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화. 재해 레벨 : 클라우디 (3)
흑마도학 선임, 마티스 딘 카를.
문득,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마티스의 집무실. 내가 발산한 적합한 마력에 검게 물든 마도구들을 보며 마티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흑마법은 모순적입니다. 미래에 있을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 게 마법이거늘. 정작 흑마법의 근원인 적합한 마력은 과거에 얽매여있으니 말입니다. 감히 주제넘게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저는 부디, 이 수석님께서 자신에게 관대해지면 좋겠습니다.”
나는 마티스에게 과거.
그러니까 클라우디 가문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내가 미쳤다고, 수치사하고 싶은 생각 따윈 없었거든.
마티스는 그저 나의 적합한 마력을 보고 짐작해서 경고한 것이었다.
-“감히 헤아릴 수도, 헤아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만에 하나 이 수석님께서 흑화에 빠지신다면…….”
처음 [흑화]에 대해 들었을 땐 마티스가 괜히 겁을 주려는 거구나, 싶었다. 꼭 필살기를 전수하는 스승님이 제자에게 흔히 하는 말 같잖아? 단순히 흑마법에 입문하기 전,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상태이상, ‘흑화’가 발생합니다.]
착각이었다.
시야가, 생각이, 울리는 목소리가 평소와는 명백하게 다르다.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티스가 왜 그리도 ‘흑화’를 주의하라고 말했는지를.
-“이 수석님의 과거와 배경이 역류하게 될 터. 저는 마주할 자신이 없습니다. 이리도 방대한 적합한 마력은 이 수석님이 아니시고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런……. 주제넘은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부디 잊어주십시오, 이 수석님.”
마티스는 그쯤에서 말을 거두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는 게 낫다는 건가.
끝까지 듣지 못했어도 흑화의 위험성을 실감하게 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육체에 스며드는 적합한 마력이.
과거가.
내 육체를 쥐고 흔드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마티스나 다른 흑마법 사용자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내 방대한 적합한 마력의 원천은 나, 이호열의 과거가 아닌 그랑펠의 과거라는 것이다.
빌어먹을, 새옹지마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겠지.
그동안 그랑펠의 설정 덕분에 날로 먹었다면, 이젠 그랑펠의 설정 탓에 더욱더 극심한 흑화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다. ‘설정’으로만 존재하던 그랑펠에게 흑화의 효과가 덧씌워져 또 하나의 ‘인격’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단 말이다.
보자, 거슬러 올라가자면…….
클라우디를 인정한 게 현사태의 원흉이겠지.
클라우디를 인정했다는 건.
클라우디 가문의 잔혹한 최후 또한 인정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 저열한 입으로 나의 누이를 모욕한 각오는 되었나.”
귓가에 울리는 그랑펠의 음성은 차갑기 그지없다.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얼어붙을 것 같았다.
그랑펠이 짊어지고 있을 과거의 무게가 와닿는다.
……그래. 그런 거였구나, 키치?
클라우디와 관련된 거악의 의뢰를 수행했다는 그림자 용병단.
그 의뢰의 구체적인 내용이 그랑펠의 혈육을, 정확하게는 누이를 암살하라는 의뢰였나 보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미 지나간 일로 유난을 떤다 싶었는데…….
누이의 머리카락이 경매장을 떠돌았고, 가문의 사냥개는 까마귀의 먹이가 되었다. 그 참혹한 전말을 알게 된다면……. 그랑펠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던 키치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 순간.
아르카나 대륙이 적합한 마력에 뒤덮인 것도.
[제국의 수도, 안토니움이 한없이 깊은 어둠에 휩싸입니다.]
[제국이 한없이 깊은 어둠에 휩싸입니다.]
[아르카나 대륙이 한없이 깊은 어둠에 휩싸입니다.]
더불어 뜬금없이 흑화가 찾아온 것까지도.
그동안 꼴 보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봐왔잖냐?
그랑펠에게 혈육이 어떤 존재인지를. 내겐 애증의 존재들인 웬수들에게도 꼬박꼬박 누이, 누님 소리를 잊지 않았던 입방정 덕분에라도 말이야.
“아아…….”
나는 흑관을 비롯해서 어떠한 흑마법도 발현하지 않았거늘.
막시마의 가주.
이그나이트는 이미 적합한 마력에 질식한 상태였다.
“어억…….”
초점을 잃은 동공은 쉴 새 없이 방황하고 있었고,
실언을 내뱉던 혀는 마비,
그가 무릎을 꿇은 자리는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사실상 처분은 이미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그나이트의 상태는 무간에서 보았던 악마 숭배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랑펠은 멈추지 않았다.
누이를 모욕한 대가를 이그나이트의 목숨으로 받아가겠다는 것처럼. 적합한 마력에 간섭, 흑마법의 발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그랑펠은 이그나이트를 죽이고 만다.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공감하는 걸 넘어서 어떤 면에서 조금은 통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그나이트의 발언은 내가 들어도 치가 떨릴 정도로 열 받았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디까지 가혹해질 생각이냐, 그랑펠.’
그 귀찮은 성격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다.
네, 고귀한 긍지라는 건 빌어먹게도 복잡하잖아?
너라면 분명 흑화의 후폭풍마저도 혼자서 짊어지려고 하겠지.
근데, 나는 그 꼴을 보고 있을 생각이 없거든……!
결국, 시달리는 건 내 몸뚱이라서?
물론, 반박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더 이상은 모른 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자초했을지도 모르는.
클라우디 가문의 최후를.
그랑펠의 한없이 어두운 과거를.
그러니까 혼자서 짊어질 생각은 하지 마라.
[첫 세계수의 축복이 ‘흑화’를 거절합니다.]
[상태이상, ‘흑화’가 발생합니다.]
[첫 세계수의 축복이 ‘흑화’를 거절합니다.]
[상태이상, ‘흑화’가 발생합니다]…….
쉴 새 없이 점멸하는 메시지 사이에서 나는 손을 움찔거렸다. 결국, 흑화가 발생한 원인은 내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적합한 마력이었다.
아르카나 대륙을 뒤덮은 적합한 마력만 어떻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과거에 잠식된 그랑펠을, 흑역사에 휘둘리는 나를 구원할 수 있겠지.
그리고 때마침.
나는 적합한 방법을 하나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새롭게 습득한 스킬.
[흡수(Item Skill) : 기생 생물 엔비가 대상을 흡수합니다. 흡수한 대상에 따라 엔비가 새로운 고유 효과를 가지게 됩니다. 엔비의 허기에 따라 저장할 수 있는 고유 효과의 숫자가 달라집니다. 현재 엔비의 포만도- 0%]
[중립의 기생 생물 엔비(Envy)].
거악, 칠죄종 질투.
녀석이 드롭한 전설 등급 아이템.
나는 [심미]의 영향으로 보석으로 외형을 바꾼 엔비를 바라봤다. 엔비는 원래부터 재킷에 세공된 보석인 양 한 치의 미동도 없었다. 얌전히 지켜보라는 명령을 잘 지키고 있었구나, 기특해.
하지만 지금은 신세를 좀 져야겠다, 엔비.
[스킬, ‘흡수’가 발동됩니다.]
스킬을 발동하자 보석에서 눈송이로 엔비의 외관이 바뀌어간다.
크게 심호흡하듯.
엔비가 몇 차례 몸을 부풀리더니 눈앞이 점멸한다.
[중립의 기생 생물 엔비(Envy)가 ‘적합한 마력’을 흡수합니다. 현재 엔비의 포만도 - 1%]
1퍼센트.
10퍼센트.
50퍼센트…….
엔비의 포만도가 무서울 정도로 급격히 차오른다. 구마의식으로 정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능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전설급 아이템이잖아?
전설급 아이템의 성능이야 귀철을 통해서 몇 번이고 확인했던 나였다. 그러니 엔비라면 질식할 정도로 짙은 적합한 마력이라고 한들, 어느 정도 중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
……어림도 없다는 거냐?
과거에서 비롯되는 적합한 마력.
클라우디 가문의 과거는.
전설급 아이템조차 ‘고작’으로 취급할 정도인 모양이었다.
부르르!
[현재 엔비의 포만도 - 100%]
[엔비가 흡수한 ‘적합한 마력’을 소화합니다.]
[소화 중 - 새로운 고유 효과 생성까지 0.1/100%]
엔비가 움찔하며 몸을 떨더니 다시금 보석으로 되돌아간다.
전설급 아이템으로도 기별조차 가지 않다니.
젠장,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인데……?
또각─
저절로 움직이는 걸음에 잡생각도 저절로 사라진다.
이그나이트가 점차 가까워진다.
“으그그그극…….”
한없이 깊은 어둠.
적합한 마력 속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이그나이트가 동공을 까뒤집었다.
자신의 실례로 질척해진 바닥에서 애처롭게 발버둥을 쳤다.
이그나이트뿐만이 아니었다.
“크흑.”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컥, 더는 숨을 쉴 수가.”
평야의 병사들이 고통에 신음한다.
아니, 그들뿐만이 아니리라.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한 시스템 메시지엔 분명히 명시되어 있었다.
적합한 마력은 제국의 수도, 안토니움을 넘어서 제국 전역.
제국 전역을 넘어서 아르카나 대륙 전역에 퍼져있다고.
허나, 나의 시야는 여전히 이그나이트에게 고정되어 있다. 이쯤 되니까 진지하게 묻고 싶다. 정말로 이 이상의 처분을 원하는 거냐, 그랑펠……?
‘여기서 발현까지 넘어가면 아르카나 대륙은…….’
측정 불가의 재해.
대재앙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답은 없다.
단 한 번도.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그저 언제나와 같은 시선으로.
이그나이트를 응시한다.
“컥……!!”
이윽고, 마지막 경직인가.
이그나이트의 몸이 크게 튀어 오르던 순간이었다.
그제야 나의 입이 열렸다.
“이쯤이면 알아들었으리라 믿겠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태연하게.
[첫 세계수의 축복이 상태이상, ‘흑화’를 거절합니다.]
‘……!’
그와 동시에 육체의 감각이 돌아왔다.
찰나의 순간.
‘……뭐야?’
아르카나 대륙을 뒤덮은 적합한 마력 또한.
온데간데없이 사라렸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입방정이 말을 잇는다.
“가주, 이그나이트 막시마. 그대가 4가문을 대표해 죗값을 치렀으니 유그릭, 캔설, 아카몬드의 처분은 유예하도록 하겠다. 물론, 축복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긍지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대들의 선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
이그나이트를 제외한 가주들이 일제히 답한다.
“명심하겠습니다. 클라우디시여.”
“캔설이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아카몬드가 클라우디에 충성을 맹세합니다.”
[클렌즈 유그릭에 대한 지휘권을 획득하셨습니다.]
[스마이트 캔설에 대한 지휘권을 획득하셨습니다.]
[레텔 아카몬드에 대한 지휘권을 획득하셨습니다.]
갑작스럽지만 애써 상황을 정리해 본다.
긍지 때문인지, 처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단, 사태는 급격히 일단락되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이쯤에서 그랑펠의 설정을 떠올렸겠지.
『그랑펠이 차기 가주로서 가장 먼저 몸에 익힌 건 사사로운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었다.
클라우디 가문의 가주의 자리는 조금의 동요도 용납되지 않는 그런 자리였다.』
하지만 그랑펠, 너 말이야.
세상 모두를 속여도 나를 속일 순 없다.
그래, 현실과 아르카나 대륙을 통틀어서.
꼬여도 단단하게 꼬인 네 속내를 이해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진지하게 되뇔 수밖에 없었다.
……너 정말로 괜찮은 거냐, 그랑펠?
허나, 흑화가 해제된 지금.
고작 설정에게서 대답이 들려올 리는 없었으니.
툭툭─
그저 습관처럼 옷매무새를 다듬을 뿐이었다.
항상의 자세.
피폐하기 그지없을 속내를.
언제 가라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긍지에 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