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1화. 환영하마 (1)
클라우디.
그 이름에 관해서는 추측만이 무성했다.
아르카나 대륙과 현실.
개개인에 따라서 알고 있는 정보엔 격차가 있을 터.
그럼에도 모두가 어렴풋이 짐작하는 바는 있었다.
“……이호열 이명이잖아?”
확실했다.
클라우디.
분명히 이호열을 일컫는 수많은 이명 중 하나이리란 것.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의미가 모호했다.
한없이 깊은 어둠 속 한 줄기 빛 혹은 흑암룡처럼 직관적이며 듣자마자 호열을 떠올리게 되는 이명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때문에 몇몇 플레이어와 자칭 전문가들은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었다.
그중 가장 그럴싸한 의견이라면…….
-“왜, 이호열은 악크샨의 지도자잖아? 악크샨 내부에서 통하던 별명 같은 게 아니었을까. 악마 앞에선 진짜 이름을 숨겨야 하는 그런 룰 같은 게 있는 거지!”
-“와씨……. 그럴싸하다?”
-“그러면 악마들이 클라우디! 소리쳤던 것도……?”
클라우디가 악크샨 내부에서 통하는 호열의 별칭이라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확하게는 호열과 관련된 현실은 언제나 상상을 가뿐하게 뛰어넘었으니.
[히든피스, ‘클라우디령’에 진입하셨습니다.]
“히든피스라고? 히든피스가 실존하는 거였어?!”
“……히든피스라서 이렇게 멀쩡한 건가?”
“클라우디령이라니, 그래서 뭐하는 곳인데요? 혹시 아시는 분?”
박휘강을 포함해 눈치 빠른 몇몇은 알아차렸다.
“……일단, 클라우디령이라는 건 클라우디의 영지라는 뜻이겠죠?”
아르카나 대륙 진입.
자신들이 처음으로 밟은 땅이 바로.
“이, 이, 이호열의 영지다……!!”
클라우디.
즉, 호열의 영지라는 사실을.
스쳐 가는 대격변 이전의 상식.
아르카나 대륙 전기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
영지의 가치가 떠오른다.
“영지를 보유한 플레이어가 몇이나 있었지?”
“내가 알기에는 개인으로는 스칼 한 명이었어.”
“그렇지, 스칼! 그때부터 길드급 영향력을 떨쳤으니까.”
그 시절,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던 스칼. 스칼을 제외한다면 길드, 그중에서도 최상위 랭커 길드라고 할 수 있는 이들만이 영지라고 부를 정도의 땅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근데 그 시절은 어떻게 생각해도 초창기였잖아? 랭커들 레벨이 기껏해야 200레벨대에 머물러 있던 시절이라고! 그런 수준으로 손에 넣은 영지라고 해봤자…….”
제국에서도 변두리.
아니, 제국에 소속되지도 않은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천하통일이 그나마 그럴싸한 도시라고 할 수 있는 [랑에리]를 소유하고 있기는 했다만…….
“걔넨 사실상 바지 영주 같은 거였으니까.”
과거의 정보를 상세히 알고 있는 것?
아르카나 대륙에 선두로 진입할 정도의 실력과 자신감을 가진 플레이어들에겐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진짜 이상한 일은 따로 있었다.
박휘강이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이, 이런 땅을 언제부터 소유하고 계셨던 걸까요?”
클라우디령.
포탈에 진입하며 보았던 잔상, 그대로였다.
박휘강이 순수하게 감탄을 뱉어냈다.
“어쨌든……. 장관이네요!”
솨아아아─
양털과도 같은 풀밭이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었으며 수목들은 그러한 영지를 보호하듯 우거져 있다. 하늘은 청명하고, 불어오는 바람마저도 더없이 상쾌했다.
익히 소문을 들어왔던 아르카나 대륙과는 동떨어진 공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무엇보다 플레이어들을 경악하게 하는 건.
“……잠깐만. 저, 저건 또 뭐야?!”
멀리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발하는 대저택.
“헉.”
“저, 저 정도면 그냥 성 아니야?”
클라우디의 대저택이 속속들이 포탈을 통해 아르카나 대륙, 클라우디령에 진입하는 이들의 발목을 제대로 붙잡아 놓고 있었다. 박휘강이 넋이 나간 채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저게 호열 님의 저택이시라는 거죠? 그렇다면 이해가 돼요. 어째서 심미를 그렇게 강조하셨는지요. 당연히 저런 곳에서 살면……!”
개안(開眼).
강제로 심미안이라는 게 뜨일 것 같을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니 플레이어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클라우디의 저택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무리에는.
“……야씨, 우릴 보는 시선이 뜨거운데?”
은밀하게 속닥거리는 거대 연합의 세 길드 마스터.
그리고 스칼이 있었다.
히사기에게 속삭이던 남태민은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게 그 호열 씨……. 아니지, 총대장님이 우리한테 보여주지 못해서 아쉽다고 하셨던 그거 맞겠지? 왜, 아이언 캐슬 호에서 말씀하셨던 그거!”
선발대로서 먼저 아르카나 대륙에 진입했었던 이들이었다.
히사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호열은…….
-“성대히 맞이하지 못함을 이해해 주게.”
그렇게 말했었으니까.
그때는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 수 없었거늘.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성대하기 짝이 없습니다.”
“……갑자기 혼잣말 뭐냐? 내 말 안 들리냐?”
“닥쳐 봐, 둘 다. 너희 때문에 더 쳐다보잖아.”
레오니는 입을 다문 채 복화술로 성화했다.
쏟아지는 플레이어들의 부담스러운 눈빛들.
성전 연합군 내부에서도 호열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자신들이라면.
분명 이 상황에 관해 알고 있는 게 있으리라 믿는 눈빛들이다.
그러나.
‘개뿔 아는 바가 있기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스칼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저택이다.”
“스칼, 니가 그걸 어떻게 느낄 수 있는데?”
“내 가문에 관해서 말하지 않았던가?”
“가문? 갑자기 뭐래. 네 가문에는 관심 없거든? 너도 내가 의령 남씨인지, 영양 남씨인지, 몇 대손인지, 무슨 파인지 관심 없잖아?”
“둘 다 됐습니다. 감탄이나 하시죠.”
레오니는 고개를 저었다.
‘……너희 셋 다 그냥 좀 떨어져서 걸어라, 제발.’
그쯤에선 플레이어들도 이들이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관심을 끈 상태였다. 덕분에 불필요한 관심은 사라졌지만, 레오니는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믿는 거 아니야?’
영지에 초대했다는 것.
자신의 안방에 초대했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뜻이었다.
그것도 그놈의 긍지를 가졌는지 알지 못하는 플레이어까지 잔뜩!
‘막말로.’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면.
트롤짓을 마다치 않을 플레이어들은 넘쳐난다.
그들에게 호열의 영지는 더없이 좋은 화제가 될 터.
물론, 격식을 중요시하는 호열이 그 모습을 두고 볼 리 없겠지만……. 정작 용서를 구하면 또 너그럽게 포용하는 그 인자함이 문제였다.
레오니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 성인군자로 칭송받는 정점이라니.’
거, 사람이 너무 좋아도 안 되는데.
물론, 호열의 인자함은 자신감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그러나 문제는 집주인이 당장 자신의 영지인 클라우디령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겠지.
-“유감스럽게도 선약이 있군.”
아르카나 대륙과 현실의 시차를 생각하면.
적어도 하루에서 이틀을.
플레이어들끼리 클라우디령에서 보내게 될지도 모르는 일.
레오니의 곱지 않은 시선이 뒤편 포탈을 향한다.
‘그동안 계속 섞여들어 올 거야. 긍지 없는 것들이.’
하루 이틀은 사건이 벌어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레오니의 기우는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나 나아갔을까.
저택 앞 정원에 다다랐을 무렵.
네 개의 조각상이 플레이어들의 앞을 가로막았으니까.
누군가 감상을 뱉었다.
“……조각상 위치가 애매하지 않아?”
답은 조각상의 입에서 들려왔다.
“조각상이 아니다.”
“으, 으허어어억?!”
“우리는 클라우디를 섬기는 4가문의 화신.”
구구구궁……!
“가주님의 명에 따라 그대들의 긍지를 지켜보겠다.”
그와 동시에.
웅장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네 개의 조각상.
그 광경에 레오니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하긴 그러면 그렇지.
어디를 가도 안배가 존재하는데.
안방과도 같은 영지에 안배가 없을 리가 있나.
슥, 레오니가 뒤를 돌아보자.
“흡.”
도둑이 제 발이 저린 듯한 몇몇이 보였다.
얼음처럼 굳었잖아, 저것들?
바라보던 레오니가 결국,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쓸데없는 걱정이 따로 없다, 정말.”
*
“음.”
들뜬 새 바람이 불쾌하기 짝이 없다.
“절망 속 조금의 희망인가.”
하지만 나쁘지 않다.
아니, 계속 그렇게 들떠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섣부른 자신들의 행동에 더욱더 큰 죄책감을 느낄 테니까. 그럴수록 이 육신이 더욱 힘을 얻게 될 테니까.
거악, 칠죄종 색욕.
러스트(Lust)는 제물들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위한 제물이냐고 묻는다면, 그동안 자신의 행보로 답을 대신하리라. 러스트는 아직도 완전히 재생하지 못한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았다.
아물지 못해 훤히 드러난 옆구리 뼈.
‘괜히 그년에게 피와 살점을 나누어 준 게 아니다.’
마계의 마왕, 그레모리.
러스트는 그레모리에게 자신의 피와 살점을 강제로 주입했다.
그 결과, 아르카나 대륙과 마계.
두 세계의 악(惡)이 합쳐진 새로운 악의 탄생을 목격할 수 있었다.
새롭게 거듭난 혼혈의 악마.
그레모리의 힘은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고혹만큼은 나보다도 뛰어났다.’
러스트는 제로 산맥에서 날뛰던 그레모리의 처음과 끝을 온전히 지켜봤다. 모험가를 고혹에 빠트린 것도 모자라 산맥의 짐승들마저 수하로 부릴 줄이야.
러스트가 상처를 보며 미소를 삼켰다.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이었다.”
덕분에 계획을 세웠다.
칠죄종인 자신에게 상위 마왕의 피를 섞을 수 있다면…….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 동시에 유일무이한 클라우디인 놈에게도 뒤지지 않을 힘을 거머쥘 수 있을 테니.
러스트가 너스레를 떨었다.
“아, 유일무이는 아닐지도 모르겠군.”
뭐, 그런 사소한 건 됐어.
그레모리의 처음과 끝을 지켜보았다고 했다.
그레모리를 처치한 호열의 압도적인 능력을 지켜보았을진저.
그럼에도 러스트가 오만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왕을 자칭하는 마계의 잡종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상위 마왕, 그들의 힘을 알고 있었기에.
악마 숭배자.
그중에서도 마탑의 3인.
카림제바는 상위 마왕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진리의 실현자다.”
마계로 통하는 문.
그 틈으로 상위 마왕의 힘을 엿본 카림제바의 눈은 황홀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로 ‘진정한 진리’라는 걸 엿본 사람처럼. 그때나 지금이나 마법사들의 진리를 향한 집착 같은 건 이해할 수 없는 러스트였다.
허나.
“그 역시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악마 숭배자, 그들 덕분에.
상위 마왕의 현현을 위한 제물 의식 과정을.
러스트가 숙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불안정해도 상관없는 차원의 틈이 필요하다.’
오갈 수 없어도 좋다.
그저 아르카나 대륙과 이 세계를 잇기만 하면 된다. 그러한 차원의 틈을 현현하고자 하는 상위 마왕의 입맛에 맞는 제단으로 쌓아올려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실패는 도움이 됐다.
네 번째 왕좌의 마왕, 가미긴.
첫 시도에 무려 네 번째 왕좌의 왕을 불러들이려고 하다니.
오만한 시도였다.
러스트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말석, 열 번째 마왕으로도 충분하다.’
러스트가 주먹을 쥐었다.
‘아니, 말석이어야만 한다.’
혼혈 의식.
즉, 피를 섞는 과정에서 상위 마왕을 자신의 육체에 받아들여야만 한다. 물론, 러스트는 알고 있었다. 상위 마왕, 그들이 잡종들에게 어떠한 취급을 받는지를.
우둔한 아버지들 혹은 도구.
잡종들 사이에서 상위 마왕은 막대한 힘을 가졌지만, 의지 따위는 없는 존재였다. 그러한 지식이 있었기에. 상위 마왕과 피를 섞을 결심을 내린 러스트였거늘.
‘잡종들의 말만 신뢰할 순 없다.’
도움이 된 건 서로를 믿지 못하게 하는 악마의 본성이었다. 그러니 러스트는 의식을 준비했다. 상위 마왕 현현 의식에 이어서 혼혈 의식까지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실로 막대한 제물이 필요할 터.
그러한 제물을 수급하기란 아르카나 대륙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러스트는 기회를 목격했다.
다름 아닌 혼란에 빠진 중국에서.
흡족에 겨운 웃음이 흐른다.
“하하하하.”
더불어 제물들의 머릿수 또한 이 세계에서 손에 꼽는다지? 비록 마주하고 싶지 않은 존재, 엘프가 이 땅에서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었지만.
‘상관없다. 나를 느낄 수 있는 건 오직.’
악마 사냥꾼.
그놈밖에 없을 테니.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지금을 택한 러스트였다.
한때 인간의 육신에 빙의했던 덕분에.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 모험가들 세계의 지식.
TV와 스마트폰에서 지겹도록 반복되던 소식.
-속보 : 이제부터 아르카나 대륙으로 진입 가능!
그렇다.
이 순간, 놈은 모험가들을 이끌고 아르카나 대륙을 향했을 터.
완전히 다른 두 세계다. 그가 극도로 날카로운 사냥꾼의 감각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아르카나 대륙에서 자신의 기척을 감지하기란 불가능하다.
러스트는 지체하지 않았다.
“아니, 자만은 금물이지.”
마찬가지로 알게 된 정보.
“아르카나 대륙의 시간은 네 배나 빠르게 흐른다니.”
의식은 곧장 시작되었다.
뚝─
발밑으로 떨어지는 한 방울의 피.
그와 동시에 의식의 막을 올리는 재단.
러스트는 자신의 미래를 상상했다.
상위 마왕의 힘으로도 모자라 모험가, 플레이어의 힘까지 거머쥔 자신을 막아설 존재는 없으리라. 드래곤도, 프라이드도, 바알도, 마지막으로.
‘클라우디, 네놈도.’
러스트의 입꼬리가 샐룩이던 찰나였다.
“약속에 늦지 않았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뻣뻣하게 굳어가는 사지.
“……!”
허나, 러스트는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의식 중이어서 집중을 흐트러트릴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러스트는 할 수만 있다면 도망치고 싶었으니까.
단지 그리할 수 없을 뿐이었다.
그런 러스트에게 차가운 음성이 이어진다.
어째서인가.
러스트로서는 곧장 이해할 수 없는 화법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
“이 땅에서 한 포기의 숨조차 허용하지 않겠다고.”
매도가 이어진다.
“화원의 벌레만도 못한 존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