…….”
저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정말 미국 땅에 떨어지고도 남았을 터.
그런 의미에서 성현준과 윤수겸.
두 사람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한시름 놨죠, 선배?”
“…….”
윤수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호열이 남겼던 마지막 말이 신경 쓰였다.
그대들이 부르짖던 마왕의 처분이라.
과연, 미국은 어떤 처분을 받게 되는 걸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질끈.
“일 났군.”
“……!!”
지부장 박민재, 그가 머리를 감싸 쥐었으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동요하지 않는 그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흘러갈 일을 떠올리자 박민재는 머리가 아득해지는 듯했다.
“지부장님, 괜찮으십니까?”
윤수겸이 다가와서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박민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추슬렀다. 그러고는 모니터를 흘겨봤다. 정확하게는 어나더 스페이스 호가 전해오는 균열 생성 좌표를.
“수겸아. 이제부터 좀 시끄러울 거다.”
“……네?”
“정말 쉴 새 없이 울릴 거거든.”
박민재의 경고는 곧장 실현되었다.
위이잉!
“규, 균열! 어디야?!”
끊이지 않고 갱신되는 균열 생성 경고 메시지.
어나더 스페이스 호에 오류가 생긴 건 아닐까.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
심지어.
“좌표가 저, 전부 미국입니다!!”
수십, 일백 개의 이르는 균열.
전부가 미국의 영토에 생성됐으니까.
성현준은 흠칫했다.
설마, 이호열 총책임자님께서 말씀하신 처분이라는 게…….
“저 균열들을 말씀하신 거였다고?”
성현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모두가 혹시나 하고 있었다.
이호열.
그가 균열조차 자유자재로 생성하는 경지에 이른 걸까, 하고는.
하지만 박민재가 말도 안 되는 착각을 끝맺었다.
“너희, 총책임자님을 정말 마왕으로 보는 거냐?”
박민재가 한 자, 한 자 힘을 줘서 말을 잇는다.
“세상이 어떻게 지껄여도 너희는 흔들리지 말아야지. 총책임자님이 균열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셨는데? 적정 레벨 같은 건 따지지 않고, 혼자라도 균열에 진입하셨던 분이셨다. 그런 분이 균열을 생성시키면서 처분을 내리신다고?”
“…….”
“후우.”
박민재가 숨을 고르고 진실을 말한다.
“미국은 그저 울타리 밖으로 내던져진 것뿐이야.”
“……울타리 밖이라니요?”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제로 산맥 출현 이후로 균열의 생성 빈도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게 제로 산맥이 가지는 무게 덕분일까?”
……끄덕.
그렇게 생각했던 이들 중 한 명.
성현준이 고개를 한 차례 주억거렸다.
아직 신입 티를 벗지 못했군, 성현준이.
박민재가 고개를 젓는다.
“개발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틀리지 않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제로 산맥이라는 고난이도 콘텐츠를 업데이트했으니까. 플레이어들이 산맥 공략을 끝마칠 때까지 새로운 콘텐츠는 아껴둔다는 느낌으로 말이야.”
끄덕끄덕.
“근데, 너희 레이먼 션 그 새끼 잘 알잖아?”
“……!”
“현실이 아직도 아르카나 대륙 전기로 보이나?”
레이먼 션.
녀석이 주도하는 업데이트에 인류를 향한 배려 따윈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악질적이었다.
한때는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한 최선의 수를.
정기 업데이트마다 내미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그동안 인류가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마탑이 현실을, 지구를, 전 세계를 자신들의 울타리로 감싸 안은 덕분이다. 다들 기억하고 있겠지, 마탑의 설정을?”
윤수겸의 눈이 번뜩인다.
“……절대불가침!”
“정답이다.”
박민재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르카나 대륙 전기에서 마탑은 최후의 최후까지 흔들리지 않아야 할 등대였다. 최고의 무력 집단으로 꼿꼿하게 서서 대륙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역할이었단 거지. 설령 제국이 멸망해도 마탑은 무너지지 않아야 했다.”
“그렇다면 제로 산맥 이후로 균열 생성 빈도가 급격하게 줄어든 게……. 마탑이 지구를 자신들의 영역으로 여긴 덕분이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제 알아차렸냐들?”
그렇다.
인류가 아르카나의 침식으로부터 잠시나마 느슨해질 수 있었던 건 마탑 덕분이었다. 절대불가침이라는 설정을 가진 마탑이 지구를 온전히 자신들의 보호구역이라 선포했기 때문이었다.
윤수겸이 설마 하며 말을 잇는다.
“악마족 몬스터가 주로 등장했던 것도……!”
“맞아. 총책임자님의 말씀처럼 악마들은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니까. 마탑의 영역이든 뭐든, 놈들은 신경 쓰지 않고 넘어온 거겠지. 하지만 마탑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녀석들은 다르다.”
꿀꺽.
박민재가 갈라지는 목을 적셨다.
“균열 하나하나에 아르카나의 몬스터들이 득실대고 있겠지. 마탑의 울타리 밖에서 이빨을 갈던 놈들이다. 울타리 밖으로 내던져진 먹잇감을 가만히 내버려 둘 이유가 있을까?”
그 시선이 마탑의 수뇌부를 향하던 대괴수용 결전 병기로 향한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군.
박민재가 담담하게 입을 연다.
“뭐, 저딴 걸 끌고 온 보람은 있겠군. 유진 매케인.”
*
[살육기계의 콰르텟]
[적정 레벨 : 500]
[균열 붕괴도 : 23.7%]
[대괴수 울랑의 늪]
[적정 레벨 : 550]
[균열 붕괴도 : 38.4%]
[달리온의 무덤가]
[적정 레벨 : 600]
[균열 붕괴도 : 42.4%]…….
댐이 무너졌다.
마탑이 틀어막고 있던 최후의 보루가 무너진 셈.
이보다 적절한 표현도 없으리라.
“그러니까 왜 쓸데없이 나서서 매를 버냐, 진짜!”
거대 연합의 분석관, 남철민.
위험 요소가 넘치는 아르카나 대륙이었다. 상대적으로 낮은 레벨 탓, 아르카나 대륙에 섣불리 진입하지 않았던 남철민이었다. 덕분일까. 남철민의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모두 국제 전화였다.
남철민이 액정을 흘겨봤다.
“참나.”
샤이닝을 시작으로.
미국의 수많은 길드, 플레이어들과 면식이 있는 남철민이다.
다들 거대 연합에게 도움을 구하려는 거겠지.
“애초에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 아니었잖아?”
마르셀로도 기회를, 총대장님께서도 충분한 기회를 줬다. 과오를 바로잡을 기회를 줬지만,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공격으로 화답했던 미국이었다.
남철민은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봤다.
“……나라면 철저하게 외면했을 거야.”
마탑을 기만한 건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더라도.
그동안 인류를 위해 스스로 희생해 온 호열이었다.
그런 호열을 곁에서 지켜봤던 남철민은 알고 있었다.
“억울해서라도.”
호열이 떠맡은 짐의 무게?
범인(凡人)이라면 하루도 소화하지 못하고 질식할 정도의 양.
간단하게 예를 들어볼까?
동생, 태민이에게 전해 들었던 체력 단련만 해도 그렇다.
-“형, 하르콘 스승님이 그러는데. 호열 씨, 단 하루도 체력 단련을 빼먹지 않았다고 하시더라고. 심지어 훈련량도 우리랑은 차원이 다르대. 대체 잠은 언제 주무시는 걸까?”
그런 희생이 하루아침에 악의적인 왜곡에 빛이 바래질 뻔했다.
만약, 자신이 호열이었다면…….
배신감을 느껴서라도 미국을 철저하게 외면했으리라.
그러나 이 순간.
“그럼에도 기다려 주시는 건가요, 총대장님께선.”
호열과 마탑은 그 자리.
상공에 머물러 있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인간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뜻이겠지.
“……젠장.”
휙!
남철민이 안경을 내던지듯 벗고는 전화를 받았다.
예상대로 미국 AAU 지부의 전화였다.
남철민은 참지 않았다.
동생의 스킬, 광폭화를 발동한 것처럼 쏟아부었다.
“나한테 전화할 시간에 용서를 구하는 게 순서 아니겠습니까? 급상승하는 균열 붕괴도를 보고도 현실 파악이 덜 된 겁니까? 진짜 미국을 생지옥으로 만들 생각은 아니잖아, 당신들도?!”
남철민이 경고했다.
“균열 붕괴도가 정말 마지막 카운트다운일 겁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모든 걸 사실대로 털어놓으세요. 그게 제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조언이자 경고입니다.”
작은 사견을 덧붙였다.
“긍지가 남아있다면.”
그 말에 결심한 듯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군.”
유진 매케인.
연줄을 쌓기 위해 사방으로 얻어둔 연락처가 이럴 때는 도움이 됐다. 유진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기절한 조슈아에게 향했다. 테이블 위의 포션을 조슈아의 입으로 흘려 넣었다.
“으윽.”
역시 보고도 믿을 수 없군, 아르카나.
“……유진? 당신 어딜 가려는 겁니까?”
유진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조슈아를 뒤로하고 지부장실을 나섰다. 마탑, 그리고 이호열. 하늘 위에 있는 저들과 어떤 식으로 의사소통해야 하는가.
유진은 고민하지 않았다.
‘아르카나의 방식이라면 분명…….’
어느덧 지부 사옥, 옥상 위에 선 유진이 입을 열었다.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하겠다, 이호열 유스라 총책임자.”
그러자 시선이 느껴졌다. 물리 법칙을 초월하는 경험. 아득히 멀리 떨어진 상공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호열의 시선이 느껴졌다. 유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유진은 자신이 모든 걸 뒤집어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다면 흔쾌히.
그러나 지켜보면 볼수록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유진이 씁쓸하게 말했다.
“고작 체스 말인 내게 그 정도의 가치는 없겠지.”
균열이 생성된 지금, 민간의 피해는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윗선에서의 연락은 없었다. 민간의 피해보다 자신들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덕분이었다.
“뭐가 미국을 위해서지.”
유진은 미련 없이 입을 열 수 있었다.
“이호열 총책임자, 이 사태를 주도한 건 백악관이네.”
첫마디를 뗀 유진이 말을 멈췄다.
콰지지직─
“……?”
플레이어가 아니기에.
“!”
자신의 눈에 균열은 보이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깨져가는 허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말하는 바는 간단했다. 균열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뜻이다. 유진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잇는다.
“전부 어리석고 썩어빠진 우리들의 잘못이지, 시민들은 잘못이 없다는 말이네. 그러니 마왕이여. 부디, 저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게나.”
질끈.
유진은 눈을 감았다.
자신을 향한 자비 따윈 바라지 않았다.
이 순간, 유진이 느끼고 있는 건 일말의 책임감이었다.
그리고 그런 유진에게 답이 돌아왔다.
“그대가 구했다.”
……내가 구해?
무엇을 구했단 말인가?
용서를?
“……?”
유진이 의아해하며 눈을 뜬 순간이었다.
스스스.
사방으로 퍼져가는 은빛 알갱이가 보였다.
플레이어도 아니며 아르카나에도 무지한 유진이었다.
그럼에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이호열 총책임자?”
일대가 그의 머리카락 색과 같은 은빛으로.
찬란히 물결치고 있었으니까.
이내, 유진의 시야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직지지콱.
붕괴가 임박했던 균열.
균열이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말이 뜻하는 바 역시 간단했다.
이호열, 그가 균열의 붕괴도를 『반전』시키고 있다는 것.
“아.”
긴장이 풀려서일까.
유진이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런 유진에게 음성이 이어진다.
“묻겠다.”
어째서인가, 무미건조한 음성이 따뜻하게만 들려왔다.
“그대에게 나는 여전히 마왕으로 비치는가.”
*
증인을 확보했다.
심문이야, 토파즈 홀이나 무간에서 제대로 하면 되겠지.
시급한 건 뒷수습이다.
나는 마력을 추슬렀다.
‘균열의 붕괴도를 반전시키긴 했지만.’
딱 그뿐이다.
나도 균열이라는 [『기이』]를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거든.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미국에 생성된 균열을 하나하나 클리어해야 한다는 뜻이다.
‘수백 개의 균열이라.’
혼자서는 붕괴하기 전까지 전부 클리어할 수 없었겠지.
그러나 지금.
내 배후에는 아르카나 최강의 무력 집단인 마탑이 있다.
‘빠르고 신속하게 클리어하자고.’
나는 입을 열었다.
“비바체(Vivace)가 좋겠군.”
[운율의 지휘봉]은 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음악 용어를 내뱉는 의도가 뭔데?!
하지만 다행히도 수치스러워할 새는 없었다.
마침 잘 걸렸…….
아니, 나의 수치심을 분산시켜 줘서 고맙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습니다! 제 비전 마법을 만천하에……!!”
“벤쉬 윌리엄 선임.”
“……예?”
나는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
“이 시간부로, 그대에게 ‘중책’을 부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