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7화. 누구냐, 넌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가 신화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플레이어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인물?
당연하게도 호열이었다.
“……시, 신화라고? 월드가 아니라?”
듣도 보도 못한 신화급 퀘스트!
그걸 수행할만한 인물이라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에서 호열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과도할 정도로 긴 이름 중 익숙한 단어가 하나 있었다.
“저거, 클라우디령의 클라우디겠지?”
그렇다, 클라우디였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까지 클라우디령에서 그 이름의 위대함을 체감한 플레이어들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의문은 여전했다.
샤이닝.
드미트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아니, 근데 저게 진짜 이호열이 맞긴 한 거야?”
“뭐가 문젠데?”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카밀라에게 토로한다.
“보면 몰라? 이름 그 자체가 문제잖아!!”
그랑펠 클라우디…….
아니, 뭐라고 했더라?
그 풀네임은 읊기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호열, 멀쩡한 이름 놔두고 저따위 이름으로 불릴 이유가 뭔데?”
자신의 이름을 냅두고 저런 해괴망측한 이름으로 불릴 이유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드미트리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마지막에 저 로미오! 줄리엣도 있는 거야, 뭐야. 어쨌든……!”
잠자코 있던 록스가 입을 연다.
“글쎄, 내 생각은 좀 다른데?”
“뭔데, 록스? 뭐, 감 좀 잡았어?!”
“응, 저 그랑펠이 플레이어가 아닐 가능성.”
“뭣?!”
현실이었다면 월드 메시지의 주인공은 단연 플레이어밖에 없었겠지만, 이곳은 엄연히 아르카나 대륙이었다. 그건 무시할 수 없는 변수였다.
카밀라가 동조했다.
“그치~ 옛날엔 NPC들도 자주 오르내리곤 했었으니까.”
“아르카나인도 퀘스트는 수행할 수 있어. 그저 시스템 메시지를 목격할 수 없을 뿐이지. 가능성은 높지만, 섣불리 확신할 단계는 아닐지도 몰라.”
“하씨. 답답해서 안 되겠다.”
하지만 그 가능성 중에서도 가장 확률이 높은 건.
역시나 저 그랑펠 클라우디 뭐시기가.
호열이 맞다는 선택지였다.
드미트리의 근육질 팔뚝이 움찔거린다.
“그냥 내가 총대 메고 물어볼게, 록스!”
월드 메시지로 떠오른 그랑펠 뭐시기가 정말 당신의 이름이 맞는지, 당신의 이름이 맞다면 어째서 그러한 이름으로 불리시는지, 그러한 이름으로 불리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드미트리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니지, 메시지에 떠오른 거면 본인이 지은 아이디일 가능ㅅ…….”
카밀라가 그런 드미트리를 흘겨본다.
“너 정말로 자신 있어?”
“……왜? 격식만 지킨다면 문제가 될 건 없잖아?”
“하기야. 격식이면 뭐든 대답해 주셨으니까.”
그 당사자가 듣는다면 소름이 돋아날 계획을 세우는 샤이닝의 간부들. 하지만 그들과는 다른 고민에 빠진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거대 연합이었다.
클라우디의 대저택.
“우리한테는 장기전이 될 거야.”
“평범한 사냥이 아니니 말입니다.”
“그래. 우리 팔자가 이렇게 기구하지, 뭐.”
남태민, 히사기, 툴툴거리는 레오니와 스칼까지.
선발대로서 이미 한 차례 아르카나 대륙을 밟았던 넷이었다. 버프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었으니, 곧장 아르카나 대륙으로 뛰쳐나갈 이유는 없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뒤처지는 것 아니냐고?
히사기가 다시 한번 상기한다.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벨은 숫자에 불과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호열 총대장님께서 오래전부터 남기신 말씀.
정작 당사자에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지만…….
히사기를 비롯한 타인이 그 내적 고민을 알 수 없었으니.
지금처럼 해석은 달라질 수밖에.
히사기가 의미심장하게 말을 잇는다.
“또한 저희의 임무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심지어 넷에겐 다른 플레이어와 달리 주어진 임무가 있었다.
아르카나 대륙에 발을 들인 이상.
더더욱 간과하지 못할 존재들.
남태민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막아봐야지, 악룡.”
악룡, 유낙서스를 상대로 맹활약을 펼친 이들.
어찌보면 경험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대 연합은 자신들만으로 드래곤을, 그것도 악마로 타락한 드래곤을 이길 생각은 품지도 않았다.
“일반적인 드래곤 피어만 하더라도 우리의 정신력으론 버틸 수 없을 텐데. 거기에 악마족 특유의 상태이상까지 달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 간도 컸다, 그치?”
어떻게 유낙서스에게 달려들었던 거야?
스스로가 대견해질 정도였다.
레오니가 흐뭇한 표정을 짓는 남태민에게 말한다.
“그러니까 정신들 똑바로 차려. 아이언 캐슬 호를 타고 활동한다고 해도, 마주치게 된다면 결국 유낙서스 때처럼 육탄전을 벌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아이언 캐슬 호의 드워프를 필두.
거대 연합과 스칼은 호열이 아르카나 대륙에 안배해 둔 세력들과 함께 악룡을 최우선적으로 추적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물론, 최선의 방법은 따로 있었다.
남태민이 별안간 두 손을 모으고 질끈 눈을 감는다.
“벨리에 선임님, 아르카나 대륙에서도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미 한 차례 신세를 졌던 치유마법학 선임, 벨리에. 그녀가 악룡이 삼켰다는 악과를 정화할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할 수 없었다.
마탑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목격한바.
스칼이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한다.
“지금으로선 헛된 기대다. 오히려 막연한 기대는 벨리에 선임을 더욱 큰 부담감에 시달리게 하겠지. 뭐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래서 우리끼리만 하는 얘기잖아. 그보다……. 정작 너는 뭘 책임지고 있는 건데, 스칼? 길드도 없으면서 굉장히 잘 아는 것처럼 말한다?”
“나의 가문에 관해서 말하지 않았던가?”
“아니, 우리 남씨 가문 챙기기도 바쁜데. 남의 가정사 같은 건 안 궁금하다니까? 막말로 길드도 없이 혼자 활동하던 너보다는 우리 쪽이 짊어진 책임감이 훨씬……!”
물론, 거대 연합의 마무리는 언제나처럼 티격태격.
하지만 히사기도 레오니도 두 사람을 말리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고풍스러운 대저택 한편에서 정겨운 대화를 나누던 이들에게도 월드 메시지는 떠올랐으니까.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가 신화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
찰나의 순간, 넷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거 호열 씨……. 아니, 총대장님이시지?”
다른 플레이어들과 첫인상은 다를 수 없었다.
역시나 가장 먼저 호열을 떠올린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대저택을 벗어나지 않은 덕분에 알고 있었다.
히사기의 뱀눈이 배 이상은 커졌다.
“……그럴 리가. 방금까지 서재에 계셨잖습니까?”
방금까지 또각─ 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는 뜻이었다.
제아무리 호열이라고 해도.
서재에서 신화 퀘스트를 시작할 순 없을 터.
드륵!
남태민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보고 올게.”
“뭔데, 대장처럼 행동하냐?”
“기다리십시오. 저도……!”
물론, 나머지 세 사람도 그냥 기다리고 있는 성격은 되지 못했으니.
결국, 모두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호열의 서재 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주했다.
끼익─!
거침없이 열리는 문.
“그렇지 않아도 잘됐군.”
“……!”
예상대로 서재에 있던 호열과.
그 시점에서 넷은 생각했다.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그는 호열이 아닐지도 모른다.
호열이 아니면서 클라우디 가문 소속인 ‘누군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뜻 물을 수 없었다.
‘……잠깐, 격식에 가정사를 묻게 되어있나?’
격식을 지키기 위함은 물론이요.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도 그대들과 함께할 수 없게 되었다. 허나, 나는 그대들을 신뢰한다. 설령 내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그대들이라면 악룡과 마주할 수 있을 테니.”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급한 일이 생시긴 거라면……!”
“더는 간과할 수 없는 가문의 일이다.”
“!”
호열의 한마디에서 추측이 확신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그는 호열이 아닌 클라우디 가문의 인물이다. 그가 신화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호열 또한 목격했기에 더는 간과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리라고.
‘대가문에 사정이 없는 게 이상하지. 우리 가문처럼…….’
‘역시 묻지 않기를 잘했다.’
‘평소처럼 태연하게 해결하겠지.’
그랬기에 넷은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을 넘어서 호열이 저택을 떠난 뒤.
거대 연합의 길드원들에게도 신신당부했다.
“절대, 절대로.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에 대해서 총대장님께 질문하지 마. 우리뿐만 아니라 될 수 있으면 플레이어 모두에게 전달하면 좋겠는데…….”
“네? 어째서요?”
“아무래도 굉장히 복잡한 사연이 있으신 것 같거든.”
“메시지에 로미오인가, 뭔가 하는 그거 총대장님 아니셨어요?!”
“당연히 아니지. 메시지가 떠오르던 순간, 서재에서 자리를 비우시질 않은 걸 확인했거든. 우리가 바로 옆방에 있었으니까. 어쨌든, 자세한 건 나도 모르지만. 다들 격식을 지키란 뜻이야, 알겠지?”
아차, 당부하던 남태민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총대장님이 그런 아이디를 손수 지으셨겠어?”
*
시공간의 사교장은 아르카나 대륙, 그리고 현실과는 또 다른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는 장소다.
무엇보다 의식의 공간이었으니까. 클라우디 저택 서재에 있던 내가, 서재에서 빠져나오는 건 당연하다는 거지.
끼익─
그러니까 나는 서재의 문을 열고, 남태민 일행과 마주친 순간.
오만가지 생각에 휩싸이고야 말았다.
별다른 이유 없이 서재 있는 나를 찾아올 이들이 아니다.
그렇다는 건 역시 목격한 거구나, 나의 풀네임을……!
‘아뿔싸.’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나의 수치심이.
사회인이 지녀야 할 자존심이.
흑역사가 정말로 만천하에 드러나게 생겼구나.
‘빌어먹을 긍지……!’
그놈의 긍지만 아니었어도 둘러댈 수 있을 터. 그러나 메시지의 그랑펠이 내가 맞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나였다.
‘이놈의 가문을, 흑역사를 받아들였으니까.’
그런데, 어째서인가.
넷은 내게 물어오지 않았다.
저택을 거닐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아무래도 내 마지막 말을 오해한 것 같단 말이지?
-“더는 간과할 수 없는 가문의 일이다.”
가문의 일.
내 말에 그랑펠과 내가 별개의 인물이라 착각한 게 아니고서야……. 질문조차 하지 않을 순 없을 터. 그렇다면 나는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벅차디벅찬 신화 퀘스트에 말이야.
하지만 나는 만천하에 흑역사를 훤히 드러낼 위기를 넘기고도 크게 기쁘지 않았다. 마냥 기뻐하며 호들갑을 떨기엔 느껴지는 중압감이 상당했거든.
나는 저택을 홀로 거닐며 읊조렸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뜻인가.”
……단추를 잠그기는커녕 여명의 재킷을 풀어헤쳐서 어깨에 걸친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마는. 신화 퀘스트를 통해 알 수 있던 건 아르카나 대륙이 생각보다 훨씬 쑥대밭이라는 것이었다.
‘과거부터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답이 없을 정도로.’
과거에 간섭해 현실을 뒤바꾸는 것이 바로 신화 퀘스트였다.
그런 퀘스트가 존재하는 이유?
아르카나 대륙엔 과거를 뒤바꾸지 않고서야 유지될 수 없다는 결함이 있다는 뜻.
그렇게 생각하니 불현듯 저주가 떠오른다.
저주, [어둠의 이해].
그 저주에서도 그랑펠의 과거에 간섭해 현재를 바꿀 수 있었으니까.
‘……이 대륙도 누군가의 흑역사인 거 아냐?’
내가 흑역사 공감대를 형성하려던 찰나.
이놈의 주둥이가 핵심을 잊지 않게 상기시켜 준다.
더는 간과할 수 없는 가문의 사정을.
“더 이상의 자비는 없을 것이다.”
신화 퀘스트.
과거에서 나는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뜻하지 않게 해결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과거, 어둠의 이해에서 조우했던 의문점을 말이야.
“그날, 나는 이미 마지막 자비를 베풀었으니.”
클라우디가 절멸하던 그날.
-“나는 너를 증오한다, 그랑펠.”
그랑펠을 증오한다고 선언했던 클라우디를 절멸로 이끌고 갔던 은빛 머리칼의 사내. 그의 동공이 어째서 검게 물들어 있었는지. 그의 앞에서 어째서 [천적관계]가 발동되었는지.
나는 첫 신화 퀘스트를 수행하며 똑똑히 알게 되었으니까. 그러니 더는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클라우디 가주의 긍지도 모자라 악크샨의 긍지도 함께 엮여있었거든.
그러니까 나는 의미심장하게 읊조렸다.
“그렇지 않은가.”
이름 모를 클라우디.
……아니다.
더는 클라우디라고 불러선 안 되겠지.
“거악 칠죄종 오만이여.”
칠죄종은 괜히 클라우디의 멸문에 관련된 게 아니었다.
이름 모를 클라우디.
그 사내의 내면에 칠죄종 오만이 똬리를 틀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간단하기 짝이 없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너를 사냥하겠다.”
나는 불러냈다.
악크샨 그 자체.
악마를 추적하는 데 특화된 악크샨의 수호령을.
──────
악크샨의 수호령 : 악크샨의 영물, 악크샨 늑대를 불러낸다.
──────
“쫓아라.”
……그보다 이 낯뜨거운 이름을 누가 엿듣고 있진 않겠지?
하긴 풀네임마저 메시지로 떠오른 마당에 뭘 따지고 있는 거냐.
나는 체념하고는 말을 끝마쳤다.
“템페스트 오버 더 호라이즌(Tempest over the horizon).”
젠장, 곧 저택 아래층에서 작은 소란이 들려온다.
“저, 저거 악크샨 늑대야!”
“이호열도 움직이는 건가?”
“그보다 방금 분명히 템페스트 오버 더 호라이즌이라고……!!”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호열아.
아니, 흑역사를 즐기는 건 아무리 그래도 무리라면……. 더더욱 뻔뻔해지기라도 해야 한다. 잊지 말자, 항상심.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계단을 내려갔다.
또각─!
냅다 선수를 쳤다.
“엿들을 필요는 없다.”
“……!!!”
“의문이 있다면 당당히 물어라.”
……아니, 뻔뻔한 건 좋은데.
이건 뻔뻔해도.
너무 대놓고 뻔뻔하잖아?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제발 뒷감당하는 내 생각도 좀 해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