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334화 (334/489)

◈ 334화. 위대하게 써라 (1)

여신교단 성지, 뮤온.

성기사단장, 탈림 에베르는 훈련으로 흐른 땀을 닦아냈다. 감각이 나쁘지 않았다. 모험가들의 세계에 떨어졌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탈림은 작게 웃었다.

“하기야 머물러 있던 게 당연한가.”

여신교단은 그간 멈춰있었으니.

여전히 부끄러운 일이다.

악마에게 농락당해 뮤온에 틀어박혀있던 여신교단을 떠올리는 건. 교단의 성기사들은 물론이요, 사제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과거를 만회하고 싶어 매 순간 충실한 거겠지.

“보자, 내일은 균열 진입인가.”

여신교단은 성전 연합군에 소속되었다.

인간을 쥐고 흔드는 악마에게 훈련만으론 대응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탈림은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수많은 균열을 공략해 왔다.

플레이어의 전유물인 시스템.

“아직도 단어가 낯설긴 하지만.”

아르카나인인 탈림에겐 시스템도 레벨도 없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육체와 성전 연합군 소속 플레이어들의 반응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제 500레벨 균열은 가뿐하네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다는 걸.

그러나 탈림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쥘 뿐.

모험가의 세계에 익숙해져 갈수록 깨닫게 되었으니까.

“송구하게도 아직 한참 먼 것 같습니다.”

호열과의 격차를.

모험가들의 세계는 아르카나 대륙보다 빠르게 소문이 퍼진다.

웬만한 마도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한 기계장치들 덕분이다. 그렇게 떠도는 소문의 절반 이상은 다름 아닌 호열에 관한 소식들이었다.

-적정 레벨 700~800대 동굴 균열 동시 클리어!

-이호열, 제로 산맥의 대재앙을 잠재우다.

-[속보] 거악 칠죄종 질투 격파…….

현재의 탈림으로서는.

범접할 엄두도 나지 않는 전설적인 업적들.

그러나.

“당신의 뒤를 충실하게 따르겠습니다.”

탈림은 낙담하기보다는 더욱 의욕에 불타올랐다.

중요한 건 자신의 믿음, 긍지다.

그 믿음이 향하는 방향보다 중요한 건.

그 믿음이 꺾이지 않는 것이다.

뮤온이 이곳에 떨어지게 된 그날.

호열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된 덕분이었다.

탈림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가끔은 이래도 되나 싶습니다.”

신기했다. 가야할 길이 멀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탈림이 새삼스럽게 호열의 존재감을 되새기던 순간이었다.

고오오오─

눈앞에 포탈이 열렸다.

“!”

뮤온은 어디까지나 여신교의 성지였다.

정문을 개방하고 그 정문을 통해 방문객들이 뮤온을 찾기는 했다만. 뮤온의 심부에. 그것도 포탈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이는 유일무이했다.

탈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총대장님이시다.’

그러나 밝은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

이윽고, 포탈의 빛 무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호열의 뒤로.

낯설지 않은 실루엣이 보였으니까.

탈림의 눈이 가늘어졌다.

얼굴에 드리운 건 베일.

그리고 수녀복에 수놓아진 팔각 문양은…….

틀림없이 여신교단의 상징이었다.

순간,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여신교단의 사제가 총대장님께 결례를 범한 건가. 꼭 결례가 아니더라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애초에 여신교단의 사제가 외부에 있을 리가 없는데……?

물론, 탈림의 예측은 전부 빗나가고 말았다.

“바,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자매님?”

탈림이 사제에게 되물었다.

“여신 재림 지파라니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여신교단에 더 이상 지파는 존재하지 않지 않습니까? 최소 일백 년도 훌쩍 지난 시점의 이야기를 어찌하여 지금에 와서……?”

*

달칵─

나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과연, 연륜은 따라갈 수 없나.”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총대장님?”

“아니, 그대들에게 한 말이 아니네.”

뜬금없이 웬 연륜 타령이냐고 묻는다면 방금 내려놓은 찻잔으로 답하겠다. 여신교단, 그중에서도 탈림은 나의 가르침을 흘려듣지 않은 모양이군.

-“성자의 눈물이란 이름처럼 물이 특별한 것 또한 아니다. 노화에 저항하는 건 그저 샘 밑에 자라고 있는 비약초, ‘아리아 이끼’의 효과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외관으로서 특별할 것이 없기에 여태까지 제대로 된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탓.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뮤온의 샘에서 자라던 아리아 이끼를 제대로 써먹고 있었단 거지!

하여튼 몸에 좋다고 하면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건 만국 공통된 사람의 심리다. 그런데 젊음을 되찾아주는 샘물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어?

‘가까이에도 좋은 예가 있지…….’

우리집 최강희 여사님의 노화 방지를 위해 매일 아침 문안 편지에 아리아 이끼를 동봉해 보내던 나였다. 그리고 그런 나 때문에 이씨 남매 단톡방엔 불이 났었지.

-야 이호열 너 엄마한테만 뭐 선물했냐???

-나 오늘 엄마랑 자매 소리 들었어 ㅎㅎ…….

-언니 충격ㅋㅋㅋㅋㅋㅋ

-야

-야

-좋은 게 있으면 이 누님들도 챙겨야 하는 거 아님? ㅡㅡ

-엄마 피부가 아랑이처럼 탱탱하다니깐?!

정순한 지식의 오망성.

효과로 떠오르는 식물과 광물에 관한 지식.

아리아 이끼의 회춘 효과는 특정 온도에서만 유효하다.

나처럼 마법을 발현하는 게 아니고서야 그 특정 온도를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탓에 효과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아리아 이끼였거늘.

‘보면 볼수록 신이 있긴 한가 봐?’

마침 뮤온에 ‘드뮨 월석’이 있던 게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드뮨 월석의 열을 흡수하는 성질이 까다로운 아리아 이끼의 특정 온도를 완벽하게 맞춰주고 있었으니까.

‘아이디어도 좋다, 탈림.’

그렇다.

내가 쥐고 있는 게 드뮨 월석으로 만든 찻잔.

그 안에 담긴 건 아리아 이끼를 우려낸 차였거든.

이것만 봐도.

여신교단은 현실에 누구보다 잘 적응한 아르카나 세력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리아 이끼 차를 다시금 홀짝이면서.

‘엄마는 이 쓴 걸 어떻게 마신 거야?’

새삼 연륜에 감탄하고 있었던 거지.

‘그나저나.’

제3자인 나야 차를 시음이나 하고 있었지만.

탈림과 성녀 프레이자.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그럴만해.’

프레이자의 정체는 흉조에서 튀어나온 과거의 성녀였다. 다짜고짜 나를 심판하려던 프레이자를 만류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역시 그동안 쉬지 않고 발버둥친 덕을 좀 봤지.

여신교와 쌓아둔 우호도.

악크샨 최후의 생존자로서 흉조를 쓰러트린 것.

만약, 두 조건 중 하나만 달성하지 못했어도.

‘일이 상당히 복잡해질 뻔했거든.’

생각해 보자.

막말로 내가 안토니움 한복판에서.

여신교단의 사제와 투닥거리고 있으면 무슨 소문이 돌았겠냐고.

‘보나 마나 별별 착각이 뒤따랐겠지.’

그러나 선행조건을 완벽히 달성한 덕분에.

프레이자는 나의 말을 완전히 믿지 못하면서도.

현실의 뮤온을 방문하기 위해 나를 따라 나섰다.

여신교단의 성지, 뮤온이라면.

자신의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겠지.

그러나 탈림에겐 그럴만한 정신은 없어 보였다.

슥슥─

쉴 새 없이 성서를 들추던 탈림이 입을 연다.

“과연, 과거 성녀 재림 지파엔 성녀가 존재했었군요.”

저것도 족보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만.

어쨌든, 프레이자는 최소 일백 년 전의 인물이었다.

탈림이 성녀의 존재 자체에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동시에 찝찝한 모양이었다.

탈림이 자책하듯 중얼거렸다.

“악마도 알고 있던 걸 모르고 있었다니…….”

진명의 악마, 네프리피트.

프레이자를 정확히 사칭한 걸로 봐선.

녀석은 프레이자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나도 적잖게 흠칫했다. 악마의 영향력이 알게 모르게 오래전부터 대륙에 깔렸었구나 싶었거든. 그래서 구마의식 속에서 네프리피트가 지껄였던 절규를 되돌아보는데…….

-‘거악이시여. 나의 주인, 나태이시여! 나를 살려주소서!’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네프리피트가 칠죄종 나태의 하수인이었다면 그나마 이해가 된다. 마계의 마왕들과 다르게 칠죄종은 아르카나 대륙에서 태어난 악마들이었으니까.

물론, 이놈의 긍지가 악마에게 감탄할 리는 없지.

나는 그쯤에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심판의 대상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나.”

“…….”

프레이자가 침묵하자 탈림이 물어왔다.

“심판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총대장님?”

나, 이호열.

억울함은 참지 못하고 참을 생각도 없다.

게다가 이건 일방적인 오해였잖아?

‘어감이 좀 그렇긴 한데…….’

물론, 내가 갑작스러운 ‘흑화’ 때문에 대륙 단위로 민폐를 끼친 건 맞긴 하지. 하지만 단순하게 그것 때문에 심판을 받아야 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

‘마음 같아선 탈림한테 고자질하고 싶은데.’

재잘대는 건 또 격식에 맞지 않는다는 거냐.

하여튼 까다로우시다.

나는 그저 말없이 프레이자를 바라봤다.

하지만 탈림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자매님, 제게도 전말을 들려주시겠습니까?”

역시, 종교가 같으면 통하는 게 있나 보다. 나하고는 말도 제대로 섞지 않던 프레이자가 탈림에게는 친절하게 자초지종을 늘어놓는다.

“저는 그 한없이 깊은 어둠이……. 훗날 아르카나 대륙을 ‘헤아릴 수 없는 슬픔’에 빠트릴 것이라 여겼습니다. 여신교단의 교리를 따라 그러한 어둠을 방치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 여겼습니다.”

“……한없이 깊은 어둠이라니.”

흑화로 인한 아르카나 대륙의 암전.

두 눈으로 봐도 믿기지 않았을 풍경일 텐데.

말로만 들어선 뭔 소리를 하는 건가 싶겠지.

그런데.

이어지는 탈림의 반응에.

나는 삼켰던 아리아 이끼 차를 되새김질할 뻔했다……!

“총대장님께선 ‘한없이 깊은 어둠 속 한 줄기 빛’이시거늘. 어찌하여 프레이자 자매님께선 그 빛을 목도하지 못하신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 탈림, 그게 아니다……!!

그보다 갑자기 이명을 언급하는 이유가 뭔데?!

프레이자, 그쪽은 왜 또.

“……한 줄기 빛이라면.”

나를.

정확하게는.

내 재킷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는 건데?!

내가 이렇게 지은 죄가 커서 한시라도 방심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내색을 하지 않아서 충분하지 않다고 여긴 건가.

탈림이 기어코 말을 덧붙인다.

“여신교단에게 있어서 총대장님은 말 그대로 한 줄기의 빛과 다름없으셨습니다. 프레이자 자매님의 이름을 사칭한 악마에게서 뮤온을 구원하신 것도 모자라……!”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구나.

‘더 이상은 듣고 있기가 괴롭구나.’

그랑펠의 풀네임만큼이나 적응되지 않는 게 바로 얼굴에 금칠이다. 나는 그쯤에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실로 복귀했겠다, 슬슬 다음 일정을 처리해야 할 시간이 왔거든.

퀘스트는 어떻게 하고 내빼는 거냐고?

[월드 퀘스트 : 재림의 성녀]

아르카나 대륙을 뒤덮은 어둠.

성녀는 여신의 가르침에 따를 것이다.

훗날 아르카나 대륙을 헤아릴 수 없는 슬픔에 빠지게 할.

한없이 깊은 어둠을 심판하기 위해서.

─성녀, 프레이자의 심판으로부터 생존하라. (보류)

아직 탈림의 말에 완전히 설득되지 않아서 그런가.

진행 단계는 보류에 멈춰있었지만 괜찮다.

안토니움에서 확인했잖아?

여신님은 저 성녀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게다가 그 사실을 내 주둥이로 직접 말해줬고.’

문득, 떠오르는 입방정.

-“계시? 아니, 그대만의 편협한 믿음이겠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까…….

말로 매를 번 게 아닌가 싶기도 하군. 어찌 됐든, 여신의 이름으로 심판을 내리는 성녀의 능력이 내게는 무해하다는 걸 확인했던바. 나는 우려할 것 없이 포탈을 발현했다.

다음 일정이 뭐길래.

이렇게 다급하게 움직이는 거냐고 묻는다면.

아까부터 입술이 들썩거리지 않는 것만 봐도 알잖아?

악마 사냥꾼의 철칙.

사냥감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

딱 기다리고 있으라고, 류오쥔춘.

.

.

.

탈림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큰 실수를 하셨습니다, 자매님.”

프레이자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실수입니까? 저는 교리를 실천하려 했을 뿐입니다. 그 이전에 저는 여신교단의 형태가 믿기지 않습니다. 오직 여신만을 섬겨야 할 여신교단이 어찌하여……. 성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에 동참하고 있단 말입니까?”

탈림은 말을 아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적게는 일백 많게는 수백 년의 차이가 날 터.

같은 여신교단이라고 한들.

시대에 따라 어떤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지도 달라지는 법이다. 그러한 견해가 단기간에 좁혀질 순 없겠지. 불과,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사제와 성유물의 사용을 두고 담판을 벌이고 왔던 탈림이었으니까.

‘그러나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는 존재하지.’

탈림이 의미심장하게 입을 연다.

“좋습니다. 저는 더 이상 프레이자 자매님을 설득하지 않겠습니다. 자매님께서 직접 지켜보시고 판단하시지요, 어째서 총대장님이 한없이 깊은 어둠 속 한 줄기 빛으로 불리시는지를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명심하셔야 합니다.”

“명심이라니, 무엇을 말인가요?”

“뮤온이 어찌 지금껏 멀쩡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여신님의 보살핌으로…….”

“아르카나 대륙이었다면 저는 자매님의 은혜로운 말씀에 두 손을 모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 모험가들의 고향입니다.”

“……!”

“이 낯선 땅에서 뮤온의 수만에 이르는 사제와 성기사들이 어떻게 굶주리지 않고 이전과 같은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프레이자는 그 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

교단은 자급자족할 수 없다.

교단에는 반드시 기부금이 필요하다.

탈림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총대장님이십니다.”

“…….”

“총대장님께 받은 후원을 금화로 환산하면 무려…….”

스스스스스슥!

거침없이 움직이는 깃털펜이 숫자를 적어나간다.

그 숫자에 프레이자의 안색이 급격히 바뀌었다.

……어찌 응답하지 않으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여신이시여…….”

그건 믿음을 관철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천문학적인 수준의 후원금이었다.

*

세상이 유명인의 재력에 관심을 두는 건 당연한 일이다.

속된 말로 돈을 쓸어 담는다는 소리를 듣는 플레이어.

그들의 수입에 관한 관심이야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한 화제에서 자연스럽게 거론되는 이름이 있다.

자타공인.

최고 최강의 플레이어, 이호열.

이호열.

그가 플레이어로서 벌어들인 수익은 대체 어느 정도일까?

그에 관한 추정치는 의뢰로 쉽게 도출되었다.

-걍 코스모 시절 시총 생각해 보면 알지

-ㄹㅇ?

-레이먼 션이 지급하는 균열 클리어 보상금 그거 전부 코스모 시절에 축적해 뒀던 사내 보유금으로 뿌리는 거잖아? 접속기 가격대만 생각해도…….

아스큐라 백작 레이드 이후.

사실상 현실에 업데이트된 모든 고레벨 콘텐츠를 독식하다시피 클리어한 호열이었다. 기여도와 클리어 난이도를 고려했을 때 호열에게 지급된 보상금의 총액은…….

-혼자서 코스모 시총 1할은 해먹었을 듯?

최소 수백 조로 추정되는 게 정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설의 보물섬이라 불렸던 유스라 왕국 또한 실질적으로 호열의 영토라고 보아야 했으며, 더욱이 마탑이 지닌 경제적 가치에, 호열이 장비한 아이템의 가격까지 추정하여 합산한다면…….

-ㅁㅊ 돈버그 수준이네

-걸어다니는 기업이 아니라 국가 수준ㅋㅋㅋ

-그치 사실상 돈무한 치트 쓴 거임ㅋㅋㅋ

-천조국도 기름국도 명함도 못 내미는 거 아님? ㄷㄷㄷ

그렇다.

측정조차 불가능한 영역의 부였다.

단지 그 당사자가 청렴결백하여 드러내지 않았을 뿐.

그러나 난데없이 막대한 부를 체감하게 된 이들이 있었으니, 천하통일이었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지켜보던 천하통일의 분석관들, 그들의 낯빛이 흙색으로 변한다.

“……뭐야, 이거?”

아르카나 공식 홈페이지의 경매장.

띠링!

띠링!

띠링!

멈추지 않는 알림.

그와 동시에.

상급 생명력, 마력 회복 포션이 순식간에 품절되기 시작했다.

“……이것도 품절? 버근가?”

“다들 정신 차려! 일단, 닥치고 하나도 건져.”

“필사적으로 수량을 확보해야 하는 거 알잖아?”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공격적인 공략을 이어가야 하는 천하통일이었다. 그러기 위해 천하통일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사치품이라 여겨지는 포션이 경매장에 풀리는 족족 구매했었다.

그런데.

드르륵─

드륵─

드르륵─?

“……!”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도 포션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상급, 중급, 하급 포션을 물론이요. 한 병에 수십억을 호가하는 엘릭서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단 한 병도.

“뭐, 뭔가 이상해!”

“……경쟁 세력이 붙은 건가? 설마 샤이닝인가?!”

“아니, 아무리 샤이닝이라고 해도 이런 싹쓸이는 불가능해!”

“그럼 누구야 대체? 이런 돈지랄을 할 수 있는 게!”

위대한 돈다발이 천하통일의 뺨을 후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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