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9화. 붓을 쥐다 (2)
듄.
붉은 눈의 일족은 거악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먹어라, 먹어치워라, 칠죄종 식탐이 쉴 새 없이 상태이상을 퍼부어도 붉은 동공에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식탐은 호기심이 생겼다.
‘일개 인간이 어찌?’
천적, 악크샨.
자연스럽게 그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악마 사냥꾼이 겹쳐 보였다는 것?
극찬 중에서도 극찬이었다.
그러나.
“샤힌 님, 저들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듄의 태도는 악크샨과는 명백히 달랐다.
샤힌에게 의견을 구한 사내는 주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식탐의 권능에 이끌려 이미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고만 이들이다.
카니발리즘.
인간이라면 지켜보는 것만으로 공포에 질려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샤힌 듄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익숙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분이시라면 틀림없이 저들까지 구원하셨겠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아샤라에게 기도를 올려라. 그리고 진심을 다해 저들의 명복을 빌거라.”
식탐을 처치하면 저들 또한 원래대로 돌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터.
그분이라면 그 상처 또한 위로하실 수 있겠지만.
자신들에겐 그러할 자신이 없었기에.
“그리하겠습니다.”
서걱─
듄의 곡도가 유려하게 춤을 췄다.
비장한 춤사위였다.
식탐의 얼굴에 당혹이 가시지 않던 이유였다.
“……네놈들은 대체 무엇이냐?”
태초부터 아르카나 대륙의 태동을 지켜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칠죄종이었다. 저런 육체와 정신력을 가진 이들이라면 더없이 훌륭한 그릇이 되었을 터.
자신부터가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이었다.
“한데, 내가 어찌 너희들을 알지 못하는 것이지?”
샤힌 듄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뭐라고?”
“우릴 알아본 건 클라우디밖에 없었으니.”
“……!”
식탐은 지레짐작했다.
아무래도 저 듄이라는 놈들과 클라우디 사이엔.
자신이 파고들 수 없는 끈끈한 무언가가 있노라고.
그렇다면.
‘내키지 않지만.’
결국, 전면전을 펼치는 수밖에 없단 말인가?
“샤힌 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샤힌 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거죽 아래에 빙의했던 식탐이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스와아아악─!
살갗이 사방으로 찢겨나가더니 그 사이로 어마어마한 양의 살점이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그 덩치가 초마다 배로 늘어나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살점에 뒤덮인 식탐의 얼굴.
우물우물─
그 형태가 기괴하게 바뀌어간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입이 나타난다. 식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육중한 몸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입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수백 개의 입에서 음험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나의 식사를 방해한 각오는 되었는가?”
악마족은 성장한다. 태초부터 아르카나 대륙의 부정적인 감정을 먹고 자란 거악이다. 심지어 식탐은 탐욕처럼 죽음을 경험하지도 않았다.
“대답.”
주변이 뒤틀린다. 플레이어들의 용어로는 필드가 변화한다. 마치 만물을 집어삼키겠다는 것처럼. 식탐이 모든 걸 집어삼키며 몸을 불려 간다.
그 시선이, 입이 듄의 일족을 향한다.
“아니, 네놈들의 의사 따윈 중요치 않다.”
이 몸은 거악이다.
클라우디이자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 천적인 녀석만 제외한다면 아르카나 대륙의 어떤 존재라고 해도 감당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드래곤과 엘프, 초월자 앞에서도 꼬리를 내빼지 않았던 것처럼.
그러나 식탐은 간과하고 있었다.
“이봐, 하나만 묻겠다. 악마.”
샤힌 듄의 출신지를.
샤힌 듄은 거악의 모습을 한눈에 담았다.
시야를 벗어날 정도로 거대하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한눈’에 담겼다는 게 중요했다.
‘그때’와는 다르게.
샤힌 듄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네놈과 마계의 마왕 중 누가 더 강하지?”
식탐은 한낱 인간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가 싶었다.
“무어라?”
어느 쪽으로든 불쾌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왕을 자칭하는 잡종들과 비교하는 것이라면 모욕이었고, 십좌의 마왕과 비교하는 것이라면 자신을 얕잡아보려는 기만에 가까웠으니.
“건방지구나.”
식탐은 그렇게 답했다.
그런데, 인간의 반응이 더욱 가관이었다.
샤힌 듄은 웃었다.
“하긴, 그 수많은 입으로도 인정하기는 어렵겠지. 그렇다면 내가 평가해주마. 너는 그 녀석에 비해서 형편없이 약하다.”
“!”
드러나지 않았다고 한들.
모든 이들에겐 살아온 배경이 존재하는 법.
듄의 일족도 그러했다.
이 순간, 샤힌 듄이 거악 칠죄종 식탐 앞에서도.
태연할 수 있는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샤힌 듄은 그날을 떠올렸다.
그때.
그것은 하늘에서 나타났다.
샤힌 듄의 적안이 처음으로 잘게 흔들렸다.
“……!”
식탐은 샤힌 듄의 동요를 알아차렸다. 자신의 앞에서도 자신만만했던 녀석이 과거를 회상하는 것만으로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다니…….
‘어떤 기억을 떠올렸길래?’
의문에 휩싸이기도 잠깐, 샤힌 듄이 입을 연다.
“검을 쥔 팔뚝 하나에 불과했다. 웃기지 않나? 하늘이 갈라지고 튀어나온 게 팔뚝 하나라니. 그런 팔뚝 하나에 우리의 고향, 세오른 대륙이 멸망해 버렸다니.”
“세오른……?”
식탐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듄의 일족!
그랬군, 알아보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저들은 아르카나 대륙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도 머릿속은 명쾌해지지 않았다. 세오른 대륙을 멸망으로 몰고 간 게 고작 팔뚝 하나라니.
그런 건 칠죄종 ‘분노’에게도 불가능한…….
사실을 부정하던 중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마계의 마왕’이란 단어.
식탐이 설마 하며 입을 벌렸다.
“십좌의 마왕……!”
“너희는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군.”
샤힌 듄은 오래된 기억을 되짚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자신의 기억이 아니었다.
멸망한 세오른 대륙에서 아르카나 대륙으로 도망치던 순간.
그를 경험한 선조의 기억이었다.
붉은 눈에 새겨진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이었다.
그래, 그 유지가 자신의 걸음을 이곳으로 인도했으니까.
샤힌 듄이 입을 연다.
“녀석의 이름은 바알.”
“……!!”
눈을 대신하는 식탐의 입이 더더욱 크게 벌어진다.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십좌 중에서도 첫 번째 왕좌의 바알이라면, 팔 하나만으로도 대륙을 멸망에 이르게 하기 충분할 터.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저들의 존재 자체가 의문이었다.
식탐이 진심으로 물었다.
“어찌 바알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이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샤힌 듄은 질문에 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짙은 듄의 피를 물려받은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붉은 눈에 새겨진 기억을 온전히 읽어내는 건 쉽지 않았으니까.
그날의 광경이 보이기는 했다만.
자욱한 안갯속을 바라보듯 흐릿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깨닫게 되었다.
어째서인가.
어느 순간부터 그 광경이 또렷하게.
기억이 선명해진 덕분이었다.
샤힌 듄은 웃었다.
“나도 의문이군.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한 거지.”
멸망의 순간.
바알의 검은 찰나지만 확실하게 멈췄다.
바알의 검이 허공을 향했기 때문이었다.
절규하던 마계 악마들의 음성이 기억을 스쳐 간다.
-“어째서 그 막대한 제물을 헛되이 하는 거냐, 바알!! 이날을 위해서 마계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 알고 있는가? 마계는 고작 세오른 대륙에 만족할 수 없다. 계약을 이행하라. 그 검으로 아르카나 대륙으로 향하는 문을 열라는 말이다!!”
악마들은 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듄의 붉은 눈에는 확실하게 보였다.
세오른 대륙 멸망의 순간.
바알을 막아선 건 은발의 사내였노라고.
그렇다, 클라우디였다.
그것도 어째서인가.
얼마 전, 연회에서 마주했던 클라우디의 가주였다.
-“보여주지 않아도 전부 알고 있다.”
-“바알, 너를 사냥할 방법까지도.”
-“열등한 족속에게 이해는 바라지 않았다.”
-“영광으로 여겨라. 내가 친히 깨닫게 해주마.”
그가 바알을 도발.
시간을 끈 덕분에.
듄의 일족은 살아남아 아르카나 대륙을 밟을 수 있었다.
“나는 어째서 알아보지 못했는가, 듄의 은인을.”
그저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클라우디의 초대에 응하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된 감사조차 표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기 짝이 없을 정도였으니.
스릉─!
그러니 지금이라도 증명할 때였다.
클라우디를 향한 충성심이 그저.
클라우디가 위대한 가문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까 샤힌 듄은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아까부터 혼자서 무어라 중얼거리는……!!”
푹─!
악마와는 불필요한 대화를 삼가라.
그것이 그분의 가르침이셨으니까.
.
.
.
비단 칠죄종 식탐에게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었다.
촥─!
칠죄종 나태는 차디찬 감각에 눈을 떴다.
“……어라?”
눈을 떠보니 팔다리가 구속되어 의자에 묶여있는 자신이 보였다.
찬물이 끼얹어진 채.
나태는 기억을 되새겼다.
낮잠을 청하려 눈을 붙인 게 불과 몇십 분 전 같았는데…….
“이런, 네프리피트여. 나를 불렀던 모양이구나.”
여신교단에 숨어들었던 진명의 악마, 네프리피트.
그녀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응답을 받지 못해서 이미 지옥에 떨어진 후인 듯 싶었다.
아무래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모양이야.
나태가 나른하게 숨을 뱉는다.
“흐아암. 유감이다.”
손발이 구속된 상황이지만, 나태는 위기감 따위 느끼지 않았다.
어디 하루 이틀이란 말인가?
인간의 몸을 빌려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그 값을 지불하지 않아 감옥에 갇혔던 것.
그게 나태의 마지막 기억이었으니.
“……?”
그러나 밝아지는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심상치 않았다.
감옥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반짝거린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금은보화였다.
치렁─
심지어는 사지를 구속한 사슬 또한 금은보화 중 하나였다.
나른하기 짝이 없었던 나태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하?”
은으로 만든 구속구였다.
나태는 곧장 깨달았다.
이들은 나의 정체를 알고 있노라고.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알죠? 나는 게으른 자를 매우 싫어합니다, 조수. 그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그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거든요.”
“알고 있습니다. 상단주님의 까다로운 평가에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니까요. 덕분에 저도 매일같이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요샌 아첨만 드려야 하는 게 아닌가, 고심하느라 말입니다.”
“크흠. 위압감을 보여야 할 판에 불필요한 농담을…….”
헛기침도 잠깐, 말이 이어진다.
“어쨌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게으름의 원흉이신 우리의 거악, 칠죄종 나태. 그대를 추적하는 데에 내가 지출한 금화가 몇 닢인지 따져봅시다!”
그저 악마라고 여기면 몰라도.
내가 칠죄종 나태라는 것까지 파악하고 있다고?
나태는 그쯤에서 위기감을 느꼈다.
은으로 된 구속구든 뭐든.
팔다리가 녹아내리는 한이 있더라도 벗어 던져야만 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알아차린 것인가?
“참고로 그 은 구속구 드워프제입니다. 금화가 아무리 많아도 쉽사리 구할 수 없는 드워프제라고. 부쉈다가는 곱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만 알아두도록.”
“……!”
“뭐, 그럴 힘도 없겠지만.”
그럴 힘이 없다?
나태는 발끈했다.
나는 거악이다.
이런 구속구 따위로 구속할 수 있는 존재가…….
촥─
다시금 쏟아지는 찬물.
치이이이익─!
아니, 평범한 물이 아니다.
“이건……?”
너무나도 뜨거워 감각이 차갑다 착각하고 있던 것뿐.
그랬다.
나태의 머리 위에 쏟아진 건 어마어마한 양의 성수(聖水)였다.
“여신교단 성지 뮤온이 사라진 바람에 성수를 수급하는 데에도 어마어마한 금화를 사용하고 말았죠, 조수? 우리 다이아몬드 상단이 정확하게 얼마나 손해를 본 겁니까?”
“성수의 가격이 대략 열 배. 운송비는 다섯 배 폭등했습니다.”
“열 배 하고도 다섯 배라……. 이런 빌어먹을 악마 놈들이.”
서걱서걱─!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건.
신경적으로 양피지를 긁는 펜 촉의 소음뿐이었다.
나태는 타들어 가면서도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나태가 전략적으로 이를 갈았다.
“치졸하구나, 인간.”
“치졸하다?”
“그림자 뒤에 숨어서 나를 기만하는 것이냐?”
“아아.”
눈을 마주할 수 있다면 녀석에게 권능을 발현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나태의 바람과는 다르게 대답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주제 파악이야말로 장사꾼의 미덕입니다. 나와 상대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죠. 붉은 눈과 다르게 나는 강하지 않으니까. 뭐, 가진 건 돈 뿐이니까. 그저 내 방식대로 그대를 사냥하는 겁니다.”
“……!”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이아몬드 대상단의 주인, 가몬드 필.
가몬드는 은으로 된 갑옷과 장신구, 그것도 모자라 성수를 몸에 끼얹은 채로 나태와 마주하고 있었다. 샤힌 듄과는 명백히 다른 방식이었지만, 그 효과는 못지 않게 탁월했다.
가몬드가 조수에게 말했다.
“어때요. 방금 대사는 좀 괜찮았지 않나요, 조수?”
“사족을 덧붙이셔서 무색해졌습니다.”
“기준 참 빡빡하기도 해라.”
가몬드는 너스레를 뱉었지만, 실제로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돈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몬드이기에.
눈앞의 악마에게는 증오를 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알고 있습니까? 나의 실크로드는 대륙 곳곳에 뻗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악마, 그대들이 아르카나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어준 덕분에. 우리 다이아몬드 상단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속이 쓰리지만……. 뭐, 그건 제국 보험에서도 보장해주지 않는 자연재해 비슷한 거였다고 치자고. 그런데…….”
가몬드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른다.
“박살을 낼 거면 음지도 똑같이 박살을 내야 하는 거 아닌가? 조수, 그 소식이 사실입니까? 오크 옥션의 지하도는 큰 피해를 받지 않아 무사하다고요?”
다이아몬드 상단과 오크 옥션.
아르카나 대륙의 양지와 음지를 양분하던 두 상단.
하지만 악마 때문에 그 균형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가몬드는 성수에 젖어 눅눅한 이마를 짚었다.
“불공정계약을 당할 때의 기분이 이런 거였군요, 조수.”
그렇기에 가몬드는 클라우디의 명령을 받아들었을 때 기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라던 일. 달갑게 막대한 금화를 쏟아부었다. 치밀한 계획을 세워 실행했다.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황폐한 대륙에 어떻게 멀쩡한 주점이 있었는지. 때마침 게으름을 피우기 적당한 장소가 있었는지. 희한하게도 너그러운 주인장이 있었는지.”
“……!”
“애초에 그런 걸 신경 썼으면 악마도 아니었으려나?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모든 건 처음부터 그대를 꾀어내기 위한 함정이었으니까.”
가몬드가 냉철하게 손익을 따진다.
“나는 게으른 자를 싫어하고, 클라우디께서는 악마를 싫어하시니. 문제가 될 건 없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가 더욱더 잔혹하게 녀석을 다뤄도 되겠지요, 조수?”
처음으로 흔쾌한 동의가 이어진다.
“상단주님의 말씀이 더없이 옳습니다.”
그와 동시에 천장에서 성수가 쏟아진다.
“이 녀석드으으을……!”
치지지지직!
*
문답무용.
템페스트가 거악의 목을 물어뜯는다.
나는 거악.
아니, 사냥감을 바라보며 차갑게 내뱉었다.
“잊었다면 상기시켜 주마.”
너무나도 커서 알아볼 수조차 없는 큰 그림이라면.
그 열등한 머릿속에 직접 작가의 의도를 새겨 주마.
나는 밤하늘을 수놓은 마안(魔眼) 아래에서 선언했다.
“내가 바로 너희의 진정한 공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