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311화 (310/489)
  • ◈ 311화. 종식해주겠다 (2)

    속보가 쏟아진다.

    [이호열, “밸런스 패치는 허상이다…….”]

    [“나의 존재가 그 증거.”]

    [“할 수 있다면 나부터 부정해도 좋다.”]

    그보다 더 많은 댓글이 쏟아진다.

    -기자 호익 만점임? 의역 쩌네ㅋㅋㅋ

    -노빠꾸 인터뷰 ㅁㅊ다

    -유저가 운영자한테 맞다이 뜨자는 거 아님??

    -그것도 그냥 운영자가 아니라 사실상 창조주잖아 ㄷㄷ

    악마족 몬스터.

    [공포]라는 최상위 상태이상을 내세워 시종일관 플레이어를 압박하는 패턴은 웬만한 네임드, 보스 몬스터보다도 까다롭다. 플레이어에겐 악몽과도 같은 놈들이었다.

    그러한 악마족 보스 몬스터인 마왕은 어떠하겠는가?

    마왕의 첫 등장.

    프로스트 탈환전.

    그때만 하더라도 인류는 절망에 빠졌었다.

    -오랜만에 봐도 소름 돋는다 진짜;;

    서열 최하위 마왕과 다름없던 데카라비아.

    녀석에게 북부의 대도시, 프로스트가 함락될 줄이야.

    프로스트의 위용을 알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그러나 프로스트엔 호열이 있었다.

    데카라비아를 시작으로 온갖 서열의 마왕들을 압도적으로 사냥.

    인류는 물론, 아르카나 대륙에도 반격의 바람을 불어온 그가.

    -근데 아무리 호열 님이라고 해도…….

    -마왕 전체를 사냥하는 건 무리겠지 ㄹㅇ

    -삭제는 사냥이랑 차원이 다르지 않나……?

    상대는 악마도, 몬스터도 아닌 아르카나의 창조주나 다름없는 레이먼 션이었다. 호열이 마왕을 압살해 왔다면, 레이먼 션은 패치 한 번으로 모든 마왕을 삭제시켰다.

    때문에 호열의 선언에 대한 반응은 확연하게 갈렸다.

    -자신만만한 거 보면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그건 ㅇㅈ하는데 레이먼 션이라는 게 문제라니까??

    -긍지가 없으니까 말이 안 통하지 에휴

    -긍지 이전에 상식 아님?

    -상식보다 긍지가 우선이지 뭔 소리하냐?

    -???

    아무리 그동안 호열이 보여준 게 있다고 한들.

    단순한 선언만으로 기세를 돌리기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었다.

    플레이어의 시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시 돌아와서 서울역.

    후우─

    담뱃불은 아직도 꺼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건재함을 보여주겠단 거야?”

    머리를 긁어본다.

    가뜩이나 복잡한 머리로 이호열식 화법을 곧장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사소한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던가?

    이 순간에도 균열 붕괴도는 치솟고 있다.

    플레이어들이 의욕을 상실한 지금.

    그들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움직인 세력들이 있었다고.

    이윽고, 서울역에 소란이 일어난다.

    “잠깐만, 뭐야 이거?!”

    시민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플레이어들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소란의 근원을 확인했다. 그건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어, 어?!”

    라이언 하트 기사단, 단장 하르콘.

    동영상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제국 최강의 기사단이 눈앞에 있었다. 기사단이 체계적으로 움직이며 주변을 파악한다. 균열을 포착하고, 곧장 행동에 돌입한다.

    하르콘이 간결하게 명령한다.

    “전군, 신속하게 균열을 폐쇄하도록 이상!”

    아르카나인들이 균열을 공략한다.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으로 이미 놀라운 일이었거늘.

    라이언 하트 기사단뿐만이 아니었다.

    “시, 실화냐? 해외엔 마탑이 떴다는데요?!”

    “부산 쪽에는 여신교단이……!!”

    “유스라 왕국군은 또 뭐야?”

    현실에 존재하는 아르카나 세력, 전체가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낙담한 플레이어, 자신들을 대신해 저들이 균열을 공략하기 위해 행동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그 이유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성전(聖戰)연합군이며 그런 연합군의 수장은 다름 아닌 플레이어, 호열이었으니까.

    “……?”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잠깐.

    넋이 빠진 얼굴로 균열을 바라보던 플레이어들이 흠칫하기 시작한다. 진입한 이후로 채 10분여도 지나지 않았거늘. 균열에서 찬란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경악이 이어진다.

    “버, 벌써 클리어라고?!”

    성전 연합군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성전 연합군이 상대한 적은 하나같이 초고레벨인 동시에 악랄한 패턴을 지닌 악마족 몬스터가 대부분이었다.

    그 사투가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이 성장으로 이어진 상황. 그에 반해 기껏해야 100에서 200 적정 레벨을 지닌 균열쯤이야. 순식간에 클리어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니겠지.

    곳곳에서 들려오는 승전보.

    -마탑이 ㄹㅇ 미쳤음;;; 500레벨 균열 1분 컷!!!!

    -붕괴 직전이라 군인들 대기 중이었는데 다행ㅠㅠ

    -이게 성전이 아니면 뭐임ㅋㅋㅋㅋㅋㅋㅋ

    감탄에 빠지기도 잠깐.

    플레이어들은 알아차렸다.

    그렇다.

    “일개 플레이어…….”

    지금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성전 연합군은 한 명의 플레이어인 호열에게서 시작된 것이라는 걸. 고작 한 명의 플레이어가 아르카나는 물론, 현실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창조주, 레이먼 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거 일종의 도발 같은데요?”

    심기에 거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레이먼 션, 그가 마왕을 삭제하며 내세운 이유는 밸런스 때문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호열이야말로 밸런스 조절이 필요한 규격 외의 존재일 테니까.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린다.

    “말 그대로 증명하겠다는 거야……!”

    “해볼 테면 해보라는 거지!”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었다는 건가?”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의 균열은 빠른 속도로 클리어되고 있을 터.

    그건 레이먼 션 입장에서도 원하는 그림이 아닐 것이다.

    플레이어들이 확신한다.

    “가능하다면 분명 건드릴 거야, 이호열을……!”

    그러나 만약, 호열에 관한 밸런스 패치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건 호열의 선언이 진실이라는 뜻이었다.

    우려가 기우에 불과하다는 증거가 되겠지.

    긴장감 속에서 누군가 말한다.

    “아니, 근데 그게 증거가 되나? 아르카나 세력을 연합한 거야 물론 대단한 능력이긴 한데……. 개인능력이 아니잖아? 그런 것도 밸런스 조절 대상인가?”

    같은 플레이어답게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그러나 호열이 누구던가?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며.

    단 하나의 군소리조차 용납하지 않는 추진력의 소유자.

    그 일처리에 빈틈은 없다.

    이내, 플레이어들에게 소식이 전해진다.

    “……잠깐만, 이호열이 직접 움직였다는데?!”

    그건 흔한 균열 공략이 아니었다.

    “어디 균열이래? 우리나라 균열이야?”

    담배가 타들어가는 것도 잊고는 옆 사람에게 묻는 사내.

    “보자. 일단, 우리나라에 하나. 일본 오사카에 하나. 그리고 미국에 하나. 캐나다에 하나. 이탈리아에 하나……. 잠깐만, 이게 대체 몇 개야?!”

    몇 개도, 수십 개도 아니다.

    무려 일백(一百) 개의 균열을 동시 공략.

    대격변 이후, 아르카나의 상식을 뒤엎는.

    규격 외의 전력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으니까.

    *

    퍼포먼스는 크면 클수록 좋다.

    ‘내뱉었으니까 지켜야지.’

    균형을 위해서라면 나의 존재부터 부정해 보거라!

    자신감이 뚝뚝 넘치는 호언장담.

    그걸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균형을 넘어서는 존재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과거, 악마 사냥꾼이라는 망캐를 키워본 경험이 있어서인가.

    내가 또 자기객관화 하나는 잘하거든.

    ‘나야말로 밸런스 파괴자겠지.’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그랑펠 덕분이다.

    보는 것만으로 마법을 따라 발현하고, 수려한 외모와 엄청난 집안 배경은 말할 것도 없고, 아르카나 대륙 곳곳에 뻗친 인맥은 하늘을 나는 드래곤을 떨어트릴 정도…….

    ‘적응이 안 되네, 정말.’

    읊는 것만으로도 낯이 달아오를 정도의 설정이 실현되어 나와 함께였으니까. 그런 나를, 두 세계의 파멸을 원하는 레이먼 션이 가만히 놔두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창조주는 개뿔이 창조주야.

    “전능을 자처하다니, 우습군.”

    물론, 흉조를 봉인해서 더욱 자신감이 넘쳤던 것도 있다만.

    애초에 나도 레이먼 션을 전능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랑펠의 드높은 긍지 때문에라도 말이지.

    “비루한 민낯을 드러낼 시간이다.”

    허나, 세계가 나와 레이먼 션의 복잡한 수 싸움을 알 수가 없으니까. 나는 대놓고 레이먼 션을 도발한 셈이다. 지금의 균열 공략도 그 일부였다.

    [드레이코의 늪]

    [적정 레벨 : Lv.150]

    [오크의 부락]

    [적정 레벨 : Lv.200]

    [하수도의 스켈레톤]

    [적정 레벨 : Lv.180]…….

    기껏해야 250~300레벨.

    당연한 이야기지만, 700레벨을 돌파한 내게 저런 균열을 공략하는 건 시간 낭비였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경험치가 미동도 하지 않았거든.

    “용맹을 잃지 않는 그대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거창하게 혼잣말을 내뱉으며 포탈을 발현.

    균열과 균열을 오가며 달려드는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얻는 소득은 없었다. 물론, 겉보기에는 상당히 그럴싸해 보이겠지.

    ‘말 그대로 일당백 중이잖아?’

    그러니까 아르카나 대륙 전기 시절로 비유하자면……. 플레이어 하나가 백 개의 사냥터를 독점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거다. 그냥 자리만 차지한 것도 아니고 학살을 하면서 말이지.

    당연히 모든 이의 시선을 끌 수밖에.

    “그 용맹에 화답할 수 없어 유감이구나.”

    그랑펠이야 대중의 평가와 관심 따위.

    쥐뿔도 신경 쓰지 않으니 상관없겠지만.

    나, 이호열은 여러모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일단, 이 혼잣말부터가 상당히 쪽팔려.’

    아무리 매사에 진지하다고 해도.

    기껏해야 200레벨짜리 몬스터한테.

    그런 거창한 대사를 치는 게 맞다고 생각하냐, 정말로……?

    ‘……됐다, 내가 무슨 말을 하냐.’

    지금으로선 그냥 일백 개의 균열을 클리어하는 데에 집중하자고. 그런 의미에선 나쁘지 않았다. 크고 화려한 게 또 내 전문이나 다름없거든.

    또각─

    포탈 너머로 비추는 균열로 발을 내딛는다.

    [균열, ‘그리즐리의 침소’에 진입하셨습니다.]

    크와아아앙!

    “성대한 환영이구나.”

    진입 메시지와 동시에 달려드는 수많은 몬스터들. 입구로 진입한 게 아니라 적진 한복판에 떨어진 셈이다. 덕분에 보스 몬스터도 어렵지 않게 조우할 수 있었다.

    ‘뭐, 나한텐 그냥 몹이랑 크게 다를 게 없지만.’

    그래도 매사에 진지하다는 것엔 변함이 없다.

    약한 적을 상대할 때도 잊지 않는 검술, 마법, 집념의 삼위일체.

    어쨌거나 덕분에 세상에 확실하게 티를 낼 순 있겠지.

    ‘내가 이렇게 규격 외의 존재라고.’

    그런 내게 손을 쓸 수 없다는 시점에서 레이먼 션에게 창조와 삭제 같은 권능은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깨닫게 되는 것도 조만간일걸? 플레이어들 눈치가 좀 빨라?

    게다가 얼마 뒤면 마탑에서 또 다른 소식이 전해질 거다. 그렇지 않아도 AAU 측에서 연락을 받았었거든. AAU 측 데이터베이스에 ‘황혼의 후예’에 관한 초기 설정이 존재한다는 소식을.

    ‘심증에 이제는 물증까지.’

    내가 말하지 않았었나?

    내 뒤끝은 꽤 길 거라고.

    나는 고작 흉조를 봉인한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빼도 박도 못하게 해주마, 레이먼 션.’

    앙금을 씹던 순간이었다.

    “……!”

    문득, 오감(五感)을 건드리는 기척.

    좋게 말하자면 드높고, 나쁘게 말하자면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그랑펠의 심기의 거슬리는 존재는 많지 않다. 지금도 보다시피 그랑펠은 기본적으로 자비롭거든.

    ‘인간은 물론, 몬스터한테도 다정하잖냐.’

    그런 그랑펠이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대상은 하나뿐이다.

    나는 냉랭히 입을 열었다.

    “열등한 족속의 냄새가 나는군.”

    악마.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일단, [천적관계]가 발동되지 않았으니까.

    주변에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향하는 발걸음.

    이윽고, 나는 자리에 멈춰 섰다.

    시야에 들어온 건 혈흔.

    그래, 나는 말라붙은 핏자국에서 악마의 냄새를 맡았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다각화된 악마 사냥꾼의 감(感).

    나는 그 성장의 이유를 직감하고 있었다.

    왜긴 왜겠냐.

    천하의 악크샨이 부활했기 때문이지.

    내가 진짜 악크샨 때문에 눈가가 마를 날이 없다.

    애도, 재회, 이젠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다 나려고 했으니까.

    [전설, ‘신시대의 영웅, 악크샨’이 실체화합니다.]

    허공에서 흑색의 악크샨 제복이 나부낀다.

    ……그러니까 내가 저딴 모습에 푹 빠졌었단 거지?

    안 되겠다, 수치심 때문에 흘린 눈물도 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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