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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372화 (372/489)

◈ 372화. 그러니 이제 그만 (1)

클라우디령.

어둠에 뒤덮인 아르카나 대륙.

심상치 않은 낌새에 플레이어들은 복귀한 상태였다.

자신들끼리 머리를 모아 생각해 보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집안싸움일 수도 있다는 것까진 이해했어. 그런데 고작 집안싸움에 아르카나 대륙이 이 정도로 요동을 친다고?”

“고작이 아니야. 신화 퀘스트인가, 뭔가 하는 게 걸려있을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뭐, 특수한 조건을 충족해서 벌어진 일시적인 현상일지도 모르고.”

“맞습니다. 아무리 총대장님이 차원이 다르신 분이라고 해도 결국엔 플레이어시지 않습니까? 어떤 스킬이나 마법을 사용하셔도 대륙 단위를 좌지우지하실 순 없을…….”

멀리서 대화를 듣고 있던 드미트리는 한숨을 뱉었다.

“언제까지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건데.”

단순한 궁금증을 떠나서.

이쯤 되니 순수하게 걱정이 되는 수준이었다.

드미트리가 울적한 표정으로 깔린 어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남태민, 이 자식은 또 어디 간 거고?”

현시점에서 가장 큰 위협, 악룡(惡龍).

거대 연합은 작전대로 악룡 추적을 위해 아이언 캐슬 호와 합류한 상태였다. 단지 그 사실을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일일이 알리지 않았을 뿐.

거대 연합, 강은택이 드미트리를 흘겨봤다.

‘계획이 알려져서 좋을 건 조금도 없어.’

악룡, 유낙서스를 처치하는 데 기여.

거대 연합의 길드 마스터들은 단숨에 50레벨이 상승했다.

50레벨의 가치는 랭커일수록 더욱 와 닿는 법. 그런 세상에 정보가 알려졌으니, 강은택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오가던 대화를 떠올렸다.

-“기회가 오면 일단 달려들어야 하지 않겠어?”

-“물론, 어차피 인생은 한 방이거든!”

-“좋아. 목표는 크게 가지자고. 막말로 드래곤한테 스킬 한 번 쑤셔 넣을 때마다 10레벨씩 상승한다고 생각해 봐! 우리가 숨통을 끊어놔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때문에 강은택의 입은 더욱더 굳게 닫혔다.

클라우디령에 남은 소수의 거대 연합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드미트리가 강은택을 흘겨봤다.

“참나, 쟤네는 말해줄 기색도 안 보이고…….’

하지만 각자 이유가 있는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윽고.

클라우디령에 새로운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

멈칫─

카밀라의 광활한 시야에 마력이 일렁거렸다.

“……누군가 포탈로 진입했어.”

히든피스, 클라우디령.

그런 클라우디령과 아르카나 대륙을 잇는 포탈이다. 포탈을 통해 누군가 클라우디령에 진입하고 있었다. 허나, 말했다시피 플레이어들은 전부 클라우디령으로 복귀한 상태.

드미트리가 호들갑을 떨었다.

“이호열……. 아니, 총대장이 복귀한 건가?”

그의 머릿속에서 포탈을 통해 클라우디령에 진입할 인물은 이제 호열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누누이 말했듯 아르카나 대륙은 넓고 광활하다.

카밀라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 양방향에서 동시에 진입 중이야.”

“……뭐? 한 명이 아니란 거야?”

“그래.”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최소 둘이다.

플레이어들은 긴장했다.

누군가가 용케도 그 기나긴 이름을 꺼냈다.

“……혹시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아닐까요? 그, 그 인간이 총대장님과 동시에 클라우디령으로 복귀하는 중일 수도 있잖아요?”

집안싸움을 끝내고 돌아온 것인가?

생각도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던 사내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건 아닐 거야.”

그렇다고 하기에는.

아르카나 대륙은 여전히 한없이 깊은 어둠에 휩싸여있다.

그뿐만 아니다.

카밀라가 말을 잇는다.

“둘보다도 많아.”

“더 많다고? 신규 플레이어들은 아닐 거 아냐?”

“그리고……. 심상치 않아.”

스릉─

카밀라의 말에 록스는 말없이 검을 치켜들었다.

록스만의 행동이 아니었다.

클라우디령은 호열의 영지인 동시에 인류에겐 없어선 안 될 전초기지였다. 상대가 누구든 목숨을 걸고 지켜낼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검이 휘둘러지는 일은 없었다.

서로 다른 포탈에서 진입한 두 세력.

두 세력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들.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어이, 덩어리.”

“후후. 우리 붉은 눈 몰골이 말이 아니시군.”

“글쎄. 내 몰골을 비아냥거리기엔 지나치게 흠뻑 젖은 거 아닌가? 우물에 빠졌다고 변명하기엔 그 두툼한 허리 덕에 빠질 일 자체가 없을 것 같은데.”

“뭐, 뭣?!”

드미트리가 입을 열었다.

“……뭔데, 갑자기 만담이야?”

거물.

태초부터 아르카나 대륙을 지켜봐 온 거악 칠죄종조차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최근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방인인 플레이어들이 그들을 알아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범상치 않다는 건 외관으로 알 수 있었다.

드미트리가 스스로 타일렀다.

“아니, 방심하지 말자고. 겉모습이 휘황찬란하잖아?”

다이아몬드 대상단과 붉은 눈.

다이아몬드 대상단의 행렬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붉은 눈 쪽은 그 세력이 훨씬 적었지만. 개개인이 내뿜는 기세, 무장의 수준이 대단했다. 랭커들은 곧장 알아차렸다.

록스의 머릿속에서 견적이 나왔다.

‘라이언 하트 기사단을 아득히 웃도는 수준이다.’

아르카나인 중에서도 보기 드문 전력.

어쩌면 마탑을 능가할지도 모른다.

그런 범상치 않은 두 세력이 어째서 클라우디령을 찾았는가?

다행히도.

긴장이 고조되기 전.

저들이 먼저 말을 건네왔다.

“그대들이 소문으로만 들었던 모험가인가?”

붉은 눈, 샤힌 듄의 질문에 가몬드가 코웃음 쳤다.

“당신은 처음이겠군요, 샤힌 듄? 하긴 뭘 알겠어. 그에 비해 우리는 구면이라고 할 수 있겠죠? 봅시다, 모험가 당신네들이 사용하는 장비 하나하나에 나의 영향력이 닿지 않은 것이 없을 테니!”

……다짜고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가몬드의 눈길이 갸웃거리는 드미트리의 판금 갑주를 향한다.

“이 역시, 우리 대장간 물건이군요.”

“우리 대장간……? 당신 이게 얼마짜린 줄…….”

의아한 표정을 짓는 플레이어들의 의문을 잠식시킨 건.

이내,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호칭’이었다.

고개를 들어 내리깔린 어둠을 바라보던 두 사내가 입을 열었다.

“오래 걸리시진 않으시겠지.”

“드디어 서열을 확실히 할 때로군요, 샤힌 듄.”

“서열이라. 좋아, 어울려주지. 누구를 사냥했지?”

“후후. 놀라지 마세요. 무려 칠죄종!”

“치, 치, 칠죄종?!”

칠죄종.

그 호칭에 놀란 건 샤힌 듄이 아닌 플레이어.

정확하게는 드미트리였다.

거악, 칠죄종.

플레이어라면 그 존재를 익히 알고 있었으니, 경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감칠맛을 더하는 반응에 가몬드가 흡족한 미소를 짓기도 잠깐, 말을 끝마친다.

“무려 나태를 이 손으로 처치했습니다!”

“……!!!”

칠죄종 나태를 처치했다니?

쉽사리 믿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악마족 몬스터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는 플레이어들이기에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샤힌 듄이라 불린 사내가 저 말을 대신 부정해 주리라, 생각하던 때였다.

샤힌 듄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세등등한 이유가 있었군. 나는 식탐을 사냥했다. 검 한 자루로 충분했지. 너처럼 두툼한 뱃살도, 턱살도, 성수를 흠뻑 뒤집어쓸 필요도 없었단 뜻이야.”

이쪽은 칠죄종 식탐을 사냥하셨단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드미트리가 손가락을 접어보더니 입을 연다.

“사, 사실이라면 이제 일곱 중 몇 안 남은 거잖아?”

사실 여부를 떠나 일단은 놀랄 수밖에.

경악을 금치 못하기도 잠깐.

신경전을 벌이던 둘이 플레이어들을 바라봤다.

동시에 물어왔다.

“주군께서는 언제 영지로 복귀하실 예정이시지?”

주군……?

그쯤에서 플레이어들의 경악은 다시금 커질 수밖에 없었다.

각각 칠죄종을 처리하고 멀쩡히 복귀할 정도로. 강대한 세력들이 호열을 주군이라 칭하고 있었으니까. 이럴 땐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이 득이 됐다.

모두가 할 말을 잃었을 때 드미트리가 답했다.

“그 아무래도 개인 사정이 있으신 모양인지라…….”

“주군의 개인사라…….”

“그대들이 알고 있는 바를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드미트리는 눈치를 보다가 답했다.

“그 뭐냐. 총대장님께서는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 뭐였더라? 어쨌든, 로미오의 소식을 접하시고는 서둘러 움직이셨답니다! 신화급 퀘스트, 그러니까 엄청난 일을 벌이고 있어서……!!”

드미트리는 말 그대로 개떡같이 말했다.

하지만 두 사내는 눈치껏 알아들었다.

덕분에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샤힌 듄이 읊조렸다.

“아무래도 큰 착각을 하고 있군, 모험가들이여.”

가몬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클라우디를 잘 아는 이들에겐 어폐가 확실히 보였다. 그야 총대장과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는 별개의 인물이 아닌…….

“……잠깐.”

누군가에겐 끔찍한 진실을 전하려던 샤힌 듄.

그가 말을 멈췄다.

드미트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몬드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그 모험가의 시야라는 건가 보군요, 조수.”

모험가들에겐 모험가만의 시야가 있다.

샤힌 듄도 모험가에 관한 소식을 접하며 알게 된 사실이다.

따라서 샤힌 듄은 말이 끊긴 걸 무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궁금할 뿐이었다.

저들이 무엇을 보았길래.

이토록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그러나 누구도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떠오른 메시지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순 없어도.

[한없이 깊은 어둠 속 한 줄기 빛이 희미해집니다.]

그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기에.

.

.

.

아이언 캐슬 호.

“……!!!”

거대 연합의 얼굴에 경악이 서린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들에겐 당장 호열을 쫓을 수단이 있었으니까.

“체인워커 님!”

체인워커는 다급한 부름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네.”

짐작하고 있었다.

아르카나 대륙을 뒤덮은 어둠의 원천은 호열일 것이리라고.

아르카나 대륙이 어둠에 빠진 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하이엘과 디엔드.

호열과 연결된 두 정령이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우려를 가시게 해줬던 그때와는 다르게.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레오니가 입을 연다.

“……이거 괜찮은 거 맞아요?”

두 정령 모두 의식이 없었다.

마치 아르카나 대륙을 뒤덮은 어둠에 동화된 것처럼 말이다. 불안감이 싹트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체인워커는 동요하지 않고 아이언 캐슬 호를 몰았다.

‘이 순간, 누구보다 깊은 어둠에 빠진 건…….’

다름 아닌 호열일 테니까.

출격을 준비하는 거너를 비롯한 드워프 조종사들.

마침내 체인워커가 출격 명령을 내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총대장님을 수색한다!”

*

그랑펠은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에 비추는 풍경을 보았다.

저걸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보이는 건 칠흑처럼 깊은 어둠뿐이었다.

“…….”

어느 순간부터 어둠 사이로 비쳐오던 한 줄기의 빛이 사라졌다.

그랑펠은 그러한 어둠으로 발을 내디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목적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한없이 깊은 어둠을 비추던.

한 줄기의 빛이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그의 행보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것이 짐승이 됐든, 인간이 됐든, 악마가 됐든 예외는 없다.

그래, 설령 악마로서 천외천(天外天)에 도달한.

십좌의 마왕이라고 하더라도.

[열 번째 왕좌의 마왕, 부에르가 출현합니다.]

“이렇게 금방 마주하게 될 줄이야. 나를 맞이하러 마계의 입구까지 행차하신 건가? 그대 또한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좋다. 나를 현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제물이었다.”

온전히 현현한 부에르는 반가움에 인사를 건넸다. 인간으로서 천외천의 영역에 진입한 존재와는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러나 부에르는 그럴 수 없었다.

정확하게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 □□ □□□ □□□ □□□□□.”

지금의 ‘그’는 그때의 ‘그’가 아니었다.

저건…….

천외천조차 넘어선 ‘무언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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