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298화 (298/489)
  • ◈ 298화. 생지옥이다……! (2)

    정령은 기본적으로 장난기가 많다.

    아르카나 대륙에 떠도는 말만 봐도 알 수 있다.

    ──────

    대다수 인간에게 정령의 목소리는 닿지 않으니 정령은 말을 대신할 장난을 치고는 한다. 여행자여, 그대의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도 노여워 마라. 바람의 정령은 단지 그대와 말을 섞고 싶어할 뿐이니…….

    ──────

    과거엔 숲의 정령이었지만, 지금은 {고유 정령}으로 거듭난 하이엘.

    자리는 사람을 만들 듯 정령도 만든다. 따라서 근래의 하이엘에게선 고귀함은 찾아볼 수 있어도 장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모자라 호열의 영향까지.

    하이엘은 속으로 말을 삼켰다.

    ‘저는 어찌하면 좋을까요, 주군.’

    심정 같아서는 저 다섯의 모험가를 골려주고 싶었다.

    천하통일.

    저들이 시도 때도 없이 주군을 음해하려던 일을 떠올리면, 솔직한 심정으로는……. 식물로 사지를 묶어버리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하이엘은 잊지 않았다.

    “……이런 죄송합니다, 주군.”

    호열이 강조했던 격식을.

    하이엘은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이 곧 주군의 드높은 명예를 실추시킬 수도 있다는 걸 명심했다. 이번에도 호열의 관점에서 저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답이 나왔다.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체인워커는 갈팡질팡했다.

    드워프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무관심하다.

    현재 드워프들이 제국을 돕는 것도 순전 악크샨과 호열의 영향 때문이었으니.

    체인워커는 다시금 하이엘을 바라봤다.

    “저희보다는 모험가에 관해 박식하시지 않습니까?”

    누구를 닮아서일까.

    극진한 말투와 취급에도 하이엘은 당당히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나 누구처럼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알고 있나요, 체인워커.”

    “무얼 말이십니까?”

    “주군의 고향, 모험가들의 세계에 관해서요.”

    “으음, 글쎄요.”

    체인워커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듣고 보니 정말로 모험가들의 세계에 관해서는 딱히 알고 있는 게 없었다. 아르카나 대륙에 신경을 기울이기도 바쁜 참. 게다가 다른 누구의 고향이 아닌 호열의 고향이었다.

    체인워커가 머리를 긁적인다.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의 아르카나 대륙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호열 경이 그 세계에 머무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이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르카나 대륙에서 모험가들의 세계로 넘어온 악마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르카나 대륙보다 모험가들의 세계를 흡족해하죠. 주군께서 존재하심에도 말입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체인워커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흠칫했다.

    그러고는 다시금 지상의 모험가들을 바라봤다.

    체인워커의 눈매가 날카롭게 좁혀진다.

    “……혹 모험가들 때문입니까?”

    체인워커는 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성전(聖戰)이다.

    자신들은 악크샨을 등에 업고 있다. 그래서 결심을 마쳤다. 모험가가 악마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면. 저들에게 냉혹한 태도를 보여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그보다 원초적인 문제입니다.”

    “원초적인 문제라 하시면……?”

    “그 땅엔 부정적인 감정이 끊이질 않으니까요.”

    체인워커는 오한이 돋았다.

    ‘진정 그런 세계가 존재한단 말인가?’

    아르카나 대륙만 하더라도 끔찍하기 짝이 없다.

    가끔은 살풍경에 오한이 돋아나기도 하거늘.

    체인워커는 다시금 호열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세계에서도 호열 경은 꼿꼿하단 말인가?’

    물론,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서.

    체인워커가 재차 확인한다.

    “저 모험가들을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자비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체인워커.”

    “글쎄요……. 처분입니까?”

    “아니요.”

    하이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무관심과 외면입니다.”

    여명.

    붉은 휘장, 천하통일.

    저들은 주군의 적.

    당연하게도 주군의 따스함이 저들에게 비칠 일은 없다.

    눈길조차 주고 싶지 않았거늘.

    하이엘은 호열을 위해 한발 더 나아가 생각했다.

    ‘분명 이유가 있다.’

    주군이 세운 규율을 무시한 채.

    아르카나 대륙에 발을 들인 이유가.

    하이엘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호열에게 보고할 생각이었다. 아르카나 대륙에 존재하는 자연과 그를 관장하는 정령들.

    [첫 세계수의 축복]으로 {고유 정령}으로 거듭난 하이엘이다.

    하이엘에겐 그들에게 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으니까.

    그 말인즉.

    굳이 두 눈으로 지켜볼 이유가 없다는 뜻.

    하이엘의 시선이 천하통일의 오성에게서 거둬졌다.

    “주군의 안배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죠, 체인워커.”

    “뜻을 알아들었습니다.”

    투두두─!

    이윽고 거대 비행정이 창공을 가르며 나아갔다.

    그 광경은 오성.

    다섯의 플레이어에게 절망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마, 말도 안 돼.”

    “NPC라면 플레이어를 반겨야 하잖아!!”

    “개자식들아, 돌아오지 못해?!”

    그러나.

    정작 외침에 화답한 것은 아이언 캐슬 호가 아니었다.

    꿈틀─

    아르카나 대륙에 떠도는 악마족 몬스터였지.

    오성의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마계 청소부 지네 : Lv.700]

    악마란 기본적으로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는 족속이다.

    눈치라도 볼 수 있는 악마보다 그렇지 못한 악마가 더욱 즐비하다.

    허나, 형편없는 악마라고 한들.

    무려 700레벨이다.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한들.

    450레벨 언저리의 플레이어가 저런 몬스터에게 대응할 수 있을까?

    누구보다 본인들이 잘 알고 있었다.

    “아, 안 돼! 이건 자살행위야!!”

    접속기 앞에서 보였던 패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줄행랑.

    모두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쳤다.

    “로그아웃!!”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던가?

    처음부터 호열은 경고했다.

    -“접속기를 통해선 현실로 돌아올 수 없으니.”

    그저 자신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았을 뿐.

    -“목표 또한 잊지 않았을 거라 믿겠다. 우리는 아르카나 대륙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주군에게 전달해야만 한다.”

    그제야 오성은 깨달았다.

    “……설마?”

    주군께서 우리에게 접속기의 사용을 내어주신 이유가…….

    단순히 그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단 말인가?

    절규와 함께 누군가 소리쳤다.

    “으아아아! 용서할 수 없다, 류오쥔춘!!”

    .

    .

    .

    군주란 어떤 존재인가?

    군주는 신하보다 앞서 생각해야 한다.

    신하가 군주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다면.

    그것은 군주로서 실격이라는 의미다.

    슥─

    류오쥔춘의 싸늘한 시선이 접속기를 향한다.

    모두가 아르카나 대륙으로 사라졌다.

    이로써 스무 명째였다.

    “나를 위한 그대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

    아르카나 대륙에 떨어진 길드원들.

    그들이 자신을 원망하든, 원망하지 않든.

    그따위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군신관계]란 그러한 것이니까.

    류오쥔춘의 시야에 메시지가 떠오른다.

    [스킬, ‘군신관계’가 발동됩니다.]

    [신하에게 누적된 경험치를 습득합니다.]

    [신하에게 누적된 경험치를 습득합니다.]

    [신하에게 누적된 경험치를 습득합니다.]…….

    잔혹한 목소리가 울린다.

    “그러니 자랑스럽게 죽어라.”

    류오쥔춘의 퀘스트창이 점멸한다.

    [클래스 퀘스트 : 폭군의 길]

    *

    AAU.

    “뭐가 꿈의 직장이냐, 진짜.”

    대격변 이전, 코스모 시절에도.

    대격변 이후, 코스모가 AAU로 전환이 된 지금도. 성현준은 친구들 사이에서 축복받은 놈으로 통했다.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사실 그동안 꿀을 빨아도 적잖게 빨기는 했다.

    그동안은.

    호로록─

    퀭한 눈두덩의 성현준이 아메리카노로 생명을 연장한다. 며칠째 제대로 눈을 붙여본 적이 없었다. 모든 건 유스라 지부 총책임자, 호열이 폭탄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거악도 모자라서 십만 동굴 동시 공략에 전설급 아이템, 엑스칼리버까지? 진짜 언론에 답변거리 내놓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요, 선배.”

    윤수겸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질끈, 부여잡는 머리카락.

    “엑스칼리버, 저게 저기서 나올 게 아닌데……?”

    엑스칼리버.

    플레이어와 언론이 추측하듯 아르카나 시스템상 존재하는 최상위 등급 아이템이었다. 비록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에 등장할 수준의 아이템은 아니었다고 한들. 그 위치와 좌표는 명백히 설정되어 있었다는 것.

    윤수겸이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물론, 저걸 총책임자님이 습득하셔서 다행이기는 한데……. 저게 왜 제로 산맥 십만 동굴에 있는 건데? 젠장. 아르카나 대륙이 얼마나 쑥대밭이 됐으면……!”

    “선배, 왜 제 말엔 대답 안 해주시는 거예요?”

    “설마 원래 위치가 땅속에 파묻힌 건 아니겠지?”

    “……뭐야, 설마 내 목소리가 안 들리나?”

    멈칫.

    성현준은 다급한 손으로 자신의 볼을 꼬집어봤다. 통증도 있고, 육체도 만져지고, 손이 책상을 통과하지도 않는다. 과로사로 쓰러져서 유체이탈을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두 사내가 동시에 호들갑을 떤다.

    “여신이 저기에 있다는 게 설마 복선인가?”

    “서, 설마. 선배가 죽은 건가?!”

    “젠장, 빌어먹을 아르카나!”

    “선배, 제 얼굴 좀 봐봐요!”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

    퇴근하지 못한지 사흘째.

    어쩌면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이상한 일이겠지.

    그러나 진짜 난장판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비상!!”

    타다다─

    분주한 발걸음.

    AAU 대한민국 지부에서 목청껏 소리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또 있겠는가? 지부장, 박민재가 유일하다. 박민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두 사람을 찾는다.

    “윤수겸, 성현준이. 비상이다, 비상!”

    비상이라고?

    진짜 비상은 업무시간에 넋 놓고 있을 때.

    허겁지겁 달려오는 상사가 아닐까?

    가출했던 정신이 순식간에 돌아온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부장님?”

    하지만 박민재는 호들갑을 떤 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한 비상 상황은 존재했으니까.

    떨리는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말.

    “유스라 지부 총책임자님이 방문하신단다.”

    “……지, 지금이요?! 여기로요?!”

    “그래!”

    엑스칼리버, 여신, 거악, 이젠 방문이라니!

    어떻게 된 게 총책임자님께선 숨돌릴 틈조차 주시지 않는단 말인가? 그 이유를 묻기 전에 옷매무새부터 되돌아보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묻는다.

    “어떻게, 저 지금이라도 세면 좀 하고 올까요?”

    “아니, 그 넥타이부터 제대로 해봐.”

    “어떠냐, 내 얼굴 상태 괜찮아?”

    ……박민재의 얼굴이 점검한다고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만.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세 사람은 곧장 지부상실로 걸음을 재촉했다.

    약속 시각이 임박해 왔다.

    “그나저나 무슨 일 때문에 방문을 하시는 건가요?”

    “확인하시고 싶은 설정이 있으시단다.”

    “……설정을요?”

    의아했다.

    그럴 수밖에.

    마법부터 시작해서 악마, 최근에는 영락없이 삭제된 줄만 알았던 악크샨과 교류를 맺으셨던 것까지. 아르카나에 관해서 자신들보다 해박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총책임자님이 아니시던가?

    박민재가 쩝 입맛을 다셨다.

    “내가 어째서 비상이라고 했는지 이제야 알겠냐?”

    세 사람뿐만 아니다.

    AAU 대한민국 지부.

    아니, 모든 지부는 그동안 호열의 노고를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보답할 기회가 있기만을 기다려 왔다.

    ‘그땐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는데.’

    호열의 요청에 흔쾌히 대통령과의 다리를 놔줬던 박민재였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이 없었다.

    끊이지 않는 아르카나의 침식.

    그 가운데에서 이미 한 차례 손을 놓아버렸던 AAU가 아니던가?

    성현준이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그러네요……. 오히려 여쭤보고 싶은 게 산더미인 쪽은 저희인데. 총책임자님의 의문에 저희 AAU가 답변할 수 있을까요?”

    알다시피 AAU 데이터베이스는 만능이 아니다.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부터 확정된 설정이 아나라면, 그것이 어떻게 실현이 되었는지 간단한 예측할 수조차 없다는 뜻이다.

    박민재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일단, 최선을 다해봐야지.”

    “그럼 저흰 밖에서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엉? 밖이라니 같이 들어가야지.”

    “……예?”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벗지 못한 꼰대 티.

    박민재가 장난스럽게 말한다.

    “왜, 옆에서 녹차도 좀 타고 해야 되지 않겠어?”

    농담이 오가는 건 찰나였다.

    고오오오─

    “……!!!”

    약속 시간이 되자 지부장실에 포탈이 열린다.

    한 치의 어김 없이 모습을 드러낸 호열이 이내, 자리에 착석.

    성현준이 손수 준비한 녹차로 목을 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자 박민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마탑의 설정이라면……!”

    아무래도 호열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부디 제게 맡겨주십쇼!”

    비로소 밥값을 할 시간이 왔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