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5화. 세상이 그들을 버렸을지라도 (1)
흉조가 움직인다.
소리도 소문도 없다.
메시지조차 출력되지 않는다.
흉조의 역할은 삭제 대상을 아르카나 대륙에서 은밀하게 집어삼키는 것. 남쪽 바다의 마녀, 그녀처럼 흉조를 주시하지 않는다면 알아차릴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엥?”
그러나 과거와는 다르다.
아르카나의 상공엔 감시자가 있었으니까.
인간이냐고?
아니, 인간의 기술력으로는 애초에 하늘에 떠오르는 것조차 불가능하니 그 가능성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다. 마력을 활용하는 마법사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어떤 할 일 없는 마법사가.
막대한 마력을 고작 아르카나 대륙을 감시하는 데에 사용하겠는가.
그렇다.
“저게 뭐야?”
투두두─
흉조의 출현을 목격할 수 있던 건.
기술력을 가진 드워프.
그들이 상공에서 아르카나 대륙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덕분이었다.
젊은 드워프가 통신기에 다급하게 외친다.
“거, 거너 씨! 보고 계십니까?”
“그래, 보고 있다.”
“마, 마왕성이……!!”
성전(聖戰).
승리를 위해선 정보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그래서 적의 동태를 살피는 건 빠트릴 수 없는 드워프들의 일과였다. 그러나 거너를 비롯한 드워프 조종사들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수,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마치 도려내듯.
마왕성이 거대한 ‘무언가’에게 집어삼켜지고 있었으니까. 그저 무언가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저 기괴한 형체는 정말로 무어라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거너에게 질문이 쏟아진다.
“저것도 악마일까요?”
“거너, 이 상황을 어쩌면 좋겠는가?”
“마왕성을 집어삼킨 거면 아군일 가능성도 있잖습니까?”
일단, 고개를 저었다.
“다들 조용. 판단은 우리가 내리는 게 아니다.”
엄격하게 답하긴 했는데.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무리 머리를 굴린다고 한들.
냉정하게 대륙을 바라본다 한들.
펼쳐진 상황을 이해할 순 없었다.
고작 하나의 마왕성이 사라졌다면 모를까…….
동시에 소식을 전해온 드워프의 숫자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마왕성이 사라진 게 아니다.
마왕성‘들’이 사라진 것이었다.
거너가 말을 잇는다.
“명심하게. 우리의 역할은 정보 수집이란 것을.”
“……!!!”
“목격한 상황을 정확하게 전해야 한다. 알아들었나? 좋아, 현시점에서 남아있는 마왕성의 수는 몇 개지? 우리가 감시하던 마왕성은 총 서른 개였다.”
이윽고 도착하는 조종사들의 전언.
“안토니움 서남쪽에 위치했던 마왕성 2채가 식별되지 않습니다……!”
“북쪽도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쪽 상황도 똑같네, 거너.”
하나둘…….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머릿속으로 숫자를 헤어가려던 거너의 얼굴이 하얗게 떠올랐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자 눈 깜짝할 새였다.
“……마왕성이 궤멸이라고?”
발견했던 서른 개의 마왕성.
전부가 아르카나 대륙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건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거너가 조종대를 붙잡았다.
“전원, 지금 당장 아이언 캐슬 호로 복귀한다! 체인워커에게, 그리고 호열 경에게 이 소식을 전달해야 한다!”
*
체인워커의 표정이 심각하게 가라앉았다.
“다른 의미로 위기로군.”
드워프의 성질머리가 어떠한가?
쇳물이 그렇듯 한번 불이 붙는다면 속에서부터 강렬하게 끓어오르는 족속이 자신들이었다. 때문에 성전에서 그 어떤 적과 마주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물러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건…….
“이제는 미지의 적이란 말인가?”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마왕성을 찰나에 집어삼킨 무언가를 아군이라 여기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야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마왕성이 있던 곳을 향하는 시선.
그 바로 옆에는 악마에 결사 항전하던 인간들이 있었으니까.
체인워커는 자신도 모르게 섬뜩한 상상을 품고 말았다.
‘……혹시 마왕성에 인간이 있었다면?’
그들 또한 무언가에 집어삼켜졌다는 뜻일 테니까.
고심하는 체인워커를 일깨운 건.
드워프 최고의 대장장이, 월스와일이었다.
“무엇을 그리 걱정하는가? 우리가 고민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없을 텐데. 잡생각이 들 땐 망치라도 들어보게. 자넨 너무 고상해졌어, 체인워커.”
“말대꾸할 정신이 없네, 월스와일.”
“진심이야.”
무언가.
적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재앙에 가깝겠지.
물론, 일찌감치 손을 놓고 포기했다는 게 아니다.
이미 드워프는 최선의 판단을 내렸으니.
툭툭─
월스와일이 체인워커의 처진 어깨를 두들겼다.
“호열 경에게 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지.”
디엔드를 통해 호열에게 소식을 전했다.
물론, 호열이라고 이 상황을 예측하고 정답을 내놓을 수는 없을 터.
그럼에도 체인워커는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적어도 우리보다는 나은 판단을 내리실 테니.’
스멀스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디엔드가 아이언 캐슬 호로 복귀했다.
“응?”
사실 제대로 전달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빠른 귀환이었다.
체인워커가 디엔드에게 물었다.
“경께서 무어라 말씀하시던가, 디엔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면 당장에라도 출격을. 화력이 필요하다면 아이언 캐슬 호의 마력포를 발사할 준비가 된 드워프들이었다.
한마디로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
그러나 돌아온 건.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디엔드의 낮은 음성이 깔린다.
“작은 전우들이여, 우려할 것 없다.”
“……?”
“주군께서는 이 상황 또한 안배에 두고 계셨으니.”
“?!!”
말 그대로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려다봐서 알다시피 마왕성을 집어삼킨 무언가는 이젠 흔적을 찾을 수 없이 자취를 감춘 상태. 곁에서 디엔드의 말을 경청하던 거너가 답답한지 끼어든다.
“디엔드! 마왕성의 위치를 제대로 전달한 게 맞는가? 고작 마왕성 한두 개를 말하는 게 아니네. 대륙 전역에 있던 마왕성들이 일제히 같은 시각에 사라졌어. 그 무언가라는 녀석에게! 심지어 그 괴상한 녀석은 완전히 모습을 감췄거늘…….”
아무리 호열이라고 해도 대체 무슨 수로.
그 무언가를 추적할 수 있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아 거너는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
평소와 같았다면.
다혈질인 거너를 만류했을 체인워커조차도 그를 만류하지 못했다.
거너의 의문이 자신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예상했다는 것인가?
곧장 디엔드가 말을 잇는다.
“또한 주군께선 덧붙이셨다.”
스멀스멀.
디엔드가 아이언 캐슬 호의 창가로 향한다.
아르카나 대륙을 내려다보며 말을 마친다.
“사냥은 내부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사냥?
내부?
아군에 적이 있다는 뜻인가?
드워프들의 얼굴이 긴장으로 물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드워프들의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순간.
구구구궁!!
무언가.
흉조의 뱃속에서.
사냥꾼이 사냥감과 조우했으니까.
*
제국.
안토니움의 정예병들.
“으윽…….”
그들은 신음을 흘리며 깨어났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마왕성에 접근하는 데에 성공.
성벽 앞에 땅을 파고 준비한 마도구를 묻어두었다.
가증스러운 족속, 악마.
현재는 마왕성에 처박혀서 그림자조차 내비치지 않고 있었거늘. 안토니움의 병사들은 놈들의 본성을 잊지 않았다. 방심하는 순간, 녀석들은 본색을 드러내고 제국을 짓밟겠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묻는다.
“……트랩, 마도구는?”
함정.
악마들의 발목을 묶기 위한 마도구였다.
조금이라도 귀찮게 할 수 있다면.
퀴른베르크 기계탑이 가동할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마도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뭐, 뭐야. 이 진동은?”
“이봐, 중요한 게 아니라니. 임무를 뭐라 생각하……?!”
“미, 밑을 조심해!!”
쿠구구궁……!
땅이 들썩거린다.
묻어뒀던 마도구가 오작동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건 마도구의 위력이라 착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쿠콰콰콰쾅!
지반이,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몸을 치켜세우는 병사들.
마왕성 앞이라는 것도 잊고 소리친다.
“일단, 퇴각한다!”
비틀거리는 몸을 재촉한다.
그러는 와중.
문득, 의문이 들었다.
……잠깐, 우리는 어째서 정신을 잃었던 거지?
신중에 신중을 기울였다.
악마의 상태이상에 당한 건 아니라고 자신한다. 애초에 이제 와서 공포에 질리기에는. 이들은 산전수전을 다 겪고 살아남은 정예병들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혹시, 지금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진동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제국을 수호해야 하는 우리는 이대로 줄행랑을 쳐도 되는가?
순식간에 결단을 내린다.
“……젠장!”
몸은 거부하고 있다.
몽롱한 정신으로.
이 자리를 외면하고 도망치라고 외친다.
하지만 사내는 이를 악물었다.
“정지!”
만약, 마왕성에서 그치지 않고 제국을 향하게 된다면?
제국은 영문도 모른 채 위협에 노출되리라.
그러나 무언가의 정체를 목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긍지롭지 못한 뒷모습이다.’
게다가 더는 외면하지 않기로 다짐하지 않았던가.
한없이 깊은 어둠 속 한 줄기 빛, 여명, 흑암룡.
그분을 보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제국은 이미 반격의 서막을 올리지 않았나, 제군들이여!”
그래, 나아갈 일만 남은 제국에게 더는 후퇴는 없다.
설령 이곳에서 자신들이 쓰러진다고 한들.
그런 자신들을 발판 삼아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제국이라는 말이다.
“모두 주시하라!”
“……!!!”
“무엇이 발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라.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목격하라. 그리고 누가 되어도 좋다. 폐하께 그대들이 보고 들은 것을 전해라!”
그것이 우리가 짊어진 역할이니까.
빠득─
거부할 수 없는 본능.
그걸 억누르는 것은 경험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긍지였다.
덕분에 목격할 수 있었다.
콰드드드드득─!
“!!!”
땅에서 솟구친 ‘무언가’가 방금까지 자신들이 있었던 마왕성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모습을. 경악조차 나오지 않는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어, 어……?”
마왕성 터.
잔해조차도.
심지어는 집어삼켜진 악마의 혈흔도 보이지 않는다.
“마, 말도 안 돼…….”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마왕성이 사라졌다.
마왕성이 삭제당했다.
눈엣가시 같았던 마왕성이 사라졌거늘.
기뻐할 수 없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슥─
그 ‘무언가’가 자신들을 바라본다.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깨질 듯한 두통의 원인을.
“으, 으윽?!”
모든 걸 하얗게 잊어버릴 정도로 강한 통증.
마치 지금 목격한 광경을.
전부 잊어버리라고 윽박지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를 악문다.
“으그그극……!!”
빠득빠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그럼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다짐하지 않았던가. 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폐하께 전달해야만 한다.
“빌어먹으으을!!”
대체 무어라 설명해야 하는가.
바로 말이 튀어나오지만 상관없었다.
병사들에겐 확신이 있었으니까.
설령 폐하께서 방도를 찾지 못하신다고 하더라도.
안토니움엔 흑암룡, 그 사내가 있지 않던가.
그러니.
“내달려라, 제국의 병사들이여! 안토니움을 향해!”
다다다!
사방으로 흩어져 내달리는 병사들.
단 한 명이라도 좋다.
극심한 압박감을 이겨내고 안토니움에 소식을 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다한 것이다. 병사들이 본능을 이겨내고, 움직인 순간이었다.
슥─
무언가.
흉조도 함께 움직였다.
[삭제] 작업에 불필요한 목격자는 필요하지 않다.
어째서 흉조라는 존재가 아르카나 대륙에 알려지지 않았는지를.
몸소 그 이유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꾸륵?
흉조 또한 간과하고 말았다.
꾸르르륵……!!
방금 자신이 무엇을 삼켰는지를.
“!”
비장한 각오가 무색해지게도.
잠잠해진 무언가.
병사들이 거친 숨을 고르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흠칫한다.
“왜 저래, 저거?”
꾸륵꾸르륵꾸륵─
거대한 무언가가 탈이라도 난 것처럼 몸을 비틀어댄다. 그러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들이 있었으니까.
사냥감과 조우한 그들이.
푹!!!!
흉조의 몸통을 찢어발기며 튀어나온 형체.
병사들이 가늘게 눈을 뜨고 바라본다.
저건…….
“팔뚝……?”
정확하게는 사람의 팔뚝.
보다 자세하게 묘사하자면 그것은 화려하지도, 예리하지도, 내구성이 뛰어나지도, 전투에 적합하지도 않은 은검(銀劍)을 쥔 사내의 팔뚝.
“검은 건 옷 같은데, 뭐가 저렇게 치렁치렁……?”
성전에서 제국을 포함.
아르카나 대륙.
그들은 모두에게 버려졌으나 [집념]을 잃지 않았다.
“자, 잠깐만!!”
설령.
자신들을 버린 제국의 병사들이라고 할지라도 외면하지 않는다.
그런 미친 자들은 광활한 대륙에서도 유일무이하다.
“저, 저 복장은 악마 사냥꾼……? 서, 설마……!!”
악크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