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291화 (291/489)

◈ 291화. 고도로 발달한 마법은

천하통일.

장담하건대.

그들의 행보에 불만을 가지지 않을 플레이어들은 없었다. 제로 산맥 업데이트 이전에는 단순하게 심기를 거스르게 하는 데 그쳤다면, 그 이후에는 선을 넘었다는 뜻이다.

유스라 왕국.

황금 송아지 주점.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린다.

“불문율을 어겨도 심하게 어겼지.”

“산맥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그렇지. 지들이 전세 냈냐?”

“총은 왜 들고 다니는 건데? 난 그게 존나게 어이가 없다니까?”

제로 산맥 등장 이후.

고레벨의 플레이어는 상대적으로 균열의 의존도가 낮아졌다.

꼭 균열이 아니더라도 제로 산맥이라는 양질의 경험치 수급처가 업데이트되었으니까. 허나 제로 산맥에서 활동이 마냥 편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왜긴 왜겠어. 욕심만 그득그득해서지.”

대 아르카나 전용 병기.

과학의 산물로 몬스터를 사냥한다고 해도 경험치나 전리품은 주어지지 않는다. 플레이어들의 시선에서 천하통일의 행보가 곱게 보일 수 없는 이유였다.

“딴 건 몰라도 네임드 몬스터는 흔하지 않잖아?”

“그쵸. 근데 그것도 마구잡이로 잡아댔으니까요.”

“효율 따윈 생각도 안 한다는 거지.”

경험치도 전리품도 없는 몬스터를 무리하게 사냥하는 이유?

간단했다.

직접 사냥한 플레이어에겐 돌아가는 몫이 없었지만.

그들을 지배하는 [군주], 류오쥔춘에겐 득이 되기 때문이었다.

“옛날에 군주 클래스를 키워본 사람들 말에 따르면 경험치 페널티가 상당하다고 하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엄청난 양으로 몰아붙이는 거죠!”

단 1퍼센트의 성과만 거둘 수 있다고 하더라도.

초거대 길드, 천하통일은 추진을 망설이지 않는 이들이었다.

한 마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존재들이란 뜻.

그런 의미에서.

-“이로써 경고가 되었나. 천하통일.”

호열이 천하통일을 언급한 순간.

“시, 실화냐!!”

황금 송아지 주점에선 환호가 튀어나왔다.

제아무리 천하통일의 세력이 거대하고, 안하무인이라고 한들.

호열과 성전 연합군을 따라갈 순 없었으니까.

적어도 플레이어라면. 정확하게는 천하통일에 데어본 이들이라면.

가슴속에 기대감이 싹트는 게 당연했다.

“그것들 꼬리 내리는 꼴을 볼 수 있는 건가?”

흥분하기도 잠깐.

호열이 선언을 끝마치자 그제야 배경이 플레이어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호열에게서 비추는 강렬한 후광 탓에 제대로 목격하지 못한 탓이었다.

“……근데, 저거 천하통일 복장 아니에요?”

바닥에 널브러진 붉은 제복의 플레이어들.

그 중심으로 넓게 흩뿌려진 검붉은 혈액.

그건 참상이었다.

“우욱.”

주점 곳곳.

헛구역질을 하는 플레이어들이 속출할 정도.

눈치가 빠른 몇몇 플레이어는 사건의 흐름을 짐작하기 시작했다.

“거악……. 칠죄종, 질투라고 했었지? 녀석에겐 어쩌면 프로스트의 마왕, 데카라비아처럼 제물이 필요했던 걸지도 몰라.”

“설마, 그 제물이 천하통일 길드원이었다?”

“잠깐만,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어째서 호열이 천하통일의 이름을 언급했는지.

플레이어들이 설마 하면서도 경악한다.

“류오쥔춘, 그 새끼 설마 자기 길드원들을……?”

상식이라는 게 있다.

하지만 류오쥔춘이 그 상식과는 동떨어진 인물이라는 게 문제였다.

플레이어들이 더욱더 크게 웅성거린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류오쥔춘도 거악에 협박당한 건 아닐까?”

“그럼 지금 이호열 총대장님의 판단이 틀렸단 거냐?”

“너, 그거 신성모독이야.”

“아니, 너네 뭐가 그렇게 극단적이야?!”

그러던 중 흠칫했다.

목소리 데시벨이 너무 커졌다.

자각했기 때문이었다.

“……흡.”

다급하게 그 입을 다무는 플레이어들.

이유는 간단했다.

황금 송아지 주점의 터줏대감…….

아니, 터줏진상 그림자 용병단의 락키드.

그가 이 난리 통을 목격했다면 분명 호통을 내뱉었을 테니까.

“……?”

하지만 주점에는 묘한 정적만이 흘렀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본 플레이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락키드를 비롯한 그림자 용병단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누군가 입을 연다.

“다행이긴 한데, 웬일이래?”

터줏진상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었겠는가?

황금 송아지 주점에서 쉽사리 떠나지 않는 락키드였다. 그 주량은 또 얼마나 센지, 아침부터 비운 맥주 통이 저녁이 되면 수십 개가 넘어가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용병단 단장이 안 보인 지도 꽤 됐네?”

하지만 플레이어들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TV 화면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야, 저기 봐봐.”

“붉은 복장, 천하통일 길드원 몇몇이 살아있는데……?”

“근데, 저 덩치는 천하통일이 아니라……. 락키드 아냐?!”

쉽게 가려지지 않는 거구, 락키드.

그를 비롯한 그림자 용병단원.

전원이 천하통일의 복장을 갖춰 입은 모습이 앵글에 포착됐다.

천하통일에 그림자 용병단, 거악, 그리고 호열까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해 보이는 상황.

확신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어쩌면 되게 꼬일 수도 있겠는데?”

증거가 명확하거늘.

자신들이 봐왔던 천하통일.

류오쥔춘의 태도가 뻔하게 예측이 됐으니까.

“그 새끼들, 억지 하나는 엄청나게 부리잖아.”

*

그림자 용병단.

전원은 마탑으로 호송되었다. 부상의 정도가 웬만한 치유마법으로는 손도 대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치유마법학 선임, 벨리에는 한숨을 돌렸다.

“후우, 쉽지 않네.”

치유마법학파.

벨리에를 비롯한 숙련 마법사들은 가뜩이나 일이 넘쳐났다.

이호열 수석께서 부탁해오신 요청을 수행하기도 벅찼거든.

차마 삼켜지지 않는 한숨.

“드래곤도 모자라서 이제는 대륙의 악동들까지…….”

악과(惡果)를 삼킨 드래곤들.

지금의 드래곤들이야 그 상태가 멀쩡했지만.

그들이 삼킨 악과의 씨앗이 언제 어떻게 육체에 악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었다.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고서적부터 용마대전의 기록까지 들춰보던 찰나에 이런 덤이라니.

벨리에는 고개를 털어냈다.

‘그래도 흔치 않게 부탁해 주셨으니 힘내야겠지.’

더불어 이 시각, 마탑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으니까.

.

.

.

마탑의 로비.

기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입을 연다.

“제로 산맥, 칠죄종 질투가 출현한 현장에서 발견된 천하통일 길드원들의 시신은 최소 백여 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림자 용병단원이 천하통일의 복장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 또한 대중의 크나큰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이호열 플레이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예측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림자 용병단은 어디까지나 성전 연합군 소속이기 때문입니다.”

거악 압살.

악크샨의 부활.

호열의 클래스.

그리고 클라우디의 의미까지.

수많은 떡밥이 풀리고, 또 던져진 상황이었거늘.

세간의 관심은 천하통일과 그림자 용병단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풀리지 않은 의문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마탑 곳곳의 플레이어들.

각자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마탑 소식을 확인한다.

자연스럽게 치유마법학파 별실을 향하게 되는 시선들.

“대체 왜 거기에 있던 걸까? 그것도 천하통일의 복장을 걸친 채로 말이야. 설마, 뒤통수를 치려던 건 아니겠지?!”

그림자 용병단의 악명이야.

마탑에 입성할 정도의 플레이어라면 익히 알고 있다.

설령 성전 연합군이 소속되어 있다고 한들.

더 큰 보상이라면 언제든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존재들.

그게 바로 그들이 아는 그림자 용병단이었으니까.

“에이, 그럴 리가.”

“왜, 사람 속은 아무도 몰라.”

“그랬다면 이 수석님이 가만히 계셨겠냐?”

“아하.”

사실 그보다 명쾌한 대답도 없었다.

긍지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이 수석님이셨다.

그런데 배신?

그림자 용병단도 거악과 함께 사냥당하고도 남았겠지.

“그리고 몇몇 영상에선 그림자 용병단이 거악하고 전투를 벌이는 모습이 포착됐잖아. 뭐, 그때도 거악의 시선은 이 수석님을 향한 걸 보면 큰 도움은 되지 못한 것 같기는 한데…….”

무엇보다 단순한 배신자라면.

이 수석님께서 마탑에서 보살펴 주실 이유가 없었다.

분명 그림자 용병단에게는 다른 사정이 있겠지.

그러니 찝찝했다.

“……이거 그 핑계로 빠져나가는 거 아니야?”

류오쥔춘은 영악하다.

단언컨대 모든 유명 랭커 중에 그보다 교활한 두뇌를 가진 이는 없다고 자신할 정도로.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 부동의 1위를 지키던 스칼이야 신비주의로 일관했기에 넘어간다고 치더라도.

“라이벌인 록스만 해도 그 정돈 아니야.”

남태민이나 히사기, 슈레이그도 마찬가지다.

성격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그 속을 알 수 없는 건 류오쥔춘이 유일했다.

그래서일까?

천하통일을 향한 호열의 선전포고.

천하통일이 그에 답을 내놓았을 때도 충격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천하통일은 피해자다.”

마탑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온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 새끼들……!!”

“벌써부터 피해자 코스프레 시작이네.”

“그딴 개소릴 우리가 믿을 것 같냐?”

당연하게도 플레이어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물론, 류오쥔춘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내, 떠오르는 속보들.

“……천하통일과의 관계 저하에 우려를 표한다고? 이 새끼들 대체 뇌물을 얼마나 처먹은 건데?! 아니, 애초에 그 새끼들이 뭐라도 돼?!”

“진짜 추잡한 새끼들이다, 예전부터.”

“잠깐만…….”

거기엔 천하통일의 조국.

중국의 의견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니, 그런 수준을 넘어서.

그 최고 통치자가 천하통일의 대변인이 되어 내뱉고 있었다.

-“이제부터 천하통일을 향한 공격은 우리 대국을 향한 공격으로 간주하겠다.”

천하통일이 항공모함을 대동하고.

제로 산맥에 나타났을 때부터 예상은 했거늘.

현실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법이었다.

“이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고……?”

류오쥔춘의 계략에 세계가 혀를 내둘렀다.

“……제로 산맥에 CCTV 같은 건 없겠죠?”

천하통일과 그림자 용병단.

거악이 모습을 드러내기 이전.

두 세력 사이에 어떠한 사건이 있었는가?

그 증거가 없기에.

천하통일은 이런 식으로 배짱을 부리는 것이었다.

조국이라는 거대한 방패를 내세워.

되려 호열을 압박하려고 들었다.

플레이어 대 플레이어를 넘어선 대립 구도.

국가가 나섰다면 마찬가지로 국가가 나서야 하거늘.

적어도 대한민국의 플레이어들은 알고 있었다.

“내가 기대도 안 한다, 그 쓰레기들한테는.”

과거에는 이나즈마와 신화 길드에 빌붙어서.

이나즈마와 신화가 과거를 청산하자 천하통일에 붙어서.

뇌물을 받아먹고 사는 게 그들이었다.

“가만히나 있는 게 도와주는 건데…….”

정치판에서 굴러먹던 눈치로 슬슬 여론을 조성할 게 뻔했다.

앞으로 돌아갈 상황을 예측하자니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확실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이대로면 얼마 가지 않아서 역풍이 풀 거야.”

천하통일 길드원과 그림자 용병단.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당사자들조차.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극심한 부상으로 입을 열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말 그대로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고서야…….

뚜벅.

인기척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

또각거리지 않는 걸로 봐서 일단 호열의 인기척은 아니었다.

뚜벅.

마탑의 계단을 디디는 다리 또한 호열의 다리보다 훨씬 가늘고 앙상했다. 하지만 마탑의 플레이어, 아니 견습 마법사들은 이 순간 처음으로 마음을 놓고 말았다.

로비에 모습을 드러낸 사내.

그는 무려 호열과 같은 직위를 가진 공동 수석.

죽음을 극복한 천재, 마르셀로 시무아르드였으니.

마르셀로가 무수한 카메라 앞에서 입을 연다.

“이 세계엔 그러한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그에 관해서 한마디를 남기고 이야기를 속행하죠.”

허공에 떠오르는 마르셀로의 마력.

이론마법학의 창시자.

동시에 마탑에서 가장 다양한 학파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마법사, 마르셀로. 마르셀로의 마력이 허공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도로 발달한 『마법』은 과학을 대신할 수 있다.”

이윽고 허공에 떠오른 제로 산맥의 전경.

그건 정확하게 과거 시점의 제로 산맥이었다.

허공에 토끼 가면의 플레이어가 떠올랐다.

-“이곳에서 뭘 하고 계신 걸까?”

-“이 구역은 이 몸. 유지오 님의 관할인데 말이야?”

-“그런 소식을 접하긴 했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오성의 특징을 내세워 오성의 명성을 팔고 다니는 녀석들이 내부에 있다고. 그게 진짜인 줄은 몰랐는데, 담이 큰 녀석들이구나?”

-“유감이지만, 애원해도 봐줄 생각은 없단다.”

웅성웅성─

“……저것들 자기들끼리 뭐 하는 거야?”

“서로 죽고 죽이는 게 류오쥔춘의 뜻이라고?”

“기, 기억을 못 하면 저건 충성심이 아니고 세뇌잖아!”

천하통일.

그 추악한 민낯이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래, 『마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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