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6화. 나를 위한 것이라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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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 진정한 야성을 일깨워 야성이 대폭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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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퀘스트 시작 직후, 습득한 고유 스킬.
남태민은 어느새 [야성의 부름] 숙련도 마스터에 도달했다.
엄청난 성과였다.
물론, 그 성과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지만.
‘죽는 줄 알았지, 진짜.’
막중한 호열의 짐.
그를 나눠 들기 위해선 막중한 무게를 감당할 힘이 필요했다.
그럴 능력을 갖추기 위해 매번 목숨을 건 사투에 도전했던 자신이다. 말만 그런 게 아니다. 그 증거가 이렇게 검기에 드러나 있지 않았던가?
스승, 하르콘의 말을 떠올려본다.
-“명심하도록, 제군. 검기는 목숨을 건 사투에서 짙어진다.”
600레벨이 채 안 되는 수준.
그런 자신이 적정 레벨 800이라는.
어마어마한 동굴을 보스 직전까지 공략할 수 있었던 건.
검기의 영향이 컸다.
‘검기가 아니었다면 딜이 박히긴 했을까?’
물론, 또 다른 방법이 있긴 하지.
“야성의 부름…….”
바바리안의 고유 스킬.
고유 스탯 [야성]을 증폭시켜 육체 능력을 대폭 상승시켜 주는 [야성의 부름]이었다. 하지만 발동 시 이성을 잃는다는 게 너무나도 큰 페널티였다.
말 그대로 짐승이 되었으니까.
‘검기조차 발산할 수 없을 정도로.’
[야성의 부름]과 『검기』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런 경지에 도달한 상상을 하니. 남태민은 주먹을 불끈 쥘 수밖에 없었다.
‘가능하다면 이런 일로 호열 씨를 귀찮게 하지 않을 텐데.’
전부터 벽에 부딪혔다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클래스 퀘스트]도 떠오르지 않는 상태. 유일한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야성의 부름] 숙련도조차 한계치에 다다랐으니. 목표를 상실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당연했다.
‘그렇다고 검기를 가다듬기에는…….’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바바리안의 길과 정반대의 길을 다시 걷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 탓에 남태민은 이런 찰나에도 이따금 고뇌에 빠지곤 했다.
절레절레─
“이럴 때가 아니지, 남태민.”
호열 씨가 귀중한 시간을 내어주시지 않았던가?
“진짜 남들 두 배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니까?”
새삼스럽게 다시금 감탄했다.
그 짧은 시간에 거악을 처치하신 것도 모자라.
청와대에 들러 능구렁이 같던 부패 정치인들까지 정리하시다니.
‘정말, 어디까지 내다보고 계시는 건지.’
그런 생각을 하니.
부족한 자신이 떠올라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애써 떨쳐냈다.
쿠드드득!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동굴의 보스몹이 모습을 드러냈거든.
[뒤틀린 고목의 뿌리 : Lv.900]
적정 레벨 800짜리 던전에 웬 900레벨짜리 보스몹이라고 묻는다면. 그건 녀석이 조금 특이한 패턴을 가진 보스이기 때문이었다.
형, 남철민의 브리핑이 들려온다.
-“생명력과 방어력은 레벨에 비해서도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이야. 엄청난 덩치 때문에 움직이기는커녕 뿌리를 휘두르는 게 고작이지만, 공격 반경이 어마어마하다는 거지.”
남태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내 검기로는…….’
작은 생채기를 내는 게 고작이었다.
검기를 포기하고 [야성의 부름]을 발동했어도 큰 차이는 없었다. 나뭇가지 몇 개를 잘라내긴 했다만, 웬만한 빌딩보다 커다란 녀석에겐 유의미한 피해가 아니었겠지.
-“태민아, 뭔 생각을 하느라 대답도 없어?”
“어?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기는.”
괜히 형제가 아니고, 형이 아니다.
시무룩한 목소리만 들어도 안다.
남철민이 낙담한 동생을 위로했다.
-“뭐든 시간이 필요한 법이잖아? 조급해하지 말자, 태민아.”
당연히 알고 있다.
다만 걱정이 될 뿐이었다.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한들.
‘뚜렷한 목표가 없다면…….’
나는 앞으로.
호열의 뒤를 쫓아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
그러나 이 순간 동굴에는.
어두운 미래를 찬란하게.
우려를 기우로 만드는 존재.
여명이 있었다.
남태민의 눈이 그 여명, 호열의 움직임을 좇는다.
“검기…… 가 아니라, 검강……!”
검기의 윗 단계, 검강.
하르콘에게 그런 경지가 있다고 가르침을 받았었다.
또한 호열이 검강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 남태민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건 순수한 검강이 아니야.’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과거, 검강은커녕 검기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남태민이었다. 하지만 검기를 목격하고, 직접 검기를 발산하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면서 호열의 검강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언가 섞여 있다.’
역시나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그게 마법인지, 스킬인지, 또 다른 무언가인지.
자신의 식견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검강에 ‘무언가’가 결합했다는 것.
꾸욱─
남태민은 자신의 대검을 바라봤다.
복잡하던 머릿속이 상쾌해졌다.
눈앞에 정답이 있었으니까.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건가!’
[야성의 부름]과 『검기』의 결합.
방향을 상실하고 표류하던 자신에게.
호열이 새로운 목표를 제시한 순간.
남태민은 또 한 번 호열을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다.
‘설마 굳이 마법을 두고 검을 드신 이유가……?’
마탑의 수석.
수많은 마법을 발현할 수 있는 호열에게.
저런 고목 따위 불살라 버리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손수 검으로 상대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고충을 알아차리고. 말보다 행동으로 가르침을 주시려는 뜻일 터. 벅찬 감정이 입 밖으로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디까지 내다보고 계신 겁니까, 호열 씨……!”
*
와 씨.
덩치부터 예상은 했다만.
질기네, 이거.
‘물론, 질겨봤자겠지만.’
칠죄종 질투를 상대하다가 와서 그런가?
900레벨짜리 보스몹이라고 해도 위압감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천적관계]가 발동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공략 난이도의 차이가 무지막지하다는 거지.
‘패턴만 해도 단순해.’
공격 반경이 넓다?
유유히 공중부양하는 내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백날 뿌리를 휘둘러 봐라.
그 뿌리에 흙이 잔뜩 묻어있는 이상.
“소란스럽구나.”
드높은 격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여명 세트에 흙먼지를 묻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공격을 허용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펄럭─
여명의 재킷이 이리저리 나부낀다.
어째서 다시 어깨에 걸친 거냐고 묻는다면……. 자체발광 반딧불이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펄럭거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거든.
‘딱히 세트 효과를 써먹을 상황도 아니니까.’
사실 펄럭거리나 반짝거리나 별 차이는 없겠다만.
애써 멘탈을 부여잡고 전투에 집중한다.
칠죄종 질투보다는 못한 적이라고 방심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무려 900레벨 보스 몬스터다. 남태민조차 피해를 입히지 못할 만큼 끈질긴 생명력과 방어력이 특징인 녀석이다.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잊지 않는다.
마법, 검강, 집념의 삼위일체.
그 물 흐르는 듯한 감각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귀철은 꺼내지 않는다.
대신 주변에 널린 광물에 간섭, 적당한 검을 발현해 손에 쥔다.
그러고는 [『기이』]를 발현.
기이의 위력이야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기이의 영역에 진입하지 못한 존재에게 기이는 불합리할 정도의 효과를 보여준다. 왜, 거대한 고목이 두부 썰 듯 잘려나가는 것처럼 말이야.
“덩치만큼이나 요란하구나.”
쿠구구궁!
내뱉은 말은 지켜야지, 또.
나는 마력으로 피어나는 흙먼지를 날려버렸다.
빠질 수 있으랴, 뻔뻔하게 내뱉는 말.
“허나, 나의 화원에 거두기엔 품격이 모자라는군.”
그 이후.
전투의 행방이야 설명할 게 있나.
일방적인 나의 승리였지, 뭐.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자, 상승한 레벨은 5레벨이다.
900레벨 보스 몬스터치고 적은 경험치가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릴 법도 한데……. 100레벨마다 존재하는 통곡의 요구 경험치통을 고려하면 이해가 되는 수준이다. 아니, 역으로 감탄하게 된다.
‘경험치를 얼마냐 준 거냐, 칠죄종 질투 그게?’
700레벨의 벽을 가뿐히 무시하고 한계치인 50레벨 상승이라니.
감탄도 잠시.
자동적으로 습득된 전리품이 메시지로 떠오른다.
[부패한 고목의 밑동]
[등급 : 유니크]
[제한 : 없음]
[효과 : 없음]
[설명 : 거대한 나무의 밑동이다. 이미 부패했지만 상당한 기운을 품고 있다. 무언가를 짓는다면 명당이 되고, 제작한다면 명품으로 거듭나게 된다.]
재료 아이템이라.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만약 보스 수준에 맞는 900레벨 제한 아이템이 떨어졌다면.
그림의 떡이 따로 없지 않았을까.
700레벨대의 벽을 실감한 지금은 아쉬워할 게 아니라 기뻐해보자.
‘드워프에게 제련을 맡길 수 있으니까.’
드워프가 제련한 아이템에는 ‘장인의 손재주’ 효과가 붙어있다.
손재주로 착용 제한을 내게 유리하게 제작할 수 있다는 뜻.
그래서.
‘뭘 만들어야 잘 써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머리를 굴리던 찰나.
남태민이 다가왔다.
그런데 어째 그 얼굴이 심상치 않다……?
“감사합니다, 호열 씨!”
꾸벅─
갑자기 인사는 왜 또.
내가 보스몹을 처치해서 그런 건가?
‘경험치도 전리품도 내가 독식했는데?’
이렇게까지 감사할 이유는 없지 않나.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고개를 들어 올린 남태민의 표정에 나는 입을 열었다.
일단, 뻔뻔하게 인정했다는 거지.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군.”
나도 눈치라는 게 있다.
남태민은 누가 봐도 감동한 눈치였다.
그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귀한 가르침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가르침이라.
도움이 되면 좋겠다 생각했다만.
제대로 가르칠 의도는 없었거늘.
확실히 랭커는 괜히 랭커가 아니구나? 모든 행동에서 배울 점을 찾아낸다는 거겠지. 역시나 겸손 따윈 떨지 않는 나이기에 지그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놀랄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괜히 형제가 아니라는 건가?
남철민 씨, 당신은 또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교육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총대장님!”
동굴을 클리어하고 거대 연합의 베이스캠프로 복귀한 내게 남철민이 허겁지겁 달려와서 보고한다. 그가 내민 건 태블릿PC, 액정 속에서 재생되는 동영상 하나.
그 제목을 확인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엑스칼리버의 선택을 받은 자, 이호열]
에, 엑스칼리버라고?
내가 그거에 선택을 받았다고?
언제?!
‘그보다 내 속마음을 읽었나?’
바위에서 실시간으로 검을 발현해서 뽑아내는 고난이도 마법. 검의 성능을 떠나서. 그랑펠의 폼생폼사가 맞물려 마치 엑스칼리버를 뽑는 것 같구나, 생각하기는 했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걸 동영상 제목으로 가져다가 붙였다고?!’
놀라움을 떠나 대체 무슨 교육을 위해.
저런 거창한 이름을 붙인 거냐고 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역시나 이 철면피가 잠자코 있을 리가 없다.
“엑스칼리버라니 과소평가로군.”
그것은 더없는 자신감의 표현.
엑스칼리버보다 자신이 발현한 마법의 수준이 더 높다는 의미.
물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특화된 그랑펠식 화법이다.
“……!!!”
일동 경악.
남씨 형제를 비롯해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남철민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총대장님. 제 식견이 부족해서 총대장님의 전력을 과소평가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교육의 반응이 확실합니다.”
이윽고 전환되는 태블릿 화면.
액정에 떠오른 것은 댓글.
나는 그 댓글을 훑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엑스칼리버ㅋㅋㅋㅋㅋㅋㅋㅋㅋ
-류오쥔춘 엎친 데 덮친 격이겠네 ㄹㅇㅋㅋ
-캬ㅋㅋㅋㅋㅋ 이게 격의 차이지
-주제를 알아라 제발ㅋㅋㅋㅋㅋ
‘아니, 교육이란 게 이런 교육을 말하는 거였어?!’
시련 하나를 극복하면 또 다른 시련이라니.
어째서 세상은 나에게 이리도 가혹하단 말이냐?
내가 진짜 떳떳하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