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301화 (301/489)

◈ 301화. 애초에 떠나지 않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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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

움직일 때마다 대륙이 요동친다. 그렇다면 거물과 거물이 조우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대륙조차 그들을 담기 벅차니 서로가 서로를 달가워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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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의 일족, 듄.

우두머리, 샤힌 듄은 창공을 바라봤다.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붉은 눈에 강렬한 기운이 포착되었다. 워워, 날뛰는 말을 진정시킨 샤힌이 입을 열었다.

“손님으로 드래곤이라. 범상치 않은 손님이로군.”

대지룡, 쿠드하낙스.

드래곤 중에서도 육중한 체구를 지닌 쿠드하낙스다.

만물의 왕.

평범한 이라면 목격하는 것만으로 몸이 위축돼도 이상하지 않거늘.

오히려 샤힌은 가슴을 활짝 펼치며 웃음을 흘렸다.

“진정으로 돌아왔단 말인가, 클리우디여!”

그런 태도가 샤힌이 거물이라는 걸 보여줬다.

서쪽에서 샤힌이 클라우디의 영지로 진입하고 있었다면.

남쪽엔 다이아몬드 상단주 가몬드 필이 있었다.

“이럇!”

황금 상단이라는 말이 있다.

대륙을 좌지우지하는 대상인에게 붙여지는 칭호와도 같은 것.

허나, 가몬드 필에겐 그런 호화스러운 수식어조차도 부족했다.

하나둘이 아니다.

이곳이 정말 황폐한 아르카나 대륙이 맞단 말인가?

그것은 두 눈을 의심케 할 행렬이었다.

수북하게 짐을 실은 마차가 수십 대.

그를 호위하는 상단병의 숫자는 그의 십여 배.

말 그대로 영지가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자, 계산을 해보자고요. 조수.”

톡톡.

다이아몬드로 도배된 상단주의 마차.

그의 통통한 손가락이 좌석을 수놓은 보석들을 거침없이 두드린다.

“흐음…….”

가몬드는 가까워지는 클라우디의 영지를 바라보며 머리를 굴렸다. 클라우디가 아르카나 대륙에 돌아온 지금……. 가몬드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역시, 한탕을 위해서는 클라우디에 붙어야 하지 않겠어요?”

다이아몬드 상단.

가몬드는 황금을 능가하는 칭호를 탐탁지 않아 했다.

그야 자신의 능력으로 따낸 칭호가 아니었으니까.

가몬드의 눈이 야심으로 반짝였다.

‘능력을 증명할 시간이다, 가몬드 필.’

선대 상단주,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돈벌이에도 때가 있는 법이라고.

평화로운 시대의 장사?

향신료, 금광, 사치품…….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였지만, 가문에 축적된 재산과 비교하면 우스운 수준이었다. 이대로라면 평생을 가도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 보다 압도적인 수익을 위해선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야 했다.

“지금처럼.”

가몬드는 지금이 바로, 재산을 몇 배로 증식시킬 기회라고 판단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상인의 관점은 범인들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으니까.

가몬드가 곁에 있던 조수에게 말한다.

“보이나요, 무너진 아르카나 대륙이. 과거에 수많은 건물이 있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지요. 그러나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무너졌다면 다시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몬드의 계획은 간단했다.

클라우디가 진정으로 대륙에 돌아왔다면, 대륙이 평온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리라. 평화를 되찾은 아르카나 대륙에서 대륙 단위의 건설 사업을 독점할 수 있다면?

“다이아몬드? 아니, 광물 따위로 수식할 수 없는 위대한 상단으로 거듭나게 되는 거지요! 그 말인즉슨…….”

그의 눈이 어느새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아버지는 물론, 모든 선대보다 위대한 장사꾼이 되는 겁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내가요!”

이런, 너무 신을 냈군.

가몬드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확신할 단계가 아니었다.

확인조차 못 하지 않았는가?

‘과연, 돌아온 클라우디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까?’

가몬드는 클라우디와 동시대를 살지 않았다.

그럼에도 클라우디의 명성을 알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다이아몬드 상단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게 바로 클라우디 덕분이었으니까.

가몬드는 내뱉었다.

“믿기나요, 조수? 엄격하시고, 자신감이 넘치시고, 모든 공을 자신에게만 돌리시던 오만하신 아버지께서. 클라우디라는 이름에 쩔쩔맸다는 사실이 말이죠.”

“……선대 상단주님께서요?”

“맞아요. 아니, 아버지뿐만이 아니었겠죠.”

다이아몬드 상단에 찾아왔던 수십 번의 때.

매번 그 시기를 주도한 게 바로 클라우디라고 하셨으니.

그럼에도 가몬드는 낙관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판단하는 건 나다.’

클라우디는 멸문했다.

그 생존자가 돌아왔다고 한들.

과거의 막대한 명성을 곧장 회복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고 판단해야만 했다.

‘영지만 해도 그럴 것이다.’

클라우디의 영지가 온전히 남아있을까?

그럴 리가 있으랴.

그렇기에 가몬드는 지극히 계산적으로 움직였다.

“속단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조수.”

“명심하겠습니다.”

“그로도 부족하다면 보험까지 들어둘 필요가 있는 거고요.”

수많은 마차는 일종의 보험이다.

클라우디 가문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분명 적잖은 재산이 필요할 터. 능력 여하를 떠나서. 고작 이 정도의 금액으로 클라우디 가문에 빚을 지우는 건 나쁘지 않은 장사일 테니까.

“워어.”

마침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클라우디의 영지에 진입한 것이겠지.

가몬드는 마차의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았다.

“보자…….”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지평선 끄트머리에서도 막대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저택. 가몬드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저택이 자신의 저택보다 화려해서?

아니, 갖가지 보석으로 치장된 필 가문의 저택보다 호화스러운 저택은 아르카나 대륙에 존재하지 않는다. 전설 속의 보물섬이라면 또 모를까…….

그러나 가몬드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름답군요.”

심미적으로 흠잡을 곳이 없다. 사치스러운 장식이 없더라도 그 구조와 모양새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마치 하나의 조각품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했으니.

“사, 상단주님!!”

선두의 마차에서 들려오는 음성.

가몬드가 고개를 조금 더 내밀자 거대한 조각상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확하게는 살아 움직이는 조각상이 상단 호위병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석상이 입을 연다.

“초대장이 없다면 클라우디령에 진입할 수 없다.”

“……!!”

그제야 가몬드는 자신이 오판을 내렸다고 직감했다.

클라우디는 아르카나 대륙의 상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는 것을.

후다닥!

가몬드가 마차에서 내려 초대장을 꺼내 들었다.

장사꾼으로 성공하는 데 필요한 건 눈치.

그리고 손바닥을 뒤집는 듯한 빠른 상황판단이다.

“초대장 여기 있습니다! 그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보시다시피 위대한 가문, 클라우디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한 선물을 부단하게도 많이 챙겨오느라……!”

*

동서남북.

나는 영지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는 석상을 바라봤다.

4가문이 남긴 클라우디를 향한 충성의 상징.

클라우디의 초대장은 아마 4가문에도 전해졌을 거다.

‘물론, 초대에 응할지는 모르겠다만.’

과거에야 충직한 고용인이었다고 한들.

오랜 세월이 흐른 마당에 이젠 남남 아니겠는가.

그보다 간만에 서클이 뻐근해질 정도로 마력을 소모했군.

“겉보다 중요한 것은 속내거늘.”

청렴결백.

부귀영화가 덧없는 걸 깨달은 그랑펠이야, 클라우디의 영지가 어떤 꼴이든 크게 신경을 쓰진 않겠다만. 나, 이호열은 아니다. 사회생활에서도 그렇고, 어디서든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거든.

‘건재함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애초에 나한텐 목적이 있었다.

클라우디의 후광을 이용해 아군을 포섭하겠노라!

그러기 위해선 클라우디의 후광이 여전히 찬란하다는 걸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그랑펠은 달갑지 않아 하는 연회를 주최한 거지.

클라우디의 저택도 마찬가지다.

[심미 : 上]

심미 스탯을 발휘, 반전 마법을 통해 복구할 수 있는 부분은 복구하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그랑펠의 심미적 감각에 의존해 저택을 다시 세워 올렸다.

‘광물에 간섭하면서 마력 타령을 하게 될 줄이야.’

[정순한 지식의 오망성] 효과로 탐색 과정조차 생략.

동시에 가장 많이 써먹은 마법 중 하나였으니까.

건축 마법이 있다면 그 창시자를 자처할 수 있는 내게도 클라우디 가문의 저택을 복구하는 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일단, 크기부터가 웅장하기 짝이 없었거든.

‘거의 황금 궁전급이었지.’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 내부 또한 클라우디의 건재함을 드러내야 하는 법.

또각─

저택을 계단을 내려오자 눈에 들어오는,

절제된 호화스러움으로 존재감을 뽐내는 소품들.

이런 게 어디서 난 거냐고 묻는다면.

‘어디긴 어디야 보물섬이지.’

유스라 왕국에서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가지고 왔다.

저걸 돈으로 환산하자면…….

억 소리가 수백 번은 나오지 않을까?

‘별 의미는 없지만.’

사실 수백억이라고 해봤자.

그동안 습득한 균열 클리어 보상금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조차 되지 않을 거다. 물론, 나 같은 소시민이었다면 그냥 통장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겁이 났을 천문학적인 금액이었거늘.

“나쁘지 않구나.”

그랑펠의 그릇이 워낙 넓어야 말이지.

덕분에 나는 인벤토리가 빵빵해진 채로 아르카나 대륙에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이었다.

나는 나의 이름을 쩌렁쩌렁하게 외치던 쿠드하낙스와 마주했다.

‘꼭 그래야만 했냐……?’

원망스럽기 짝이 없다만.

모든 일엔 순서가 있는 법.

그렇지 않아도 환자에게는 안부부터 물어야겠지.

“육체는 온전한 것인가, 쿠드하낙스.”

“우려해 주신 덕분에 큰 변화는 없습니다, 흑암룡 이호열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시여. 그보다 어느 틈에 영지를 다시금 바로 세우신 것입니까?”

어느 틈이긴.

차원을 찢고 아르카나 대륙을 밟자마자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이지. 그러나 이놈의 허세가 어디 개고생 한 걸 쉽게 인정하는 법이 있던가?

“바로 세운 게 아니다.”

“……?”

“클라우디는 애초에 무너지지 않았으니.”

정말로 황천에 빠져도 입만 둥둥 뜰 것 같다니까?

“이런……. 그 깊은 뜻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쿠드하낙스가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조아린다.

진짜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야.

그야 깊은 뜻은 무슨 깊은 뜻이냐.

모든 건 그저 그랑펠의 드높은 긍지 때문이었다.

‘설령 클라우디의 모든 게 무너졌다고 한들.’

그랑펠, 자신이 꺾이지 않았으니까.

결국, 클라우디는 끝까지 무너진 게 아니라는 의미였거든.

영지로 돌아오고 가주의 무게까지 짊어져서 그런가.

가뜩이나 활짝 편 가슴팍이 더욱 꼿꼿해지는 기분이구만.

‘부디 오늘이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구나.’

시작부터 남다르게 날뛰는 입방정을 우려하던 찰나였다.

쿠드하낙스가 말을 이었다.

동족, 드래곤에 관한 이야기였다.

“유낙서스가 흑암룡께 안부를 전해왔습니다. 초대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유감을 전한다고 말입니다.”

듣지 않아도 고충을 알만하다.

유낙서스는 엘더 드래곤으로 드래곤의 지도자였다.

악과를 삼킨 동족을 위해 해결책을 찾는 도중일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연회엔 참석할 수 없었겠지.’

그런 유낙서스를 대신할 드래곤이 쿠드하낙스였겠지.

왜 하필 목청은 크고, 입은 가벼운 쿠드하낙스란 말이냐.

마냥 원망스러웠는데 사정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된다.

‘유낙서스와 비슷한 세월을 살아온 게 쿠드하낙스뿐이니.’

……어쨌든, 클라우디의 후광을 빛내줘서 고맙다.

그렇지 않아도 현실의 마탑에서도 악과에 관해서 마탑, 치유학파 마법사들이 부단하게 노력을 하고 있거든. 나름대로 좋은 소식을 전해주려던 찰나였거늘.

……쿵!

별안간 커다란 소음이 들려왔으니.

“흐음……?”

쿠드하낙스의 귀가 한 차례 들썩인다.

[천적관계]가 발동되지 않은 상태.

멀리서 들려온 소음의 근원을 아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곳이 나의 [권한]이 미치는 곳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아니, [권한] 기능이 활성화된 것을 넘어서 이곳은 클라우디령이란 말이지.

“짐작이 되는군.”

이해는 된다.

거물이 괜히 거물이겠냐?

세력과 몸집이 커다란 만큼 다른 거물과 마주쳤을 때 충돌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그러나 로마에 갔다면 로마의 법에 따르란 말이 있듯.

“허나.”

이곳에선 클라우디가 곧 법이란 말이다.

“나의 영지에서는 용납할 수 없다.”

*

붉은 눈의 샤힌 듄.

“상단의 새끼 돼지가 살이 오를 때로 올랐구나.”

다이아몬드 상단주 가몬드 필.

“보자, 야만인과 다를 바 없는 그대들에겐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하는데요? 한쪽만 있어도 별 지장이 없다는 소문이 있던데……. 저에게 파시지요. 듄 일족의 적안을!”

무기를 들고 나서는 듄 일족의 전사와 상단의 호위병들.

두 거물은 노골적으로 서로를 물어뜯었다.

그러나 살기 등등한 신경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그들의 머릿속에 냉랭한 목소리가 울렸으니까.

-자신이 있는가.

“……!!”

그 순간.

-클라우디의 영지에서 소란을 피울 각오가 되었느냐는 의미다.

입과 육체에 가해지는 압력.

그것은 말로만 듣던 「언령」.

두 사내는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언령……! 이 정도로 막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니……!!’

의심할 바가 없었다.

아르카나 대륙에.

클라우디가 돌아왔다고.

“……좋은 날에 싸워서 되겠습니까, 하하.”

거물조차 꼬리를 내리게 하는 위대한 가문이 돌아왔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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