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화. 재해 레벨 : 클라우디 (4)
아르카나 대륙 전역을 뒤덮은 적합한 마력.
한없이 깊은 어둠.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은 곧장 직감했다.
클라우디의 영지.
“주군……?”
어둠의 정령.
디엔드 크리시아드 이터널 다크니스.
디엔드가 말을 잇지 못했다.
“어찌하여 이러한 기운을……?”
첫 만남 때부터 호열을 한없이 깊은 어둠이라 여기며 섬겨왔던 디엔드였다. 그러나 이제까지 호열이 드러냈던 적합한 마력과는 차원이 다른 발산, 어둠이었다.
걱정이 앞섰다.
당연하게도 호열을 향한 걱정은 아니었다.
주군에게 무한한 충성심을 가진 디엔드다.
주군을 향한 의심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지금의 감정은 오직 대륙을 향한 우려였다.
스스스─
어둠의 정령인 디엔드는 적합한 마력 덩어리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다. 때문에 디엔드는 적합한 마력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누구도 찾지 않는 아르카나 10대 불가사의 중 하나, 텟퍼른 미궁에 머무르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적합한 마력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기에.
‘그것이 제가 주군을 섬긴 이유입니다.’
그러한 디엔드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던 호열.
그런 호열을 주군으로 섬기겠다고 다짐한 디엔드였다.
굳건한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다.
“저로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저 생각할 뿐이었다.
자신조차 알고 있는 사실을, 주군께서 생각지 못하고 계시진 않으리라고. 분명, 이러한 어둠을 발산하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시리라는 걸.
비단 디엔드의 뜻만이 아니었다.
투두두두두─
상공을 비행하던 아이언 캐슬 호.
대륙도 모자라서 하늘까지 뒤덮어 버린 어둠.
지켜보던 체인워커가 입을 열었다.
“마주한 모양이군.”
하늘을 비행하며 대륙 전역을 감시하다시피 하는 드워프들이었다.
덕분에 4가문에 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습득하여 파악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을 관조하는 흑암룡과.”
그들이 호열과 마주했다는 것도.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러한 규모의 변화가 대륙에 찾아오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곁에서 대륙을 내다보던 월스와일이 입을 연다.
“체인워커, 그날을 기억하는가?”
“그날이라니 무슨 날을 말하는 겐가?”
“흑암룡 전설이 울려 퍼지던 그날 말일세.”
“내, 그걸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여전히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막연한 전설이라 여겼던 드래곤, 그것도 십수 마리의 드래곤이 대륙을 비행하며 아르카나 대륙에 뇌우를 흩뿌려댔던 그날을. 월스와일이 마른침을 삼켰다.
“……장담컨대 이건 그보다 더한 영향력일세.”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설령 날씨를 부리고, 벼락과 비를 쏟아내는 드래곤들이라고 한들. 아르카나 대륙에 이 정도로 짙은 어둠이 내려앉게 할 순 없을 테니까.
체인워커가 고개를 끄덕인다.
“호열 경의 능력이라면 이상한 일도 아니지.”
드래곤조차 능가하는 능력이라고 해도 놀라울 건 없었다. 애초에 만물의 왕, 드래곤들조차도 흑암룡이라 추앙하며 우러러본 존재가 바로 호열이었으니까.
허나, 월스와일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렇기에 나는 두렵네, 체인워커.”
“두렵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
“자네는 그의 무게가 느껴지는가?”
대륙을 바라보는 월스와일의 눈가가 젖어 들었다.
“나는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네. 그가 이러한 힘을 감당하기 위해서 대체 얼마나 많은 책임을 짊어지고 있을지를……. 과연, 보잘것없는 우리가 막중한 짐을 나눠 들 수 있을지도.”
당연히 가능하다.
설령 가능하지 않더라도 노력해야 한다.
무쇠를 담금질하듯.
인내심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
평소의 체인워커라면 드워프의 지도자로서 그리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체인워커는 침묵을 지키는 게 고작이었다. 마찬가지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한없이 깊은 어둠이군.”
대륙에 내리 앉은 어둠을.
그건 아군조차도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깊이였다.
그러니 그러한 어둠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이들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리라.
4가문.
실신한 이그나이트를 제외한.
유그릭, 캔설, 아카몬드의 가주들은 깨달았다.
4가문은 클라우디를 거스를 수 없다. 아무리 세력을 확장하고, 머리를 굴리고, 추악한 간교를 부려도, 클라우디와의 주종 관계는 부정할 수 없다.
‘늦게나마 이해하겠습니다, 아버지.’
범접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압도적인 격차는 낙담이란 감정조차 잊게 했다.
자신들의 주인을 진정으로 우러러보게 하기에 충분했다.
4가문을 섬겼던 가신과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현실을 부정하던 단계는 일찌감치 건너뛰고 자신들에게 자비를 베푼 새로운 주인을 향해서. 가주들의 뒤를 이어 고개를 숙인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이런 미친.’
덜덜덜─
용성락은 소름에 몸을 떨고 있었다. 레텔 아카몬드를 비롯해서 아르카 아르카나인들은 이 상황을 어찌 느끼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플레이어인 용성락은 자신할 수 있었다.
‘다, 다들 제대로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거냐……?’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고.
그야 눈앞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르카나 대륙이 한없이 깊은 어둠에 잠식되었던 순간.
경악할 만큼 셀 수 없이 많은 메시지가……!
[상태이상, ‘시야 차단’이 발생합니다.]
[상태이상, ‘질식’이 발생합니다.]
[상태이상, ‘착란’이 발생합니다.]…….
샤이닝에서 제시 하인네스가 탈퇴한 뒤.
이호열을 자신들의 주적으로 상향 설정한 천하통일이었다. 당연하게도 이호열을 향한 분석은 길드 차원에서 진행되었으니, 처음엔 당황했던 용성락도 알아볼 수 있었다.
‘분명 흑마법이었다.’
조금 전의 어둠은.
흑마법을 발현하는 데에 필요하다는 적합한 마력이란 걸.
그렇기에 더더욱 공포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호열은 흑마법을 발현하지 않았다.
그저 적합한 마력만을 발산했을 뿐이었거늘.
상태이상도 모자라서.
[한없이 깊은 어둠이 아르카나 대륙의 모든 축복을 뒤덮습니다. 어둠이 걷히기 전까지 현재 적용 중인 모든 버프가 비활성됩니다.]
“……!”
아르카나 대륙이 잠시 꺼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셈이었으니까.
물론, 이호열은 이호열이었다.
용성락은 마른침을 삼켰다.
‘……서로 무슨 대화를 나눈 건지는 몰라도.’
이호열은 그간 천하통일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것처럼 4가문에게도 자비를 베푼 모양이었다. 대륙을 뒤덮었던 어둠이 가시고, 비활성화되었던 버프마저 돌아온 시점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허나, 용성락은 더더욱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만약, 하급 흑마법이라도 발현되었다면……?’
나는, 우리는, 어쩌면 대륙은 되돌아올 수 없는 깊은 어둠의 무저갱에 떨어졌을지도 몰랐겠지. 숨 가쁘게 호흡하던 와중 용성락은 떠올리고 말았다.
“!”
그런 이호열이 자신에게 건넸던 말을.
-“용기 있는 자여. 내가 그대의 얼굴을 기억했다.”
……분명, 내 얼굴을 기억했다고?
‘아니, 내 얼굴을 대체 왜?!’
용성락은 모든 상황이 끝난 지금에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이호열, 그가 무슨 이유로 자신을 기억하겠다고 말한 건지는 짐작할 수 없다만…….
용성락의 눈이 번뜩였다.
‘어쨌든, 나는 내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이호열이라면 내가 천하통일 소속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을 터. 영리한 용성락은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폐쇄적이기 그지없는 천하통일의 기밀.
그걸 이호열에게 제공하는 것.
그게 나의 유일한 가치다.
‘어떻게 보면 복수인가.’
용성락이 안대로 가리지 않은 한쪽 눈가를 어루만졌다. 이호열, 그의 앞에선 작은 비밀 하나도 숨길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까 가장 먼저 이 눈에 걸린 계약부터 사실대로 말해야 하겠지.
‘그보다.’
용성락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전부 지켜봤겠지, 그 개새끼도?’
문득, 궁금해졌다.
내 눈을 통해 모든 걸 지켜봤을 개새끼.
류오쥔춘은 지금쯤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광경의 연속이다.
[혹독한 계약의 성배].
그 효과를 통해 수면 위에 떠오른 풍경.
류오쥔춘은 입을 열었다.
“본좌가 헛것을 보는 건 아닐 텐데.”
천하통일의 길드 마스터.
샤이닝과 더불어 아르카나 대륙을 양분했던 초거대 길드 천하통일이다. 더불어 [군주]라는 흔치 않은 클래스까지. 그러한 자신이었기에. 누구보다 아르카나 대륙 패권엔 해박하다고 생각했거늘.
“믿을 수 없군.”
4가문.
전성기 시절의 제국을 압도할 무력을 갖춘 세력이 무려 넷이나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류오쥔춘은 일곱 중 하나밖에 남지 않은 시야의 주인을 칭찬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키워준 값을 하는구나.”
성배를 통해 공유되는 감각은 오직 시야뿐. 그 때문에 보이는 장면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군주를 넘어서 폭군의 길을 걷기 시작한 덕분일까.
4가문의 탐욕을 읽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제국을 집어삼키겠다는 것이냐.”
제국을 무너트리리라.
다짐했던 류오쥔춘이었지만, 저들에게 순서를 빼앗긴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야 희소식이지 않은가? 류오쥔춘 또한 저들처럼 패권을 추구하는 군주이기에 알 수 있었다.
“훤히 보이는구나. 네놈들의 미래가.”
저 얄팍한 동맹은 제국이 무너지는 순간 끝날 터.
그때부터 공백의 왕좌를 두고 서로 다른 네 개의 세력이 서로 죽고, 죽이는 진짜 전쟁이 시작되리라. 류오쥔춘은 느긋하게 그 개판을 감상할 생각이었다.
“훗날을 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
저 넷 중 하나를 쓰러트리고 제국을 차지해야 할 자신이었으니까. 류오쥔춘은 담담히 생각했다. 마지막 계약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되도록 오래 버텨주면 좋겠다고.
허나, 섣부른 예측은 맞지 않는 법이었다.
“……!”
안토니움의 평야.
그 중심.
4가문의 사이에 호열이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이건 예상 밖이군, 이호열.”
그것도 혈혈단신으로.
류오쥔춘에겐 희소식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득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이호열이 전장에서 사망하기라도 한다면…….
이거 잘만 하면 일석이조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는가?
꾸욱─
류오쥔춘이 주먹을 쥐었다.
그땐 아르카나 대륙 패권만이 아니다.
완전히 주도권을 내어주고 만 현실의 패권도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되돌아올 수밖에 없을 터. 류오쥔춘이 자세를 고쳐 앉고 성배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
찰랑거리던 수면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련한 녀석이 눈깔에 화살이라도 맞았나 싶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섣부른 예측이었다.
어둠의 정체는.
호열이 발산한 적합한 마력이었으니까.
류오쥔춘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무엇이냐?”
머리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건가.
시야가 요란하게 바뀐다.
그러나 지평선 끝을 바라보아도.
드높은 하늘을 쳐다봐도.
사방 어디를 보아도.
이호열에게서 뿜어져 나온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힐끗.
류오쥔춘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상태창과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했다. 성배를 통해 공유할 수 있는 건 오직 시야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답답한 마음에 나온 플레이어의 본능이었다.
허나, 답답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
그 대신 절망으로 바뀌었으니.
전성기의 제국을 능가한다고 여겼던 4가문.
그들이 호열의 앞에서.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한 채 무릎을 꿇었으니까.
고개를 조아린 채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으니까.
류오쥔춘의 얼굴이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렇다면 내가 제국을 차지하기 위해선…….’
본래의 제국도 모자라 4가문.
최후엔 이호열까지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진정으로 저 괴물을 뛰어넘어야 한단 말인가?
“빌어먹으으을…….”
폭군의 어깨가 처음으로 처지고 말았다.
*
아르카나 대륙을 뒤덮은 한없이 깊은 어둠은 완전히 다른 세계인 현실의 류오쥔춘에게도 영향을 끼쳤으니, 흉조에 삼켜졌다가 아르카나 대륙으로 돌아온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기엔 차고도 넘쳤다.
대륙에 깔린 어둠.
“후우.”
숨을 들이쉬자 몸서리쳐질 정도로 짙은 슬픔이 몸을 타고 오른다.
마주하고 싶지 않다.
모른 체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여인은 얼굴에 드리웠던 베일을 들어 올렸다.
어둠과 직면하고는 입을 열었다.
정확하게는.
“여신이시여. 저는 두렵습니다. 제게는 아르카나 대륙을 집어삼킬 정도로 깊은 슬픔과 마주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저는 기꺼이 따르겠나이다. 제 육신이 당신의 재림을 앞당길 수 있다면, 기꺼이 바치겠나이다.”
경건한 기도를 올렸다.
“당신께서 악크샨을 통해 거두어가셨던 제 목숨을 되돌려 주셨으니. 성녀, 프레이자가 다시금 당신께 목숨을 올리겠습니다. 여신의 이름으로 이 어둠을 물리치겠습니다.”
.
.
.
깜빡─
점멸하는 시야.
[월드 퀘스트 : 재림의 성녀]
월드 퀘스트……?
이름부터 비범한 퀘스트가 이렇게 갑자기 떠올라도 되는 건가, 싶었는데. 어쩌면 이것도 흑화의 후폭풍이려나 싶군. 당장 그 내용을 확인하고 싶다만, 절차에 따라서 지금은 우선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부터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용성락이라고 합니다.”
내 낯부끄러운 풀네임을 알고 있는 플레이어.
용성락인가 뭔가 하는 이 사내를 추궁해야 했거든.
그러니까…….
“제가 이호열 님이라 부르는 게 좋으시겠습니까? 그게 아니면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ㄹ…….”
당신도 제발 묻는 말에만 답해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