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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290화 (290/489)

◈ 290화. 거대하지도 위대하지도 않다 (2)

‘버러지 같은 것들이……!’

질투는 육신을 파고든 암기를 바라봤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조악한 날붙이에 불과하다. 진화한 육체라면 이따위 공격에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아야 할 터.

‘큭!’

그러나 고통을 넘어선 격통이 느껴졌다.

새로운 날개를 펼쳐 떨쳐내려고 했건만.

날개 또한 말을 듣지 않았다.

“……!”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제야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질투가 빠득 이를 갈았다.

‘나는 허상을 보고 있었나?’

보고 있었다면 대체 언제부터인가?

그렇다면 나의 새로운 형태는.

이조차도 헛것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으으으으으.”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머릿속이 혼란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질투는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거악이다.

악크샨을 등에 업은 클라우디, 녀석은 몰라도 그림자 용병단.

보잘것없는 인간의 공격 따위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

희번뜩─

“죽여주마.”

질투의 안광에 살기가 깃든다.

꿈틀─

넝마가 된 육체가 다시금 손아귀를 뻗치려는 듯 꿀렁거리기 시작한다. 아홉의 그림자 용병단. 전원이 각자의 암기를 자신의 몸에 꽂아넣은 상태.

질투는 머리를 굴렸다.

‘회복할 틈을 벌어야 한다.’

하찮지만 동시에 귀찮았다.

그림자 용병단이야말로 누군가를 죽이는 데에 특화된 능력을 갖춘 이들이니까. 교묘하게 육체를 파고든 날붙이들이 하나같이 약점을 공격해 생명력 재생을 극도로 억제하고 있다는 뜻.

질투는 입을 열었다.

“뒈지고 싶지 않다면 떨어져라, 까마귀.”

여전히 착각하고 있구나, 클라우디.

네가 인간에 대해 무엇을 안다는 말이냐?

나는 태초부터 인간을 지켜봐 왔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극한의 상황에선 부모 자식의 인연조차 저버리는 것이 인간이라는 짐승이란 말이다.

그런데 기어코 그런 짐승을 신뢰하다니.

‘가엾기 그지없다. 우습기 그지없다.’

콰득─

그러나.

콰드드득─

“……커헉?”

질투는 광소를 뱉지 못했다.

“뭐가 그렇게 웃긴데? 같이 좀 웃자고, 새끼야.”

살기를 뿜어냈음에도, 더욱더 깊게 육신을 파고드는 날붙이들.

질투는 믿기지 않아 동공을 돌렸다.

다시 봐도 그림자 용병단이 확실하다.

비열하고, 속물적이며, 잔혹하기 그지없는 집단.

그렇기에 써먹었던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어찌 이들이…….

죽은 생선의 눈깔과 다름없어야 동공이…….

‘그 반짝거림은 무엇이냔 말이냐……?’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는 말인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인간 따위가 진정으로 변화할 수 있단 말이냐?”

이윽고 질투의 시선이 호열을 향한다.

그와 동시에.

질투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

그랬구나.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너’였구나.

동공에 담은 빛은 그대의 빛이었구나.

깨닫는 순간, 질투의 환상이 깨져갔다.

후드드득─

검은 깃털의 날개는 온데간데없다.

그 대신 눈에 들어온 건 그대로 잘려있는 오른팔.

상처투성이의 육신.

그리고.

덜덜덜─

공포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자신.

거악은 떠올리고야 말았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거스를 수 없는 천적관계를.

사냥당하는 공포를.

질투가 무릎을 꿇었다.

“……부, 부디 나를 살려다오!”

*

그림자 용병단.

그들이 아르카나 대륙 전기 스토리, 최후반까지 활약할 예정이었다던 AAU의 정보는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그들의 능력은 배가 되는 듯했으니까.

[그림자 용병단에 대한 지휘권을 획득하셨습니다.]

물론, 나를 완전히 따라준 덕분에 여명의 세트 효과가 발동.

대폭 상승한 사기의 영향이 작진 않겠지.

그럼에도 그림자 용병단은 대단했다.

“아니, 잘못했습니다. 클라우디시여……!!”

결정적으로 거악을 굴복하게 만들었잖아?

같잖은 연기라고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시스템 메시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악, 칠죄종 질투에게 ‘공포’가 발생합니다.]

질투가 무릎을 꿇는다.

공포에 떨고 있는 탓일까.

스스스─

육체가 떨릴 때마다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져 간다.

갈수록 보잘것없어지며 하찮아져 간다.

얼마 가지 않아 깊숙이 박혔던 그림자 용병단의 비수들이 자연스럽게 빠질 만큼.

울프가 무기를 거두며 말한다.

“이제 됐어.”

꾸벅.

그러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인 뒤.

단원들과 함께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나는 계속해서 왜소해져 가는 질투를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거악으로서의 위용은 없다.

남아있는 건 악마에 불과했다.

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면.

구걸조차 불사하는 임프와 다를 것 없는 악마.

“살려주신다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겠습니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아니, 반드시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칠죄종인 오만에 관해서는……! 클라우디, 당신께 반드시 드려야 할 말이 있습니다!”

칠죄종, 오만이라.

녀석에 관해서 내게 반드시 전해야 할 말이 있다라.

그것참 구미가 당기는 말이 아닐 수 없군.

‘왜, 정보는 중요하니까.’

나, 이호열이라면 그 이야기 정도는 유언으로 들어주고 지옥으로 보내줬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랑펠의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지금에서는 무의미한 가정이지만 말이야.

“어째서 그래야 하는가.”

“……네?”

“세상은 넓고,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할 것은 많다. 그런데 내가 어찌하여. 보잘것없는 악마의 사정을 기억하고, 머릿속에 담아둬야 하는가.”

정말이지, 미칠듯한 자신감이시다…….

그랑펠식 화법은 진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지 않을까?

물론, 그것 때문에 훗날 고생하는 건 내가 되겠지.

‘근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랑펠의 긍지가 악마와 협상하는 건 있을 수 없으니까.

“…….”

한 줌의 기대마저 부정당해서인가.

질투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불꽃을 불사르는 것처럼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래, 너조차도 나의 말이 우습게 들리나 보구나. 원통하다. 최후의 순간, 그토록 꼿꼿했던 네놈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저주가 계속된다.

질투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더니 입술을 깨문다.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잇는다.

“비록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어졌다고 한들. 나는 거악이다. 원죄에서 태어난 존재란 말이다!! 그런 내가 힘을 잃었다고 업신여기다니……!!”

질투.

이름대로 질투에 악이 받쳐서 소리치는 것 같군.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말했잖아?

“너는 거대하지도 위대하지도 않다.”

뭐가 거악이고, 마왕이냐.

칠죄종 오만?

그 어떤 악마가 됐다고 한들.

그랑펠의 시선에는 이름 없는 하찮은 임프와 다를 바가 없는데.

나는 질투를 향해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내게 너는 작디작은 임프와 다를 것 없었다.”

거,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에 억장을 긁어도 너무 박박 긁는 거 아닌가. 이래서 그랑펠을 적으로 돌리면 안 되는 거구나. 화병으로 두 번 죽겠구나.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어째서인가.

허망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질투가 웃고 있었다.

“그런가.”

후드득.

껍데기가 사라지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가냘픈 본래의 육체마저도 지옥의 불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버틸 힘마저 사라졌나 생각하던 순간, 질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질투로 에워싼 껍데기 따윈 네게 의미가 없었구나.”

유언이냐?

그보다 무슨 뜻인데.

혹시, 너도 그랑펠식 화법의 소유자냐?

어이가 없어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내, 질투가 완전히 지옥의 불에 휩싸였다.

흩어지듯 내뱉은 한마디 말을 남긴 채.

“……역시 나는 너를 질투할 수밖에 없다.”

그와 동시에 눈앞이 점멸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악크샨과의 관계도가 상승했습니다.]

[악크샨에서의 영향력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거악, 칠죄종 질투에 대한 처치 기여도가 인정됩니다.]

[높은 처치 기여도로 전리품이 자동으로 습득됩니다.]…….

메시지가 어지럽게도 떠오른다.

점멸이 끊이질 않는 걸 보니까 부활했던 탐욕과 다르게.

진짜 거악을 처치했다는 게 체감이 되는군.

그런 나를 향해 악크샨 선배님들의 시선이 쏟아진다.

역시나.

그 눈빛에서 잘했다, 칭찬하는 기색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끄덕.

그저 말보다는 행동.

그게 악크샨의 소통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이제 와서 서운해하기는 또 그렇겠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옥으로 떨어진 거악.

덕분에 제로 산맥이 완전히 제 빛을 되찾아간다.

전투가 끝났으니, 사기 진작의 효과도 끝난 걸까. 죽음을 각오한 투쟁, 필사적으로 질투에게 달려들었던 그림자 용병단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거나 쓰러진다.

그리고.

그 풍경 가운데서.

나는 언제나처럼 한결같았다.

단 한 순간도 꺾이지 않던 꼿꼿함.

그래, 목표로 했던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투두두두─

수십 개의 헬리콥터.

수백 개의 드론이 촬영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이 세상이 지켜보고 있었다.

‘……후우─’

정말이지. 가엾은 나, 이호열에게는 끔찍한 상황이구나.

자체발광하는 복장이 수치스러운 것을 떠나서.

세상에 드러나도 훤히 드러났겠구나, 싶었거든.

악크샨도.

악마 사냥꾼도.

심지어는 클라우디까지도……!

도둑이 제 발이 저린다는 거겠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나는.

다시금 쥐구멍.

[산맥 지하 작은 챔피언의 성소]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거늘.

허나.

“이로써 경고가 되었나.”

지금의 그랑펠은 무려 거악을 압살해 내고.

긍지가 충만할 때로 충만해진 상태였으니.

이놈의 입방정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 지금은 참아보자 호열아.’

악크샨도.

악마 사냥꾼도.

클라우디도.

‘아직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단계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랑펠의 빌어먹을 풀네임은 아직 그 누구도 알지 못했으니. 이내, 나는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정신줄을 부여잡고 내뱉을 수 있었다.

그런 나의 냉랭한 음성이 향한 곳은 당연하게도.

지금의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

“천하통일.”

그래.

모험가들의 군주.

류오쥔춘, 너다.

*

제로 산맥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할 정도의 길드는 기업이라 봐도 무방하다. 길드마다 분석을 위한 드론을 수십 개씩 띄우는 건 기본이라는 의미다.

“마스터, AAU에서 협조 요청입니다!”

“방송국에서도 영상 자료를 부탁한다고……!”

“대, 대장. 정부, 그것도 되게 높으신 분이……!!”

길드, AAU, 정부, 언론.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그 때문에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에겐 협력 요청이 쇄도했다.

레이먼 션이 업데이트 내역 공지를 중단한 지금.

의존할 수 있는 건 플레이어들이 전달하는 제로 산맥의 실시간 상황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플레이어들에게도 구체적인 정보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지켜본다고 뭐가 나올까요?”

“출현 메시지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필드가 바뀔 정도로 대단한 녀석이라는 것밖에는…….”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드론을 통해 떠오르는 산맥의 전경.

“!!!”

거기엔 복잡한 부가 설명 따윈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전문가의 예상 따위도 무의미했으니까.

그래, 그것은 단순한 사냥이었다.

“저, 저게 대체?”

사냥에 이견 따윈 없었다.

압살, 그 자체.

게다가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았는가?

“저 치렁치렁한 복장은 분명 악마 사냥꾼……!”

“그럼 저 늑대가 바로 악크샨 늑대?!”

“방금……. 클라우디라고 하지 않았어?”

악크샨의 부활.

그리고 전 세계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그 단어.

‘클라우디’의 의미까지도.

-“이로써 경고가 되었나.”

그 폭풍의 눈에 꼿꼿하게 서 있던.

호열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거악의 출현.

그 원흉을 특정했다.

-“천하통일.”

그와 동시에 전 세계가 들썩거렸다.

-류오쥔춘 또 너야?!!

-천하통일 이새끼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의구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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