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357화 (357/489)

◈ 357화. 대몰락

천하통일.

조국 내에서 위세는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

더욱이 주석, 지안웨이가 류오쥔춘에게 복종을 맹세한 뒤로 십수 억의 중국은 오직 한 사람. 류오쥔춘만을 위해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주군께 상황을 전달하라……!”

천하통일 지부들의 함락.

단 한 명이라도 살아 나가서 이 상황을 주군께 전달해야만 했다.

노리는 것은 분명, 오성이라 했지만.

‘고작 오성을 잡기 위해 중국 땅을 밟는다고?’

대충 계산기를 두들겨봐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사내의 눈앞에 펼쳐지는 믿지 못할 광경.

풀썩─

400레벨 초반. 최상위 랭커는 아니더라도 고레벨로 분류되는 천하통일의 전투원들이 속절없이 쓰러져간다. 스킬도, 마법도 아니었다.

“귀찮군.”

수고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동작.

슥─

그저 검을 휘둘렀을 뿐이었다.

사내가 오들오들 떨면서 묻는다.

“……어, 어째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거냐?”

킨베르 쪽에서 무미건조한 답이 돌아온다.

“그런 대사는 너무 많이 들어서 질려.”

“……너는 분명 초신성 킨베르?”

“초신성, 켄베르, 쓰레기. 내 이름이야 아무래도 좋아. 그러니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말해보는 건 어때? 너희들 때문에 상하이까지 들쑤셨다. 이쯤에서 털어놓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겠어?”

“…….”

명백한 협박.

그러나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 다물 수밖에 없었다. 류오쥔춘을 향한 충성심은 사내가 적에게 굴복하는 걸 원치 않았으니까.

물론.

[상태이상, ‘세뇌’가 발생합니다.]

자발적인 충성심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입을 다문다라.

엘시도어는 그쯤에서 호기심이 생겼다.

“신기한 일이야. 쓰레기치고는 쓸데없이 입이 무거워. 우두머리라는 놈이 그래도 쓸만하다는 건가. 모험가들 말로는 쓰레기장 속의 녹차, 뭐 그런 건가?”

……갑자기 녹차?

뭔 괴상한 비유야?

엘시도어를 향하는 킨베르의 뚱한 시선.

엘시도어가 말을 정정한다.

“아아, 그냥 녹차가 아니라 녹차 티백이겠군.”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개소리였나?

‘황금 궁전에서 누구한테, 어떤 말을 배운 거냐?’

킨베르는 순간, 의아했지만 넘어갔다.

천하통일, 쓸데없이 덩치만 커서는.

지부 몇 개를 터는 데 벌써 한 시간 남짓 흐른 참이었으니까.

‘드러나선 안 되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엘시도어, 이 미치광이 블러드 엘프가 자신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목격해 함께 활동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만. 킨베르는 자신의 처지를 잊지 않았다.

‘나나 이 녀석이나 만만치 않게 뒤가 구리니까.’

킨베르.

얼굴만 봐도 알아볼 정도로.

드높은 악명으로 소문난 플레이어 중 하나.

엘시도어 또한 락키드를 난도질하던 모습이 전 세계로 전파를 탔었으니 이하동문. 그런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이 어디 정상적인 행동이란 말인가?

백주대낮.

천하통일 지부에 수차례 침입.

가는 곳마다 피바다를 만든 둘이었다.

엘시도어가 검을 치켜들고는 말한다.

“역시, 반쯤 죽여놓는 걸로는 입을 열지 않는 건가.”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킨베르는 엘시도어를 설득했다. 초신성들을 분리수거한 것처럼 천하통일 전원을 분리수거했다가는 역풍이 불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모조리 죽일 건데, 어떻게 바람이 불지?”

엘시도어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뜻을 굽혔다. 모험가들의 세계였다. 자신의 관점으론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고 인정한 덕분이었다.

“그, 그만둬. 아무리 나를 고문해도……!!”

푹!

절규하는 사내를 킨베르는 말없이 바라봤다.

여태까지는 적당히 반쯤 죽여뒀지만.

말했다시피 이제부터는 여유가 없다.

‘슬슬 의심할 시점이다.’

빈사 상태까지 몰아붙여서라도 오성.

놈들의 행방을 알아내야만 했다.

더불어 오성에게 그런 명령을 지시했을 류오쥔춘의 위치까지도.

“고통스럽게 살려주마.”

관점이 다르기에 섬뜩한 엘시도어의 고문을 한마디로 묘사하자면 끔찍했다. 악명을 쌓아오면서 여러 꼴을 보아온 킨베르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그러나 덕분이었다.

“……!”

극심한 고통은 사내의 머릿속에 남아있던 충성심.

[상태이상, ‘세뇌’가 해제됩니다.]

아니, 류오쥔춘의 수작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으니까.

“마, 말하겠다. 오성과 류오쥔춘의 행방으을……! 상하이, 이곳에서 몇 블록 떨어진 호텔이다. 총회의는 그 호텔을 통째로 빌려서 개최된다.”

천하통일 총회의.

장소는 다행히도 같은 지역인 상하이.

사내가 울컥, 피를 토하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컥……. 다만, 놈이라면 지금쯤 꼬리를 내빼려고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워낙 의심이 많은 녀석이다. 진정으로 충성심을 맹세했던 나에게까지 ‘세뇌’를 걸어둔 걸 보면.”

킨베르는 그제야 눈치챘다.

‘상태이상이라면 이해가 되는데.’

반죽음 상태가 돼서도.

절대 비밀을 발설하지 않았던 천하통일 길드원의 행동들이.

엘시도어의 입꼬리가 서늘하게 올라갔다.

“세뇌라. 쓰레기다운 방법이군.”

엘시도어의 실력은 말 그대로 칼 같았다. 사내는 말을 끝마치자마자 그대로 혼절했으니까. 킨베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곧장 [은신]을 발동했다.

엘시도어도 마찬가지로 자연에 몸을 숨겼다.

위치가 특정된 이상.

둘 사이에 말은 더는 필요치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숨통을 끊는 건 여섯이면 충분하다, 귀쟁이.”

류오쥔춘과 다섯 별, 총 여섯.

군주의 세뇌로 이뤄진 게 바로 천하통일이었다. 그들은 군주가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복수는 꿈도 꾸지 못한 채 그대로 무너질 모래성과 다름없을 테니.

엘시도어가 콧방귀를 뀌었다.

“안다, 쓰레기. 그 이상의 수고는 사치. 속전속결로 끝내지.”

슬쩍, 내리쬐는 해를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슬슬 화원에 물을 줘야 할 시간이다.”

*

삐이이이이─!

호텔 전체에 요란한 사이렌이 울린다.

처음엔 화재 경보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숨이 넘어갈 듯 복도를 내달리는 호텔의 지배인.

그가 천하통일 길드원에게 고개를 숙인다.

“총회의에 화재 경보라니. 주군께서 그대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훤히 보이는데? 아쉬워. 이 호텔 침대는 나름대로 푹신했는데 말이야.”

“송구합니다. 하지만 화재가 아닙니다!”

“……화재가 아니라고?”

삐이이이이─!

귀청을 찌르는 소음이라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늘.

혹시……?

여인이 인벤토리에서 철퇴를 치켜들었다.

“그렇다면 보나 마나 균열이겠지!”

“송구하게도 그것도 아닙니다……!”

“뭐?”

화재도 균열 출현 경보도 아니면서 이 정도의 소란이라니.

여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총회의를 노린 반란인가?

마지막 선택지가 떠오르기는 했다만.

‘감히 주군을 상대로?’

여인의 머릿속 천하통일에 그 정도로 간이 튀어나온 인물은 없었다.

게다가 주군이 어떤 분이시던가?

불순분자를 곧장 알아보시고, 축출해 내시는 완전무결하신 분.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 법이었다.

여인을 기다리고 있던 건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치직─

“……!”

들려오는 무전.

-“치, 침입자ㄷ……!!”

그렇다, 누군가가 총회의장.

“어떤 개새끼들이.”

천하통일의 본진을 습격한 것이었다.

여인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호텔 관리인에게 전달했다.

무엇보다 신속히 주군에게 이 소식을 알려야 했다.

“너는 주군께 이 사태를 전달해라.”

“그리하겠습니다.”

“나는 오만방자한 새끼들을 조져놔야 하니까.”

타다다닥!

뛰어나가던 지배인이 별안간 뒤편에서 물어왔다.

“그, 그런데 주군께서는 어디에 계신 것인지……?”

“……!”

그 말에 여인은 흠칫했다.

자신이 맡은 임무는 성공적인 총회의 개최를 위한 지원이었다.

한데, 여인은 정작 주군이 머무르고 있는 위치를 알지 못했다.

물론,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건 알려주지 않으셨다.’

[세뇌]로 길들인 부하조차 신뢰하지 않는 게 류오쥔춘, 그라는 사내였으니까. 위층인가, 아래층인가. 아니, 애초에 주군께선 이 호텔에 계시긴 한 건가.

‘잠깐만…….’

경고음이 울린 건 오래전부터였다.

‘애초에 주군께선 모든 걸 알고 계신 게 아니었을까?’

알고 계셨다면 어째서…….

‘……그 어떤 행동도, 지원도 없으신 거지?’

고민하던 여인의 눈앞.

메시지가 떠오른다.

[상태이상, ‘세뇌’가 발생합니다.]

머릿속에 의문이 사라지고 맹목적인 충성심이 샘솟는다.

여인이 호텔 관리인에게 윽박지른다.

위층이냐고 아래층이냐고?

“위층이든 아래층이든 네가 찾아서 전달해!”

“그,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관리인이 웅장한 호텔 중앙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여인과 마찬가지로.

충성으로 포장된 [세뇌]에 이끌린 이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총회의를 망친 습격자를 처단하는 것.

어째서 자신들의 주군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는가?

그들은 의문조차 품지 못한 채 습격자를 맞이했다.

그와 같은 시각.

“…….”

호텔 지하의 제한구역.

류오쥔춘과 다섯 별이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류오쥔춘, 그는 일찌감치 사태를 파악한 상태였다.

광저우, 톈진, 베이징, 충칭, 그리고 상하이.

벽면을 가득 채운 모니터에는 지부의 관리자는 물론.

천하통일의 간부조차 모르는 CCTV 시스템이 가동 중이었으니까.

“빠르군.”

그러니 류오쥔춘은 광저우 지부가 함락되던 순간부터.

모든 것을 지켜봐 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다시피 지켜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엘시도어.

엘프의 절대적인 무력.

웬만한 상태이상은 가뿐히 무시하는 정신력.

애매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혹함까지.

‘어떤 면에서는 나에겐 이호열보다 위험한 존재다.’

현시점에서 저 블러드 엘프를 막을 수 있는 수단 같은 건 천하통일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류오쥔춘은 그쯤에서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그건 실수였나.’

완벽한 단절.

AAU 협약 탈퇴를 도화선으로 국제사회에서 완벽하게 고립된 조국과 천하통일이었다.

이제 와서 자신들이 엘시도어와 킨베르의 공격을 받았다고, 기록된 영상을 세상에 알려봤자 돌아오는 거라곤 비아냥밖에 없으리라.

그러니 류오쥔춘은 입을 열었다.

“저들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삭제하도록 해라.”

“!”

그 말에 모니터를 조작하던 분석관이 흠칫한다.

감히 주군께 뜻을 물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이, 이건 증거입니다. 주군……!!’

위대한 천하통일이 비열한 기습을 받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유일한 증거였단 말이다.

하지만 주군은 물론, 오성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에서 토를 단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달칵─

[Delete]

버튼을 누르자 모니터가 빠른 속도로 암전되기 시작한다. CCTV 시스템이 완전히 초기화된 것. 꺼진 모니터 불빛. 어둠 속에서 류오쥔춘은 중얼거렸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길드, 천하통일의 대몰락인가.”

그러나 나, 류오쥔춘.

본좌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그저 시기가 조금 앞당겨진 것뿐.

방법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니까.

“동시에 새로운 막을 올릴 때로구나.”

그렇다, 애초에 이 총회의에서 살아남는 건.

오직 자신과 오성밖에 없었으니까.

류오쥔춘의 음험한 목소리가 울린다.

“길드 관리 시스템 오픈.”

오직 길드 마스터만이 활성화할 수 있는 시스템.

류오쥔춘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최상위 길드, 천하통일답게 수많은 기능이 활성화된 상태.

──────

[길드 관리 시스템]

길드 명 : 천하통일

인원 : 48,491,954명

명성 : 140,683,492

1. 길드 인벤토리

2. 길드 스킬

3. 길드원 관리…….

──────

그러나 류오쥔춘의 시선이 향한 곳은 오직 한 곳이었다.

[명성치가 충분합니다.]

그 조건은 이미 오래전부터 충족한 상태였다.

다만, 쌓아 올린 공적을 나눠야 할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머릿수를 줄일 필요가 있었을 뿐.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류오쥔춘이 오성을 바라본다.

“너희들에겐 흔쾌히 내어줄 수 있다.”

그리고 이내, 군주의 고유 스킬을 활성화한다.

[스킬, ‘출사표’가 발동됩니다.]

[길드, ‘천하통일’이 건국을 선포했습니다.]

[명성치 기여도에 따라 작위가 배분됩니다.]

[다섯의 백작이 선출되었습니다.]…….

류오쥔춘은 흘러가는 메시지를 응시했다.

‘알 수 있는 이는 없겠지.’

[군주]를 알아볼 수 있는 건 오직 [군주]뿐. 지금의 건국 메시지는 군주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자. 즉, [군주] 클래스가 아니면 목격할 수 없을 테니까.

‘플레이어 중 군주는 내가 유일하다.’

유스라의 국왕, 하쿠나가 군주이기는 했다만.

그는 어디까지나 아르카나 대륙인이었다.

정작 메시지를 목격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류오쥔춘은 대몰락 앞에서 슬픔 대신 독기를 머금었다.

‘나는 그늘 아래에서 힘을 키우겠다, 이호열.’

비로소 클래스, [폭군]의 능력을 백분 발휘할 수 있는 국가라는 배경을 거머쥐었다. 그러니까 류오쥔춘에게 더는 과거의 조국, 중국은 필요치 않았다.

길드에 불과한 천하통일도 마찬가지였다.

류오쥔춘이 매정하게 말했다.

“모든 시스템과 정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말살해라.”

“……네, 주군.”

천하통일에게 종속되어 더는 국가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중국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천하통일의 시스템이 삭제된다……. 그 후폭풍은 곧장 균열의 붕괴에서부터 나타나게 될 터.

‘인민들은 버틸 수 없을 거다.’

분석관의 손가락이 떨렸지만, 찰나였다.

[Delete]

위이이잉─

머지않아 가동되는 여섯의 접속기.

류오쥔춘과 오성.

그들이 아르카나 대륙으로 진입했다.

천하통일과 조국을 등 저버린 채.

.

.

.

난데없이 떠오르는 메시지.

[길드, ‘천하통일’이 건국을 선포했습니다.]

[명성치 기여도에 따라 작위가 배분됩니다.]

[다섯의 백작이 선출되었습니다.]…….

그 메시지를 보고 떠오른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제국조차 능가하는 위대한 가문, 클라우디, 4가문……?’

이거, 어째 뉘앙스가 비슷하지 않아?!

나는 흠칫하고 말았다.

……류오쥔춘, 너 설마 이제야 중2병이 찾아온 거냐?

“가엾기 짝이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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