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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343화 (343/489)
  • ◈ 343화. 내가 있는 세계에선 (2)

    마탑의 최상층.

    “다녀왔습니다!”

    이번 퀘스트가 진행된 장소는 제로 산맥의 십만 동굴 중 하나였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퀘스트 막바지엔 별안간 동굴 자체가 무너져내려 포탈을 통해 마탑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꼬질꼬질해진 제시의 뺨이 난이도를 말해주는 듯했다.

    “오늘따라 잠잠하네요……?”

    메어리의 시야 언저리.

    제시의 동그란 뒤통수가 두리번거린다.

    제시의 말대로였다.

    “흔치 않은 일이군요.”

    원로 마법사, 유그위드나 마르셀로 수석이야 마탑의 일 처리로 언제 자리를 비워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 애초에 마탑 최상층에 얼굴을 비추는 게 드문 그들이었다.

    그런데.

    “없네요. 고양이도요.”

    제시가 으음, 말꼬리를 흐리기도 잠깐.

    고오오오─

    “!!”

    별안간 최상층에 마력이 일렁거렸다.

    메어리는 흠칫했다.

    이 마법, 발현의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포탈을 매설해 둔 건가?’

    마치 함정 마법처럼.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발현되는 포탈이었다.

    포탈 정도 되는 고위 마법을, 자신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히 매설해 둘 수 있다니. 메어리의 지식에서 마탑의 그만한 발현력을 가진 이는 한 명밖에 없었다.

    마탑의 수석.

    동시에 클라우디의 가주.

    그랑펠 혹은 이호열이라 불리는 사내.

    메어리가 담담히 말했다.

    “이호열 수석님께서 복귀하신 모양이네요.”

    “아, 그렇군요……!”

    “……?”

    메어리는 담담한 반응에 짐짓 놀랐다.

    ‘조금 더 기뻐할 줄 알았는데.’

    그분께선 언질도 없이 일주일씩이나 자리를 비우실 분이 아니셨다.

    틀림없이 어떠한 사건이 생겼다는 뜻.

    믿음과 별개로 걱정했던 건 자신이나 제시나 마찬가지였다.

    그 증거로 제시는 수업 도중 휴식 때마다 기이의 산물-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었으니까.

    제시, 스스로도 의아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요.”

    조금 더 기뻐야 하는데.

    더 큰 우려가 떠올라 기쁜 감정을 잡아먹고 있었다.

    메어리는 제시에게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우리가 그럴 정도로 긴밀한 사이는 아니니까.

    다만, 전할 뿐이다.

    “그렇다면 안배에 발을 내디뎌볼 수밖에 없겠네요. 아무래도 이호열 수석님께서 저희에게 바라시는 바가 있으신 것 같으니까요. 괜찮나요, 제시 하인네스 양?”

    메어리는 말을 내뱉는 동시에 황혼의 마력을 방출.

    마탑의 마력 반응을 확인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마탑에 단 한 명의 마법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네, 저는 좋아요.”

    저벅─

    고개를 끄덕인 제시가 곧바로 메어리의 뒤를 쫓아 포탈로 진입했다.

    이윽고, 풍경이 바뀌고 시야에 들어온 건 제로 산맥이었다.

    어째서인가, 쑥대밭이 되어있는 제로 산맥.

    그리고.

    “!”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제복.

    여명의 재킷에 감싸진 피투성이 고양이 한 마리. 메어리가 고양이를 알아보기도 전에 제시가 뛰쳐나가 재킷에 둘둘 싸인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온기를 알아차린 고양이가 작게 말했다.

    “……냥.”

    아니, 울음을 뱉었다.

    고양이, 탑주 나름대로의 뻔뻔한 연기였다.

    제시에게만큼은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일찍이 모든 걸 알고 있었구나, 제자야.

    오히려 모른 체하던 건 너였구나.

    탑주는 그제야 제대로 말했다.

    “스승을 속이다니, 발칙한 제자로고.”

    “말씀하시지 마세요.”

    “스승이 재롱 피우는 모습이 그리 재밌더냐. 악취미구나. 네 연기에 속아서 이리저리 앞발을 휘두르던 내가 부끄럽구나. 이래서야 간식을 받아먹기 위해서 재롱을 피우던 내가…….”

    “말씀하시지 마시라구요……!”

    보랏빛 아우라.

    황혼의 마력이 제시에게서 흘러져 나온다.

    황혼의 마력이 더해진 치유마법이 탑주의 몸을 휘감는다.

    그러나 치유마법은 탑주의 육체에 스며들지 않았다.

    탑주가 황혼의 마력을 바라본다.

    “눈이 부실 정도야.”

    “…….”

    “결국, 내 제자답게 놀라운 성취를 이뤘구나.”

    황혼의 마력이 더해진 마법의 발현력은 그렇지 못한 마법과 비교했을 때 십수 배의 차이가 난다. 전공이 아니기에 초급 수준에 그친 제시의 치유마법이 마탑 최고의 치유마법사 벨리에의 마법과 비등한 효력을 낸다는 뜻이다.

    “……어째서죠?”

    그러나 탑주에겐 효과가 없었다.

    제시가 떨리는 눈망울로 메어리를 올려다본다.

    메어리는 알고 있었다.

    탑주는 이미 숨을 거두었단 사실을.

    그 어떤 치유마법도 죽은 자를 살릴 순 없다.

    다만, 메어리조차 설명할 수 없는 건.

    죽어서도 말을 잇고 있는 탑주였다.

    “마법사에게 칭찬은 독이 되는 법이지. 그래서 필사적으로 참아왔거늘. 결국, 이런 고양이 꼴로 내뱉게 하는구나. 못난 스승 때문에 고생이 많았구나, 제시.”

    그것이 강렬한 사념 때문인가.

    그게 아니라면 자신도 모르는 마법 때문인가.

    메어리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켜볼 뿐이었다.

    탑주의 최후를 직감한 건가.

    더욱더 세게 탑주를 끌어안는 제시 하인네스.

    그리고 어째서인가, 쓴웃음을 짓는 탑주를.

    정적 속에서 고양이가 말했다.

    “……역시 그대는 죄가 많아, 이 수석.”

    *

    검기(劍氣).

    얄궂다.

    평소에는 희미하기 짝이 없던 그 빛이 이 순간 그 무엇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진정한 생사의 갈림길이란 것을.

    남태민.

    [주의 : 과도한 근력에 육체 손상이 시작됩니다.]

    히사기.

    [주의 : 근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마력이 역류합니다.]

    그리고 레오니.

    [주의 : 생명력이 너무 낮습니다.]

    바바리안, 마창사, 버서커.

    세 사람에게 각기 다른 메시지가 떠오른다.

    클래스만큼이나 제각각인 경고 메시지였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가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은 촛불이라고.

    파바박─!

    그러나 발을 구르고 드래곤의 뒤통수로 뛰어오른 지금에 와선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었다. 물론, 모두에게 후회 따윈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형형하게 빛나던 호열의 검기를.

    그동안 대체 어떤 싸움을 해오신 거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서야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검로(劍路)에 지름길 따윈 없었다.

    정말로 생사의 갈림길을 걸어야지만, 검기는 선명해졌다.

    그렇기에 생각이 닿지 않을 수 없었다.

    호열은 그동안 혼자서 어떤 길을 걸어온 것인가.

    그리고 행방이 묘연하신 이 순간.

    또 어떤 길을 홀로 걷고 있단 말인가.

    꾸욱!

    그건 절대로 잡생각이 아니었다.

    그래, 그것은 일종의 더없이 강렬한 동기부여.

    각자가 무기를 더욱더 굳게 쥐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니까.

    쾅─!

    거대한 드래곤의 육체 탓.

    굉음이 들려온 정면의 상황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탑주가 시선을 끌기 위해 몸을 내던진 지금도.

    하르콘과 남태민 히사기 레오니는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했다.

    다만, 가늠할 뿐이었다.

    ‘닿는다. 드래곤에게.’

    놈이 아무리 빠르게 반응한다고 해도 지금의 일격은 반드시 적중하리라고. 생사의 갈림길. 평소보다 예리해진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푹!

    푸푹!

    푹!

    사방향.

    검, 대검, 쌍검, 창.

    네 종류의 무기가 유낙서스의 비늘을 뚫고 살점에 박힌다.

    어떤 공격도 튕겨낸다는 드래곤 스킨이 고작 검기에 베였다?

    아니, 고작 검기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쉽게 베어졌어?’

    ‘쇠약해져 있었나.’

    ‘아니, 그게 아니야……!!’

    ‘마법, 마법이다.’

    아무런 효과도 없어 보였던 선임 마법사들의 마법 폭격이 드래곤 스킨의 방어력을 바닥까지 치닫게 한 덕분이었다.

    물론, 아까부터 강조했던 거대한 육체에 비하면 지금의 상처는 사소하기 그지없는 생채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 있는 피해도 아니었다. 어찌 됐든, 성전 연합군이 유낙서스에게 먹인 최초의 유효타였으니까.

    크롸롸라!

    그 증거로 유낙서스가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하르콘이 외쳤다.

    “제군들. 이제부터 내가 그대들에게 해줄 말은 없네.”

    찰나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장.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뢰해야 하는 건.

    오직 자신의 육감이 내리는 판단뿐이다.

    타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다만.”

    하르콘은 이 한마디를 꼭 덧붙이고 싶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네. 진심으로 나를 따라줘서 고마웠네.”

    세 사람은 듣자마자 질색했다.

    “제발 그딴 플래그 세우지 마세요, 스승님……!!”

    죽음을 각오하긴 했다만, 그게 죽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들 살 수 있다면 살아야지.

    물론, 하르콘도 그런 뜻에서 한 말은 아니었다.

    “플래그……? 그게 뭔가?”

    정말로 순수한 뜻에서 한 말에 불과했으니까.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쓰러지지 않고 산맥에 올라서서는.

    결국, 드래곤에게 일격을 안긴 이들을 향한 경의였으니까.

    그저 상황이 문제였다.

    그 어떤 말을 뱉어도.

    플래그가 되어버리는 절망적인 상황이.

    남태민은 피식 웃었다.

    “플래그가 뭐냐면……. 살아남으면 알려 드릴게요!”

    “남태민 씨, 그것도 플래그 아닙니까?”

    “에퉤퉤. 그럼 취소.”

    “하여튼, 말이나 못 하면.”

    이윽고.

    쌔애애애애액─!

    고막을 찢을 기세로 들려오는 거센 바람 소리.

    유낙서스의 꼬리가 채찍처럼 날아들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남태민이었다.

    기사, 마창사, 버서커.

    탱딜힐 밸런스라곤 개나 줘버린 파티.

    그나마 탱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건 바바리안뿐이었으니까.

    [광폭화] 발동.

    남태민이 야성으로 울부짖는다.

    [악과를 삼킨 엘더 드래곤 유낙서스가 ‘도발’에 저항합니다.]

    2,500레벨 vs 600레벨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태이상이 통하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른 방식으로 녀석의 어그로를 자신에게 집중시켜야 했다.

    “크으으.”

    끓어오르는 야성이 본능적으로 답을 찾아 움직인다.

    푸우우욱!!

    피하기에도 역부족일 찰나.

    오히려 대검을 더욱더 놈의 살갗에 쑤셔 넣는다.

    그 행동에는 회피하던 하르콘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저래서야……!”

    마치 대검을 말뚝처럼 박아넣은 모양새가 아닌가?

    물론, 그만큼 효과는 탁월했다.

    미세하게 달라진 드래곤 피어.

    크콰롸!

    역린은 아니더라도 신경을 건드리긴 한 모양.

    그러나 전사에게 생명과도 같은 무기였다.

    특히나 저런 크기의 대검은 방패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거늘.

    ‘어찌 저런 판단을……?’

    하르콘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곁에서 한숨이 들려왔으니까.

    히사기와 레오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뱉는다.

    “저 근육 덩어리 또 무기 하나 해먹을 생각이네.”

    “과연, 거대 연합의 적자 담당답군요.”

    “……!”

    그렇다.

    인간보다 짐승에 가까워지는 [광폭화].

    [광폭화]를 발동한 남태민에게 대검이란?

    사실상 무거운 족쇄와 다름없었다.

    파바바박!

    그러한 사실을 증명하듯 남태민이 네 발로 가속한다.

    탓─!

    꼬리를 피하기 위해 짐승처럼 뛰어오른다.

    가공할 정도의 점프력.

    야성으로 강화된 근육이 그걸 충분히 가능케 했다.

    물론, 남태민은 피해내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착지와 동시에 근육과 핏줄이 돋아난 손아귀로 비늘을 움켜쥐었다.

    꾸드득─!

    비늘을 그대로 뜯어내 버렸다.

    강도만큼이나 그 단면은 예리한 검과 다를 바 없었다.

    그 탓에 남태민의 상반신에선 피가 터져나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으르르르!!”

    처절할 정도로 집요하게 비늘을 뜯어나갔다.

    하르콘은 침음을 삼켰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얕보고 있던 건가.’

    가상현실 게임, 아르카나 대륙 전기.

    대격변 이전, 아르카나 대륙이 모험가들에게는 유희에 불과했다는 진실에 하르콘을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래서 그토록 가벼운 태도들을 보였던 것이라고.

    하지만 이들만큼은 아니었다.

    누가 더 이상 저들의 진심을 의심할 수 있단 말인가?

    어느 순간 찾아온 변화이리라.

    라이언 하트 기사단에서 수많은 기사를 지도했던 하르콘은 알고 있었다. 타인의 육체를 단련시킬 순 있어도, 정신을 단련시킬 순 없다는 사실을.

    그런 의미에서…….

    “역시 경은 대단해.”

    호열에게, 긍지에 다시금 감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스릉!

    물론, 그 와중에도 행동을 멈추진 않는다.

    이 순간, 모두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었다.

    덕분에 얻어낸 절호의 기회를 헛되이 할 수 없다는 의미다.

    파밧!

    유낙서스의 거대한 육체를 전장으로 삼아 내달리는 하르콘, 히사기, 레오니. 말했다시피 공략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감각이 이끄는 대로 피하고, 베어낼 뿐!

    그 모습은 조금도 화려하지 않았다.

    그저 처절했다.

    지켜보는 이들의 입을 틀어막게 할 정도로.

    남철민의 입에서 탄식이 튀어나오게 할 정도로.

    “이제 그만……!”

    분석관의 지식까지 끌어올 필요도 없었다.

    유낙서스에게 누적되는 피해보다 급격히 느려지는 태민이.

    마찬가지로 악화되는 세 사람의 상태가 더욱 눈에 띄었으니까.

    “……저런 괴물을 우리가 이길 수 있을 리 없어.”

    지켜보던 모두가 생각하던 때였다.

    모두와 같은 광경을.

    “이 시간부로 심사를 시작하겠다.”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던 이가 모습을 드러낸 건.

    “남태민, 본능에 의거한 움직임은 높게 평가하겠다. 그러나 그 본능이 평상시에도 발휘될지는 보다 지켜봐야 알겠군. 그럼에도 충분한 활약이었다. 무엇보다 임기응변을 높이 사겠다.”

    “……!”

    드래곤과 직면한 상태.

    그 와중에 최상위 랭커.

    “히사기, 레오니. 역할에 충실한 활약이 나쁘지 않았다. 상성의 불리함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도달한 것 자체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남태민, 히사기, 레오니를 신랄하게 평가할 수 있는 이는.

    현실에서도 아르카나 대륙에서도 유일무이했다.

    “……!!”

    그렇다, 이호열이다.

    “마지막으로 하르콘.”

    “……경.”

    “그대에게 심사 따윈 필요치 않겠지.”

    “하하……. 그렇습니까.”

    “마지막으로.”

    호열의 시선이 천천히 옮겨간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채.

    이빨을 갈고 있는 드래곤을 향해 내뱉는다.

    “소란스럽구나, 유낙서스.”

    너그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우선 그 울음부터 그치는 게 어떻겠느냐.”

    그러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악과를 삼킨 엘더 드래곤, 유낙서스에게 ‘진정’이 발생합니다.]

    “……!!!”

    모두의 눈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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