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349화 (349/489)

◈ 349화.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도도도.

마법부여학 선임, 키코 아르민은 마탑의 계단을 총총히 올랐다. 마도구, 아공간 주머니를 가득 채운 걸로는 부족한 모양. 양손도 모자라 품에 한가득 제련 도구를 챙겨든 채로.

“어라.”

그런 키코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키코 선임?”

“저기……. 죄송한데, 누구실까요?”

“글쎄요, 누굴까요?”

코맹맹이 소리.

누군지는 몰라도 짓궂게 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키코는 낑낑거리며 몸을 돌리고, 고개를 비틀어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슥─

그러던 중 확 트이는 시야.

“놀린 데에 대한 사죄로 이건 제가 들게요.”

시야를 가리고 있던 짐이 절반만큼 사라지자 그 대신 풍성한 녹색 머리칼이 시야에 들어왔다. 키코의 얼굴에 살 것 같다는 화색이 돌았다.

“벨리에 선임님!”

치유학파 선임, 벨리에.

키코는 그녀와 함께 마탑의 계단을 올랐다. 서둘러 계단을 오르는 이유야 간단했다. 벨리에와 키코, 두 사람은 오늘 저녁. 바로 지금 아르카나 대륙으로 향해야 했으니까.

“넘어질까봐 걱정했는데, 덕분에 살았어요.”

다급했던 모양이네요, 키코 선임.

대충 물을 적셔 머리카락을 정돈한 티가 역력했다.

벨리에가 키코의 삐친 머리카락의 숨을 살며시 죽여줬다.

그러면서 말을 건넸다.

“소식 들었어요. 정신이 없으셨겠어요.”

“……벌써, 별실까지 소문이 퍼졌나요?”

“네, 물론 왜곡은 없이요.”

“에휴. 하여튼 숙련 마법사들. 재잘대는 것만 잘하지……!”

소문이라면 분명 이 수석님께서 가넷 홀에 입장하셔서는, 자신에게 다짜고짜 저녁 일정을 물었던 일을 말하는 것이리라. 키코는 아직도 아찔했다. 사소한 오해는 제쳐놓고서라도.

“드래곤 하트를 통해서 아르카나 대륙에 진입하시겠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저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여겼는데.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르카나 대륙 땅을 밟게 될 줄이야!

아르민 가문은 무사하려나? 가문 영지에 숨겨둔 내 연구실은? 아르카나 대륙이 얼마나 쑥대밭이 됐길래? 안토니움 제국 창고에 맡겨둔 마도구는…….

덕분에 키코의 머릿속은 혼란하기 짝이 없었다.

도리도리 고개를 저어 잡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벨리에에게 물었다.

“벨리에 선임님께서는 괜찮으세요?”

“저 말인가요?”

“네, 저와는 다르게 여유가 있어 보이셔서요.”

“여유라.”

벨리에는 작게 웃었다.

“나름 염두에 두고 있었거든요.”

유낙서스가 쓰러지던 순간부터 아르카나 대륙을 밟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걸 예상하고 있던 벨리에였다. 벨리에의 의미심장한 대답에 키코의 눈빛이 반짝였다.

“역시 벨리에 선임님……! 혹시 제게만 살짝 귀띔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미 가넷 홀에서 한 차례 불필요한 오해를 해버린지라, 이번만큼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어서요.”

탁.

말이 끝나는 순간.

마탑의 최상층에 도달한 두 사람.

벨리에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수석님께 직접 듣는 게 낫지 않겠어요? 때마침 저희를 마지막으로 전부 모인 것 같으니까요.”

“……!”

벨리에의 말에 키코가 고개를 내밀자.

정말로 마탑 최상층에 선발대로 선출된 이들이 모여있었다.

바퀴 달린 의자-휠체어-에 앉은 하르콘.

그런 하르콘을 부축하는 네 명의 모험가들.

마티스, 뱅그릿 선임.

유그위드 원로 마법사님.

마지막으로.

“이것으로 전원 참석인가.”

이호열 수석님까지.

“헉.”

마도구를 부랴부랴 챙기느라 한참 늦었구나……!

자각한 키코가 모인 이들 쪽으로 서둘러 합류했다.

벨리에도 그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호열이 입을 열었다.

“내가 그대들을 소집한 이유는 간단하다.”

느껴지는 긴장감.

남태민은 마른침을 삼켰다.

처음엔 그저 내뱉으셨던 말씀을 지키고자 하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하신 말씀과 달리 선발대의 인원에 차이가 있었다.

현 선발대 총인원은 스물의 절반인 10인에 불과했으니까.

‘뽑혔다고 마냥 좋아할 때가 아닐지도 몰라.’

호열이 그런 판단을 내린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과연, 긍지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절반은 간다고.

남태민의 예측은 정확했다.

“악과(惡果)의 발작이 이제부터 시작이기 때문이지.”

악과의 발작이라면…….

악과를 삼킨 유낙서스.

설마, 유낙서스의 출현이 시작에 불과하시다는 말씀이신가?

“그런……!”

말뜻을 알아챈 이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린다.

선발대 중에서.

벨리에만이 유일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짐작하고 있었어.’

아니, 벨리에는 고요히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녀는 이 순간,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악과의 정화.

그건 이 수석님께서 처음으로 자신께 부탁하신 일이었다.

그러나 보다시피 자신은 해내지 못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

마탑은 탑주를 잃었고, 하르콘은 다리를 잃었다.

‘내가 부족하지 않았더라면.’

그림자 용병단부터 시작해서.

크고 작은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데에 시간을 빼앗겼다고는.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이 수석님.’

이 수석님의 노고에 비하면 자신의 업무야.

마땅히 해내야 하는 일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니 벨리에는 굳게 주먹을 쥐었다.

“또한 유감스럽게도 유낙서스를 상대한 경험은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유낙서스는 오히려 악과의 발작을 필사적으로 짓누르고 있었으니까.”

“……!”

“자신이 짊어진 막중한 사명감으로 말일세.”

유낙서스와 마주했던 5인.

‘그게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던 거였다니…….’

하르콘을 비롯한 남태민, 히사기, 레오니, 스칼은 새삼스럽게 격차를 실감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사명을 짊어진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다른 드래곤들에게 유낙서스와 같은 긍지를 바랄 순 없을 터. 이 시간부로 아르카나 대륙은 물론, 제로 산맥이 존재하는 현실도 드래곤들에게서 안전할 수 없다는 의미네. 애초에 그들은 차원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존재니까.”

“……!”

그제야 선발대는 깨달았다.

선발대 인원이 왜 절반밖에 되지 않는지를.

언제, 어떤 세계에서 악룡이 출현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

어느 한 세계로 전력이 편향되는 걸 막기 위함이셨겠지.

하르콘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이기에 내릴 수 있는 빈틈없는 판단이야.’

그러나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한데, 어찌하여 이런 나를.’

두 다리를 상실해 타인의 부축을 받아야지만 움직일 수 있는 자신이었다. 물론, 아르카나 대륙에도 모험가들의 세계에도 육체의 결손을 보완해 줄 장비는 존재했다만.

‘착용하고 익숙해진다고 한들.’

이전처럼 전장을 누빌 순 없다고, 선고를 받지 않았던가.

그러나 하르콘은 굳이 묻지 않았다.

그건 호열을 향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경에게는 전부 뜻이 있겠지.’

이러한 나에게도 쓰임새가 있다면.

하르콘은 기꺼이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하르콘의 믿음은 곧장 응답을 받았다.

고오오오─

이내, 마탑 최상층에 발현되는 포탈.

어둠 너머에 아르카나 대륙이 있었다.

선발대는 긴장감과 함께 포탈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내디디고 나서야 생각이 닿았다.

그래서 목적지는 어디지?

막연하게 아르카나 대륙이라 생각했건만, 사실 대륙은 넓어도 너무나도 넓었다. 재건을 시작하고 있는 제국의 수도, 안토니움에서 눈을 뜨게 되는 건가.

나름대로.

각자가 생각하던 찰나였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

선발대, 그들의 시야에 보인 건.

광활하게 펼쳐진 아르카나 대륙의 전경.

아득히 높은 상공에서 바라보는 듯한 시야였다.

“저, 저희 하늘에서 자유낙하 중인 건 아니겠죠?”

뱅그릿을 비롯해서.

노파심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몇몇은 흠칫하고 말았다.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으니까.

칙─!

철컹─!

칙─!

기계장치가 맞물리는 소리.

깡! 깡! 깡!

쇠가 부딪히는 소리.

그랬다.

선발대를 맞이한 건 비행성, 아이언 캐슬 호였다.

하르콘이 허허 헛웃음을 뱉었다.

“총대장님께 전해 듣기만 하였는데…….”

호열을 통해서 제국의 소식을 접했던 하르콘이었다. 덕분에 이 장소가 안토니움에 정박하며 제국에 적잖은 도움을 줬다던 드워프의 아이언 캐슬 호 내부라는 걸 곧바로 알아봤다.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흑암룡이시여.”

호열을 정중히 맞이하는 드워프들.

그들 중에서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드워프 하나가 하르콘에게 다가왔다. 심각한 얼굴로 하르콘의 하반신을 바라보더니 다짜고짜 말했다.

“원하는 바를 말해보게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드워프 최고의 대장장이인 나, 월스와일에게 원하는 주문사항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해보라는 걸세. 가능한 선에서 모든 바람을 이뤄줄 테니.”

“……!”

하르콘은 그제야 말뜻을 알아차렸다.

드워프.

전설적인 손재주를 가진 이들 중에서도.

최고라는 월스와일이 자신에게 새로운 다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소리였다. 말투부터 퉁명스러운 드워프가 처음 보는 자신에게 이런 엄청난 호의를 베푸는 이유는 따로 있지 않으리라.

‘설마, 이것을 위해 나를 선발대로……?’

경이 부탁한 것이겠지.

하르콘은 고개를 돌려 호열을 바라봤다.

호열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

감사 인사 따윈 받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동안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드워프들에게 소식을 전달받을 뿐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절차를 방해해선 안 되겠지.’

그저 하르콘은 호열의 뒷모습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벅차오르는 감정을 밖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

독기가 사라졌던 하르콘의 눈빛이 다시금 이글거렸다.

“저는 부러지지 않는 다리를 원합니다.”

“쉽군. 우리가 사용하는 광물이라면…….”

“그러면서도 가벼운 다리를 원합니다.”

“뭐, 그것도 어렵지 않은 주문이야.”

“끝으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다리를 원합니다.”

“……뭣?”

“그래야만 그분의 뒤를 쫓을 수 있을 테니까.”

그분의 뒤를 쫓기 위함이라.

월스와일은 호열을 바라봤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쉽지 않겠는데.

“심정이야 백분 알겠다만, 인간의 한계라니…….”

말꼬리를 흐리던 순간이었다.

“저기, 제가 도울 일이 있을 것 같아서요.”

마법부여학 선임, 키코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월스와일의 시선이 키코를 향했다.

마법사?

꼴도 보기 싫은 족속이군.

속으로 곱씹던 찰나.

그의 시선이 키코가 내려놓는 제련 도구로 옮겨갔다.

“……잠깐, 이것들은 제련 도구가 아닌가? 마법사인 자네가 어찌 이런 걸 들고 다니는 겐가? 마탑이란 곳에서 망치를 두들겨댈 일은 없을 텐데?”

“에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한걸요.”

“뭣? 그럼 자네 혹시 마력석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가?”

마력석.

아이언 캐슬 호를 비롯해서 이미 마력석을 다방면에 사용하고 있는 드워프들이었다.

허나, 그 효과를 백분 이끌어내고 있다곤 장담할 수 없었다. 드워프들은 마력을 다루는 데엔 그리 능숙하지 않았으니까.

키코가 자랑스럽게 답했다.

“마력석이 대륙에선 워낙 귀한 광물이라 마도구에 세공된 걸 만져본 게 전부지만. 그래도 다루는 데엔 자신이 있습니다. 마력이 깃든 돌덩이잖아요? 마탑의 선임인데, 그 정도는 해야죠.”

“오호라. 이보게. 자네의 꿈이 이뤄질지도 모르겠군.”

“……정말이십니까?”

하르콘의 과분한 희망 사항이 실현되고도 남을지도 모르는 상황. 누구보다도 하르콘의 상태를 우려했던 제자들이 방방 뛰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가.

“…….”

남태민, 히사기, 레오니.

그리고 스칼은 이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르카나인이 아닌 플레이어이기에 목격할 수 있는 시야.

아르카나 대륙에 진입하는 순간, 떠오른 메시지 때문이었다.

[절망으로 떨어지던 아르카나 대륙을 구원한 건 한 명의 사내였습니다. 그는 아르카나 대륙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었습니다.]

아르카나 대륙을 구원해 냈다는 ‘그 사내’.

[아르카나 대륙은 이제부터 그 전설을 노래합니다. 아르카나 대륙 전역에 불던 찬바람이 멎고, 얼어붙은 땅이 녹아내려 생명력으로 전율합니다. : 경험치 획득량이 50퍼센트 증가합니다.]

그 사내 덕분에 떠오른 버프.

그 효과가 말이 되질 않았으니까.

아르카나기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부터 최근까지.

“이게 무슨?”

정점을 놓치지 않았던 스칼이었다. 스칼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던 세 사람이었다. 그러니 충격을 넘어 경악으로 다가올 수밖에.

“……내,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거 맞냐?”

경험치 획득량 50퍼센트 상승조차 시작에 불과했다.

[우주의 정령이 역전된 엔트로피에 크게 기뻐합니다. 그들의 장난기가 아르카나 대륙의 인과율을 크게 뒤틀어 놓았습니다만, 누구도 그들을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 아이템 드롭율이 50퍼센트 증가합니다.]

[순혈의 마도 종족, 황혼의 후예들이 아르카나 대륙에 보랏빛 마력을 흩뿌립니다. 아르카나 대륙의 마력 농도가 짙어집니다. 대마도 시대의 서막이 열립니다. : 마법 발현력이 30퍼센트 상승합니다.]

[홀연히 자취를 감췄던 무(武)의 스승, 웨펀 마스터가 돌아왔습니다. 아르카나 대륙의 모든 무기가 그를 숭배하며 그를 뛰어넘기 위해 예기를 머금습니다. : 모든 무기의 숙련도 습득이 30퍼센트 증가합니다.]…….

끊이지 않고 떠오르는.

말 그대로 미친 버프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는 단 한 줄의 메시지까지.

[이 모든 것이 흑암룡의 안배였다.]

“……그동안 대체 대륙에서 어떤 업적을 세우신 거야?”

그건 감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돋게 하기…….

아니.

“업적이 아닙니다. 새로운 전설을 써내려가신 겁니다.”

전율케 하기에 충분했다.

*

마탑의 최상층.

마르셀로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조금은 서운하군요, 경.”

호열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마르셀로였다.

그럴 수밖에.

어째서 선발대를 절반밖에 선출하지 않았는가.

그 뜻을 전해 들은 마르셀로였으니까.

호열이 남긴 말이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그대라면 나의 세계를 맡길 수 있으니까.”

역시, 내가 알고 있는 경이 맞았다.

그 음성 덕분에 마르셀로는 유낙서스와 마주했던.

장발의 호열을 보고 품었던 우려를 떨쳐낼 수 있었다.

“그보다 시차를 생각하면…….”

늦어도 내일 오후경에는 현실로 복귀하시겠지.

그러나 경의 말대로 긴장을 늦춰선 안 됐다.

이제부터는.

언제, 어디서 모습을 드러내도 이상하지 않을 악룡들이었으니.

“…….”

마르셀로는 적막한 최상층을 바라봤다.

한가롭기 그지없다. 공기 중에 흩날리는 털도 없다. 게으른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도 없다. 탑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쉽지 않았다.

“분명 난리를 피우셨겠지요.”

어째서 자신을 대륙으로 데려가지 않는 거냐며, 온종일 투덜대도 이상하지 않았을 탑주였다. 그러나 마르셀로의 회상은 그쯤에서 끊기고 말았다.

별안간 느껴지는 인기척.

“앗, 안녕하세요! 마르셀로 수석님!”

제시 하인네스.

그녀가 최상층을 찾아왔으니까.

마르셀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시 양. 이 수석님을 찾으러 오신 거라면…….”

“아니요! 그게 아니라 수석님께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어서요!”

“제게 전해야 할 말이 있으시다고요?”

혹시 메어리 님의 말인가, 싶었거늘.

그게 아니었다.

제시가 고깔모자를 고쳐 쓰고는 말을 이었다.

“네, 탑주님의 유언에 관해서요!”

“……!”

.

.

.

마탑.

로비엔 플레이어들로 가득했다.

인파엔 탐험가이자 넷튜버 플레이어 박휘강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휘강이 채팅창을 향해 속닥거렸다.

“아르카나 대륙이 언제쯤 마탑 포탈 목적지에 추가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남들보다 몇 발자국은 빨라야 하지 않겠어요? 그걸 위해서면 캠핑 정도는 해야죠.”

-근데, 아르카나 대륙에서도 신호가 터짐?

-ㅋㅋㅋㅋ방송 강종될듯 ㅅㄱ

-우리 휘강이 고생만 하고 수금 못하는 거 아님ㅠㅠ

박휘강은 손사래를 쳤다.

“에이, 제가 언제부터 잘 벌었다고요. 그리고 다들 청렴결백 모르세요? 수금이고 뭐고 방송 못 해도 좋으니까. 전 그냥 아르카나 대륙을 밟아보고 싶어요. 왜, 아르카나가 게임이던 옛날에는 말이죠……!”

그렇게 시작된 나 때는 말이야.

그러나 박휘강의 추억팔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마탑에 모여든 플레이어들.

“……?!”

별안간 모두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으니까.

우선, 포탈이 열렸다는 메시지는 아니었다.

그건 난데없는 퀘스트 메시지였으니까.

그런데, 퀘스트 명이 어째 심상치 않았다.

내용은 더욱 심상치 않았다.

퀘스트창을 읽어나가던 박휘강.

그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말을 더듬었다.

“여러분 초초대형 속보……!! 호, 호열 님께서……!!”

.

.

.

[퀘스트 : 차기 탑주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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