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1화. 재활용 쓰레기 (1)
뚝.
뚝.
뚝.
‘웃기지도 않다, 킨베르 병신아.’
킨베르는 바닥을 적시는 핏방울을 바라봤다.
자정이 훌쩍 지난 시간.
금광 출구에 이르렀지만, 달빛조차 들이치지 않는다.
일렁이는 횃불 아래에서 춤추는 그림자들.
고함이 들려온다.
“부상을 입어서 멀리 가진 못했을 거야.”
“샅샅이 찾아라! 상대는 킨베르야.”
“은신술 마스터 킨베르, 우리랑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건가?”
숙련도 마스터에 도달한 [은신] 발동.
덕분에 킨베르는 어둠에 완벽하게 스며든 상태였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은신이라고 한들.
바닥에 흐르는 피까지는 숨길 순 없다.
킨베르는 자신이 나아온 길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얼핏 핏방울로 이어진 길이 보였다.
어두워서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의식한다면 알아보고 좇을 수 있을 정도.
‘젠장.’
꾸욱─
킨베르는 찢어진 배를 세게 움켜쥐었다.
역시 PK.
아니, 살인에 이골이 난 살인귀들이다.
유스라 왕국이 제도로 불릴 때만 하더라도.
킨베르는 다섯 별을 제외하면 초신성 내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였다.
‘다들 나처럼 허송세월을 보내진 않았나.’
그러나 킨베르는 그날 이후.
킨베르는 PK, 작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게 하르콘과 눈을 마주친 부작용 때문인지.
나이를 먹고 개과천선한 덕분인지.
킨베르,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건 퇴물이 됐다는 거지.’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자신의 [은신]을 믿었으니까.
하지만 줄행랑친 지 얼마 가지 않아 이런 중상을 입다니.
킨베르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른다.
[상태이상, ‘출혈’이 발생합니다.]
[상태이상, ‘현기증’이 발생합니다.]
[상태이상, ‘과다출혈’이 발생합니다.]
[주의 : 생명력이 너무 낮습니다.]
헛웃음이 나온다.
‘……이래서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뒤진단 건가?’
별의 회담.
차라리 참가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엔 휘말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 작업에 참가할 생각도 없었으면서 뭣 하러 회담에 참가한 거냐.
킨베르, 이 병신아.
‘왜긴 왜야, 씨발. 그야.’
회담이 열리는 장소가 유스라 왕국이었으니까.
‘퇴물에게도 감이라는 게 있거든.’
그것도 모자라 초신성 다섯 별이 모두 참석한다는 소식까지.
킨베르는 웃음을 삼켰다.
전부 짐작하고 있었으면서 뭘 놀라고 그랬던 거냐, 나란 놈은…….
‘……어쩌면 확인하고 싶었던 건지도.’
자신의 변화가 두려움 때문인지, 개과천선 때문인지, 둘 다 아니라면 단순한 변덕 때문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정의 뚜껑을 열어본 결과가 어떻냐고?
보다시피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다.
두려워서, 그러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동시에 아니꼬워서.
이렇게 명을 재촉한 자신을 보면 알 수 있겠지.
“벌써 금광 밖으로 튄 거 아냐?”
“뭐가 보여야지. 일단, 밖으로…….”
“……잠깐만.”
문득, 금광 밖으로 향하던 추적대가 멈춰 선다.
킨베르는 마력의 잔량을 확인했다.
[은신]을 유지하는 것도 점차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피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이 근방이 확실해.”
감이 지나치게 좋은 녀석이 있었다.
킨베르는 옷을 흠뻑 적신 핏물을 바라봤다.
역시, 상처를 불로 지질 걸 그랬나.
아쉬움을 삼키던 찰나였다.
“찾았다. 킨베르!!”
바닥의 핏자국이 발각되고 말았다.
‘빌어먹을 새끼.’
중요한 것은 빠른 상황 판단이다.
타탓!
킨베르가 곧장 내달렸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상처에서 장기가 쏟아질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거기냐?”
그럼에도 소음까진 숨길 수 없다.
발소리를 쫓아 움직이는 놈들.
뒤편에서 협박이 이어진다.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어때, 킨베르?”
“슬슬 직감할 때도 되지 않았나.”
“익숙하잖아? 이런 추격전의 결말은.”
익숙하다라.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다섯 별까진 아니더라도 초신성 내에서 악명이 자자한 별로 분류되었던 킨베르였다. 지금과 입장만 역전된 상황이야 수도 없이 많이 경험했지.
조소가 들려온다.
“무슨 바람이 든 건지는 모르겠는데. 웃기지 않아? 피로 물든 과거를 뭐, 세탁이라도 하고 싶은 거냐? 그런다고 몸에 밴 쓰레기 냄새가 빠질 것 같아?”
……글세.
킨베르는 대답 대신 인벤토리를 뒤졌다.
포션 따윈 없다.
그 대신 레어 등급 맹독이 담긴 병을 천장으로 던졌다.
쨍그랑!
뒤쫓던 추적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독약.
“크흑!”
“저 개새끼가!! 실명 디버프야.”
“시각에 의존하지 말고 냄새를 쫓아.”
역시, 감 좋은 녀석이 섞여 있으면 곤란하다.
“쳇.”
데구르르─
킨베르는 소란스러운 틈을 타서 포션병 하나를 굴려서 던진 상태였다.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다. 놈들이 포션이 흐른 자국을 핏방울로 착각하길 바랐는데, 저 정도로 의식한다면 속아 넘어가 줄 리가 없겠지.
다시금 점멸하는 메시지.
[주의 : 마력이 너무 낮습니다.]
정말로 한계가 임박했다.
[은신]이 해제되는 순간, 공격이 쏟아지리라.
그때가 내 숨통이 끊기는 때가 되겠지.
킨베르는 마지막 수단인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스크롤 - 긴급탈출]
짧게는 수십.
많게는 백여 미터.
순간이동 할 수 있게 해주는 스크롤이었다.
몬스터를 사용할 때는 어그로를 풀 수 있어 유용하게 쓰였다만.
놈들에겐 백 미터가 더 멀어져 봤자겠지.
킨베르는 쓰게 웃었다.
‘이유 따윈 나도 모르겠어.’
스스로도 자신의 변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호열, 그가 자신을 용서해 주기라도 했는가.
그전에 용서를 빌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용서받을 정도로 착하게 살기라도 했는가.
전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애초에 소식을 전할 수나 있었나.’
당장 이호열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렇다면 나는 어째서.
이호열을 언급해서 다섯 별의 신경을 건드렸는가.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좆 같잖아.”
허공에서 드러나는 킨베르의 몰골.
드디어 진이 빠졌나.
추격대가 반색한다.
“그래, 킨베르! 쫓기는 기분이 참 좆 같겠지. 하지만 겪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겠냐? 왜, 그동안 네가 죽인 플레이어들의 입장도 체험해 보는 게…….”
“억울하잖아.”
“억울해? 뭐,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를…….”
“……뭐?”
묘하게 화제가 맞지 않는 대화.
스윽─
킨베르가 스크롤을 들어 올리며 말을 잇는다.
“이 킨베르 님을 지리게 만든 사내가. 다리를 잃고, 너희 같은 버러지 새끼들한테 습격당해서 죽어가는 꼴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좆 같다고, 씹새들아.”
“……스크롤이다! 발동을 막아!”
“이런 씹! 늦었어!”
번쩍!
찢겨진 스크롤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빛.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이런 상황에 익숙한 초신성들이었다. 위급상황에서 사용하는 스크롤의 효과 범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단 뜻.
누군가 말한다.
“멀리 가진 못했을 거야. 끽해야 수백 미터 근처에 쓰러져 있겠지. 마력흔을 쫓든가. 피 냄새를 쫓든가. 좋을 대로 쫓아서 찾도록 하지.”
추측은 정확했다.
“큭.”
킨베르는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기껏해야 수백 미터라는 추측은 틀렸다.
긴급탈출 스크롤의 성능을 극한으로 이끌어내는 방법.
킨베르는 그 방법을 사용했으니까.
“……좌표를 기억해 두길 잘했군.”
과거, 자신에게 들어왔던 작전.
작전은 거절했지만.
목표 좌표는 정확하게 기억해 뒀던 킨베르였으니.
저벅.
그런 킨베르에게 인기척이 다가온다.
“유언은 그거냐.”
무미건조한 목소리.
초신성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인간의 음성이 아니었다.
킨베르가 거절한 작전.
그건 다름 아닌 황금 궁전 별실에 존재하는.
이호열의 화원을 털자는 작전이었으니까.
그러니 [품격의 화원]에 쓰러진 킨베르에게.
말을 건 이의 정체는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엘프, 엘시도어였다.
“……전할 말이 있다.”
킨베르는 다가온 엘시도어에게 별의 회담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엘시도어는 그 이야기를 무표정한 얼굴로 들었다. 그러더니 킨베르에게 대뜸 말했다.
“쓰레기가.”
엘시도어의 눈빛엔 경멸이 가득했다.
“알고 있나, 쓰레기. 한번 손에 피를 묻힌 자는 영원히 그 피를 씻을 수 없지. 한번 쓰레기는 영원한 쓰레기로 살아야 한다는 거다.”
킨베르는 답하지 않았다.
답할 기운이 없는 건 물론.
굳이 반박할 생각도 없었으니까.
‘나도 알아, 씹새야…….’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른다.
이호열과 하르콘에게 용서라도 구하려고 소식을 전하려 하는 거냐고. 그런 행동으로 그동안 손에 묻힌 피를 씻을 수 있겠냐고. 어림도 없는 짓이라고.
‘나도 알고 있다고, 씹새들아.’
킨베르는 힘을 쥐어짜내 입을 열었다.
“좆 까. 애초에 용서받을 생각 따윈 없었어…….”
말했다시피 단순한 변덕이거든.
그런 킨베르를 엘시도어는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가 말했다.
“쓰레기인 걸 인정하는 건가?”
“……약 올리냐? 너도 좆 까, 귀쟁이 새끼야.”
“좋아. 입부터 걸걸한 게 쓰레기가 확실하군.”
엘시도어의 입꼬리가 서늘하게 올라갔다.
“그렇다면 죄책감 없이…….”
스릉─!
그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말을 이었다.
“어울릴 수 있겠어.”
……뭐라고?
갑자기 어울릴 수 있다니.
뜬금없는 소리에 킨베르는 지그시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런 킨베르에게 엘시도어가 말했다.
“돌아올 때까지 화원을 지키고 있어라, 최하급 쓰레기여.”
……최하급 쓰레기?
뭔데, 씨발.
쓰레기에도 등급이 있냐.
“……뭔 개소리야?”
그 말을 끝으로 킨베르가 혼절했다.
.
.
.
초신성.
수십의 추적자들이 어둠을 살핀다.
“피 냄새가 끊겼어.”
“무작위 텔레포트가 아니었나?”
“조급할 거 없어. 그래 봤자 1km 이내다.”
PK(Player Kill).
그동안 숨통을 끊어온 플레이어만 하더라도 열 손가락으론 꼽을 수 없는 이들이었다.
그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뭐, 가만히 내버려둬도 죽을 테지만.”
자정이 훌쩍 넘은 야심한 시각.
킨베르를 도울 수 있는 이는 없다.
아니, 야밤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킨베르는 이미 악명 높은 초신성 중 하나다.
녀석이 피투성이가 되어 도움을 청한다고 한들.
“누가 널 믿을 수 있겠나, 킨베르?”
이호열도 마찬가지다.
그의 고고한 성격으로 보았을 때.
킨베르처럼 악명 높은 이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게 분명했다. 애초에 킨베르가 이호열에게 직접 말을 전할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
그러나 그들은 간과하고 있었다.
“그래, 이런 새끼들이 있을 줄 알았지.”
쓰레기에도 급이 있다는 걸.
가까워지는 기척.
심상치 않은 기세에 긴장하던 찰나.
어둠 속에서 외형이 드러난다.
“……!!”
그건 인간이 아니었다.
새하얀 피부, 푸른 눈, 그리고 뾰족한 귀.
엘프였다.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쓰레기들. 하르콘의 목숨을 노린다고 했었지. 실로 유감이군. 하르콘은 말이야. 내 몇 안 되는 말 상대 중 하나거든.”
“……엘시도어!!”
악명은 자자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초신성의 완벽한 상위호환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자 용병단. 그 단원 중 하나인 락키드를 말 그대로. 초전박살 냈던 게 바로 엘시도어였으니까.
엘시도어가 내뱉는다.
“일단,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
떨이지는 말과 동시에 가속하는 푸른 눈.
찰나의 순간, 초신성들은 생각했다.
그래도 수십 대 일이었다.
‘머릿수의 우위를 살린다면……!’
물론, 절대적인 무력 앞에 모두 오판이었지만.
뎅겅─!
잘려나가는 수십 개의 팔목.
“으, 으아아아아악!!”
엘시도어는 까칠하게 말했다.
“닥쳐라, 꽃들이 잠에서 깬다.”
“그, 그게 무슨 소리……?!”
“알 필요 없다.”
엘시도어는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엘시도어.
콜로세움의 전설.
즉 PK의 전설인 락키드조차 손도 대지 못했던 존재. 심지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아본 경험 또한 엘시도어는 초신성과 궤를 달리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으, 으허허. 사, 살려주십쇼……!!”
겨우 몇 분.
킨베르를 추적하던 수십의 초신성.
그중 살아남은 건 단 한 명이었다.
슥.
엘시도어는 뺨에 튄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세상은 화원처럼 아름답지 않지. 아르카나 대륙이나 여기나 쓰레기가 널린 건 마찬가지니까. 그런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선 이렇게 손을 더럽힐 수밖에 없어. 근데 고작 쓰레기를 치우는 데에…….”
“……!”
“깨끗한 손을 애써 더럽힐 필요가 있을까?”
그래, 꽃밭을 일구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더러운 쓰레기를 치워야 했다.
반드시 그 손을 더럽혀야만 한다.
“이미 더럽혀진 손을 쓰는 게 효율적이지 않겠어?”
엘시도어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자신부터가 갱생할 수 없는 쓰레기였으니까.
다만, 말했다시피 쓰레기에도 급은 있는 법이다.
‘그들이 이런 추악한 세상까지 알 필요는 없겠지.’
이호열.
하르콘.
그리고 황금 궁전의 신하들.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던 엘시도어가 중얼거렸다.
“나, 하나로도 충분하니까.”
푹!
“업보를 쌓는 건 나, 하나로 족하니까.”
엘시도어가 검으로 초신성의 허벅지를 찔렀다.
까뒤집어지는 눈동자.
고통에 신음하는 초신성에게 물었다.
“편히 죽고 싶다면 회담장으로 나를 안내해라.”
.
.
.
별의 회담장.
유스라 왕국의 금광.
킨베르의 소식을 기다리던 초신성들이 대화를 나눈다.
“생각보다 늦는군.”
“말했잖아? 그 새끼 은신의 달인이라고.”
“그래도 뭐, 동이 트기 전까지는…….”
이윽고, 그들의 눈앞에 한 줄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저벅저벅.
[블러드 엘프, 엘시도어가 출현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횃불 아래에서 초신성.
“튀, 튀어어ㄱ……?!”
“커허ㄱ……!”
“미ㅊ……?”
“ㅆ……!!!”
아니, 쓰레기들의 머리와 몸통이 분리수거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