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327화 (325/489)

◈ 327화. 짐승도 주인을 알아보는 법이거늘 (3)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그 이름은 조부를 통해서.

아버지를 통해서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랑펠, 그는 가장 짙은 클라우디의 피를 가진 존재다. 어쩌면 클라우디 그 자체로 여겨질 정도로……. 절대로 그와 엮여선 안 된다. 훗날 혹시라도 마주하게 된다면, 절대로 고개를 치켜들지 말거라.”

이그나이트는 그때마다 비웃었다.

-“노친네들이 노망이 단단히 들었어.”

클라우디 가문 역사상 최고의 재능이라.

실소가 터져나왔다.

애초에 클라우디 가문이 무엇이라도 된단 말인가?

-“과거의 망령에 지레 겁먹는 것도 유분수지.”

이그나이트는 냉철한 머리 덕분에 아르카나 대륙에서 막시마 가문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선대의 경고가 경고처럼 들리지 않았다.

-“클라우디에게 그런 재주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배후를 자처하지 않았겠지. 고작 하나의 가문이 아르카나 대륙을 쥐고 흔들 수 있다고? 노친네들 망상이 지나치기 짝이 없어.”

그도 모자라 들려오는 풍문까지.

-“클라우디가?”

그림자 용병단.

뒷세계의 들개들이 클라우디와 관련된 의뢰를 물었고, 그 과정에서 클라우디가 멸문했다는 소문이 귀에 들려왔다는 것이었다. 이그나이트는 그때도 조소를 뱉었다.

-“클라우디, 그 고귀하신 이름이 뒷세계 바닥에서 나돌 줄이야!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 자체가 가문의 명성을 말해주는 법이지. 보고 계십니까, 아버지? 당신께선 틀려도 한참 틀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이었다.

“아아…….”

이그나이트는 양손으로 떠받든 투구를 허망하게 바라봤다. 정중앙을 장식하고 있어야 할 가보, 『미다스의 보석』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다급히 말에서 내린 병사들이 주변을 뒤지고 있지만…….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찾아라!”

사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미다스의 보석은 조각도 아니요, 가루도 아니요, 그보다도 미세한 입자가 되어 바람에 흩날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증발해 버렸다는 걸.

이그나이트의 거구가 격하게 떨렸다.

“나, 나의……. 막시마의 상징이…….”

막시마 가문을 이어받을 차기 가주 시절부터.

이그나이트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미다스의 보석에 대해 들어왔었다.

막시마의 모든 부는 미다스의 보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그나이트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귀한 가보를 막시마는 어떻게 거머쥔 걸까?

허나, 물을 때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알려고 들지 마라, 아들아.”

이그나이트는 비로소.

아버지가 필사적으로 답변을 피하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양피지에 그 이유가 적혀있었으니까.

──────

이 시간부로 막시마 가문의 모든 지위와 축복을 박탈한다.

──────

가주,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

미다스의 보석이 바로 클라우디가 하사했다던 축복.

그러한 가보를 잃게 된 건 뼈아픈 손실이었다.

그러나 이그나이트는 정신을 추슬렀다.

‘없이도 충분하다.’

막시마의 보고에 축적된 보물만 하더라도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이요, 자신의 곁엔 이미 황금 군단이라는 충직한 병사들이 있지 않던가. 또한.

“나는 믿지 않는다.”

철컥─

이그나이트가 다시금 투구를 바로 썼다.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건 근거가 있는 자신감 덕분이었다.

“확인하지 않았나. 이 세상에 부활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때 아르카나 대륙을 뒤흔들었던 모험가들. 실제로 그들의 부활을 목격한 이는 대륙에서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황금의 병사 중에서도 되살아난 모험가를 목격한 이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불과 조금 전.

스윽.

이그나이트의 손가락이 뺨에 튀었던 핏자국을 훑는다.

“그것도 내 피부로 확인했다. 그러니.”

이그나이트가 결론을 내렸다.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나는 네놈의 부활을 믿지 않을 것이다.

“잘나신 면상을 내 앞에 드러내기 전까지.”

이그나이트가 병사들에게 외쳤다.

“고작 가보 따위에 지체할 시간은 없다! 진격하라!”

*

레텔 아카몬드.

아카몬드의 가주는 양피지를 고이 접었다.

그러고는 미모 속에 표정을 숨긴 채.

자신을 찾아온 모험가에게 말했다.

“에릭톤의 봉쇄자라. 과연, 흔치 않은 인재로군요.”

봉쇄자.

수련과 고행을 반복하며 자신을 단련하는 존재들.

레텔은 선대 때부터 전해 내려온 격언을 잊지 않았다.

속으로 그 말을 곱씹었다.

-아카몬드의 이름 아래 모든 인간은 도구와 다를 바 없다.

레텔은 사내, 용성락을 바라보았다.

단순한 봉쇄자였다면 그를 곧장 받아들였으리라. 황폐한 아르카나 대륙에서 지금껏 살아남은 모험가라면 그 실력은 이미 증명한 참일 테니.

하지만.

‘모험가이기에 종잡을 수 없어.’

레텔은 모험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아르카나 대륙 극동에 있는 아카몬드 가문이다. 지리적 특징 탓에 아르카나보다도 바다 너머에 떠도는 소식에 능통했으니까.

‘역시 긁어 부스럼이려나.’

더욱이 레텔은 이번 제국 원정에 진심이 아니었다.

그녀는 악마에게 쑥대밭이 된 아르카나 대륙에 희망은 없다고 여겼다. 제국을 재건할 바에 차라리 바다 건너, 지각 변동으로 열린 활로를 개척하는 게 현실성이 있었다.

‘단지 4가문으로 묶였기에 적당히 참여했을 뿐.’

레텔은 양피지의 글귀를 곱씹었다.

‘그런데, 아카몬드의 이름과 축복을 박탈하겠다라.’

아카몬드의 축복은 막시마 보석처럼 드러나는 게 아니었다.

그를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덕분에 레텔은 비교적 이성적으로 상황을 바라봤다.

그녀가 용성락에게 물었다.

“모험가여, 그대는 클라우디에 대해 알고 있나요?”

“클라우디라 하시면…….”

용성락은 류오쥔춘의 세뇌로 흐릿한 기억을 헤집었다.

언뜻 접했던 기억이 있었다.

조국에선 소식이 차단된 탓에 접할 수 없었지만.

제로 산맥에서 분명…….

-“뭣? 이호열이 클라우디였다고? 악마들이 부르짖던?”

용성락이 대꾸했다.

“알고 있습니다. 클라우디. 분명 모험가의 이명이었죠.”

그 대답에 평온하던 레텔이 흠칫했다.

“뭐라고요? 클라우디가 모험가의 이명……?”

“그렇습니다. 이호열, 그의 또 다른 이름이 클라우디였다. 그러한 소문이 아르카나 대륙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인 제 고향엔 파다하게 퍼져있습니다.”

“그런가요?”

레텔은 여전히 표정을 숨긴 채 머리를 굴렸다.

‘말에 어폐가 있어.’

아르카나 대륙 유일무이.

위대한 가문이라 불리는 클라우디였다. 그런 클라우디가 자신의 이명이라 자처하는 자가 살아있으며 심지어 모험가라니.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이야기잖아?

레텔이 결론을 내렸다.

‘같잖은 속셈이구나. 가짜 클라우디.’

일개 이방인인 모험가가 어떻게 클라우디와 자신들.

4가문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된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가짜의 목적이 훤히 보였다.

레텔이 낮게 중얼거렸다.

“억지를 부려서라도 제국을 지키고 싶은 모양이지?”

천하의 클라우디를.

그중에서도 그랑펠을 사칭하는 자의 낯짝이 궁금해서라도.

제국의 수도 안토니움으로 향해야겠어.

‘다만, 그전에.’

레텔이 용성락에게 너그러이 말했다.

“좋아요. 그대에게 아카몬드를 섬길 자격을 하사겠어요.”

“감사합니다, 레텔 아카몬드 님.”

“그대에게 아카몬드의 성취가 함께하길.”

“영광입니다.”

살며시.

레텔이 손등을 내밀었다.

용성락을 무릎을 꿇고 레텔의 손등에 입을 맞춰 충성을 맹세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레텔도, 용성락도 서로에 관해 알지 못해 변화를 알아차리지도 못했지만.

미다스의 보석과 마찬가지로.

아카몬드의 영향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물론,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후회해도 늦었다.

“과연, 소문대로 보잘것없군요.”

전율의 아카몬드를 마지막으로.

4가문이 제국의 수도.

안토니움을 완전히 포위하고 말았으니까.

*

[퀘스트 : 제국 vs 막시마, 유그릭, 캔설, 아카몬드]

제국의 수도, 안토니움.

진정한 황좌의 주인을 가리는 전쟁이 임박했다.

이 전쟁에 가려진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모든 것은 그대의 판단에 달렸다.

공적에 따라 승리의 보상을 쟁취하리라.

─세력을 선택하라. (선택)

●막시마에게 충성을 맹세하라. (실패)

●유그릭에게 충성을 맹세하라. (실패)

●캔설에게 충성을 맹세하라. (실패)

●아카몬드에게 충성을 맹세하라. (성공)

─안토니움을 함락시켜라. (진행 중)

●현재 공적 : 0p

용성락은 고삐를 꾸욱 쥐었다.

‘일단, 한시름 놨나.’

성공 이후 새롭게 갱신된 퀘스트 목표.

역시, 아카몬드를 선택한 건 틀리지 않았다.

문득, 장안림이 떠올랐지만 용성락은 개의치 않았다.

‘우리 인연은 한참 전에 끝났어.’

용성락, 자신이 가장 경계해야 할 건 다름 아닌 같은 플레이어였다.

그중에서도 천하통일 소속을 각별히.

자신이 천하통일에서 다른 길드원을 밟고 두각을 드러냈듯.

그들, 장안림 또한 그런 인물일 게 뻔했으니까.

‘나는 나 같은 놈한테 뒤통수를 맡기지 않는다.’

용성락은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제 제국의 수도, 안토니움만 무너트리면.

퀘스트는 성공적으로 끝이 난다.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온다.

‘패배할 리가 있나.’

아카몬드의 전력은 실로 경이로울 정도였다.

아르카나식으로 말하자면 딜러, 힐러, 탱커의 비율이 이상적일 정도로 환상적. 머릿수는 물론, 개개인의 수준도 대단했다. 초거대 길드, 천하통일에 속했던 용성락이기에 더욱 놀랐다.

세력이 커질수록 어중이떠중이가 모여들 수밖에 없거늘.

‘어디서 이런 병력을 모아들인 거지?’

미숙한 견습 기사를 숙련 기사로, 견습 마법사를 숙련 마법사로 거듭나게 하는 아카몬드의 영향력. 하지만 용성락은 그에 관해 알지 못했으니 감탄하는 게 전부였다.

이내, 용성락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정신 차리자.’

나머지 세 가문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만, 아카몬드의 발목만 잡지 않는다면 안토니움 함락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냉정하게 제국은 하루도 버티지 못한다.’

전망이 워낙 밝아 공적 포인트에 욕심이 났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용성락은 애써 야심을 억눌렀다.

‘게다가 아직 알고 있는 게 없다.’

아카몬드가 어떻게 이런 세력을 일구어냈는지, 안토니움 성문이 열리고, 황제의 목이 떨어진 뒤 4가문 사이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아는 게 없었다.

‘떨어져서 관망해야 한다.’

나대지 않겠다, 다짐한 용성락이었거늘.

외면하려고 해도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클라우디, 이호열을 향한 레텔의 반응이었다.

용성락이 슬쩍 시선을 돌려 레텔을 흘겨봤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 놀랐다.’

클라우디라…….

한없이 깊은 어둠이나 한 줄기 빛이나 흑암룡처럼 이호열의 수많은 이명 중 하나라고 생각했거늘. 반응을 보아하니 보다 복잡한 무언가가 얽혀있는 듯싶었다.

그러나 그 역시 상관없었다.

‘그럼에도 진격하는 건 이쪽도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황제의 오른팔, 라이언 하트 기사단.

이호열은 라이언 하트 기사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호열은 제국의 편을 들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천하의 이호열이라고 해도 4가문의 전력을 당해낼 순 없으리라.

‘그리고 나도 익숙해져야 하지 않겠어?’

자력으로는 현실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이었다. 앞으로 몇 번이든 아르카나 대륙에서 이호열과 충돌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는 뜻이다.

용성락은 적당한 긴장감을 가졌다.

‘그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이호열.

그가 플레이어와 맞붙는 모습은 없다시피 했다.

검성, 셰그윈과의 결투에서 승리한 적이 있기는 하다만. 셰그윈은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플레이어로서 이호열을 적으로 마주하는 건 어쩌면 자신이 최초라는 뜻이었다.

‘나는 너를 따라잡을 수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할지라도.

여기서라면.

이런 버프가 존재하는 아르카나 대륙이라면 나는 가능하다.

용성락이 다짐하는 순간, 멀리서 안토니움이 보였다.

아카몬드 못지않은 세력을 갖춘 나머지 3가문이 보였다.

그리고.

“……?”

4가문이 둘러싼 안토니움의 평야 정중앙.

전장의 중심이자 태풍의 눈.

대지 위에 홀로 서 있는 사내가 보였다.

스산한 바람에 나부끼는 어깨 위의 재킷.

햇빛에 찬란히 빛나는 은빛 머리칼.

일자에 가까운 꼿꼿한 자세.

틀림없었다.

이호열이었다.

순간.

그 사실을 증명하듯.

이호열을 제외한 전장의 유일한 플레이어.

용성락에겐 메시지가 떠올랐다.

“?!”

용성락은 그제야 깨달았다.

천하통일이 그간 무난히 세력을 확장할 수 있던 이유를.

류오쥔춘, 그 새끼가 피도 눈물도 없어서?

피도 눈물도 없는 대신 길드 운영 능력은 출중해서?

아니, 전부 틀렸다.

‘어, 어떻게?’

모든 건 순전히 이호열이 자비를 베푼 덕분이었다고.

용성락에게 ‘적’으로 마주한 이호열의 무게감이 와닿는다.

‘4가문을 등에 업은 나다. 그런 내게 어떻게 이, 이런……!!’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가 출현합니다.]

종막을 알리는 출현 메시지가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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