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0화. 한 끗 차이 (2)
“뭐요? 후퇴?”
신화 길드 공격대 실장.
김현석이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구긴다. 가온에 이어 대한민국 차석 길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는 신화. 하지만 세계에서 바라보면 100위권도 위태로운 수준으로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럼에도 정도라는 게 있지.
“아니, 남 분석관님. 우리 공격대 실력이 떨어지는 건 내가 인정합니다. 특히나 가온과 비교하시면 신화가 더더욱 형편없이 보이시겠죠. 그것도 인정합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얕잡아 보시는 거 아닙니까?”
가온과 신화는 유스라 재건 때부터 협력해 왔다.
가온이 길드로서는 신화를 아득하게 앞서 나갔지만, 신화 역시 거대 연합으로 덩치를 불린 가온에게 재벌로서 그룹 운영에 관한 도움을 줄 수 있었으니까.
누구의 말대로 주고받음이 확실했다는 것.
악연을 떠나서 비즈니스엔 철저했다.
가온의 수석 분석관.
남철민이 신화와 교신 중인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기에 납득이 되지 않았다.
-“신화를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이유라도 말해주십요. 납득이 안 돼서 그럽니다. 이래 봬도 저희 평균 레벨도 450입니다. 여기서는 충분히 선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백 사장님도 곧 합류하실…….”
-“그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겼어요.”
“예? 사건이요?”
김현석은 다급한 목소리에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제 보니 목소리 뒤로 쉴 새 없는 타이핑 소리가 들려왔다.
김현석은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혹시 위에서 뭔 일이 벌어진 겁니까?”
제로 산맥.
광활하고 드높은 만큼.
현실에 업데이트된 이후로 산맥에선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그 최정상에 드래곤이 머무르고 있는 건 기본이요. 호열과 그림자 용병단, 거악이 전투를 벌였던 장소도 제로 산맥의 어딘가였으니.
김현석이 쩝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아래쪽은 괜찮지 않겠습니까? 물론, 불필요한 피해는 피해야 되겠지만. 여긴 저지대이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로 산맥의 광활함은 나쁘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위쪽에서 사건이 터진다고 해도, 아래쪽에 영향을 끼칠 확률은 지극히 미비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미친.”
타탁.
현란하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멈춘 건가?
배경음처럼 들리던 타자음이 멎은 순간.
남철민의 고함이 이어졌다.
-“김현석 실장님. 당장 그쪽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제로 산맥이 역류하고 있어요! 위쪽에 서식하는 고레벨 몬스터들이 구역을 침범, 저지대로 내려오고 있단 말입니다!”
“……?!”
뭐라고?
아르카나의 상식을 완전히 부정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의문을 가질 순 없었다.
[일대에 ‘피에 굶주린 산맥 늑대’가 출현합니다.]
“기, 김 실장님?!”
피에 굶주린 산맥 늑대……!
모를 수가 없는 몬스터가 나타났으니까.
듣는 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남태민을 라이벌로 여겨온 김현석이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자신의 수준은 날마다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으니, 적을 알기 위해 남태민의 전투 또한 영상으로 꾸준하게 지켜봐 왔단 말이다.
저건 천하의 남태민조차 힘겹게 사냥하던 몬스터였다.
[피에 굶주린 산맥 늑대 : Lv.685]
“젠장!”
-“실장님? 설마 벌써 거기까지 내려간 겁니까?”
“……피에 굶주린 산맥 늑대입니다.”
김현석은 신화 길드의 전력을 돌아봤다.
“……쳇.”
마스터, 백이설이 합류하지 않은 현재.
모두가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저 늑대 한 놈 정도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녀석들의 진가는 무리 사냥이다.’
우두머리인 네임드 몬스터가 존재하며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까다로운 패턴을 가진 몹이란 뜻이다. 가온이 녀석들을 격파했을 때도 남태민이 우두머리를 물어뜯어서 처치, 그 후 전의를 상실한 무리를 일망타진해서 승리를 따냈었지.
김현석이 이를 악물었다.
‘나는 남태민이 아니고, 신화는 가온이 아니다.’
이대로는 전멸이다.
머릿속에 절망적인 견적이 떠올랐다.
그러나 김현석과 신화는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게 가온의 두뇌라는 사실을.
-“실장님. 신화 길드의 마법사, 그리고 민첩 스탯 400 이상 플레이어들에게 전해주세요. 스스로 [출혈] 상태이상이 발생할 정도로 상처를 내라고요.”
“……!”
-“녀석들에겐 상대의 약점, 부상자부터 공격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민첩 스탯 400 이상이면 아슬아슬하게 녀석들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마법사분들은 아시죠? 마력이 허락하는 선에서 재량껏 텔레포트로 거리를 벌리시길 바랍니다.”
이거, 가온 따라가기엔 아직 한참 멀었군.
김현석은 곧바로 남철민의 말에 따라 명령을 내렸다.
재빠르게 흩어지는 길드원들.
“후우.”
거기까지 상황을 보고받은 남철민은 일단 한시름을 놓았다.
이대로면 안전하게 신화 모두가 산맥 늑대로부터 도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엥?”
모니터에 갱신되는 신화 길드의 위치가 심상치 않았다.
어째서인가.
뒤로 후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저기요. 김 실장님. 제 말 들리십니까?”
-“…….”
“이봐요. 신화 길드 김현석 실장!”
스슥─
스스슥─
수풀을 헤쳐가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온다.
통신이 끊긴 것도 신변의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니다.
남철민은 고민하다가 딸깍─ 마우스를 움직였다.
“……비상상황이니 이해 바랍니다.”
가온과 신화는 어디까지나 적절한 협력 관계.
드론을 통한 모니터링까진 협력 내용에 존재하지 않았다.
남철민이 합리화하듯 중얼거렸다.
“총대장님도 이해해 주실 정도의 상황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지 않은가? 남철민은 제로 산맥에 퍼져있는 가온의 드론 중 하나를 움직여 신화 길드의 위치를 비췄다. 그 빠른 판단 덕분에 목격했다.
“저건……?”
일곱의 악크샨 악마 사냥꾼을.
그리고.
뎅겅─!
“뭐, 뭐, 뭐야?!”
그들이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광경을.
*
푸확!
사방으로 피가 튀어 오른다.
피부에 와 닿는 불쾌한 끈적임.
질끈 감았던 눈을 뜬다.
‘……내 피가 아니야.’
그레모리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붙어있다.
멀쩡하기 그지없다.
확인한 뒤에나 바닥에 쓰러진 플레이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레모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잘도 웃었다.
“핫……. 하하하하……. 하핫!!”
이것이야말로 권능이구나.
모자란 인간놈들이 마왕군.
아니, 악마 군단장들보다도 낫지 않은가?
“감히 나의 여왕님께……!”
약삭한 악마였다면 아군이 처참히 쓰러진 상태에서 전의를 상실했겠지. 그러나 이 멍청한 모험가들을 봐라. 필사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지 않은가?
‘권능과 함께라면 할 수 있다.’
그레모리는 전황을 파악했다.
‘이 부정적인 감정이 요동치는 세계라면……!’
마계도 아르카나 대륙도 아닌 제3의 세계.
머무른 시간이 극히 짧기에 알고 있는 정보 또한 극히 적은 게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넘실거리는 부정적인 감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거든.
“후후.”
그레모리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다.
천적에 대한 공포심은 여전히 떨쳐내지 못했거늘.
그레모리는 활로를 찾아냈다.
“그 기세등등한 꼴도 오래가지 못하겠구나.”
내가 악크샨을, 천적을 도발하는 날이 올 줄이야.
‘용서해 주마, 색마 놈.’
몸속을 떠도는 낯선 피가 갈수록 마음에 들어갔다.
하지만 건방진 놈들은 여전히 말을 섞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벅.
철컥─
저벅.
일곱의 악마 사냥꾼이 동시에 움직인다.
석궁에 재장전되는 볼트.
그레모리는 자신을 에워싸는 플레이어들 뒤에서 히끅거렸다.
공포에 질렸으면서도 비웃음을 잊지 않아서 나는 기괴한 소리였다.
“악크샨의 개가 무엇을 알겠어? 이 땅에서 인간의 목숨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인간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게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네놈들이 그런 인간을 죽였다는 거겠지!”
인간놈들이 하찮은 생명을 중시하는 것이야.
이 땅이나 아르카나 대륙이나 이미 마계에 삼켜진 세오른 대륙이나.
사실 전부 같았다.
“악마와 다를 바 없는 짓을 저질렀단 거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이 땅.
모험가 놈들의 세계엔 모순이 가득했다.
이미 인간이 아닌 녀석들이 인간을 자처하고 있다.
-“초신성? 저 악마와 다를 바 없는 놈이?”
-“그렇습니다, 여왕님.”
-“저런 쓰레기가 영웅으로 불린다니 웃기는 세상이구나.”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악마.
자신이기에 알아차릴 수 있던 모순이었다.
물론, 그레모리에겐 희소식이었다.
‘네놈들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게 될 거다.’
이 세계에서 상황은 요상한 기계들을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가리라.
그 실상은 자신의 권능에 취한 인간놈이 멋대로 목숨을 내던진 것이지만, 하찮은 인간의 시선에서는……. 그레모리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올라간다.
“악마 사냥꾼이 아니라 인간 사냥꾼이지 않느냐?”
그렇다!
저 악크샨 놈들이 살육을 저질렀다고밖에 보이지 않겠지.
그레모리는 머리를 굴렸다.
‘전투를 피하지 않았던 게 득이 될 줄이야.’
이 전투를 통해 얻게 될 것들이 상당했다.
권능의 위력을 제대로 확인한 건 물론이요.
그보다 더욱 중요한 성과.
‘악크샨을 부정할 기회다.’
과거, 아르카나 대륙에서 벌어졌던 성전처럼.
다시 부활한 악크샨을 역으로 몰아붙일.
그 싹부터 짓밟을 기회를 잡았다.
타다닥!
“풋, 화가 잔뜩 났구나.”
그 순간, 쇄도해오는 악마 사냥꾼들.
‘끈질기기 짝이 없어.’
그레모리는 웃으면서도 이를 갈았다.
새롭게 태어난 육체였거늘.
먹잇감으로서 각인된 공포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반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징글징글할 정도야.’
자신들이 절벽에 내몰린 상황에서도,
악크샨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수를 내지르고 있다.
역시 피도 눈물도 감정도 없는 놈들.
푸슉─!
발사된 석궁 볼트가 가속한다.
촤륵─!
마치 잘 조련된 사냥개의 목줄을 쥐듯.
스와와아─!
볼트에 연결된 은제 실을 잡아당기자.
스르르륵─!
석궁 볼트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꺾이기 시작한다.
그레모리가 다급히 외쳤다.
“나를 보호……!”
처음엔 틀림없이 모험가에 둘러싸인 자신을 노리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악크샨의 미치광이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푹!
“컥?!”
석궁 볼트를 기이하게 꺾은 이유는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그저 모험가들이 방어구 이음새, 약점을 노리기 위해서였다.
“커흡……?!”
풀썩─
목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모험가 하나에 만족하지 않고.
곧장 그 옆의 모험가에게 볼트를 선사하기 위함이었다.
푹!
푸욱!
푹!
“컥?!”
“윽!”
“헉!”
모험가들이 단말마를 뱉으며 쓰러져간다.
“……제대로 미쳤구나.”
그레모리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말했다시피 지금의 상황은 나쁘지 않았거늘.
악크샨의 광기에 몸이 질릴 정도였다.
“나를 사냥하기 위해서라면 인간 따윈 얼마든지 죽여도 좋다는 거냐? 듣던 대로 미친놈들이구나, 악크샨. 어째서 아르카나 대륙의 거악들이 네놈들에게 치를 떨었는지도……!”
그레모리는 다시금 깨달았다.
악크샨, 놈들은 위험하다.
싹을 밟을 수 있을 때.
다시는 고개를 들 수 없게 뿌리까지 뽑아놔야 한다.
그런 의미에선 자신에게도 적기였다.
괜히 천적이 아니다.
악크샨을 인정하면서도 믿는 구석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여긴 아르카나 대륙이 아니거든.”
악마를 사냥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크샨이 방식이.
용납받을 수 없는 세상이란 뜻이다.
힐끗.
그레모리의 시선이 플레이어를 향한다.
갑옷에 부착된 저 작디작은 기계-바디 카메라-가 마안(魔眼)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들었다. 분명, 악크샨 미치광이들의 만행을 널리 퍼트리고 있으리라.
그레모리는 천적을 바로 보았다.
“아르카나 대륙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땅에서도 네놈들은 이해를 받을 수 없겠지, 악크샨. 이유를 알아? 인간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야. 그 내면에 모두가 악을 품고 있거든.”
“…….”
재미없게 역시 대답이 없다.
“됐어.”
그렇다면 그레모리도 더는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 지금이야말로 지긋지긋한 먹이사슬을 끊어낼 시기였다.
그레모리가 마왕과 거악, 혼혈의 힘을 끌어올렸다.
“일어나라. 나의 병사들이여.”
……꿈틀.
그러자 쓰러졌던 플레이어들이 움찔거렸다.
그레모리는 흡족하게 웃었다.
‘새로 태어난 나는 더 이상 사냥감이 아니다.’
그러나.
……꿈틀.
그레모리는 간과하고 있었다.
악크샨의 두 번째 철칙을.
『[구마의식]이 발동 중일 때.
악마 사냥꾼의 공격은.
오직 악마에게만 피해를 입힌다.』
……꿈틀!
“……허억!”
치명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졌던 플레이어가 거친 숨을 뱉는다.
그러고는 꿰뚫렸던 자신의 목을 매만진다.
상처도, 출혈도, 고통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 보이는 건 오직 하나였다.
점멸하는 메시지.
[상태이상, ‘고혹’이 해제됩니다.]
“?!”
동시에 그레모리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뒤늦게 깨달았다.
아까부터 꾹 참고 있던 게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는 것을.
“컥……?!”
울컥!
그레모리의 목구멍에서 피가 치솟았다.
……어떻게?
어째서 인간놈들이 멀쩡한 거냐?
분명, 목구멍이 꿰뚫렸잖아.
이건 불합리하다.
말이 되질 않는다.
나는 납득할 수 없다.
마왕과 거악의 힘을 동시에 가진 내가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피를 토해야 하느냐.
인정할 수 없다…….
절대로……!!
이 순간.
그레모리가 느끼는 수백 개의 감정은.
단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었다.
‘……도, 도망쳐야 해!’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천적 관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