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4화. 내가 있는 세계에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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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업데이트]
신규 보스 몬스터가 추가됩니다.
‘악과를 삼킨 엘더 드래곤 유낙서스’ : Lv.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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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6일의 공백.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 웬수에게 잔소리를 들어도 싸겠다고 각오했다.
그러나 업데이트 내역을 확인한 순간, 나는 뒤통수가 저릿저릿해져 왔다. 절대로 잊지 않고 있었다. 이쪽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악과를 삼킨 드래곤을 치유하기 위해서.
‘……젠장.’
그 증거로 치유학파 선임.
벨리에는 눈가에 그늘이 가시지 않을 정도로 연구에 매진했다.
마르셀로 옆에 나란히 있으면 남매처럼 보일 정도였지.
-“면목이 없습니다, 이 수석님.”
하지만 악과란 언제까지나 아르카나 대륙에서 비롯된 존재였다.
완전히 다른 세계인 현실에서 해결책을 찾기란.
사막에서 존재여부를 알 수 없는 바늘 찾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염두에 두고 있었단 말이다.
일찌감치 확정한 건 아니지만, 스무 명의 선발대에 벨리에를 포함해야 하는 게 옳지 않나 하고는.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이라니.
‘만약, 내가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악과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그래서 털어냈다.
미련을 품고 있기에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처참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전원 출탑.
성전 연합군의 총공세.
고양이가 아닌 범, 탑주의 분전.
이 순간, 드래곤에게 매달린 하르콘 일행까지.
누군가는 말하리라.
그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유낙서스가 날뛰는 와중에도 피해를 최소화한 게 아니냐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니까.
“심사를 시작하겠다.”
엄격하기 짝이 없는 나의 주둥이가 후한 평가를 뱉어내고, 엉겨 붙은 피와 진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탑주에게 흔쾌히 여명의 재킷을 벗어준 거겠지.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여태껏 현실이 무사할 수 있던 이유는 단 하나.
악과에 휘둘리고 있는 노룡.
유낙서스가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대는 여전히 변함이 없군, 유낙서스.”
의아한 소리겠지.
제로 산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대체 무엇을 인내한 거냐고.
하지만 빙룡, 프로즈낙스와 싸워본 나는 알고 있다.
드래곤의 전력은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하지 않다는 걸. 만약, 유낙서스가 진정으로 현실을 파괴하길 원했다면 애초에 육탄전 따윈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확신할 수 있는 건 드래곤이 [『기이』]의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기이의 존재가 아니라면 드래곤에겐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호열 씨……. 아니, 총대장님……?”
남태민을 비롯해 하르콘, 히사기, 레오니의 검격이 유효타를 먹인 건 물론이요. 선임 마법사들의 합공이 효과적으로 먹혀든 건 전부 유낙서스가 그걸 원해서였다.
스스로 추락하길 원하고 마법에 비틀거리길 원하고 검기에 베이길 바란 덕분이었다.
그것이 악룡이 되어있어도 남아있는 한 포기의 이성 때문인지, 본능 때문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토록 애타게 울부짖을 것 없다.”
이제부터는 괜찮다.
[스킬, ‘천적관계’가 발동됩니다.]
내가 있으니까, 유낙서스.
‘……사실 나도 마냥 자신감이 넘치는 건 아닌데.’
유낙서스가 악과를 삼킨 덕분에 발동된 [천적관계]. 그러나 유낙서스가 진심으로 날뛰기 시작한다면 그마저도 역부족일지도 모르겠지.
그래도 내겐 믿는 구석이 있거든.
[구마의식].
유낙서스의 상태는 사실상 악과라는 악마에 빙의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구마의식을 통해 원인을 제거하면 유낙서스도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잠깐이나마 생각했다.
하지만.
‘빙의가 아니야.’
제물을 선택한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유낙서스는 악과에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니다.
정말로 악마, 악룡,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를 증명하듯 메시지가 떠오른다.
[악과를 삼킨 엘더 드래곤 유낙서스가 ‘진정’을 거절합니다.]
흑암룡.
그리고 클라우디의 가주로서 유낙서스의 지휘권을 쥐고 있는 나였다. 설정이나 말뿐이 아니라 무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시스템 공인이었단 말이다.
그러한 나의 명령이 부정당하고 있었다.
“크롸롸롸롸─!”
나를 향해 흉포하게 울부짖는 유낙서스의 울음엔 살의가 등등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사냥꾼의 관점에서 사냥감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서.
그리고 깨달았다.
“태초의 악, 역시나 추악하기 그지없구나.”
악과(惡果).
그 빌어먹을 세계수의 과실이 단순히 대상에 빙의하는 게 아니었구나……? 내면에 품고 있는 선악(善惡)의 균형을 무너트리고, 그 대상의 본질을 완전히 악으로 뒤바꿔놓는 악질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는 열매였던 거야.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드래곤은 세계수의 직계.’
내재된 악 또한 방대할 수밖에 없을 터.
누구보다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있었을 유낙서스였다.
그러니 날뛰고 있는 것이었다.
죽길 바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고오오오─
유낙서스가 나를 향해 브레스를 쏘아낸다.
같은 기이가 아니라면 상쇄할 수 없는 브레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허리춤의 귀철을 꺼내 들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이는군, 주인이여.
스릉─!
귀철에 검강을 더하고, 거기에 마력까지 감싸 쏟아지는 브레스를 그대로 받아냈다. 가볍게 휘두른 귀철에 브레스가 반으로 갈라져 흩어진다.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러면 제가 나서지 않아도……!”
와이번에 올라탄 스칼이 소리치고 있었다.
무슨 계획인지 짐작이 간다.
아직까지 용에 올라탄 적은 없다고 해도 용기사니까.
스칼도 책임감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선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정말로 순수하게 유낙서스 위에 올라타고 싶던 건지도 모른다.
다른 건 몰라도 드래곤한테는 진심이니까, 스칼은.
어찌 됐든 마찬가지로 유감이다.
아무래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으니까.
“유낙서스.”
나는 알고 있다.
모든 악마는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지옥의 규율은 엄격하기 짝이 없어 그 악마가 과거에 검성이었든, 악마 사냥꾼이었든, 참작 따윈 해주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유낙서스도 지옥의 규율을 빗겨갈 순 없겠지.
나는 빙의가 아닌 내면부터 악으로 물들어간 유낙서스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 따윈 알지 못한다.
나는 악마를 사냥하는 악마 사냥꾼이지, 악마마저 굽어살피는 성자(聖子) 같은 게 아니었으니까.
더욱이.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의 긍지는 모순적이게도 악마의 앞에서 가장 드높아진다.』
상대가 악마라면 자비를 베풀지 않는.
그랑펠의 성질머리도 간과해선 안 되겠지.
그러나 나는 냉랭하게 내뱉지 않았다.
“내가 그대의 뜻을 알았다.”
설령 악마로 타락했을지언정. 유낙서스가 필사적으로 인내했다는 걸 아니까. 자신이 되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죽기를 바라며 날뛰고 있단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유낙서스를 다른 악마들과 똑같이 취급할 수도.
매정하게 지옥의 불구덩이에 처박아 넣을 수도 없었다.
감정을 정리한 나는 읊조렸다.
“어느 누구보다 성대하게 보내주겠다.”
그러니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내가 있는 세계에서 유낙서스는 악룡(惡龍)으로 기록되어 죽지 않을 거다. 날개가 찢기고, 처절하게 산맥을 구르다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 노룡으로도 기록되지 않으리라.
내뱉은 말은 반드시 실현해 내는 나니까.
“이제부터는 만물의 왕답게 날뛰어도 좋다, 유낙서스. 그대는 내가 상대한 그 어떠한 악마, 마왕, 거악보다도 강대한 난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나는 읊조렸다.
“그것이 내가 그대에게 주는 마지막 처분이다.”
귀철을 바로 쥐었다.
“내가 그대의 모든 것을 감당하겠다.”
그런 나의 뜻을 알아들은 걸까.
“크ㄹ……!!”
돌변하는 유낙서스의 기세.
유낙서스가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던 전력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치지지직!
거대한 육체가 증기를 내뿜으며 달아오른다.
열기에 협공을 퍼붓던 하르콘 일행이 떨어져 나간다.
“……미친, 갑자기 뭐야?”
“지나치게 뜨겁습니다.”
“씹. 출혈이 터진 것도 아닌데……?”
스칼의 중계가 들려온다.
“드, 드래곤의 새, 색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한 번 유낙서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빙룡, 프로즈낙스. 대지룡, 쿠드하낙스. 뇌룡, 제우데낙스……. 그렇습니다. 이 늙은 노룡에게도 저들처럼 불리던 과거의 이명(異名)이 있었지요.”
유낙서스만 노룡이라 불리는 데에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싶었거든. 그때 유낙서스는 멋쩍어하면서 자신의 이명을 말해주었었다.
-“극염룡(極炎龍). 그것이 저의 이명이옵니다.”
극한의 열기.
붉은 걸 넘어 검게 달아오르는 드래곤의 가죽.
불꽃으로 승화되어 가는 드래곤 비늘까지.
유낙서스의 전력이 가장 먼저 피부로 와 닿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자신을 화룡(火龍)이라 칭하던 카림제바가 떠오른다. 과연, 악마 숭배자답게 주제 파악이라곤 조금도 하지 못했던 모양이군.
‘비교 자체가 불가능해.’
또 한 번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자제력 한번 대단하다, 유낙서스. 어떻게 악마가 되어서도 이런 힘을 억누르고 있던 거냐? 그리고 나는 어쩌다가 그런 너와 마주하게 된 걸까……!
물론, 이 와중에도 말투는 태연하기 짝이 없다.
“비로소 만물의 왕답구나, 유낙서스.”
누군가는 묻겠지.
속된 말로 심히 좆된 게 아니느냐고.
그랬다. 체급을 대신할 수 있는 레벨로 봐도, 기이의 영역으로 봐도 내가 유낙서스에게 확실하게 앞서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가 아니라 ‘그랬다’라고 말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때마침 살 구멍 하나를 발견한 참이었거든.
흘러가는 시간을 오후의 티타임에 비교하며 중요시하시는 우리 그랑펠님께서. 무려 6일이나 되는 시간을 허비하고도 아쉬워하지 않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단 뜻이다.
나는 유낙서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나 또한 ‘전력’으로 어울려주마.”
.
.
.
슈웅─
메어리는 빗자루를 타고 제로 산맥을 날았다.
제시에겐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제시가 괜히 대마법사의 그릇으로 선택받은 게 아니라는 걸 그녀를 지도하며 알게 되었으니까.
‘사실 지금은 제시보다도…….’
클라우디, 호열이 우려가 됐다.
“!”
이윽고, 눈에 들어온 전장의 풍경.
메어리는 단번에 유낙서스를 알아봤다.
과거 아르카나 대륙에서 조우했던 적이 있는 드래곤이었다.
유낙서스.
아젠트레스가 이끄는 엘프 무리.
칠죄종 식탐.
초월자 우르스.
일촉즉발의 상황을 클라우디의 이름으로 정리했던 게 바로 남쪽 바다의 마녀, 메어리였으니까. 그러니 메어리는 상황의 심각성을 단번에 알아봤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메어리는 짐짓 생각했다.
클라우디께선 저 드래곤을 혼자 감당하실 수 없다.
과거였다면 스스로를 자책했을 것이다.
위대한 가문, 클라우디의 능력에 의심을 품다니. 세상에 그것보다 무의미한 걱정은 없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있었으니까.
어째서 클라우디께선 모험가라 불리고 계신 걸까?
클라우디의 가주,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모험가, 이호열.
그 둘의 존재만큼 커다란 모순은 없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한들.
같은 시간선에 둘이 공존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메어리는 의문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호열에게 일족이 구원받은 시점에서.
더 이상의 의문은 불경할 뿐이었으니까.
다만, 우려할 뿐이었다.
어떠한 사정으로 어떠한 모순에 얽히신 건지 알 순 없지만……. 클라우디께서 과거의 기량을 내시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을. 메어리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한 지금 상태로 엘더 드래곤과 단신으로 대적하는 건 불가능하리란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메어리는 다급히 빗자루를 가속했다.
그런데.
“……!”
기우였다.
……지난 6일, 대체 어떠한 변화가 있으셨던 거지?
그 시절.
전성기의 클라우디가 눈앞에 있었으니까.
눈을 감은 탑주를 품에 안은 채.
뒤늦게 메어리를 따라온 제시.
제시가 슬며시 눈가를 훔치고 입을 연다.
그건 조금 다른 종류의 의문이었다.
“저기……. 일주일 만에 머리카락이 저렇게 자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