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5화. 위대하게 써라 (2)
명분은 언제나 중요하다.
더욱이 겨우 티백 녹차 한 잔을 기울이는 데에도 온갖 미사여구를 덧붙이는 내가 아니겠냐? 그런데 사냥에 있어선? 명분을 엄격하게도 따져야만 한다.
‘우선순위를 확실히 했단 거지.’
그렇다.
결과적으로 나, 이호열은 포션을 독점해서 천하통일을 견제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러한 고생이 그랑펠에게는 불필요한 수고에 불과하겠지.
하지만 언제나 잊지 말자, 호열아.
세상 모든 사람이 동화되어도.
나까지 그랑펠의 질풍노도에 흔들려선 안 된다……!
‘생각처럼 쉽지 않거든.’
첫째로 천하통일은 평범한 길드가 아니다.
유일하게 AAU 국제 협약에 소속되지 않은 덕분.
그들의 조국과 일심동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뜻.
그 증거는 제로 산맥에서의 활동만 지켜봐도 알 수 있다.
‘길드가 군대를 통솔하는 꼴이야.’
핵심만 말하자면 나와 천하통일의 대립이 대한민국 대 중국, 국가 간의 대립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 게다가 나랑 류오쥔춘 사이에 일어날 대립이 어디 보통 수준이겠어?
‘그랑펠이 사냥감이라고 확신했다는 건 말이지.’
상황에 따라 서로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뜻이었다. 그 수위를 감안하면……. 대한민국 대 중국의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래서 나, 이호열은 머리를 썼다.
천하통일이 포션을 대량으로 구매한다는 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익히 알려진 소문.
그런 천하통일을 말려 죽일 수 있도록.
이쪽에서 먼저 포션을 쓸어 담는 계획을 세웠단 거지.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할걸?
‘흑역사도, 업보도 되돌아오는 법이거든.’
전(前) 천하통일 길드원.
용성락의 말에 따르면 류오쥔춘은 클래스를 따지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 많은 경험치를 줄 수 있는 고레벨 플레이어라면 전부 사지로 내몰았다고 했으니까.
천하통일은 일찌감치 딜러, 탱커, 힐러 클래스 비율도 무너져있을 터. 부족한 포션량을 대체할 힐러도 없으니 여파는 곧바로 드러나는 게 당연하다.
유스라 왕국의 황금 원탁.
성전 연합군 회의가 시작되고 제로 산맥 상황이 전해진다.
거대 연합의 분석관, 남철민이 상황을 브리핑한다.
“보시다시피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천하통일의 약세입니다. 동굴 균열 공략에 성공했다면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보도자료를 뿌렸을 텐데……. 언론이 잠잠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누구 말대로 모든 일엔 절차가 있는 법.’
밑 빠진 독에 억지로 물을 부어봤자 어떻게 되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거든. 내가 괜히 부지런히 깨진 밑 독을 보수하려고 발버둥 쳤던 게 아니라니까?
남철민의 말에 남태민이 머리를 긁적였다.
“희한하네. 최근 기세로는 실패할 리가 없을 텐데…….”
솔직히 입이 근질근질했다.
‘어떻게 보면 제대로 전략 성공이잖아.’
천하통일에게 친히 엿을 먹여주리라!
첫 단계부터 제대로 적중한 셈이었거늘.
그랑펠의 긍지가 어디 보통 긍지냐.
사냥감 상대로 전략을 세우는 것조차 사치로 여기시는 고집 덕분에 자화자찬도 할 수가 없었으니.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선 명분이라도 내세워야겠군.
나는 브리핑이 끝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비로소 때가 왔네.”
“……!!!”
집중되는 시선.
모인 이들의 얼굴에 깃드는 긴장감.
나는 말을 이었다.
“아르카나 대륙으로 발을 내디딜 때가.”
그렇다.
현실과 아르카나 대륙.
본격적인 왕래가 더는 꿈이 아니다.
‘이번 진입으로 확실하게 알게 됐거든.’
나는 황혼의 마력을 포탈 발현 과정에 추가했었다. 그 덕분에 프레이자와 함께 포탈을 통과해도 마력 소모에 큰 부담이 없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그랑펠의 재능 덕분에 깨닫게 된 미묘한 감각을 마탑 포탈에 접목할 수만 있다면……. 한 번에 스무 명 정도는 대륙으로 왕래할 수 있어.’
결국, 내 마법 발현력이 이전에 비해 상승한 덕분이었거늘.
누누이 말하듯 천상천하 유아독존.
자신의 부족함을 순순히 인정할 수 있을 리 있겠냐.
나는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그대들이 스스로 자격을 거머쥔 덕분이다.”
“……정말인가, 호열 경!”
“드디어……!”
“총대장님의 기대에 보답하게 되어 기쁩니다.”
나는 감격에 빠진 듯한 이들을 보며 탄식을 삼켰다.
너도 양심의 가책이란 걸 느껴봐라, 그랑펠……!
본의 아니게 긍지라이팅을 한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만……. 이럴 때일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건 짊어진 짐을 더욱 바짝 치켜드는 것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아르카나 대륙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네. 과거와는 모든 게 다른, 작금의 아르카나 대륙은 시간선을 포함한 모든 것이 서로 뒤섞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
마계와 아르카나 대륙이 연결되고, 그 바람에 대륙에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그것도 모자라서 흉조가 삭제됐던 과거의 존재들까지 뱉어낸 상황.
성전 연합군이 성장했다고 해도 위험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만반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포션을 사들인 명분이었다.
“허나, 그대들이 우려할 건 없네.”
“……?”
“그에 관한 모든 준비는 나의 절차대로 진행되고 있으니.”
“총대장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나의 말을 거든 건 유스라 왕국의 국왕.
하쿠나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이었다.
“성전 연합군을 위한 막대한 수량의 포션과 마도구들이 착실히 보급고에 쌓여가고 있습니다. 당장 대륙 단위의 전면전을 시작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포션이라고 해도 절대 병나발은 불순 없다.
‘그렇다고 전투 중에 찻잔에 포션을 따라서 마실 수도 없고…….’
정작 나는 격식 때문에 사용하지도 않는 포션을 내 인벤토리에 쌓아두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나는 하쿠나에게 요청했다. 황금 궁전의 광활한 창고를 좀 빌리겠다고.
그와 관련해서 정리된 내용이 적힌 양피지.
그를 읽어나가던 남철민이 안경을 치켜 쓴다.
이내,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아, 아니. 어떻게 벌써 이런 물량을……?”
“형, 혼자만 놀라지 말고 우리한테도 설명해줘 봐.”
“이 정도면 우리 거대 연합 자본으론 어림도 없는 수준의 품목들이야! 샤이닝 정도는 돼야 비벼볼 수 있을……. 아니, 그쪽도 안 될 것 같은데?!”
당연히 그래야지.
‘전부 웃돈을 줄 대로 주고 샀는데.’
나, 이호열.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옛말에 단단히 각오했다.
하지만 언제나 상상 그 이상.
위대한 가문의 소비력은 정승보다 몇 술은 더 떴다!
청렴결백과 짠돌이는 다르다는 건가?
수십억을 호가하는 엘릭서를.
즉시 구매할 땐 정말이지…….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위대하게 돈지랄을 한 덕분에.
천하통일은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별다른 손을 써보지 못한 채 손가락만 빨게 된 셈이 됐다. 아마 돈다발로 뺨을 얻어맞은 기분이 아닐까?
나는 들뜬 기색이 역력한 좌중을 바라봤다.
하르콘을 비롯해서 다들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이걸 어쩌나.
유감스럽게도.
“그러나 모든 일엔 적합한 절차가 필요한 법.”
초를 칠 수밖에 없겠군.
“이 시간부로 나는 아르카나 대륙에 먼저 발을 내디딜 선발대를 선출할 예정이다. 선발대의 인원은 정확하게 스물. 그 목적은 아르카나 대륙에 활로를 닦기 위함. 물론, 평가 기준은 오직 나의 주관에 달렸다.”
“……!!!”
아까도 말했다시피 마탑의 포탈을 활용한다고 한들.
현시점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스무 명이 한계다.
솔직하게 내 능력 부족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선발대라니 변명도 참 그럴싸해?
덕분에 동요하는 건 애꿎은 좌중이었다.
히사기의 눈매가 어느새 가늘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모두가 서로의 경쟁자겠군요.”
그 말에 어째 더욱더 이글거리는 눈빛들.
그 시선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죄책감을 느꼈다.
아주 그냥 유죄 인간, 대역 죄인이 따로 없구나…….
*
오크 옥션.
오크들의 지하로는 아르카나 대륙 전역에 퍼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키치는 정돈된 지하도시를 거닐며 주변의 장식품들을 괜히 한 번씩 건드렸다.
툭.
그때마다 빈정거렸다.
“부럽네.”
툭.
“우리 아지트엔 시체 썩는 냄새만 가득한데.”
툭.
“중간에서 떼먹기만 하는 놈들이 더 잘 먹고 잘사는 게 맞는 세상일까? 대체 얼마나 배가 처불렀길래. 마력석 마도구를 이렇게 쌓아둘 수 있는 거니, 너네는?”
안내하던 오크는 질끈 눈을 감았다.
‘울리취님, 절대로 보시면 안 됩니다…….’
아르카나 대륙에서 마력을 품은 마력석은 고가에 거래된다. 마력석은 그 자체로도 재료로서의 가치가 있었지만, 특정한 고성능 마도구의 연료가 되기 때문이었다.
흔들~
그 귀하신 마도구들이 키치의 거친 손길에 위태롭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울리취의 까칠한 성격을 고려하면 당장 말려야만 했다.
상대가 누구라고 하든 제 역할을 못 한 네놈들의 책임이라고 윽박을 내지를 테니까.
그러나.
“그래, 안 그래?”
“……그렇습니다.”
상대가 그림자 용병단 수장, 키치라는 게 문제였다.
뒷세계에서는 물론이요.
양지에서도 대적할 자가 많지 않다는 극악무도한 범죄집단.
‘……죽을 바엔 혼나는 게 낫지.’
키치의 껄렁한 태도에 오크는 큰 덩치를 잔뜩 움츠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고오오오─ 몇 개나 되는 마력석 포탈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오크 옥션의 사장, 울리취의 집무실이 보였다.
끼익─
집무실의 문을 연다.
잔뜩 내려쓴 안경.
고풍스러운 만년필.
무언가를 적어나가던 울리취가 고개를 든다.
장사꾼답게 곧장 목적을 꺼낸다.
“찾는 물건이 뭔데 이 난리인가, 키치?”
키치는 웃었다.
“이 능구렁이 피가 흐르는 오크가 모른 척을 하네?”
두 사람의 기세에 질린 오크가 고개를 숙인 채.
“그, 그럼 편히들 이야기 나누시지요.”
집무실을 빠져나간 뒤에야 키치는 말을 이었다.
“머리카락 내놔.”
“머리카락? 자네 잘린 머리카락을 왜 나한테 와서 찾나?”
“어쭈? 농담이 나오지?”
“재미없었나? 어쨌든, 짧은 머리도 어울리는군.”
“개소리 말고 가져와.”
분위기를 풀기 위해 던진 농담.
그러나 키치의 날이 선 반응은 울리취의 표정도 굳게 하기에 충분했다.
울리취가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답한다.
“천하의 그림자 용병단 단장님께서 오크 옥션을 찾으셨다……. 무언가를 팔러 온 것도 아니고, 구하러. 그 소릴 들었을 때부터 짐작했네. 자네들이 구하러 왔다는 건 세상에 하나뿐이며 동시에 누군가에게서 강탈할 수 없는 물건이라는 뜻일 테니까.”
울리취의 동공이 번뜩인다.
“그래,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클라우디의 머리카락을 찾으러 온 거겠지? 그래서 오크 옥션의 규칙을 어길 생각인가, 키치? 애진작에 팔아치운 머리카락에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
“후우.”
키치는 짧은 한숨을 뱉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는 걸까.
고작 돈 때문이라면 움직이지도 않았을 거라는 것부터?
아니면 고작 머리카락을 찾기 위해서 며칠 동안 대륙을 떠돌았다는 것부터?
그것도 아니라면 이 세상에 클라우디가 존재하지 않기는 왜 존재하지 않느냐고, 저 초록 돼지의 말을 고쳐주는 것부터?
“유감인데, 말로는 안 될 것 같아.”
키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역시 팔자에 없는 짓을 하려고 하니까.
머리에서부터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키치는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미안하게 생각해. 나는 모르는 옛날의 일이지만, 어쨌든 너한테는 성공적으로 끝난 거래였을 테니까. 그런 거래를 무른다면, 그림자 용병단은 앞으로 오크 옥션과 거래를 이어 나갈 수 없게 되겠지.”
울리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키치. 설령 아르카나 대륙이 무너진다고 해도 그건 양지에 한정된 이야기일 뿐. 뒷세계의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라는 걸 그대도 알고 있지 않나?”
키치에게 하소연하듯 말을 이었다.
“나는 구태여 적을 늘릴 생각이 없네, 키치. 최근 음지로 손을 뻗쳐오는 다이아몬드 상단의 가몬드 필, 그 작자만 하더라도 충분히 골치가 아프거든.”
“그래?”
하지만 키치는 기어코 비수를 뽑았다.
“근데, 나는 더 이상 그림자 용병단이 아니거든.”
“……그게 무슨 소린가?”
“뭔 소리겠어, 단장도 용병단도 때려치웠다는 거지.”
“……때려치워? 그림자 용병단을, 단장직을?!”
울리취는 계산이 빠르다.
“흐음.”
울리취가 우려했던 건 그림자 용병단과의 관계 단절이었다.
음지에서 그림자 용병단과 견줄 수 있는 실력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 상호관계야말로 오크 옥션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었다.
한데, 키치가 더는 그림자 용병단이 아니라니…….
계산을 끝마쳤다.
“그렇다면 자네를 죽여도 오크 옥션에 손해는 없겠군.”
“맞아. 내가 널 죽여도 그림자 용병단은 오크 옥션과 계속해서 거래를 이어 나갈 수 있지.”
“이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우두머리의 짐이란.”
울리취가 작성하던 서류들을 바라봤다.
“아쉽군. 이것까진 처리하고 싶었는데.”
“기다려 줄까?”
“됐네. 하루 이틀로 될 문제가 아니야. 양지의 거상, 다이아몬드 상단을 상대하는 건 우리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란 말일세.”
만년필을 내려놓았다.
“뭐, 상관없으려나.”
설령 자신이 키치의 손에 죽는다고 해도.
오크 옥션은 멀쩡히 굴러갈 것이다.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지.
모든 건 엄격하게 확립된 규율과 절차 덕분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진정으로 찾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하나, 키치?”
“찾아야지. 방해꾼 몇 명을 죽여서라도.”
“그래? 그럼 나는 몇십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넬 막아봐야겠군.”
그러한 규율과 절차를 확립하게 해주신.
‘그분’에 대한 충성심을.
뒤늦게라도 증명하기 위해 나서야 할 때였다.
울리취는 걸치고 있던 의복을 벗었다.
두꺼운 목.
거친 피부.
타고난 강골.
오크의 육체는 가히 전투 종족이라 불려 손색이 없었다.
울리취는 서랍 안에서 무기를 꺼내 드려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나저나 하나만 물어도 되나, 키치?”
“얼마든지.”
“갑자기 무슨 이유로 머리카락을 찾는 건가?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는 건 자네의 한숨으로 증명이 되었네.”
“좀 귀찮은 질문인데.”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곧 죽을 사람 궁금증 하나도 풀어줄 수 없나? 그래도 그간의 정이 있는데, 이유도 듣지 못한 채로 죽으면 내 억울할 것 같아서 그러네.”
키치는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이 복잡한 속마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고심하던 키치가 결국, 대답했다.
“……긍지. 뭔진 몰라도 그거 때문이려나?”
그 말에 울리취의 눈빛이 달라졌다.
“……자네 지금 분명, 긍지라고 그랬나?”
“왜? 뭐? 나는 따라서 말도 못 하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울리취의 손이 찰나지만 방황했다.
어찌하여…….
그녀가 ‘그분’과 같은 말을 한단 말인가?
말했다시피.
‘……설마 머리카락을 찾는 이유가?’
울리취는 계산이 빠르다.
“아무래도 우리는 싸울 이유가 없을지도 모르겠군, 키치.”
“갑자기 뭔 개수작이야?”
“내가 머리카락을 매입한…….”
툭─
책상 위에 올려놓는 건 무기가 아닌 보석함.
울리취가 보석함을 열자 은빛 머리카락이 빛을 쏟아낸다.
“아니, 지켜온 이유도 긍지 때문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