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0화. 붓을 쥐다 (3)
칠죄종.
태초의 악에서 비롯된 일곱의 원죄. 그들은 고유의 권능을 가진다.
권능의 효과는 각각 다르기에 서로 간의 우위를 나눌 순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명확하다.
현재 칠죄종 중 가장 높은 무력을 소유한 건 분노다.
일곱의 형제들 중 유달리 강하게 태어나서? 아니, 말했다시피 칠죄종 간에는 서로 우위를 따질 수 없다. 확신할 수 있는 데엔 다른 이유가 있다.
꿈틀─
목덜미를 물어뜯겨 바닥에 널브러진 분노의 손이 움찔거린다. 템페스트가 반응했다. 뛰쳐나가 다시금 예리한 이빨로 분노의 육신을 찢어발겼다.
꿈틀꿈틀─
그럼에도 숨통은 끊기지 않았다. 상처의 정도로만 보았을 땐 진작 지옥의 불로 타올라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분노의 육체는 오히려 생기가 돌아왔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했다.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칠죄종으로 태어난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분노의 목소리가 들끓는다.
“그런가, 이게 분노라는 건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그래, 그랬어.”
다른 원죄와는 다르다.
탐욕, 질투, 색욕, 식탐, 나태…….
일상적인 원죄들과 달리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죄악이 바로 분노였으니까. 그런 막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인간에게서 뿜어져 나올 수 없다.
“벌레들을 지켜보며 분노할 순 없으니.”
하지만 지금 상황은 다르다.
한낱 벌레라 여겼던 인간이 자신을 물어뜯는 것도 모자라 형제들의 숨통마저 끊어놓았으니까. 움찔거리던 분노의 육체가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은가, 클라우디!!”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원죄, 분노.
분노의 기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먼저 지옥에 떨어진 칠죄종의 힘을 더한 것처럼 급격하게 상승했다.
퍽!
쇄도하던 악크샨의 수호령을 주먹으로 후려쳐 날려버릴 정도로.
그럼에도 분노는 우쭐대지 않았다.
그저 분노할 뿐이었다.
“날뛰어라, 클라우디. 나는 알고 있다. 네놈이 내면에 쌓아둔 분노를. 그날의 진실을. 네가 느꼈을 모든 감정을. 그래, 분노했기에 다짜고짜 나를 물어뜯은 것 아니겠느냐!”
여전히 꼿꼿하다.
시선을 피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을 관조하듯 바라본다.
그 모습에 분노의 핏줄이 꿈틀거렸다.
“고상한 연기는 집어치우란 말이다……!!”
콰콰콰쾅!!
*
[거악, 칠죄종 분노가 출현합니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요동칩니다.]
[필드가 변화합니다.]
저걸 단순한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
콰쾅!
‘그냥 전부 부숴대고 있는데?’
분노가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주위가 박살 난다. 인정하겠다. 그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완력 하나는 내가 여태껏 상대한 모든 상대 중에서 압도적이다.
콰카카캉─!
분노가 발길질하듯 발을 구르자 무너진 지반, 무수한 파편이 미사일처럼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나하나에 담긴 위력이 장난이 아니다. 마력 보호막을 전개해서는 마력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고오오오─
찰나의 순간.
나는 날아드는 무수한 파편에 간섭했다. 자칭, 건축 마법의 창시자. 쥐뿔도 없던 시절부터 돌덩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발현했던 나다. 탐색 과정 자체를 생략할 수 있으니, 숫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콰드드득!
파편을 멈춰 세우는 것도 모자라 곧장 방벽을 세운다. 시야를 어지럽히는 파편을 흩뿌린 이유는 간단하다. 내 빈틈을 노려서 공격을 퍼부을 속셈이 뻔히 보였다.
쿠콰콰캉!
과연, 예상했던 대로.
분노의 주먹이 솟아오른 암벽에 가로막힌다.
문제가 있었다면…….
분노의 힘이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는 거겠지.
후드드득─!
나름 두껍게 세운 것도 모자라 마력으로 보수 공사까지 마친 암벽이 산산조각이 난다. 무너진 돌벽 사이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분노가 얼굴을 내민다. 소리쳐 온다.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그날의 진실을!”
직업병.
악마 사냥꾼의 관점 덕분인가, 속셈이 훤히 보인다.
나의 분노로 자신의 힘을 더욱 성장시키고 싶은 모양인데. 그런 게 가능하겠냐? 무엇보다 이런 위급상황에서도 한 치의 변화도 없는 태도를 봐라.
[스킬, ‘천적관계’가 발동됩니다.]
그와 별개로 천적관계로 상승한 스탯으로도 움직임을 쫓아가기 힘들다. 짐작은 했다. 가벼운 손짓으로 템페스트를 전투 불능에 빠트렸던 때부터 말이지.
‘역시 방심할 수 없어.’
마왕에도 서열이 있듯 칠죄종에도 서열이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분노가 유달리 강해질 계기가 있던 건가.
알 수 없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
나, 이호열.
주제 파악 하나는 기가 막히다.
나는 내가 가진 패를 되돌아봤다.
[천적관계]로 상승한 스탯으로도 녀석과는 맞먹을 수 없겠지.
[집념]을 [근력]이나 [민첩]으로 전환해도 턱도 없을 거야.
‘여태껏 상대한 칠죄종의 수 배.’
그렇다면 [전설]은 어떨까?
전투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설이라면, 흑암룡과 악크샨이 있다. 다만, 악크샨 쪽은 큰 기대를 할 수 없겠지. 전설의 강함은 얼마나 넓게 울려 퍼지느냐에 달린바.
‘실체화한 악크샨은 사실상 신입 수준이니까.’
지옥의 선배님들이라면 또 모를까…….
그러나 [악크샨의 유지]를 발동하기 위한 필수 조건, 내게는 지옥의 불이 없었다. 그놈의 절차 때문에 [지옥의 횃불]을 탐험가 연맹에 반납한 참이었거든.
그렇다면 흑암룡 전설과 하이엘 혹은 디엔드와 귀철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는 건데……. 그거면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나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겠지.
‘근데, 그걸로 만족해서 되겠냐.’
하지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상위 마왕, 부에르.
녀석을 보고 했던 다짐이 문제였다.
천외천의 존재, 상위 마왕.
그들을 뛰어넘기 위해선 보다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설령 거품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이젠 그 거품을 진짜로 발현해 내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
이제는.
이 거품이 위에 짊어진 게 너무나도 많았으니.
“…….”
어쩌면 그런 나, 이호열의 잡념이.
그랑펠의 정신을 복잡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복부에 느껴지는 열감을 느꼈다.
분노의 광소가 들렸다.
“옆구리가 뚫린 지금도 꼿꼿하기 그지없구나.”
……젠장, 그럴 필요가 없었거든.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눈앞에 떠오른다.
[상태이상, ‘과다출혈’이 발생합니다.]
[상태이상, ‘기절’이 발생합니다.]
[첫 세계수의 축복이 ‘기절’을 거절합니다.]…….
주륵─
아무래도 제대로 뚫린 모양이다.
플레이어로 각성한 뒤 이렇게 큰 일격을.
그것도 악마에게 허용한 건 처음이 아닐까.
[첫 세계수의 축복]이 부상으로 인한 상태이상을 쉴 새 없이 상쇄하고 있었지만, 뜯겨나간 옆구리를 치료하지 않는 이상. 상태이상은 멎지 않을 것이다.
‘빌어먹을.’
실감하게 된다.
내가 얼마나 위태로운 길을 걸어왔는지를.
거품에 의존하지 않는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파박!
분노가 움직인다.
‘!’
당연한 행동이다. 분노는 나의 신세 한탄 따윈 들어주지 않았다. 이미 치명상을 입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 나를 향해 다시 발을 박찼다.
‘……패턴.’
대지의 파편을 미사일처럼 흩뿌린다.
그 파편에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사각으로 공격을 해온다.
아까는 방벽을 세워 막아보려고 했다.
별다른 효과가 없었기에.
방법을 바꿔본다.
이번에는 자칭 창시자가 아닌 무려 마탑에서 정식으로 인정을 받은 『반전마법』이다.
찌릿─
옆구리가 뜯겨나간 후유증 때문인가. 서클을 순환하는 마력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 몸이 멀쩡하지 않은 상태가 돼서야 깨닫게 된다.
‘……다들 기겁한 이유가 있었구나?’
반전마법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마법이었는지를.
이론마법의 창시자.
마르셀로는 반전마법을 이렇게 평가했다.
-“반전 마법은 마법적 상식을 초월하는 마법입니다.”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었어.
찰나의 순간, 마법을 역순으로 발현한다는 건 모든 과정에서 조금의 머뭇거림이 생기면 첫걸음을 내디디는 것조차 불가능하단 뜻이었으니까.
쿵!
덕분에 나는 둔탁한 충격과 마주했다.
슈웅─!
눈이 따라가지 못했기에.
무엇에 맞았는진 알 수 없었다.
보이는 건 빠르게 밀려나는 풍경뿐.
일반적인 마법사였다면 여기서 기절했을 거다……. 악마 사냥꾼, 거기에다가 하루도 빠짐없이 단련 클래스 퀘스트를 거르지 않은 덕분.
거기에 여명의 세트 아이템까지 갖춰 입은 덕분에. 나는 바닥을 나뒹굴지 않고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게 고작이었다. 단 두 번의 일격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거든.
그쯤에서 후회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려고 했던 게 문제였나…….’
하지 않던 짓을 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나, 이호열.
새삼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다 다리 찢어진다는 말을 깨닫게 된다.
‘……젠장.’
이쯤에선 인정할 수밖에 없겠는데?
어쩌면 나는 방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의식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니, 그랑펠은.
극심한 디버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득, 귀철의 말이 떠오른다.
-나의 주인이시여. 진정으로 저를 감격게 하시는군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발동된 순간.
귀철의 태도는 평소와 명백하게 달랐다.
내가 능력은 없어도 눈치는 빠르거든.
귀철이 인정한 건 내가 아니라 그랑펠이었단 거겠지.
태도를 바꾸는 귀철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누구처럼 솔직해서 좋다, 귀철.
‘……좋아.’
충격 요법이라고 해야 할까.
말 그대로.
살도, 뼈도 내어준 덕분에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천외천의 영역부터는 나, 이호열로서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조금 전에 봐서 알잖아?
이제부터 마주하는 적들은 내게 같잖은 잡생각을 품을 틈조차 주지 않는다. 틈을 보이면 곧장 그 틈을 파고든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작은 틈조차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리고 그런 존재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제부턴 뒤를 부탁한다, 그랑펠.’
[스킬,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발동됩니다.]
과다출혈의 후유증인가.
‘그게 아니라면…….’
점차 흐려지는 의식 속 떠오르는 메시지가 보였다.
[상태이상, ‘흑화’가 발생합니다.]
.
.
.
분노는 직감할 수 있었다.
육체에 차오르는 힘.
자신에게 칠죄종의 힘이 깃들고 있다고.
다섯의 손가락에서 각기 다른 기운이 느껴진다.
“탐욕, 질투, 색욕, 식탐, 나태여.”
분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나의 빌어먹을 형제들이여!!”
분노가 천적조차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분노는 칠죄종의 죽음으로 강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했던 시절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패턴이었다.
칠죄종 모두를 처치하고 싶다면, 분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가장 먼저 처치해야 하는 몬스터였다는 것이다. 분노가 호열을 향해 말했다.
“나의 분노를 간과했구나, 클라우디.”
녀석의 마법과도 육체와도 마주했다.
그러기 때문에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숨기고 있다고 한들.
저런 상처로는 자신을 극복할 수 없다고.
그러나 확신했기 때문일까?
분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은빛의 머리카락이 어느샌가 허리를 넘어설 정도로 길게 자라났다는 사실을. 이내, 울리는 목소리의 어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는 사실을.
“분노라.”
음성은 제대로 울리고 있었다.
“네가 느끼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한없이 깊은 어둠 속에서도.
“……?”
그러나 분노의 표정은 미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분노가 중얼거리며 마지막으로 스쳐 간 말을 되새겨본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역시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랬다.
‘격’이 달랐기에.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